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이 갑자기 착한 척을 시작했다. 특정인기스포츠와 금메달에만 집중하던 보도행태에서 벗어났고, 모든 정규방송을 포기해 시청자들의 볼권리를 빼앗던 기존의 관행도 과감하게 깼다. 바로 지난달 29일 폐막식을 열었던 2004 아테네장애인올림픽(이하 패럴림픽)에 관해서다.
패럴림픽에 대한 관심과 기대
이번 패럴림픽은 국제패럴림픽위원회와 국제올림픽위원회의 합의로 단일 조직으로 열리는 첫 대회로 대회자체에도 관심이 높았지만 보도에 대한 기대도 그에 못지 않았다. 이번 대회의 한국 언론취재단은 14개팀, 30명으로 역대 최대의 규모였던 것. 그 가운데 방송사 취재단은 12명에 달했다.
그러나 보도태도에서는 지난 2000년 시드니 패럴림픽과 비교해 별반 다르지 않았다. 메인뉴스만 비교했을 때 시드니 패럴림픽과 관련해 가장 많은 보도건수를 보였던 KBS <뉴스9>조차 금메달 관련 기사들을 단신 처리했을 정도다(2000.10.24). MBC <뉴스데스크>도 ‘장애의 한계는 없다'(2000.10.13), ‘역경 속에 희망'(2000.10.21) 등 선수들의 경기능력보다는 장애에 초점을 맞춰 시청자들의 감정에 호소하는 보도들이 많았다.
패럴림픽 관련보도를 통해 본 장애인복지의 현주소
올해는 패럴림픽 폐막식 보도만 챙겨보더라도 보도수준이 한눈에 보인다. 폐막식 당일 메인뉴스들을 살펴보면 KBS <뉴스9>는 23번째, MBC <뉴스데스크> 14번째 단신, SBS <8뉴스>는 18번째로 취급했다. 경기가 있을 때마다 선수들 가족집에까지 찾아가 호들갑을 떨고, 금메달 하나만 놓쳐도 이에 대한 분석이 끊이지 않던 보도들과 비교해 허탈할 정도이다.
예상순위 10위에서 16위로 떨어졌지만 방송은 그 이유를 그리 궁금해하지 않았다. 패럴림픽 폐막식관련 보도를 더 살펴보면 “장애를 넘어 도전과 극복의 숭고한 정신을 실천한 선수들이 모두 모여 마지막 축제를 벌인다” KBS <뉴스9>, “운명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갈 수 있다는 걸 온 몸으로 보여준 선수들” SBS <8시뉴스>고 말하는 등 시청자들에게 뻔한 감동만 강요했다.
패럴림픽에 대한 스포츠적 재미를 비장애인들에게 알려주는 역할도 실패했을 뿐만 아니라, 패럴림픽에 참여한 선수들이 처한 끔찍한 현실도 외면한 것이다. 패럴림픽에서 딴 메달 때문에 기초생활보장 대상에서 탈락할 지경에 놓인 한 선수의 이야기는 우리의 장애인복지의 현주소다.
아울러 올림픽과 마찬가지로 장애인올림픽도 엘리트체육이냐 생활체육이냐의 논쟁은 해마다 반복돼 온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현재까지 장애인올림픽의 경우 엘리트체육으로 접근할 필요성이 더 강하게 제기돼 왔고 그것은 이번 올림픽에도 적용됐다. 이번 대회부터 참가규정이나 도핑테스트가 강화된 것도 그 때문이다. 더 이상 세계는 스포츠에 대해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놓고 각기 다른 눈으로 해석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올림픽에 관한 보도는 시청자들의 스포츠관전형태에도 영향을 미치고 그것은 생활체육의 활성화에도 큰 역할을 한다. 탁구나 양궁이 붐을 이뤘을 때는 모두 올림픽직후였다. 패럴림픽 보도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보치아나 골볼경기를 하는 기회조차 만들어주지 않은 것이다.
장애인에 대한 방송 시선의 탈바꿈
문제는 장애인에 대한 방송의 시선이다. 방송은 장애인을 문제의 대상으로만 취급할 뿐 장애인이 가지고 있는 생산성에 주목하지 않는다. 세계최고가 되기 위해 언제나 애쓰고, 국가의 이미지를 위해서라면 영혼이라도 팔듯했던 방송이 세계16위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것이 바로 그 증거다. 장애인도 국민이고 국위선양을 위해 애쓰고 있다는 것을 잊고 있다.
이동권을 위해 지하철을 멈추게 하는 ‘무서운’장애인들의 모습만 TV에 나올 때, 장애인은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니라 떠안아야할 과제라고 느끼게 할뿐이다.
최근 영화주간지 <필름2.0>에서 ‘지구를 지켜라’ 장준환 감독은 “모든 사람들은 비정상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다. 비정상성에 대한 몰이해가 증오와 적개심을 낳는다”고 말한바 있다. 인간을 장애인과 비장애인으로 이분법화 시키고 그들의 공통점보다는 차이점을 부각시킬 때 결국 사회는 본심을 드러내는 것이다. 장애인 문제를 개인적 고통으로 취급하는 태도도 이번 패럴림픽 관련보도처럼 일방적으로 미화시키는 태도도 우리들을 서로 갈라놓을 뿐이라는 것을 방송은 명심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방송은 아는가?
선수들은 장애를 극복한 게 아니라 자신을 극복한 것이다.
월간 <복지동향> 2004년 10월호(제7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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