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01 2001-10-10   1051

비정규 노동자문제: 노동복지체계에 대한 반성

정부는 지난 8월23일 국제통화기금으로부터의 차입금 전액을 상환함으로써 이른바 "IMF 졸업식"을 치렀다고 공식 발표하였다. 게다가 지난 9월말 현재 우리 나라의 외환보유액은 1,000억불을 넘어서고 있다. 실업률은 지난 3월이후 꾸준히 하락하여 3.4%대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한국의 노동시장에서 비정규 노동자의 수는 여전히 전체 임금노동자의 50%를 넘어서고 있으며, 이 수치는 당분간 크게 감소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왜 그런가? 비정규 고용은 경제불황의 산물이 아니었던가? 아니면, 여전히 우리사회가 불황의 늪을 벗어나지 못했는가? 사용자들은 경제위기를 기회로 이전부터 추진하던 노동시장 유연화 전략을 더욱 적극적으로 밀어 부치고 있는 것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비정규 고용을 원하는 "자발적 비정규 노동자"들인가? 게다가 비정규 노동자들이 겪고 있는 고용불안정, 각종 근로조건에서의 차별적 처우, 미흡한 사회보장 및 기업복지적용 등의 문제는 경제위기 직후와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

비정규노동자문제 논의- 먹을 것 없는 소문난 잔치

비정규 노동자들의 문제가 우리사회에서 뜨거운 이슈가 된 것은 1990년대 말 경제위기로부터 기업의 고용조정이 본격화되면서 실업률이 급등하고, 동시에 노동시장의 주변부에 있던 취약한 노동자들과 신규실업자들이 비정규 노동자로 전락하면서부터이다. 이후 비정규 노동자들의 문제와 대책에 대한 논의가 비교적 활발하게, 그리고 다각적으로 진행되어 왔다. 이러한 논의들 중에는 비정규 노동자의 개념을 정의하는 것으로부터, 이들의 규모를 추정하는 것, 비정규 노동자들의 법적 지위와 사회적 보호방안을 탐색하는 것 등 실로 다양한 주제들이 포함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비정규 노동자들의 문제를 해결하고 이들을 사회적으로 보호하기 위한 실질적인 방안은 아직 별로 뚜렷하게 드러나고 있지 않고 있다. 비정규 노동자의 문제와 대책에 관한 논의는 정부에서, 학계에서, 그리고 노동현장에서 모두 관심을 갖고 있는 우리사회의 주요 이슈를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먹을 것 없는 소문난 잔치의 모양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노동시장에서 비정규 노동자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것이 최근의 일이 아니라는 것은 각종 노동통계로부터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즉, 1990년대 초반에 이미 비정규 노동자의 수는 전체 임금 노동자 수의 40%를 훨씬 상회하고 있었으며, 이 수치가 1990년대 말 경제위기를 거치면서 급증한 것이다. 즉, 비정규 노동자의 문제는 우리사회에서 상존하고 있던 문제이며, 단지 기업의 고용조정과 대량실업사태를 경험하면서 이들의 문제가 사회적으로 심각하게 받아들여진 것이 최근의 일일 뿐이다. 따라서, 이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책은 한국의 노동시장 유연화에 대한 장기적인 전망과 노동복지체계에 대한 전반적인 반성의 토대 위에서 전개되어야 한다는 것을 시사한다.

■ 고용의 유연화 – 차별과 배제가 문제다

한국의 노동시장은 최소한 1990년대 중반부터 구조조정기에 진입해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즉, 경제위기시의 대규모 고용조정과 실업사태는 이전부터 진행되어 오던 구조조정의 연장선상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이미 1997년 3월에 개정된 근로기준법에서 정리해고제, 퇴직금 중간정산제도, 근로자 파견, 탄력적 근로시간제도 등이 규정·도입되었으며, 이는 사용자측에서 이 시기 이전부터 지속적으로 요구해 오던 사항이었다. 또한 기업의 생산 외주화가 급증하고, 고용방식이나 임금지급방식이 다양화되면서 노동시장의 유연화는 이미 1990년대 한국 노동시장에서 일반적인 현상이었다. 그렇다면, 비정규 노동자문제에 대한 논의도 이러한 노동시장의 일반적 변화에 대한 예측과 전망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현재 비정규 노동자들의 문제의 핵심은 다양화된 고용형태 자체자체라기 보다는 고용형태에 따른 차별과 배제이다. 비정규 노동자와 정규 노동자 사이가 수행하는 업무에는 차이가 없으나 임금이나 근로조건, 그리고 기업복지급여에서 차별적인 대우를 받고 있는 것이 문제이다. 편법적인 근로계약기간 설정과 계약갱신의 반복을 통하여 비정규 노동자들의 근로조건을 약화시키고 고용을 불안정하게 하며, 이들의 집단적 의사표현능력을 약화시키는 것이 문제이다. 노동시장에서 모든 노동자가 정규직으로 고용될 수는 없다. 이는 실제로 가능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바람직한 것도 아니다. 단지, 정규직 고용과 비정규직 고용에는 명백한 기준이 적용되어야 하며, 임금 및 근로조건의 차이는 고용형태에 의해서가 아니라 노동의 내용과 질에 따라 정당화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향후 한국 노동시장의 유연화에 대한 장기적인 전망과 예측이 선행되어야 하며, 바람직한 일자리의 모양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합의가 있어야 할 것이다.

