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의료산업화정책 어떻게 볼 것인가?
임준
건강연대 정책부위원장
1. 신자유주의 구조화와 의료산업화 경향의 강화
현재 한국은 ‘의료산업화’로 일컬어지는 보건의료 부문의 신자유주의 공세가 갈수록 강화되고 있는 형국에 처해 있다. 참여정부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제기되어 왔던 의료산업화론은 이명박정부가 등장하면서 본격화될 태세를 갖추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3월 25일 보건복지가족부 업무 보고 자리에서 “보건복지가 과거와 달리 소비적인 게 아니라 생산적이라고 생각한다.”는 의견을 피력하면서 의료산업화를 강조한 바 있다.
그런데, 이러한 신자유주의 공세는 과거 WTO DDA 협상이 본격화되면서 이미 예상된 것이었다. 다자간 협상 틀을 갖고 있는 WTO 체제의 특성 때문에 협상 타결 자체가 어려운 상황인데도 의료시장 개방에 적극적인 정부의 태도를 보면서 정부가 영리의료를 시장개방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는 것으로 이해하지 않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참여정부 중반인 2004년 말 송도 등 경제자유구역 내에 외국계 영리법인 개설과 내국인 진료를 허용한 경제자유구역법 개정안을 추진하는 정부의 모습을 보면서 그 실체를 확인하게 되었다.
당시 재정경제부는 경제자유구역법 개정이 경제자유구역에 국한한 것이기 때문에 국내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많은 학자들과 시민사회운동진영에서는 경제자유구역법을 통해 얻고자 하는 효과가 경제자유구역 내에 국한된 것이 아니고, 의료산업화에 반한 국내 법, 제도의 개편을 요구하기 위한 정지 작업의 일환이라고 비판하였다. 재정경제부의 주장이 허구이고 시민사회운동진영에서 제기했던 우려가 현실로 들어난 것은 불과 채 1년이 걸리지 않았다. 제주특별자치도를 통한 의료산업화 정책 추진, 경제자유구역 내 외국계 영리병원 개설 자격을 외국인에서 외국인이 투자한 기업으로 확대하는 내용의 경제자유구역법 재개정안의 준비, 한미FTA를 통한 보건의료 부문의 시장개방 확대, 의료법 개정 등 계속적인 의료산업화 정책이 쏟아졌다.
참여정부와 마찬가지로 이명박정부는 과거와 같이 민간의료보험 도입과 영리법인 허용을 시장개방 압력에 의하여 어쩔 수 없이 선택해야 할 문제로 이해하지 않고 있다. 정부는 특정 이해집단의 논리를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의료체계를 철저하게 시장 중심적으로 재편하려 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의 보건의료가 시장화를 이야기해도 될 만큼 과도하게(?) 공공적인 것이 아니라 과도한 영리추구로 근본적인 보건의료의 위기를 맞이할 정도로 이미 시장화되어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또다시 의료시장화, 산업화를 이야기한다는 것은 전혀 현실과 동떨어진 주장일 뿐이고 결국 현실을 악화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 확실하다.
2. 이명박정부의 의료산업화 전망과 예상 경로
가. 이명박정부의 의료산업화 전망
의료산업화와 관련하여 이명박정부의 대선 공약과 대통령 인수위의 국정과제를 비교해보면, 일정한 변화를 감지할 수 있다. 대선공약에서는 의료서비스산업의 활성화를 해외홍보 및 진출의 지원에 맞추어져 있고 별다른 지향점을 보이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인수위에 와서는 ‘서비스업 경쟁력 강화와 신성장 동력으로서 의료서비스산업 육성’이라는 참여정부의 논리를 그대로 이어받고 있다.
대선공약
인수위 발표 국정과제
보건·의료·제약·한방산업의 국가전략산업 육성
-의료서비스산업: 해외홍보 강화, 해외진출지원
-한방산업을 국가전략산업으로 육성
-의료기기산업: 세계적 품목으로 육성
[핵심과제]
-외국인 투자유치 활성화
-전략적 규제 개혁
-서비스업 경쟁력 강화 방안
[중점과제]
-신성장 동력으로 의료서비스산업 육성
표 . 보건의료 관련 이명박정부의 대선 공약과 대통령 인수위의 국정과제 비교
보건복지가족부가 대통령 업무 보고 때 밝힌 내용에서도 참여정부에서 추진해온 의료산업화 정책과 대동소이한 내용을 보이고 있다. 업무보고 후 사후 브리핑에서도 요양기관당연지정제, 민영의료보험 활성화, 영리의료법인 허용 등은 논의되지 않았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이러한 보건복지가족부의 발표 내용은 ‘총선을 의식한 처사’라는 비판이 제기되었는데, 그 이유는 주무부처인 보건복지가족부에서 다루어지지 않은 의료산업화 추진 계획이 기획재정부 대통령 업무보고에 포함되었기 때문이다.
