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08 2008-06-20   2515

[심층분석] 영리병원 도입 배경과 대응 방향

영리병원 도입 배경과 대응 방향



박형근
제주의대 의료관리학교실


1. 영리병원과 비영리병원의 차이점


  현재 의료법 상으로 영리병원 설립은 허용되고 있지 않다. 국내에서 의료기관이 영리를 추구하고 있다는 것은 상식이 된지 오래인데 영리병원을 허용하든 말든 문제될 것이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문제가 생각만큼 간단하지 않다. 영리병원이 비영리병원과 다른 차이점부터 살펴보자.

첫째, 지금 현재는 의료기관 설립자격이 의료인과 제한된 법인에게 국한되어 있는데, 영리병원 설립 허용 이후에는 누구나 제한 없이 의료기관을 설립할 수 있게 된다.
둘째, 영리병원 설립이 허용되면 자본시장(주식 및 채권시장)을 통해서 의료기관 투자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차이가 있다. 주식과 채권 발행이라는 형식보다는 수백조원대의 부동자금이 이윤을 목표로 의료시장에 유입되는 통로가 합법화된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셋째, 영리병원은 투자자에 대한 수익금 배당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의료기관의 이윤 추구 행동이 보다 더 뚜렷해진다는 뜻이다. 넷째, 영리병원 설립 허용이 의료 정책적으로 갖는 중요한 차이점은 영리병원의 경우 건강보험요양기관으로 당연지정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 만약, 개설된 영리병원이 건강보험 당연지정제에 대한 위헌소송을 제기하게 된다면 헌재에서 ‘위헌’판결을 받게 될 것이 거의 확실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반적 견해이다. 영리병원 허용 이후에는 의료기관과 민간보험사 간에 전 의료서비스 영역을 대상으로 독자적인 계약에 의한 서비스 공급체계를 구축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될 것이라고 보면 틀림없다.


2. 영리병원 합법화 추진 배경


  한국 병원시장의 핵심 키워드는 ‘경쟁’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89년 전국민의료보험 도입으로 의료 수요는 폭발적으로 증가하였고, 아산병원과 삼성병원이라는 재벌병원의 등장 이후 병원 간 ‘고급화·대형화’ 경쟁이 심화되었다. 이들 재벌병원은 초대형 시설, 첨단장비, 전문화되고 세분화된 진료팀 구성, 차별화된 서비스를 무기로 빠르게 시장을 잠식해 들어갔다. 국내 최초 심장이식 성공, 간이식 성공, 보호자 없는 병원, 촌지 없는 병원과 같은 슬로건이 이들 병원의 성과라고 할 수 있다.  기존 유명 대학병원을 찾던 환자들이 재벌병원으로 몰리게 되면서 기존 병원들의 위기의식은 한층 더 고조되었다. 경쟁에서 밀리고 있다는 주·객관적 평가가 이들 병원으로 하여금 재벌병원과 시설, 장비, 서비스 경쟁에 몰입하도록 강제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기존 대학병원의 경우 재원조달 능력에서 재벌병원과 경쟁이 되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나마, 여력이 되는 세브란스병원과 성모병원의 경우 대규모 병원을 신축하였지만 나머지 다른 병원의 경우에는 역량이 되는 만큼 제한적 범위에서 시설 개선, 첨단 장비 구입 등 최선을 다해보지만 재벌병원은 신규 대형 투자를 통해 그 간격을 더욱 벌여나가면서 후발주자를 여유 있게 따돌리고 있는 실정이다. 삼성 암센터 신축, 아산병원 신관 완공이 대표적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국민들은 병원 서비스 질이 향상되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경쟁은 건강보험체계 내 경쟁이었기 때문에 급격한 의료비 상승도 유발되지 않았다. 재벌병원이 좀더 비싸다는 것은 경험적 사실이지만 서비스의 차이를 감안하면 감내할 수 있는 수준에 불과하였다. 서비스 질이 우수한 다른 대안이 있다는 것은 소비자에게 즐거운 일인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한마디로 말해서 지금까지 재벌이 주도한 병원 간 경쟁으로 인해 국민들은 큰 비용 상승 없는 서비스 질 향상을 경험하였다는 것이고, 이로 인해 병원 간 경쟁은 좋은 것이라는 판단이 무의식중에 강하게 자리 잡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더 이상 병원 간 경쟁이 국민들에게 유익함을 줄 것 같아 보이질 않는다는 데 문제의 심각함이 있다.

