월간복지동향 2001 2001-08-10   822

건강권에 대하여

의료대란을 겪고 나서

새로운 천년을 시작한다는 2000년에는 남북정상이 만나는 역사적인 사건이 있었다. 그러나 역사적인 만남의 감격은 곧바로 이어진 의사들의 파업이 의료대란으로 치달으면서 산산이 부서졌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왜 의사들이 의약분업에 반대하는지 영문도 모르고 있었고 그냥 의약분업이라는 선진적인 제도를 만드느라 예전처럼 의료기관에서 약을 받지 못하고 약국으로 가서 약을 받아야 한다는 불편이 생길 것이라 하여 그런가 보다 하고 있던 환자들에게 의료대란은 날벼락 같은 일이었다. "의권(醫權)"이라는 생소한 단어가 들어간 의권쟁취투쟁위원회라는 의사단체가 언론에 오르내리면서 몇 달간이나 진료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일이 이어지고 환자는 치료를 받을 권리가 있다는 주장이 자연스럽게 제기되었다. 당연히 보장되리라고 보았던 진료받는 길이 막히면서 의료를 어떻게 모아야 할 것인가 하는 새롭고 본질적인 문제가 제기된 것이다.

의료대란을 겪으면서 의사들의 "의권"이 현실적인 힘으로 제시되면서 의사 아닌 사람들의 주장으로 제기된 것이 치료받을 권리를 넘어서서 "건강권"이라는 용어이다. 건강을 권리로서 주장한다는 것이 법적으로나 관습적으로 얼마나 구체적인 내용을 가질 수 있는지 의문이지만 공공장소에서 금연을 요구할 권리가 있는 것처럼 보편적 권리인 행복추구권의 하나로 새로운 발상을 하게 한다. 그래서 건강권에 대한 논의를 통해 의료와 복지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건강과 건강권에 대한 몇 가지 생각을 적어본다.

건강이란 무엇인가

건강은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서도 모든 사람들의 바람이다. 그러나 건강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은 시대와 환경에 따라 달라져 왔다. 지금 가장 널리 알려진 건강에 대한 정의는 세계보건기구가 1948년에 정한 것이다. 건강이 "단순히 질병이 없거나 허약하지 않다는 것에 그치지 않고 완전한 신체적, 정신적 및 사회적 안녕"이라는 이 정의는 신체적 건강개념이나 정신적 건강을 넘어 사회적 범주를 포함함으로써 우리 현실에서는 이상적인 선언에 가깝다.

모든 질병은 사회적 조건에 따라 어느 정도다른 과정을 겪는다. 나병이나 에이즈 등 특별한 질병에 대한 사회적 차별은 말할 것 없지만 생화로한경과 작업조건에 따라 같은 질병을 앓으면서도 치유과정이나 재활과정이 서로 크게 다른 경우를 보는 것은 흔한 일이다. 신체적으로 장애가 있는 경우 어느 사회에서 사는가에 따라 장애에 따른 차이는 엄청나게 다르게 나타난다.

우리나라처럼 의료보험이 있지만 기능이 진료비 할인에 그치는 나라에서는 질병치료는 누구나 누릴 수 있는 권리가 아니다. 급성질환으로 치료비가 문제가 되는 경우는 전보다 많이 줄었지만 만성질환의 관리에서 치료비가 중요한 관건이 되어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거나 장애가 심해지는 경우는 아주 많다.

이처럼 질병을 제대로 치료하는 것도 우리 현실에서는 모든 사람에게 가능한 것이 아니다. 그렇기 ‹š문에 질병을 낫는 것도 여의치 않는데 "질병이 없는" 상태를 바라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다. 그것은 건강에 유해한 공기, 물, 소음 같은 물리적 환경요인, 직장이나 대인관계의 스트레스, 직업병을 유발하는 작업장의 환경조건, 담배 술 전염병 등 유해물질과 교통사고와 안전사고와 사회적 관습 등 건강을 해치는 요소들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하고 안전하게 관리해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건강을 위해서는 이러한 건강위해요소들로부터 보호받아야 하고 경제적 조건에 관계없이 일정한 범위 안에서는 적절하게 치료받을 수 있어야 한다. 현재 시행중인 건강위해요소에 대한 여러 가지 보호조치나 규정들 즉 환경관리 사항이나 안전관리 사항을 공개하여 검증과 평가를 거치게 하면 형식적이 아니라 실질적인 안전한 사회, 건강한 사회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또 현행 의료보험이 실질적인 보험이 되어 본인부담금이 현실적인 부담이 되지 않도록 개선하여야 한다.

미래를 위하여

건강을 권리로서 주장하는 것은 건강을 사회적인 안녕을 포함하여 정의한 세계보건기구 헌장의 인식과 통한다. 그러나 권리가 집단을 구체적으로 결집시키지 못하면 추상적이고 선언적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건강권 실현을 위해 운동하려면 누가 무엇을 대상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구체적인 고민을 하여야 ㅎ나다. 저소득층이나 빈곤층이 적절한 진료를 받도록 하기 위한 건강권 주장은 실태의 정확한 파악과 동원 가능한 사회적 자원의 검토를 통하여 이루어져야 설득력 있는 운동이 될 수 있다. 건강위해요소에 대한 관리와 검증은 정보공개와 모니터, 대안모색 등 많은 과제를 실천적으로 제기한다. 이러한 구체적인 접근은 건강권 실현을 가로막는 사회적 관습이나 제도의 미비를 고쳐내며 실질적인 운동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사회가 지난 몇 년간 보여준 장애우에 대한 인식의 변화는 아직 충분하지 않지만 놀라운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나는 그 운동이 장애우들의 건강권확보운동이며 건강권 운동의 좋은 예라고 본다. 집안에 갇혀 있떤 장애우의 문제를 광장으로 끌어낸 것처럼 다른 굴레에 씌여 닫혀있는 건강권을 통한 새로운 사고와 자세로 미래를 만들어 보았으면 한다.

양길승 / 참여연대 운영위원, 성수의원 원장

월간 <복지동향> 2001년 08월호(제3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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