■ 대기업과 정규 노동자 중심의 노동복지체계

사회보험의 역진적 재분배

한국의 노동복지체계는 낮은 수준의 국가복지와 상대적으로 발전한 기업복지 – 역진성을 내재하고 있는 – 로 특징지어진다. 국가복지의 핵심축을 형성하는 사회보장제도는 1980년대 후반에 와서야 모양을 갖추었다. 그런데, 한국에서 사회보험이 제도화되는 과정은 특정범주의 노동자와 대기업의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시작하여 점차 "하향식"으로 확대되었다는 특징을 갖는다. 그런데, 사회보험 전개과정에서의 이러한 특징은 결국 상대적으로 사회적 위험에 대비할 능력을 갖추고 있는 집단을 그렇지 못한 집단에 비해 우선적으로 보호하게 되는 이른바 "역진적 재분배"의 문제를 내포하고 있었다. 사회보험제도가 갖는 이러한 역사적 특성으로 인하여 상대적으로 취약한 계층인 소규모 사업장 노동자들이나, 영세 자영자, 그리고 비정규 노동자들은 제도적으로 사회보험에서 상당기간 동안 제외되어 왔다. 게다가 사회보험의 적용대상을 확대하는 과정에서 이들을 효과적으로 포괄할 수 있는 행정적 방편들을 구체화시키지 않았기 때문에 최근에 법적으로는 거의 완전한 대상자 포괄성을 유지하고 있다하더라도 실제에 있어서는 많은 수의 노동자들이 사회보험에서 배제되고 있다.

대기업을 중심으로 발전한 기업복지

낮은 수준의 국가복지와 상대적으로 발달한 기업복지는 결과적으로 노동시장에서의 불평등을 가속화하는 역기능을 발휘한다. 한국은 OECD국가 중 가장 낮은 수준의 국가복지를 제공하고 있으며, 총 사회지출 중에서 국가의 예산에 의해 지출되는 공공복지비용의 비중도 다른 국가들에 비해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이는 한국의 공공복지 중 상당부분이 국가의 법적, 제도적 강제에 의해 기업이 부담하는 법정 기업복지 영역에 포함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공공복지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발달해 있는 기업복지는 대부분의 경우 대기업을 중심으로 발달해 있어, 중소기업이나 영세사업장에 소속해 있는 노동자들은 상대적으로 복지수준이 낮다. 더욱이, 한국의 기업복지는 법적으로 강제되는 항목보다 사용자의 임의성이 강조되는 법정 외 복지항목이 차지하는 비중이 상대적으로 크기 때문에 복지비용에 대한 지불능력이 큰 대기업을 중심으로 발달해 있다.

결국 비정규 노동자의 복지 문제는 이들이 노동시장의 주변부에서 저임금과 저복지에 시달리면서 공공복지체계로부터 실질적인 소득보장을 받을 수 없다는데 있으며, 이러한 구조가 지속될 것이라는 염려로부터 시작한다. 즉, 사회적 위험으로부터 취약한 노동자들을 위한 사회보장제도와 정책이 잘 마련 되어있다면 이들이 노동시장에서 탈락하는 경우, 또는 저임금에 의해 기초적인 삶이 위협받는 경우에라도 공공복지체계에 의해 도움을 받을 수가 있게 된다. 이는 한국의 노동자들의 복지문제가 여전히 시장에 의존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며, 특히 상대적으로 취약한 비정규 노동자들은 이러한 문제에 거의 무방비상태로 노출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노동자에게 있어서 사회복지는 실질임금을 상승시키고, 생활상의 문제를 예방 또는 해결하는 기능을 수행할 뿐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노동시장에서의 적응을 위한 노동재생산의 중요한 기제가 된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에서와 같이 노동복지체계가 시장에 종속되어 있는 경우에는 노동재생산은 다분히 시장임금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며, 게다가 대기업 중심의 복지체계는 노동계급을 핵심적 노동자층과 주변적 노동자층으로 더욱 확고하게 분절시킴으로써 노동계급의 연대를 약화시키고, 이것이 결국은 노동계급 전반에 대한 사회복지의 확대를 저해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비정규 노동자들에 대한 사회적 보호는 이들 뿐 아니라 한국의 노동복지체계를 현재와 같이 역진적이고 시장의존적인 형태로 유지할 것인가, 아니면 포괄적이고 연대적인 형태로 발전시킬 것인가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이다.

비정규노동자의 사회적 보호 방안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비정규 노동자에 대한 사회적 보호방안은 1990년대 말 경제위기 이후 비교적 활발하고 지속적으로 논의되어 왔다. 특히 사회보험 분야에서는 이러한 논의의 결과가 부분적으로 반영되어 제도의 coverage가 확대되는 성과를 얻기도 하였다. 그러나 문제는 제도적 개선과는 상관없이 이들에 대한 사회보험적용비율이 여전히 낮다는 데 있다. 결국, 제도의 운영상의 문제가 정비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기업을 단위로 하여 제공되는 기업복지급여에서의 차별은 해결하기가 가장 어려운 문제이다. 그러나, 노동법에서 강제하고 있는 법정복지급여의 경우에는 사업장감독의 강화를 통해서 어느정도 해결할 수 있으며, 편법적인 고용과 근로계약의 반복갱신을 제한하는 경우 상당부분 해결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전체 임금 노동자의 절반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비정규 노동자들의 생활상의 문제를 다루고 해결해 줄 수 있는 공적인 서비스 전달체계가 전무하다는 것도 문제이다. 우리사회에서 노동복지서비스 자체에 대한 논의가 거의 전무한 상태에서 공적 전달체계의 문제를 거론하는 것이 순서상 맞지 않을 수도 있다. 또한 노동복지전달체계의 문제가 비단 비정규 노동자의 문제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지만, 비정규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방안으로 한국의 노동복지 전달체계 전반을 진단하고 개선방안을 논의하는 것도 이 기회에 매우 의미있는 일이라 여겨진다.

한동우/강남대학교 사회복지학부 교수

월간 <복지동향> 2001년 10월호(제36호)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


참여연대 NOW

더 많은 채널로 소통합니다. 지금 팔로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