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 1. “악법은 지키지 않아도 된다?!”
작년 고용허가제 개정 논의와 관련한 시민단체 토론회에 갔을 때의 일이다. 이주노동자 관련 단체에서 온 한 분이 “그러니까 악법은 지키지 않아도 됩니다. 고용허가제도 아예 철저히 무시해서 고사시키는 전략을 택하는게 낫지 않겠습니까” 라고 말한 적이 있다. 순간 거기에 대한 여러가지 대응 논리가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지만, 결국 반박하는 발언을 하지는 않았다. 아니 못했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
처음 산업연수생을 받아들인 때로부터 12여년이 지나도록 대한민국 정부는 아무런 법적 근거없이 이주노동자를 받아들이기만 했다. 차츰 늘어난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수가 25만명에 이르도록 정부는 무정책의 대응으로 일관했을 뿐이다. 당연히 이주노동자 단체들을 비롯한 여러 시민단체들은 노동허가제 또는 고용허가제의 조속한 도입을 요구하였고, 문민정부에서 국민의정부, 참여정부에 이르기까지 번번이 대통령은 제도의 도입을 약속하였지만, 실행되지 못하다가 우여곡절 끝에 탄생한 것이 2003년 8월 제정된 ‘외국인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이다. 하지만 그 이전까지 헌법과 근로기준법의 해석을 통해 미등록이주노동자에 대해서도 상당부분 노동자로서의 기본적인 보호가 이루어지고 있었고, 법무부에서도 미등록이주노동자를 용인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고려해 불법체류에 대한 단속이 형식적인 것에 그치고 있던 점을 고려하면, 과연 위 법률의 시행이 미등록이주노동자를 법적으로 보호하기 위한 원래의 목적에 부합하는 것일까를 회의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성매매를 법으로는 금지하면서도 실제로 오랜 기간 정부나 민간을 불문하고 암묵적으로 이를 용인해 온 탓에 ‘성매매특별법’의 시행을 둘러싼 논란이 이제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을 보아도 불법 또는 무법(無法)의 영역에 방치해두고 있던 집단을 합법적인 영역으로 끌어들여 규율하는 것은 그 자체로 쉽지 않는 일이다. 그렇다고 언제까지나 수십만명에 이르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불법의 영역에 방치할 수도 없다는 점에서 고용허가제 또는 노동허가제의 도입은 시급히 요구할 만한 사안이었다. 한편 고용허가제의 도입과 함께 일시적으로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에게 합법적 체류 지위를 부여한다고 하더라도 그 다음은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외국인관련단체 간에도 합의를 도출할 수 없었던 사항이기도 하다.
이제 ‘외국인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의 시행으로 인해 시민단체는 미등록 이주노동자에 대한 사회적ㆍ경제적 차별을 일거에 해소시킬 수 있는 유력한 정책 대안을 상실하게 되었다. 위 법률의 시행으로 인하여 체류자격에 의한 차별은 오히려 정당화되었고, 공고해지기까지 하였다.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에피소드 2. “법부터 만들고 보자”
지난 해 가을 뉴욕에서 10여년간 소수민족 공동체에 상근해 온 친구가 교포 2-3세들의 한국 방문 프로그램을 마련할 목적으로 한국에 온 적이 있었다. 그 친구는 다양한 시민단체들을 방문하고 면담내용과 소감을 일지로 기록하였는데, 뉴욕으로 떠나기 며칠 전 만난 자리에서 “한국의 단체들은 조직을 갖추기도 전에 입법운동부터 하겠다는 곳이 많아서 놀랐다”고 말했다. 웬지 쉽게 수긍이 갔다.
특별법이 지나치게 많다는 지적은 오래 전부터 있어온 것이기는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특히 법률이 쏟아지고 있는 느낌이다. 이는 새로운 법률의 제정에 적극적인 정부의 태도에 기인하는 측면이 있다. 사회복지 영역에서도 예외가 아니어서 ‘건강가정기본법'(2004), ‘청소년 복지 지원법'(2004), ‘농어촌주민의 보건복지증진을 위한 특별법'(2004),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2005), ‘긴급복지지원법'(2005)이 비교적 최근에 제정되었고, 긴급복지지원법을 제외한 다른 법률들은 이미 공포되어 시행되고 있다. 한편 시민단체나 국회도 기존 법률을 전면 개정하여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거나 아예 새로운 법률을 제정하는데 적극적이다. 2005년 한 해 동안에 보건복지위원회에 제출된 의안만 하더라도 208개에 이른다. 국민연금법의 경우 개정법률안이 14개에 이를 정도이다.
그러나 이렇듯 넘쳐나는 법안들 속에서 오히려 ‘대안의 부재’를 절감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이기도 하다. 악법은 지키지 않아도 무방하지만, 법률이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되어줄 것이라는 기대는 가져도 되는 것인가. 법률은 이 사회의 차별받는 소수집단에게 그렇게 쉽게 이용당해주는 착하고 간편한 수단인가.
그러므로……
법률실무를 본업으로 삼게 될 줄 미처 몰랐던 때에는 ‘법보다 주먹이 가깝고’, ‘법 없이 사는 것이 최고’라고 생각하면서도 또 한편 사회복지제도가 너무 갖추어져 있지 않은 현실을 안타까와 하면서 쉽게 분개하고는 하였다. 이 두 가지 생각이 모순된 것이거나 너무 안이한 사고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조금 더 나이가 들어서이다. 제도를 만들고 운용하고 버리는 것은 어디까지나 사람이다. 사회복지는 사람을 중심에 둔 학문이고 제도라고 할 만 하지만, 사회복지 제도를 무분별하게 확충하고 재원을 확보하는 것만으로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가 보다 인간적이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마찬가지로 잘못된 제도라고해서 이를 무시하고 고사시키는 것이 그리 간단한 일은 아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법과 제도는 법제도를 운용하는 주체가 될 수 없는 주변부 집단에게 보다 엄격하고 가혹하게 작용할 수 밖에 없는 역사적ㆍ내재적 한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어떻게 할 것인가. 대답은 간단하다. 악법은 폐지하여야 하고, 사회복지권은 당당한 권리로 주장되어야 한다. 다만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단순한 도구에 불과한 법이 발목을 옥죄는 덫이 되지 않도록 최소한 주위를 둘러보는 정도의 조심성과 여유는 가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세상을 바꾸는 것은 법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진리를 다시 한 번 되새겨보아야 할 것이다.
월간 <복지동향> 2006년 02월호(제8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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