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도 성인처럼 권리가 있는 인격체라는 평범한 사실이 국제사회에서 보편적으로 인정된 것은 그리 오래지 않다. 아동의 권리가 국제협약으로 제정된 것은 1989년 국제연합 총회에서 아동의 권리에 관한 국제협약(약칭 아동권리협약)이 만장일치로 채택되면서이다.
한국은 아동권리협약을 1990년에 서명하고, 1991년 11월 20일에 비준하였다. 국제조약은 헌법에 의해서 국내법과 동일한 효과가 있어서 아동권리협약은 일반적으로 승인된 국제법규로서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갖는다. 아동권리협약은 전문과 본문 54개조로 되어 있다. 이 협약은 무차별의 원칙, 아동의 최선의 이익우선과 함께, 아동의 생존, 보호, 발달과 참여권이라는 4개의 주요 영역을 포함하고 있다.
이 글은 한국의 2차 국가보고서와 유엔아동권리위원회가 한국정부에 권고한 사항을 중심으로 한국 사회에서 꼭 필요한 아동의 권리를 위한 제도적 장치를 제안하였다.
국가적 아동권리기구의 설치
아동의 권리를 위한 상설 국가위원회는 유엔아동권리위원회의 권고에도 불구하고 아직 없다. 한국은 제1차 국가보고서에 대한 심의과정에서 국가위원회가 있는 것처럼 답변했다가, 제2차 국가보고서의 심의과정에서 상설 국가위원회는 없다고 해명했다.
한국 정부는 유엔아동권리위원회에서 보건복지부에 다양한 민간단체와 전문가가 참여하고, 청소년육성위원회가 있으며, 국가인권위원회가 설치되었다고 강조하였다. 그런데, 국가인권위원회 11명 위원 중에 아동권 전문가는 한 명도 없고, 지난 1년 2개월 동안 3천 건이 넘는 진정 사건 중에서 아동권에 관한 것은 단 한건(장애아라는 이유로 유치원 입학이 거절당한 사건)에 불과했다는 사실로 볼 때, 아동권의 보호와 증진을 전담하는 아동권리기구의 설치가 절실하다.
한국 정부가 아동의 권리를 종합적으로 다루기 위해서는 국무총리 혹은 보건복지부가 중심이 되어서 아동권리위원회를 설치하거나 국가인권위원회에 소위원회로 아동권리위원회를 설치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아동권리위원회를 설치할 경우에는 간헐적으로 회의만 하는 비상임기구가 아닌 청소년보호위원회처럼 사무국을 갖춘 상설기구가 되어야 한다.
각 부처와 지방자치단체에 아동참여기구의 설치
아동의 권리가 제도적으로 보장되기 위해서는 아동의 의사가 일상적으로 반영될 수 있는 구조와 전달체계가 마련되어야 한다. 이점에서 법적으로 아동과 중복된 청소년 영역에서는 청소년의 의사를 제도적으로 반영하기 위하여, 청소년정책의 주무부서인 문화관광부에 청소년위원회가 설치되었고, 충남을 비롯한 일부 광역자치단체와 강남구를 비롯한 기초자치단체에는 청소년위원회가 설치되었다.
과거에도 있었던 청소년육성위원회 혹은 지방청소년위원회는 청소년육성에 관심이 있는 성인들로 구성되었는데, 문화관광부와 자치단체의 청소년위원회는 청소년으로 구성되어서 청소년정책의 수립 집행 평가 등의 자문에 응하고 있다.
아동의 의견을 아동정책에 직접 반영하기 위해서는 이들의 관심사항을 가장 많이 다루는 교육인적자원부, 보건복지부, 교육청, 초중고등학교 등에 아동의 대표로 구성된 참여기구를 설치할 필요가 있다. 이 참여기구는 일년에 한두차례 회의를 하거나 관련 행사에 상징적으로 참여하는 그런 것이 아니라, 아동이 자발적으로 선출한 대표들로 구성되고, 인터넷을 통해서 아동의 여론을 수렴하며, 아동 창안제, 아동 주장대회, 동아리발표회 등을 직접 기획하도록 지원할 필요가 있다.
아동관련 통계의 체계적 확보
한국 정부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게 아동권리지표를 개발하도록 했고, 향후 5년마다 아동권리지표를 평가해서 2005년부터 매5년마다 백서를 출간할 계획이다. 그런데 이 지표는 아동의 권리의 실태를 객관적으로 파악할 뿐만 아니라, 아동의 권리를 신장시키기 위한 실질적인 것이어야 한다. 유엔아동권리위원회에 보고된 국가보고서를 준비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작업을 보면 지표의 대표성에 한계가 많았다.
