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지난 7월 8일부터 14일까지 타이완 정부 내정부 역정사(우리의 병무청에 해당하는 기관)와 시민단체인 대만화평기금회의 초청으로 10여명의 활동가와 함께 타이완을 다녀 왔다. 우리 참관단의 방문 목적은 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타이완에서 작년부터 실시되고 있는 대체복무제도의 현황을 둘러보기 위한 것이었다. 한국에서 대체복무제도에 관한 논의는 올해 2월 {한겨레 21}에서 여호와의 증인 중 양심적 병역거부로 인해 수감된 인원이 무려 1,300여명에 달한다는 사실을 보도하면서 본격화되었다. 타이완을 방문하기 전까지는 한국 참관단의 어느 누구도 대체복무제도를 사회복지의 관점에서 생각해보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 참관단 성원들은 타이완의 제도를 둘러보면서 이 제도가 우리의 열악한 사회복지를 단기간에 상당히 개선하는 데 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새로운 개안을 하게 되었다.
타이완에서의 대체복무제도의 추진과정
치엔시치에 의원은 1996년 2월 처음으로 대체복무 제도(당시에는 '사회역'이라 부름)에 대한 기자회견을 열었을 때 기자들이 이 문제에 대해 아무런 관심이 없어 한 명도 오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이 제도의 도입으로 가장 혜택을 보게 될 대학생들 역시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고 한다. 타이완대학 학생회 등 주요 대학의 학생회들 역시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아서 치엔 의원은 학생회와도 접촉하기 힘들어 몇몇 동아리를 찾아다니며 동아리 간부들을 설득했다고 한다. 국방부는 치엔 의원 등이 대체복무 제도의 도입을 강력히 요구하자 병력원이 부족하기 때문에 절대로 도입할 수 없다는 말을 되풀이했다고 한다.
대답 없는 메아리와 같던 대체복무 제도 도입운동에 돌파구가 뚫린 것은 1997년 7월 국방부가 [국군정실방안(國軍精實方案)]을 채택하여 군 병력의 감축과 장비의 현대화를 추진하면서부터였다. 한편 치엔 의원은 대체복무 제도의 도입과 병행하여 군복무기간의 단축을 추진했다. 군복무 기간의 단축 없이 대체복무 제도가 도입된다면 대체복무 기간이 너무 길어지기 때문이다. 군복무기간 단축 문제가 제기되자 젊은이들은 대체복무제에 대해 관심과 지지를 보내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런 활동과 병행하여 치엔 의원은 사회복지단체를 찾아다니며 이 제도를 도입하면 사회복지시설에 수많은 젊은이들이 배치될 수 있어 사회복지의 질을 급속히 향상할 수 있다고 설득했다. 사회복지단체들은 처음에는 군인들이 와 봐야 별 도움이 안될 것이라며 시큰둥했다. 그러나 치엔 의원 등이 유럽국가의 예를 들면서 대체복무 제도의 장점을 끈질기게 설명함에 따라 사회복지단체들도 이 제도를 지지하게 되었고, 1998년 8월에는 20여 개 단체가 참가하는 '사회역민간추동연맹'이 결성되었다. 추동연맹은 1999년 2월과 3월에 세 차례 공청회를 열어 대체복무제도가 도입되면 사회복지, 환경, 그리고 원주민복지 등에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가를 널리 선전했다.
한편 감군안 실시 이후 병력 자원에 여유가 생김에 따라 행정원도 대체복무제도의 실시를 검토하기 시작했다. 1998년 3월 행정원 내에 전담반이 구성되었고, 8월에는 이 전담반의 핵심요원들이 치엔 의원, 국방부 고위관료 등과 함께 유럽을 방문하여 여러 나라의 대체복무 제도의 실시 현황을 시찰하였다. 이들은 대체복무제도의 실시가 국가의 당면이익에 부합되며, 앞으로 1년 간 이 제도의 준비를 정부의 주요 개혁방안의 하나로 추진하기로 결론지었다. 한편 이 무렵 사회역 추진을 위한 인터넷 홈페이지가 개설되어 많은 젊은이들이 접속하여 이 제도를 알게되고 지지의 폭을 넓혔다. 이런 여론의 지지와 병력을 줄이는 대신 군사력을 현대화하는 방안을 군부가 받아들임으로 인해 국방부도 태도를 바꾸어 사회역의 도입에 반대하지 않게 되었다. 1999년 9월 21일 타이완 중부인 타이중 일대에 대지진이 발생하였는데, 이 때 발생한 이재민 구호와 복구건설의 긴박함은 대체복무 제도의 실시에 힘을 보태주었다. 마침내 2000년 1월 15일 입법원은 [병역법 수정안]과 [체대역(대체복무) 실시조례]를 통과시켰고, 이 제도는 2000년 7월부터 시행되었다.