  국민건강보험에 의해 강제되는 낮은 수가 수준에서 재벌병원이 아닌 일반 공급자들은 공격적인 투자가 불가능하고, 이로 인해 재벌병원과 질적 격차가 심화되면서 기존 병원들의 건강보험제도에 대한 불만이 점차 높아져왔다. 재벌병원에 대한 제도적 규제 요구는 무시되는 것이 다반사이고, 수가 인상도 기대하기 어려운 조건에서, 기왕의 환자들조차 재벌병원으로 향하는 국면에 처하자 다른 대안을 적극적으로 요구하게 된 것이다. 그 핵심은 영리병원을 통해 투자를 유치하여 고급화, 대형화, 전문화된 공급체계를 구비하고, 건강보험체계 밖에서 민간보험 사와의 계약을 통해 의료비를 결정하는 방식으로 가격 결정권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요구가 실현되기 위해서 필요한 제도적 변화가 건강보험 당연지정제 폐지, 영리병원 합법화, 민간의료보험 활성화 조치인 것이다. 참여정부 시절부터 ‘의료 산업화’, ‘의료관광 활성화’라는 명분하에 추진된 의료민영화를 위한 핵심정책이고, 이명박 정부에서 강력한 추진 의지를 보이고 있는 사안이기도 하다.

  이러한 의료시장의 변화 욕구가 경제부처의 경제성장 목표 달성과 맞물리면서 강력한 추진력을 얻고 있다. 거시경제를 운용하고 있는 경제부처 입장에서 보면 제조업의 고용창출 여력이 점차 감소되고 있는 상황에서 서비스업 분야에서 일자리를 만들어 내야하는 상황에까지 몰리게 되었고, 미국식 의료제도를 모델로 삼아 영리병원 허용, 민간의료보험 활성화에 전념하고 있는 상황이다. 1년에 국민건강보험 총진료비가 40조원 규모인데, 연 25% 성장하게 되면 10조원의 추가 매출이 발생하게 되고, 이는 GDP 1% 추가 성장으로 반영되게 된다. 대운하의 GDP 성장 기여율에 집착하는 이명박 정부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대운하에 비해 사업의 장기적 전망이나 고용이나 GDP 성장 기여율 등 모든 측면에서 월등한 의료민영화를 쉽게 포기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복지부장관이 건강보험 당연지정제를 고수하겠다는 의지 표명만으로 의료민영화 의지가 결코 꺾일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정리해보면, 건강보험의 보장성 확충에 관심이 쏠려있는 사이 병원을 중심으로 한 의료시장은 자신의 성장을 옥죄는 기존 건강보험체계를 위협하는 지경으로까지 변모하였고, 이러한 변화 요구를 경제성장에 집착하는 경제부처가 강력하게 지원하고 대변하면서 영리병원 합법화를 포함한 의료민영화는 국민의 건강과 생존을 위협하는 강력한 실체로 부상하게 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3. 영리병원 설립 합법화 추진 경과


