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지방분권화는 시대의 대세라는 듯이 우리 사회의 곳곳을 파고들고 있다. 사실상 지방자치는 풀뿌리 민주주의의 정착, 지역사회 각각에 맞는 복지서비스와 주민 삶의 질 증진을 위해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 원래 지방자치제가 시행될 당시부터 사회복지분야는 지방자치와 유독 밀접한 관련을 가지는 분야로 생각되었다. 그것이 상업적이건 그렇지 않건, 개별적이건 집합적이건 간에 지역주민의 직접적인 소비와 관련되는 분야이므로 사회복지 영역은 지방자치단체의 사업으로 가지는 독특성이 부각될 분야이었다. 그리고 최근 들어서는 복지예산과 관련되어 지방분권화가 논란이 되고 있다. 소위 국고보조금 정비방안에 따라 이를 지방정부로 이양하는 과정이 현실화되면서이다.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에서는 국고보조금의 문제를 재정분권의 관점에서 보고 있다. 그리고 현재 국고보조금이 지방재정의 자율성을 저해하고 있어 “지방의 재정운영 자율성을 제약하는 국고보조금을 일괄 정비하여 실질적 재정분권의 토대를 구축”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국고보조금 제도 자체가 비효율성 및 낭비요인이 상존하고 있으며 지방비 매칭과 사후정산에 따른 문제점을 제기하며 국고보조사업을 보충성의 원칙, 포괄적 지원원칙, 성과지향적 자기책임 원칙에 따라 지방이양사업, 균특(국가균형발전사업특별회계)사업, 보조사업의 3가지로 대폭 정비하고자 한다. 그 기본적인 모습은 작년 국무회의에서 대통령이 제기했던 말처럼 “지방정부로 이양해야 할 대상을 찾아내는 방식이 아니라 중앙에 꼭 남겨야 할 필요성이 있는 사무를 찾아내고 나머지는 전부 지방에 이양하는 방식”이다. 결국 중앙정부의 사업예산 중 ‘상당부분’을 지방으로 넘긴다는 것이 요체다. 이러한 예산 지방이양의 논리 자체에 대해 그 적절성이나 가부를 간단히 이야기할 수는 없다. 그러면 사회복지서비스 관련의 사업예산들을 어떠한 변화를 가져오게 될 것인가?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에서 올해 발표한 국고보조금 정비방안에서는 보건복지부 146개 사업 중 71개 사업의 예산을 지방에 이양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지방이양사업에는 정신요양시설운영, 공공보건사업, 장애인생활시설운영, 노인시설운영, 전담공무원인건비, 노숙인보호사업 등이 포함되어 있다. 균특사업에는 해당사항이 없고, 75개 사업은 국고보조사업을 유지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보조사업으로 유지되는 것에는 생계급여와 의료급여, 부랑인시설운영, 저소득아동보육료, 건강가정지원센터 운영 등이 포함되어 있다. 물론 전체 보건복지부 예산 중 워낙 큰 비중을 차지하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국민기초생활급여, 의료급여 등의 예산이 정부보조사업으로 남아 예산액의 측면에서는 15.4%만이 이양되고 94.6%는 국고보조사업을 유지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정부부처 전체적으로 사업단위 중 31.3%, 그리고 국고보조금 액수 중에서 10.3%가 지방으로 이양되는 것에 비교한다면 보건복지부 예산은 지방으로 이양되는 부분이 상대적으로 더 많다.
<표 1> 정부혁신지방분권위에서 제시한 보건복지부 지방이양사업과 국고보조유지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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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랑인사업은 국고보조사업, 노숙인사업은 지방이양사업?
이제 현실화되고 있는 지방자치단체로의 보건복지사업 예산권 이월은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원래의 취지대로라면 예산권 이월이 각 지방자치단체의 상황에 맞는 적절하고 다양한 ‘사회복지서비스’가 정착되도록 긍정적 기여를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과연 지금 그러한 기대를 충족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몇 가지 생각해보아야 할 점이 제기된다.
