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7월은 참 뜻깊은 달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참여연대를 몸으로 만난 달이기 때문입니다. 신문지면이나 TV뉴스를 통해 참여연대 활동을 보며 이런 시민단체가 있어 참 좋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나라가 나아갈 방향이나 국민들이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 어떤 생각들을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지를 보편적이면서도 가난한 사람들의 입장에서 얘기한다고 보았기에 마음으로 동지적인 연대의식을 가지고 있었다고 할까요?
그러던 6월 어느날, 우리 마을에서 ‘희망UP’ 캠페인을 하게 되었다면서 도와달라고 왔을 때 같은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당연히 다 함께 하겠다고 얘기했지요. 이렇게 인연이 되어 참여연대 사람들을 만나 희망을 키워가는 모습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유난히도 뜨거웠던 올 7월의 무더위에 비지땀을 흘리며 오가는 모습, 열악한 환경에 열심히 적응하며 가난의 구조적 병폐를 몸으로 익히고 알려서 개선하려는 모습, 장대비에도 국을 나르던 모습들 때문에 마지막 달동네 하월곡동 산마을에 생기가 넘쳤었지요. 지금도 국을 갖다드리는 사람은 달라졌지만 따뜻한 국이 마을 어르신들의 입맛을 돋구어 드리고 있어 마음이 흐뭇합니다.
희망을 키워가는 사람안에 참여연대가 있고 참여연대 안에 희망인 사람이 있다고 느끼면서 처음 현장사목을 나와서 만났던 어린이를 떠올려봅니다. 대여섯살 되어 보이는 정아가 나를 만난 날은 주민들과 거리감없이 만나기 위해 수도복을 벗고 사복으로 갈아입은 첫날이었습니다. 마을어귀에서 만난 자매님이 딸에게 “수녀님들이셔, 인사드려”하며 우리 일행을 소개했을 때 40대 중반인 나에게 “할머니야? “하고 물었습니다. 엄마는 당황해했지만 우리는 웃음이 나왔습니다. 30대 초반인 어머니를 둔 어린이에게는 우리가 할머니로 보인 것은 당연한 일이었는지 모릅니다. 어린이의 눈으로 본다는 것, 상대방의 입장에서 본다는 것을 다시 생각하는 순간이었지요. 그 정아가 지금 중학생이 되어 가난한 지역의 어린이, 청소년들을 위해 생긴 마을 스카우트에서 열심히 활동하며 자신을 키우고 하느님과 나라, 이웃을 위해 봉사하는 스카우트 정신을 배워가고 있습니다. 정아를 통해 희망인 사람의 모습을 봅니다.
또 2000년 3월 하월곡동으로 와서 참 어려운 처지에서도 희망을 잃지않고 웃음을 잃지 않는 한 자매님을 만났습니다. 시어머니와 2학년인 딸, 그리고 조울증과 알코올중독증을 앓고 있는 남편을 둔 영이 엄마는 조그만 밥집을 하며 생활을 꾸려가고 있었습니다. 돈을 모아 달셋집을 전셋집으로 옮기려는 꿈을 꾸지만 10여년동안 남편이 해마다 한차례 병원에 입원하는 바람에 번 돈을 고스란히 집어넣고는 했답니다. 참 많이 고민도 하고 갈등을 하면서도 아침이면 점심에 오실 손님들에게 오늘은 무엇을 맛있게 해드릴까 긍정적인 마음으로 반찬을 만들고 밥을 하면서 꿋꿋하게 버텨나갔습니다. 그 해 11월, 성북 평화의 집을 시작하면서 어르신 사랑방을 열고 점심대접을 시작하였을 때 바쁜 가운데서도 김치 담그기며 밑반찬을 만드는 봉사를 해주었지요. 남편의 증상이 조금 좋아져서 가족의 웃음꽃이 피어가기도 하고, 또 나빠져 실망하기도 하고, 울고 웃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본지 다섯 해…
올해는 많이 좋아져 식당에서 청소도 하고 설거지도 해주며 술도 덜 마시고 조울증 증상도 나아지고 있습니다. 그러던 중 남편의 본래 직업이었던 인테리어(도배 등) 쪽에서 아는 분이 같이 일하자고 연락이 와 며칠째 나가고 있습니다. 그 가정에 새로운 희망이 싹트고 있음을 보면서 꼭 잘 커가기를 마음으로 함께 기도합니다. 어려운 가운데서도 더 어려운 이웃과 나누며 희망을 잃지 않고 기도하며 웃음을 잃지않던 자매님에게서 희망을 키워가는 사람의 모습을 봅니다.
우리 모두 안에서 ‘희망인 사람’, ‘희망을 키워가는 사람’을 만납니다. 올 칠월 참여연대를 통하여, 참여연대와 함께 장대비를 이기고 뙤약볕에 영글어가는 희망을 만났습니다.
월간 <복지동향> 2004년 10월호(제7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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