기존의 인구 및 주택총조사, 교육통계연보, 범죄백서 등의 통계 자료 중에서 18세 미만의 아동에 관한 자료만을 뽑아서 만든 통계가 아닌 아동의 권리를 실질적으로 신장시킬 수 있는 통계를 확보해야 한다. 객관적인 자료뿐만 아니라, 학교생활에 대한 학생의 만족도, 가족에서의 행복지수 등과 같이 아동이 실질적으로 느끼는 주관적 만족도에 관한 통계도 다수 포함시켜야 한다.
아동 관련 통계를 확보할 때, 아동의 관점이 존중되는 통계를 체계적으로 확보해야 한다. 예컨대 요보호아동의 복지를 다루는 보건복지부도 매년 발생된 요보호아동의 수와 그 사유, 그리고 처리 상황에 대한 간략한 통계를 확보할 뿐 아동의 자립과정에 대한 실질적인 통계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즉, 2000년 한해동안 국외로 입양된 아동이 2,360명이었다면, 적어도 입양 후 1년, 3년, 5년, 그리고 성인이 되는 시점까지 자립과정에 대한 사후관리 통계가 확보되어야 한다. 입양은 아동복지를 위한 한 수단이기 때문에 그 자체가 종결이 아니고, 입양을 통해서 아동이 완전하게 자립하는 과정에 대한 사후관리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아동정책 관련 책임자와 실무자에 대한 인권교육
유엔아동권리위원회는 한국정부에 인권교육을 체계적으로 실시할 것을 두 차례나 강력히 권고하였다. 한국정부도 유엔아동권리위원회의 권고를 의식하여 초등학교 교과서에서 아동권리협약을 다루고,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아동인권동화를 개발하여 초ㆍ중ㆍ고등학교에 보급했다.
그러나 유엔아동권리위원회는 한국 정부에게 다시 한번 초ㆍ중ㆍ고등학교 교육과정에 아동의 권리를 광범위하게 포함시키고, 아동의 권리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전문가들에 대한 아동권리교육을 보다 체계적으로 실시할 것을 권고하였다.
아동 인권교육은 아동에 대한 직접적인 교육과 함께 아동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 특히 부모, 교사, 사회복지사, 법률가 등에 대한 교육이 병행되어야 한다. 아동에 대한 권리교육을 효과적으로 실시하기 위해서는 아동학대에 대한 예방교육과 같이 아동의 권리 중에서 일부 측면에 한정시키지 말고, 모든 아동이 일상생활 속에서 권리를 존중받으며 살 수 있도록 포괄적인 내용을 다루고 그 내용이 학교교육과정에서 체계적으로 다루어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 교육인적자원부는 초ㆍ중ㆍ고등학교의 교사와 교장ㆍ교감 등 관리자 그리고 행정실의 직원을 포함한 모든 교직원에게 아동의 권리를 직무연수를 통해서 가르치고, 아동권리 시범학교운영 등을 통해서 아동의 권리를 생활화하는 학교운영모델을 개발하고 확산시켜야 할 것이다. 아울러 보육교사, 유치원교사, 초ㆍ중ㆍ고등학교 교사가 되려는 모든 대학생은 아동권리의 내용과 이를 보장하는 구체적인 방법을 정규교육과정으로 이수해야 한다.
민간단체의 육성과 민관 협력관계의 형성
국가가 아동권리 관련 기구를 설치하고 아동권리에 관한 통계 확보, 인권교육, 모니터활동 등을 체계적으로 실시하기 위해서는 정부만의 노력으로 부족하다. 많은 국가들이 아동의 권리를 신장시키고자 할 때, 정부의 노력과 함께 민간단체의 다양한 활동을 장려하였다.
이러한 취지로 유엔아동권리위원회도 각국의 아동권리상황을 심의할 때 각 국가가 제출한 보고서와 함께 민간단체의 보고서를 검토하고 있다. 현재 한국 정부는 전국에 있는 아동학대예방센터의 운영비를 지원하고, 한국아동단체협의회 등이 아동권리 관련 학술활동을 할 때 지원하지만 정부와 민간의 파트너십은 아직 약하다. 정부는 민간의 다양한 아동권리 옹호활동을 지원할 뿐만 아니라 아동단체들간의 협력활동과 국내외 교류활동을 체계적으로 지원하고 이들이 학술연구활동을 체계적으로 하도록 후원해야 할 것이다.
