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 보험증을 전자카드화하는 방안과 관련하여 많은 찬반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우리 사회가 건강하고 성숙한 사회라는 측면에서 매우 바람직한 일이라 생각한다. 이러한 논의과정을 통해 사회적 가치관이 확인되고 여러 가지 제도도입 여건이 간접적으로 검토·검증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필자는 이러한 사회적 논의가 활발히 이루어져 발전적인 방향으로 결론 맺어지길 희망한다.
건강보험증 전자화의 이유
일반적으로 전자카드화의 추진이 허위·부당청구를 막기 위함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는 여러 가지 효과 중 하나에 불과하다. 건강보험증의 전자화는 보험업무의 효율화·투명화에 그 근본적인 목적이 있다. 보통의 상품이나 서비스와 달리 건강보험은 서비스를 제공받는 소비자(환자)와 대가를 지불하는 자(건강공단)가 다른 특징이 있다. 단돈 몇 천 원 짜리 물건을 구입하면서 꼼꼼히 영수증을 살피고 확인함으로써 시장(market)에서의 거래는 건전성과 투명성이 확보된다. 반면, 건강보험은 사후에 공단이 대가를 지불하기 때문에 제공된 서비스의 양과 질을 정확히 살피는 기능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여기에서 고객은 대가가 정확하게 지불되는지, 공단은 환자가 대가만큼 서비스를 받았는지 의혹을 가질 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의사와 약사가 정직하고 투명하게 보험청구를 하더라도 일부의 허위·부당청구로 인해 집단적으로 의심받는 근본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하겠다. 따라서, 제도적인 측면에서 투명하게 거래가 이루어지는 기반이 확충된다면 이러한 사회적 불신은 상당부분 예방할 수 있을 것이다. 전자보험증은 이러한 사회적 인프라를 제공한다.
보험증의 전자화로 다음과 같은 사회적 편익이 예상된다. 첫째, 환자들의 대기시간이 감소될 것이다. 병원에 갔을 때 기본적으로 입력해야 하는 정보(이름, 주소, 주민번호 등등)가 전자카드를 통해 병의원과 약국의 단말기에 자동 입력되고, 진료 후 처방전이 카드에 입력됨으로써 병의원에서 행정처리가 빨라지면 환자의 대기시간이 감소될 것이다. 또한, 혈액형, 알러지 정보 등 간단한 응급정보를 기재해서 응급시 정확한 처치가 가능할 수 있다. 보험카드에 부가될 신용카드 기능을 통해 결재를 할 수 있어 정보화의 이기(利器)를 활용할 기회가 확대되는 것도 부수적 효과이다. 병원별로 구비해야 하는 진료카드는 앞으로 전자건강카드 하나로 대체할 수 있어 카드관리가 용이해 진다. 세대별로 지급되던 보험증이 개인별로 지급되면 가족이 동시에 다른 장소에서 자유로이 진료를 받을 수 있게 된다.
둘째, 병의원과 약국에서는 정보입력비용이 절감되고 오입력으로 인한 청구서류의 반환 등 행정처리비용, 진료카드의 발행비용이 절감되고 청구시스템과 연결시 청구서류 작성을 위한 비용도 상당히 절감될 수 있을 것이다. 그밖에 병의원별로 별도 구비중인 직원용 엑세스카드도 전자보험증으로 대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셋째, 공단의 보험업무가 효율화된다. 징수율 제고와 철저한 급여관리가 가능해짐으로써 재정누수가 방지되고 관리비용이 절감될 것이다. 예를 들어 환자 수에 따른 차등수가제나 야간가산율 관리가 전자시스템에 의해 자동 확인됨으로써 부당청구의 가능성이 줄고 이를 확인하기 위한 행정부담이 크게 절감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사회적인 측면에서 신용카드 등에 의한 결재율이 상승함으로써 거래가 투명화되고 국내 정보산업의 발전이 기대되는 등 사회적 편익이 매우 클 것으로 판단된다.
그렇다면 문제점은 없는 것인가? 지금까지 제기되고 있는 문제점은 크게 세 가지로 판단된다.
첫째, 개인정보 유출문제. 이는 정부로서도 최대한 역점을 두어 그러한 가능성을 철저히 차단할 방침이다. 전자카드에는 현재의 종이보험증에 기재된 기본정보만을 입력하고 진료기록은 담지 않을 계획이다. 원외처방전이 발행되는 경우에는 카드에 내장하는 방식으로 전달함으로써 오히려, 현재의 종이보험증보다 보안성이 한층 강화될 수 있을 것이다. 카드에 내장된 정보는 의·약사카드로 동시에 로그인(log-in) 해야 판독이 가능한 방식을 도입하여 접근권한을 엄격히 제한한다. 카드발급을 위한 가입자정보도 현행과 같이 공단이 관리함으로써 민간업체에의 유출가능성은 없다고 본다.
둘째, 비용에 관한 문제이다. 우선 전자카드화에 필요한 모든 비용은 민간사업자가 부담한다. 환자나 병의원·약국의 추가부담은 없다. 신용카드와 같은 부가기능도 전적으로 가입자의 선택에 의한다. 신용불량자나 미성년자 등 신용카드를 발급 받을 수 없는 가입자는 현금카드나 부가기능이 없는 순수 전자보험증을 발급 받을 수 있다. 민간사업자는 신용카드 등 수익사업을 통하여 투자한 비용에 대한 적정한 수익을 창출할 것이다. 신용카드 수수료가 주요 수익원이 되는데 이는 국민의 추가부담이 아니다. 신용카드를 이용 백화점에서 물품을 구입하거나 진료 후 카드로 결재하는 경우에 수수료가 발생하는데, 이는 전자보험증이 아니더라도 발생하는 것이고 그에 상응하는 서비스(결재서비스)를 제공받는 것이므로 추가부담이라 볼 수 없다. 또한, 상당한 산업발전 효과가 기대되어 고용증진 등 경제발전이 이루어진다면 오히려 사회적 편익이 매우 클 것이다.
셋째, 다른 공적 신분증과의 통합 문제이다. 과거 전자주민증의 실패요인은 하나의 카드에 너무나 많은 정보를 담으려고 시도함으로써 심각한 정보유출·남용의 소지를 안고 있었다. 전자건강카드는 말 그대로 건강보험증의 용도로 한정할 것이고, 주민증이나 운전면허증 등 다른 공적 신분증과 연계할 계획이 전혀 없다.
역사의 큰 흐름을 일시적으로 막을 수는 있어도 결코 거스를 수는 없다. 19세기 쇄국정책과 같이 역사의 흐름에 역행하는 시책은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야기한 역사적 교훈이 있다. 전자보험증은 이미 독일, 프랑스, 일본, 핀란드 등 세계 여러 나라에서 추진했거나 추진 중에 있어 우리로서도 외면할 수만은 없는 과제라고 본다. 다만, 전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사업이니 만큼 사려 깊고 신중하게 검토함으로써 철저한 사전준비를 해야 하는 당위는 실무책임자들도 명심하고 있는 바이다. '누구나 그러할 수밖에 없어서 의심할 필요도 없는 투명한 제도적 기반을 구축하여 불신비용(不信費用)을 최소화하는 것', 그런 것이 현대사회 정부의 역할 중 하나가 아니겠는가?
월간 <복지동향> 2001년 08월호(제3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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