  참여정부 시절부터 영리병원 합법화 시도는 끊임없이 제기되었다. 싱가폴과 태국의 의료관광 사례를 소개하면서 우리도 영리병원 설립을 허용해야 한다, 경제자유구역에 제한적으로 허용하겠다, 기업도시에도 영리병원 설립 권한을 부여하겠다, 특별자치도에도 영리병원 설립 권한을 주겠다는 등 모든 기회와 틈새를 비집고 들어왔다. 그 동안 많은 사람들의 수고와 노력 덕분에 현재 경제자유구역과 제주특별자치도에 외국영리병원에 국한해서 설립을 허용하는 수준으로 막아낼 수 있었다. 아직까지도 경제자유구역과 제주특별자치도의 경우 매년 법 개정을 추진하면서 국내 영리병원 설립 허용과 함께 영리병원의 경우 건강보험 환자를 선택적으로 진료할 수 있는 권한마저 부여하겠다는 요구를 줄기차게 해오고 있는 실정이다. 참여정부후반기에 총리실 산하에 ‘의료서비스 선진화위원회’를 구성하여 영리병원의 전면적 허용을 검토한 바 있으나, 영리병원 허용에 따른 부작용을 우려하여 제주특별자치도와 경제자유구역의 시범적 운영 성과를 토대로 2008년 이후에 영리병원 도입여부를 검토하겠다고 결론 내린바 있다. 한마디로 다음 정권에 책임을 떠 넘긴 것이다.

  ‘비지니스 후렌들리’한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현 시점에서는 영리병원 전면적 허용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높다고 할 수 있다. 아그러나 인터넷을 통해 의료민영화 내용에 공분하는 대중이 증가하고, 식코 상영 이후 이러한 분위기가 더욱 고조되었으며, 미국 쇠고기 수입 파동 국면에서 의료민영화가 주요한 이슈로 등장하면서 정부가 조금씩 발을 빼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가뜩이나 성난 민심에 기름을 부을 정도로 무지하지 않은 탓이리라. 제주특별자치도에서 내국인 영리병원 설립허용을 강력하게 요구하였음에도 불구하고 2008년 6월 3일 발표된 제주특별자치도 3단계 제도개선안에서도 교육분야의 내국인 학교영리법인 설립 허용과는 달리 내국인 영리병원의 설립은 차기 과제로 넘기는 수준으로 마무리된 것이 대표적 사례라고 할 수 있다.


4.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의료민영화의 핵심은 민간의료기관과 민간의료보험자를 중심으로 서비스 공급체계를 재편하는 것이다. 영리병원은 그 한축인 의료서비스 공급분야의 민영화를 위한 핵심조치라고 할 수 있다. 기존 건강보험체계에서는 민간 병·의원이더라도 건강보험의 규제를 받으며 전국민의료보장의 한 축을 담당하여왔지만 영리병원이 허용되면 건강보험체계 밖으로 이탈할 수 있는 합법적 기회를 보장받게 될 것이고, 기왕의 건강보험제도에 불만이 높은 의료공급자들의 급격한 이탈로 건강보험제도를 유지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이러한 측면에서 당연지정제도 폐지와 영리병원 설립 허용은 동일한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건강보험제도의 유지 발전을 위해서는 우선 막는 것이 시급하다. 영리병원 허용이라는 말을 쉽게 꺼내지 못하는 분위기를 만들 필요가 있다.
  보다 중요한 것은 병원을 중심으로 한 의료시장의 무한 경쟁, 승자 독식 구조에 대한 합리적 재편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 의료시장 성장의 모태인 건강보험제도 마저 부정하는 국면으로까지 치달은 의료시장을 지금과 같이 방치하고서는 건강보험제도의 유지가 불가능하다. 병원 신설, 병상 증측에 대한 실질적이고 강력한 규제가 필요하다. 전국민의료보장제도를 운영하면서 우리처럼 시장에 일임하는 나라는 전세계 어디에도 없다. 또한, 최소한 500병상 이상 종합병원의 의료서비스의 질적 차이, 지역적 편차를 해소하는 데 재정을 아낌없이 투여할 필요가 있다. 쉽게 말해서 재벌병원과 지방대학병원과의 질적 편차를 해소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목표가 현실화될 때 불필요한 경쟁이 해소되고, 의료인들이 양질의 서비스 제공에 전념할 수 있을 것이다. ‘규제’가 곧 ‘악’인 사회적 분위기에서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허나, 다른 방법이 눈에 보이질 않는다.

월간 <복지동향> 2008년 06월호(제11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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