5. 의료서비스 규제 완화
-영리의료법인 : 의료서비스의 질적 향상과 다양화를 위해 영리의료법인 도입 검토
-민간의료보험 : 의료분야 투자 확대와 다양한 의료서비스 확충을 위한 민간의료보험 활성화 추진(상품 표준화, 공사보험 정보 공유 등 제도개선 추진)
-제도개선 2008년 2분기 T/F 구성, 3-4분기에 구체적 방안, 의료법 개정 추진
6. 해외환자 유치 활성화
-외국인 환자에 대한 유인알선 허용(의료법 개정) 등 제도 개선 추진(2008년)
-타겟 국가별 의료관광 상품 개발(2008년) 및 홍보(2009년)
-인프라 구축 : 해외환자에게 one-stop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의료코디네이트를 양성(2008년)하고, 의료인의 다문화 이해와 언어 능력 배양을 위한 국제아카데미 운영(2010년)
표 . 의료산업화와 관련한 기획재정부 대통령 업무보고
기획경제부는 대통령 업무 보고에서 “경상수지 흑자기반 조성 및 대외위험요인 관리”를 위해 영리의료법인 도입과 민간의료보험 활성화를 골자로 하는 ‘의료서비스 규제 완화’와 외국인 환자 유치 및 의료관광 상품 개발을 골자로 하는 ‘해외환자 유치 활성화’를 추진할 것임을 제안하였다. 보건복지가족부도 T/F에 참여하겠지만, 논의의 주도는 기획경제부가 중심이 되고 보건복지가족부는 이를 보완하기 위한 역할을 할 가능성이 높다. 이미 보건복지가족부 장관이 스스로 보건의료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고 언급하였으므로 의료서비스 산업화와 관련한 보건의료정책은 보건복지부의 손을 떠났다고 봐도 무방하다고 할 수 있다.
나. 의료산업화 예상 경로
향후 의료산업화 정책은 기획재정부 논의 주도로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국내 의료체계에 미칠 영향력에 대한 검토는 유야무야되고 단기간에 경제성장률을 끌어올릴 수 있는 모든 정책을 구사하는 데에 초점이 맞추어질 가능성이 크고 이러한 시각 속에서 의료산업화 정책도 가시적 성과를 거두기 위해 밀어붙일 가능성이 매우 높을 것으로 판단된다. 이 과정에서 보건복지가족부는 여러 가지 우려를 제기하겠지만, 문제제기 수준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고 하겠다.
기획재정부의 의도대로 진행된다면 7-8월이 되면 법률 개정 작업이 본격화될 것이 예상되는 데, 가장 초점이 되는 것이 의료법 개정과 건강보험법 개정이다. 요양기관당연지정제도의 폐지를 둘러싼 건강보험법 개정 문제가 여전히 쟁점이 될 수도 있겠지만, 요양기관당연지정제도가 직접적으로 보험자본의 이해를 침해하지 않는다는 점과 폐지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건강보험법 보다 의료법 개정에 초점이 맞추어질 가능성이 크다. 유인알선 허용 및 영리법인 허용 등의 내용을 담는 의료법 개정을 통하여 민간의료보험자본 및 대형병원자본 주도의 의료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자본의 이해를 극대화할 수 있는 방안일 뿐 아니라 의료법의 영역이 직접적인 국민의 이해관계에 한 발 떨어져 있다는 점에서 저항을 분산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의료법 개정에 초점이 맞추어질 것이 예상된다.
특히 이번 총선에서 과반 의석을 장악하였고, 의료산업화를 밀어붙이는 데에 앞장 설 보수 세력이 2/3 이상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훨씬 더 강력하게 산업화 정책을 추진할 가능성이 크다. 현재 요양기관당연지정제도 폐지의 문제점과 영리법인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큰 상황이기 때문에 이 부분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는 실질적으로 의료체계를 민간의료보험에 유리한 방향으로 재편할 수 있는 민간의료보험의 유인알선 행위 허용, 건강보험 미적용 병상제도 도입 등 민간의료보험 활성화를 포함한 의료산업화 정책을 단계적으로 추진할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된다.