예를 들어 부랑인복지시설 운영은 국고보조사업으로 유지되는데 반해 노숙인 보호사업은 이양사업으로 되어 있다. 이 경우 노숙인 복지사업에 필요한 예산은 이제 중앙정부가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각 지방자치단체가 ‘알아서 쓰는’ 권한을 가지게 된다. 지금까지도 보건복지부의 노숙인 복지정책의 방향, 그리고 민관이 협의한 내용들이 몇몇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잘 지켜지지 않고 사업진행에 차질을 빚는 일이 자주 있었다. 그런데 지방자치단체로 예산권이 아무런 협의와 원칙 없이 이월될 경우 노숙인 복지사업 영역에서는 커다란 혼란이 예상된다. 노숙인 복지에서 드롭인 센터와 의료 및 현장보호체계, 쉼터, 자활의 집, 재활과 자활사업, 지역의 쪽방상담소, 일부 지역의 센터, 부랑인 복지시설의 적절한 전환과 노숙인 복지-부랑인 복지 영역에 대한 통합과 수준 향상, 인권과 주거권 보장을 위한 그간의 협의 내용들과 민관협력 구조…. 이런 것들은 보건복지부와 민간단체들이 수년의 경험을 통해 우리사회의 노숙인 복지시스템으로 구축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당장 지방자치단체로 예산권이 이양되고 나면 이러한 복지서비스 구조와 예산배분의 내용은 앞으로 그 연속성이 극히 의심된다.
특정 지방자치단체가 해당지역 주민 일부의 NIMBY와 같은 말초적 반대를 이유로 골치 아픈 노숙인 사업의 지역사회통합을 포기하고 ‘간단하고 효율적인’ 대규모 격리수용방식의 사업방식을 채택하여 예산배분을 현실화시킬 수 있다. 게다가 지방자치단체 선거 시에 이 복지예산이 ‘표’를 의식한 선심성 사업으로 치우치지 않으리라는 보장을 아무도 할 수가 없다. 기본적으로 지방자치단체는 자신의 영역에서 볼 때, 효율적인 사업방식을 채택하기 마련이다. ‘노숙인 보호사업’ 초기에 “인근 지역으로 보내기” 방식의 일들을 추진한 일부 지방자치단체의 행태는 당시의 실무자나 관계자들이라면 누구나 기억하는 일이다.
지금 예산권이 기본적으로는 보건복지부에 있는 상태에서도 지방자치단체와의 협력부진으로 노숙인 건강검진사업은 전년대비 절반 미만의 실적으로 실질적 사업후퇴를 나타내기도 한다. 드롭인센터의 역할은 지방자치단체마다 상이한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다양한 형태로 새롭게 대두되고 있는 ‘홈리스’의 문제, 공공주거정책과 노숙인 복지사업의 연결 등 중앙의 차원에서 기획되고 해결의 단초를 찾아야 할 많은 과제 속에서 지방자치단체로의 예산이양은 큰 혼란을 가져오고 지금까지 수 년 간의 노력을 아무 성과 없는 것으로 돌리게 될 것이 우려된다. 정해진 규정대로 이루어지는 경성적 속성을 지닌 사업이라면 조금 덜 하겠지만 많은 융통성과 조절능력, 전문적 프로그램의 기획 등이 중요한 사업 영역, 특히 시스템이 덜 갖추어져 이제 막 정착되어가는 초기의 사업이라면 사업 예산권의 이월은 많은 신중함이 필요하다. 노숙인 복지영역이 그러하다.
특히나 부랑인 복지시설과 노숙인 복지체계는 상호간의 연관성 속에서 부랑인 복지시설의 전환과 지역사회 통합적 노숙인 복지체계로의 재편 계획이 세워진 바 있다. 그리고 이는 개정 사회복지사업법에 따른 ‘시행규칙’이라는 통일된 보건복지부령의 모습으로 체계화를 시도하고 있다. 그런데 이 중 하나의 사업은 국고보조사업으로 유지되고 하나는 지방으로 이양하는 것은 통일성의 문제에서 적절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예산권 이월은 클라이언트를 충분히 고려해야
어떤 사업이 이양되고 어떤 사업은 국고보조사업으로 남는가하는 점은 신중하게 검토해야 할 필요가 있다. 먼저, 어떤 사업이 이양되고 어떤 사업은 국고보조사업으로 남는가하는 점에 불분명한 점이 나타난다. 정부의 정비방안에서는 반복적 집행성격과 관련되는 경상운영비 지원사업, 명백한 지방사무에 대한 국고보조사업, 국고보조의 실익이 낮은 소액보조사업 등을 지방이양대상사업으로 보고 있다. 반면, 성격이 명백한 국가사무인 경우, 중앙정부의 계획수립과 관련되고 대내외 환경변화에 국가적으로 대처해야 하는 경우와 아울러 ‘국가적으로 꼭 필요한 사업이지만 지방이양시 축소가 예상되는 사업’은 그대로 국고보조사업으로 두는 것으로 보고 있다. 물론 이 경우에도 포괄지원 방식으로 전환하여 지방의 자율성을 확대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복지에 대한 긍정적 의식이 많이 확대되었다고 해도 사회복지서비스의 상당부분은 아직도 우리사회에서 NIMBY 현상과 관련되어 있다. 그리고 이런 사업들은 ‘지방이양시 축소가 예상되는 사업’이다. 게다가 노숙인 사업은 이양되고 부랑인 사업은 국고보조사업으로 존치된다는 식은 그 판단의 일관성에도 문제가 있다.