정부는 아동의 권리 상황을 모니터하고 신장시키기 위한 다양한 정책을 개발할 뿐만 아니라 민간의 자발적인 모니터활동을 장려해야 한다. 보건복지부, 국무총리, 국가인권위원회 등은 인권운동을 하는 다양한 민간단체의 모니터활동을 지원하고 민간의 요구를 정책에 적극 반영해야 한다. 모니터활동을 체계적으로 실천하기 위해서는 노르웨이, 스웨덴 등이 실시하고 있는 옴부즈퍼슨(옴부즈맨)제도를 도입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정부의 활동과 별도로 아동의 권리에 관한 민간단체도 협의회를 만들어서 아동권리에 관한 책임 있는 모니터활동을 하고 그 결과를 연례보고서로 발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아동정책 관련법령과 규정의 제정과 개정
한국 사회에서 아동의 권리를 획기적으로 신장시키기 위해서는 아동에 대한 연령차별과 성차별을 당연시하는 법령을 개폐하고 아동을 경시하는 관습을 아동을 존중하는 관습으로 변화시켜야 한다.
민법은 미성년자인 자는 부모의 친권에 복종하도록 하여 아동의 최선의 이익이 부모의 이익에 의해서 박탈될 수 있도록 방임하고 있다. 따라서 생활 속에 뿌리깊은 성차별을 조장하는 민법상의 호주제를 폐지하고, 교사에 의한 학생의 체벌을 허용하는 초중등교육법령을 개정하며 범죄의 우려가 있는 소년까지 처벌하는 소년법을 개정하는 것 등은 몇 가지 대표적인 사례에 불과하다.
아동정책 관련 법령에는 법, 시행령, 시행규칙뿐만 아니라 지방자치단체의 조례와 규칙 그리고 각 기관의 업무지침 등 실질적인 힘을 가진 모든 법령과 규정이 포함된다. 초중고등학생의 경우 교육법과 그 시행령보다는 학교생활규정이 학생생활에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2002년도에 교육인적자원부가 만든 학교생활규정안은 기존의 선도규정에 비교할 때, 학생의 인권을 훨씬 존중하고 있지만 아직도 학생의 표현의 자유와 결사의 자유 등을 규제하는 독소조항이 있다. 이러한 규정을 만들 때 학생의 참여를 보장하고, 학생에 대한 상과 벌을 논의할 때에도 반드시 학생대표를 참여시키도록 학교생활규정을 개정해야 한다.
아동권리 관련 전문가의 배치와 예산의 확보
아동의 권리를 행정기관뿐만 아니라 입법부, 사법부 등 모든 정부기관에서 체계적으로 확보하기 위해서는 관련 전문가의 배치와 아동권리 관련 사업을 효과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예산을 확보해야 한다.
예컨대 국내입양을 활성화하고 입양된 아동의 사후지도를 위해서는 입양알선기관에 국내입양 전문 직원을 배치하고 국내입양을 활성화시키기 위한 적절한 예산을 확보해야 한다. 요보호아동이 발생되어 아동양육시설에 입소하면 양육비의 전액을 국가가 보조하면서도 입양알선기관에 위탁될 경우에는 입양기관이 자체 수입으로 충당하도록 하는 관행을 개혁하지 않으면 국내입양이 활성화되기 어렵다.
학대받는 아동을 위한 아동학대예방센터의 증설과 보호인력의 증원, 성매수 등을 당한 청소년을 돕기 위한 치료형 보호시설의 설치, 가출청소년을 보호하기 위한 청소년쉼터의 증설, 비행청소년을 위한 치료형 보호시설의 설치, 학교사회사업가의 배치, 소년원에 교정사회복지사의 배치 등 시급하게 필요한 인력의 배치만이라도 서둘러야 한다.
최근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예산배분을 보면, 아동정책에 관한 예산이 여성정책이나 노인정책에 관한 예산에 비교할 때 우선 순위에서 밀리고 있다. 여성과 노인은 유권자이기 때문에 표를 의식한 행정가와 정치인이 유권자에게 더 많은 관심을 보이고, 선거권이 없는 아동을 경시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아동에 관한 예산은 유권자인 부모와 관련 행정가가 좀더 관심을 가지고 예산을 요청하고 확보하기 위한 노력을 대신해야 한다. 아동에 대한 예산은 현재 아동의 삶을 풍요롭게 할뿐만 아니라, 미래 시민의 행복을 위한 긴급한 투자이다.
월간 <복지동향> 2004년 07월호(제6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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