3. 의료산업화의 어두운 그림자
의료산업화의 결과로 민간의료보험이 활성화되고 영리법인 의료기관의 개설이 허용되거나 이에 준하는 정책이 관철될 경우 국민의료비의 증가는 피할 수 없는 문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현 건강보험체계는 국민의료비 통제를 위한 가장 강력한 정책수단이라 할 수 있는데, 민간의료보험이 활성화되어 건강보험의 관리영역이 감소하게 될수록 국민의료비를 통제할 수 있는 사회적 기전과 정책수단이 축소 왜곡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영리병원 역시 비영리병원에 비해 진료비용이 비싸다는 것은 미국의 많은 실증 연구에서 지적되었고, 영리병원의 경우 의료의 특성상 정보의 비대칭성 내지 소비자의 무지를 악용해 질의 상승 없는 비용 상승을 초래할 개연성이 크다는 점에서 의료비의 상승을 가져올 것으로 예상된다.
두 번째, 의료산업화의 결과는 전반적인 본인부담 및 가계부담의 증가로 표출될 가능성이 크다. 공적 의료보험이 기본급여로 제한될 경우 민간의료보험에 가입을 하기 어려운 저소득층은 의료이용에 따른 직접적인 본인부담이 증가하게 되고 가계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중산층의 경우도 보험료 부담이 과거보다 훨씬 더 커지고 가계 부담이 커지게 될 뿐 아니라 보험료 가격에 따라 제공되는 서비스의 차이가 발생함으로서 보험료에 대한 불만이 커질 수밖에 없다. 이렇게 중간계층의 가계 부담이 커지게 되면서 전반적인 소비 수요가 억제되어 결국 중장기적으로 실물 경제에 압박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물론 상위 10% 정도는 보험료 부담 및 의료비 부담이 줄어들게 되겠지만, 이미 건강보험료 및 의료비 부담이 다른 부문의 소비 억제로 나타나지 않는 소득 임계치를 넘어선 계층이기 때문에 별다른 소득이전효과가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80-90%의 계층은 의료산업화로 의료비 부담이 늘어나게 될 뿐 아니라 계층적 특성상 의료비 지출이 타 부분의 소비억제로 표출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내수 경제의 압박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셋째, 의료산업화의 결과로서 국내외 대형자본이 광범위하게 유입되어 의료기관의 통폐합 및 대형화가 가속화될 것으로 보이고, HMO 방식의 의료기관 간 연합이 동시에 출현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판단된다. 이러한 의료기관의 통폐합 과정에서 지역사회 병원이 사라져 일부 지역의 경우 의료공백이 발생하고, 의료보장의 물리적 기반이 손상되는 부작용이 예상된다. 특히, 공급체계가 민간의료보험과 공적 의료보험으로 양분되고, 병의원의 내부 계층화가 심화될 것이 예상된다. 공급체계의 양분화와 영리화는 인력, 시설, 장비, 재원 등 자원 배분의 왜곡으로 나타나 민간의료보험회사의 이익 추구 경향과 경쟁의 양상에 따라 보건의료에 투입되는 재원의 양과 분포가 결정됨으로서 국민 건강 향상을 위한 적정 재원 조달과 배분이 어려워질 것이다. 이렇게 ‘수익성’ 제일주의와 무차별적 ‘경쟁’지상주의가 만연해지면서 병원의 ‘영속성’이라는 대원칙이 무너질 가능성이 커지게 된다. 즉 영리법인 병원이 단기적으로 수익성에 편승해 진료과목의 진퇴나 병원기능의 변경이 빈번하게 일어난다면 지역의료공급체계에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커지게 된다.
마지막으로 의료산업화로 인하여 의료의 질이 높아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떨어지는 문제가 발생할 것이다. 의료기관의 영리적 성격이 강화될 경우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필수의료보다 부가적인 의료서비스가 급성장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비용은 증가하는데 서비스의 질은 높아지지 않는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또한, 영리법인은 특성상 주주의 이익을 대변해야 하기 때문에 병원의 이익을 최대의 목표로 삼게 될 것이므로 수익성이 떨어지는 필수 의료나 사회적으로 필요성이 있는 저소득 계층 환자의 진료 기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필수 부분의 질이 떨어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이와 같이 의료산업화는 우리 사회에 깊은 어둠을 내리게 만들 가능성이 크다. 최근 화제가 되고 식코의 이야기가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닐 가능성이 커지게 된 것이다. 정부는 더 이상 국민의 건강을 담보로 실패가 확실한 정책을 추진해서는 안 될 것이다. 정부가 존재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곰곰이 되씹어 보고 칼끝을 국민에게 향하는 우를 더 이상 범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이 정부 실패로 인한 파국을 막는 유일한 방법이다.
[참고 문헌]
김용익, 공공성 부여를 통한 중소병원 육성지원 연구,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2003.
김창엽. 의료시장 개방 논의의 문제점. 예방의학회지 2004;37(1):6-10.
임준. 의료산업화를 강제하는 FTA. 황해문화 2006 가울
월간 <복지동향> 2008년 06월호(제11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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