또 하나 관리감독의 문제도 생각해보아야 할 점이 있다. 예산을 이양하더라도 그 집행의 타당성을 중앙정부에서 관리감독하면 되는 것으로 볼 수 있으나 벌써부터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이에 대한 중앙정부의 감사에 반대하는 등 ‘지방의 자율성 확대’를 도모하고 있다. 정부에서도 인정하고 있는 것처럼 “분권은 중요하지만 통일성을 상실하면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 사전지시형, 규제형 통제는 안되지만 사후통제가 싫다는 것은 문제이다. 지방자치단체들이 중앙의 사후통제 수단인 감사까지 반대한다고 하는데 그렇게 되면 이는 국가가 아니다.”
정부에서는 “민주주의의 핵심은 자율과 책임이 함께 가는 것이나 아직 확실하게 분권되지 않아서 자율성이 부족하다는 의견이 많다. 분권을 통해서 자율성을 확대함으로써 민주주의를 발전 시켜야 한다”며 이번 조치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그러나 그 책임과 사회복지서비스의 파행 때문에 겪게 될 클라이언트의 고통에 대한 고려가 부족한 것이 사실로 보인다. 사회복지시설 평가에 따른 포상형태의 하나로 우수한 시설 등에는 예산을 포괄지원하자는 제안에 그토록 반대하면서 지방정부에게는 예산이 이양(포괄적 지원의 원칙보다 더 강한…)해야 할만큼 우리 지방자치단체의 복지의식과 전문성이 신뢰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는가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아야 한다.
물론 중앙정부보다도 지방자치단체의 담당자나 조직이 해당 사업에서 보다 높은 전문성과 안목을 가지고 있을 때는 이런저런 논의가 필요 없다. 오히려 이번 조치가 노숙인 복지사업의 획기적 증진을 가져올 것을 기대할 수 있겠지만, 그간의 경험은 그렇지 못하다는 우려를 심각하게 만들고 있다. 최근 서울복지재단의 사태는 복지영역에 대한 지방자치단체의 인식과 앞으로의 부정적 행보를 예측하게 만들고 있어 우울하다. 오히려 이를 밥그릇 싸움으로 몰고 있지 않은가? 원래 자본주의 사회에서 밥 그릇 싸움 자체를 뭐라 할 수 없는 법이다. 문제는 그 사안이 서비스 수요자, 클라이언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하는 점이다. 적어도 책임 있는 공공영역의 주체인 자방자치단체라면 밥 그릇 싸움이라는 인식의 토대에서 홍보하고 문제를 해결하려 들어서는 곤란하다. 이번 한 번으로 이런 일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을까? 예산권의 이월은 사회복지서비스 영역마저도 지방선거 등 정치의 흐름 속에서 이용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 아닌가?
예산권 이월 전 충분한 검토 필요
에바다 사태 등에서 보았듯이 지방토호세력과 이들에 의한 부적절한 ‘사회복지사업’이 결합되어 있는 경우도 우리사회에는 아직 많이 남아 있다. 금번 예산이양 조치가 이들에게 힘을 실어주어 오히려 사회복지서비스의 방향을 후퇴시키지 않을까 싶기도 한다.
혹자는 지방자치와 분권이 중요한 전제인만큼 뭐 무서워 장 못 담그는 일은 있어서 곤란하다고도 한다. 장을 꼭 담가야 한다면 구더기가 생기지 않게끔 하려는 최대한의 노력은 필요하다. 사회복지서비스 분야에서 반복적 집행사무가 아니고 특히 조금이라도 NIMBY 현상이나 전체적인 사회복지서비스 발전방향과의 마찰이 우려되는 영역은 지방이양에서 재고되어야 한다. 한편으로 사회복지서비스 관련 업무를 수행하면서 이번 예산이양조치에 영향을 받는 민간조직들도 이에 대한 대처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중앙의 규정 명확화와 강화, 지역단위별로 민관 협력 혹은 민간의 지자체에 대한 협의구조와 사전논의구조의 강화, 사회복지서비스 실행자들의 전국적 네트워킹 강화와 유사시 법규정(지방자치단체가 임의로 수정할 수 없는)에 근거한 고발 혹은 공익소송 준비와 정보교류시스템 구축 등 여러 가지가 준비되어야 한다. 예산권의 이월이 만에 하나 사업의 왜곡으로 이어질 때 이의 ‘위법성’을 가지고 싸울 준비가 필요하다. 사회복지서비스의 대상자인 클라이언트가 있는 한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최대한의 봉사원칙’은 사회복지 교과서 내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월간 <복지동향> 2004년 10월호(제7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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