대체복무와 사회복지의 확대
타이완 역정사의 관리들은 대단한 자부심과 열정을 갖고 우리 참관단을 대체복무를 하는 젊은이들, 이 곳 용어로 역남(役男)들이 근무하는 사회복지 시설로 안내했다. 우리가 제일 먼저 찾은 곳은 타이완 중부 타이중시(台中市)에 자리잡은 노인의 집이였다. 모두 367명의 노인들이 살고 있는 이 곳에는 모두 15명의 역남들이 근무하고 있었다. 대체복무자들의 근무현황을 소개할 때 노인의 집 원장의 입은 정말 반 쯤 찢어져 있었다. 이 제도의 실시로 자신이 원장으로 있으면서 늘 바래오던 것들이 한꺼번에 실현되었다는 것이다. 현재 대체복무자들 중에 물리치료사 자격증을 가진 사람이 3명, 영양사가 2명, 재활의학 전공자 1명 등으로, 몇 년을 두고 정부 당국에 인원보강을 요구하던 문제가 일시에 해결되었으니 그럴만도 했다. 물리치료사나 재활의학 전공자를 상주직원으로 채용하고, 이런 인원을 한꺼번에 배치하자면 사회복지예산을 얼마나 늘려야 할까? 타이완 역시 60만의 대군을 운용해 온 병영국가였다. 타이완의 인구는 우리의 절반 가량인 2천1백만. 그 인구로 우리와 맞먹는 병력을 유지하려면 당연히 사회복지에 돌아갈 예산은 형편없었을 것이다. 대체복무 제도의 실시로 혜택을 받는 사람은 현재 대체복무 인원 1만여명 중 40여명인 종교적 이유의 신청자만이 아니었다. 사회복지 시설에 젊고 전문성을 가진 사람들이 수천 명 배치되었다는 사실은 사회복지 수준의 획기적인 향상을 가져오고 있었다. 노인의 집 원장은 이 제도의 실시가 타이완의 국가발전을 상징한다고 말했다.
우리는 심신장애자들의 교육시설과 시각장애자 학교를 방문하였는데, 여기서도 역남들은 비슷한 분위기였다. 특히 시각장애자 학교의 경우는 근무하는 역남의 수가 3명에 불과해서 그런지도 모르지만, 보고 내용의 절반이 이들의 활동과 일상생활을 담은 슬라이드 쇼로 되어 있었다. 보고를 맡은 이 학교의 총무주임은 사진 속의 인물들을 하나하나 소개해 가며 보고를 진행했다. 그 순간 '아, 방위나 공익근무요원들에게도 이름이 있는 것이구나'하면서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 꽃이 되었다"라는 싯구가 생각났다. 타이완의 군대 역시 우리와 마찬가지로 엄청난 자살율 때문에 악명이 높았는데, 치엔 의원이 대체복무자들 중에서 자살한 사람이 없다고 자랑하던 말도 떠올랐다.
사회복지에 미친 효과와 문제점
우리의 경우 대체복무제도를 주로 소수자의 인권보호라는 차원에서 생각했지만, 타이완에서 이 제도가 도입됨으로써 나타난 가장 중요한 성과는 사회복지의 확대였다. 비록 입법과정에서 경찰역, 소방역 등에 대체복무자들의 절반 가량이 배정되어 사회복지의 확대가 원래의 기대만큼 효과를 보지는 못했다하더라도 수천 명의 인원이 사회복지시설, 교육기관, 의료시설, 환경보호기관 등에 배치되어 활동하게 되었다는 사실은 큰 의미를 갖는다. 독일의 경우 동서냉전의 종식과 통일로 인해 국방위협이 줄어들어 징병제 폐지의 여건이 성숙하였으나, 아직 징병제 폐지를 하지 못하는 이유도 약 13만 명에 달하는 대체복무자들이 사회복지에서 큰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타이완에서는 앞으로 대체복무제도가 확대될 경우 이들을 독거노인 가정이나 장애인 가정에까지 배치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이 제도의 실시와 관련한 문제점으로는 일부 사회복지 시설에서 대체복무자들의 배정을 이유로 일반직을 감원하려는 경향이 나타났다고 한다. 또 사회복지에 대체복무자들이 대거 투입될 경우 대체복무자들에게 지급되는 봉급은 현재 사회봉사기관에서 일하는 사람보다 현격히 낮기 때문에 임금 하락 요인이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타이완에는 현재 1300-1400 여 개의 사회복지시설이 있는데, 대체복무자들이 일하고 있는 곳은 국공립 기관 100여 개소 뿐이다. 앞으로 대체복무를 민간의 사회복지시설로 확대할 것이라면, 이 문제에 대한 대책이 시급히 마련되어야 한다.
사회복지시설의 경우 노인들, 장애인들을 돌보는 일은 대단히 힘든 일이다. 20대 초반의 젊은 남성들은 대체로 사회봉사의 경험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이 일들의 실상을 모르고 지원한 경우가 많다. 또 대체복무자들을 위한 직전훈련(職前訓練)의 경우 실습보다는 이론 위주로 교육되기 때문에 대체복무자들은 복지시설에 배정된 후에야 노인들의 기저귀를 가는 것, 그들의 말동무가 되고 짜증을 받아 주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깨닫고 후회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물론 대다수의 젊은이들은 주어진 일에 헌신적으로 종사하고 있지만 일부 대체복무자들은 다른 곳으로의 전출을 원하기도 한다. 대체복무 제도에서 사회역이 확대될 경우 이런 현상은 더욱 많이 나타날 수 있다. 또 대체복무자들이 질병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돌보는 과정에서 피부병, 전염병에 감염되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어 이들에 대한 건강 대책도 마련되어야 한다.
남북의 대치 속에서 60만이 넘는 병영국가를 유지하느라 막대한 예산을 퍼붓고 있는 우리 나라에서 사회복지와 교육은 엄청난 희생을 강요받고 있다. 타이완의 경험에서 보듯 대체복무제도는 단지 소수자의 인권옹호나 징병대상 청년들의 선택권 확대에 그치지 않고 사회복지의 신장을 가져 올 수 있는 묘안이라 할 수 있다. 특히 대체복무를 선택하여 사회복지에 배정되는 인원의 대다수가 대학에서 사회복지, 물리치료, 식품영양학 등 복지기관이 필요로 하는 분야를 전공하고 앞으로도 사회복지 기관에서 일할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사회복지 시설들이 실질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월간 <복지동향> 2001년 09월호(제3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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