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성(사회복지연대 사무처장)
우리나라의 사회복지는 정치적 수단이었다.
오래전 가끔 특강을 가거나 대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런 질문을 항상 던졌다.
“사회복지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질문이 유치해서 인지 아니면 너무 추상적이어서 인지 대부분 처음에는 머뭇거린다.
그러다 사회복지를 전공하는 학생들은 “국민의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하고 건강과 번영을 증진시키기 위한 실천 활동입니다.” 또는 이와 유사한 대답을 하거나 사회복지를 전공하지 않은 학생들은 “가난한 사람 도와주는 것, 없는 사람 잘 살게 해 주는 것입니다”는 답을 한다.
답을 듣고 난 다음 모두다 정답이라고 하며 나만의 사회복지를 정의해보는 것이 필요하다는 말과 함께 정치적인 의식을 가졌으면 하는 바램으로 우리사회의 복지는 아마도 이런 것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했던 적이 있다.
“고무신, 밀가루, 설탕”, “잘살아보세”, “복지국가 건설”, “수당”.
스무고개 같지만 복지와 정치라는 것을 연결해보면 이해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1950~60년대에 선거철이 되면 대부분의 후보들은 국민들 잘 살게 해드리겠습니다는 이야기를 하며 유권자에게 고무신, 밀가루, 설탕 등을 주었던 것이 복지였고 박정희 유신정권 때는 “잘살아보세”로 대변되는 새마을 운동이 복지였으며 쿠테타로 정권을 빼앗은 5공화국 전두환정권은 “복지국가 건설“을 위해 복지관련 시설을 짓는 것이 복지였고, 김영삼 문민정부 때는 각종수당을 만들어 돈을 뿌리는 것이 복지였습니다. 오래전부터 우리사회의 사회복지는 정치적 도구로써 정치적 도구라고 정의내릴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사회는 내용은 달라졌지만 지금도 사회복지는 정치적 도구라는 말이 유효한 것 같다. 그리고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정치적 도구로써 활용되는 범위가 더더욱 넓어지고 있으며 심지어 경제적 수단으로 활용되어지고 있어 우려스럽다 .
행정 부서 중 복지라는 단어가 붙어 있는 부서가 담당하는 일이 사회복지다.
중앙정부와 부산시의 사회복지정책과 예산대응운동을 하면서 매번 어려움을 겪은 것이 있었다. 작년에는 사회복지 사업이었는데 올해는 사회복지사업이 아니거나 올해는 사회복지사업이었는데 내년에는 사회복지사업이 아닌 경우가 종종 발생하였다. 그리고 사회복지사업이라고 보기 힘든 사업도 사회복지로 분류하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서 이야기하면 장애인이동권 사업을 2004년 까지는 복지건강국에서 담당하는 사회복지사업이었다. 그러나 2005년 장애인이동권 사업이 교통국으로 넘어가면서 사회복지가 아닌 대중교통활성화 사업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도저히 사회복지사업이라고 보기 힘든 시립화장터 주차장 건설이 사회복지사업으로 분류되어 있다.
보훈관련 사업은 언제인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현재 사회복지사업에 속해 있다.
그래서 매번 사회복지사업이 맞느냐 맞지 않느냐를 두고 옥신각신을 한다.
장애인이동권 사업이 왜 대중교통활성화 사업으로 분류되었냐고 질문을 하면 장애인이동권 자체는 장애인복지과 관련성이 있지만 교통과 더 직접적인 관계가 있기 때문에 대중교통활성화 사업에 분류한 것이 이라고 답했고, 시립화장터 주차장 건설은 장묘사업의 일환으로 하기 때문에 사회복지사업이 맞다고 답했다. 그리고 보훈관련 사업이 사회복지사업이 된 이유에 대해서는 과거 복지부의 산하기관으로 보훈처가 속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로 인해 중앙정부의 분류와 똑같이 지방정부가 하면서 보훈관련 사업이 사회복지사업이 되었다고 답했다.
이것 말고도 많은 사업들이 매년 복지사업이 되었다가 다른 사업이 되기도 하고 다시 복지사업이 되고 있다.
이는 사회복지의 공급주체가 중앙․지방정부이기 때문에 정부가 어떻게 사회복지를 바라보고 실천하느냐가 매우 중요하도고 생각한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현재 복지라는 단어가 붙어 있는 부서가 담당하는 일을 사회복지라고 말할 수 있다. 공급주체인 정부가 행정적 편의에 의해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로 사회복지를 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으로 수요자인 국민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거나 사회복지는 남으면 하는 사업이니 필요에 따라서 붙였다 뗐다를 할 수 있는 것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식의 생각은 조속히 정리되어야 할 것이다.
없는 사람 도와주는 것, 자선으로서의 복지이다.
오래전 가까운 지인에게서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전 세계에서 남을 위해 눈물 흘릴 수 있는 민족은 아마도 한민족, 대한민국 국민 밖에 없을 것이다. 정말 따뜻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 대한민국이다.”
그리고 최근에 취재를 위해 방문한 모 방송사 PD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연말이 되면 사람들의 눈물을 자극 시켜는 내용을 촬영하다. 그렇게 하면 모금이 당연히 잘되게 되어있다.”
정이라는 문화가 우리사회에 깊이 있게 뿌리내리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며 남을 생각할 줄 아는 대한민국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이 내용을 가지고 사회복지 속으로 들어오게 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대부분의 시민들에게 사회복지는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가난한 사람 도와주는 것, 없는 사람 도와주는 것, 자선과 봉사라고 말할 것이다. 절대 이 말이 틀린 것은 아니다. 다만 매우 중요한 것이 빠져 있다. 바로 권리이다.
사회복지는 모든 사람이 누리는 권리로써 기본권 안에 포함되어 있는 권리인 것이다.
우리사회의 일원으로서 당연히 받아야 하는 권리이며 사람이 사는 공간에서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수단으로써 제대로 활용되어야 하는 것이 사회복지인 것이다.
그러나 정이라는 특수한 우리사회의 문화와 자선으로 보는 사회복지에 대한 인식으로 인해 권리로서의 기본권을 제대로 바라보고 있는 못한 것은 안타까운 현실이다. 권리로써의 복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내는 우리사회의 노력이 절실히,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사람이 사는 공간의 삶의 질을 높인다.
우리사회의 사회복지는 앞서 이야기 한 것처럼 정치적 수단, 공급자 중심의 행정 편의, 자선 등으로 이야기 할 수 있다. 이러한 우리사회의 사회복지에 대해 문제제기 하고 싶기보다는 우리사회에 꼭 필요한 형태의 사회복지가 인제는 정리되어야 한다는 바램이다.
사람 중심의 사람이 사는 공간의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 사회복지.
정치적 수단이 아닌 사람이 사는 공간의 삶의 질을 높이는 수단으로 공급자 중심의 행정 편의가 아닌 수요자 중심 즉 사람중심으로 자선이 아닌 정이 많은 우리사회의 특수성을 살린 권리로써의 사회복지가 되길 바란다.
잠깐 사람이 사는 공간의 삶의 질을 높이는 사회복지를 이야기하면
우선, 말 그대로 사람이 사는 공간 즉 집이다.
두 번째 사람이 사는 공간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한 노동이다.
세 번째 사람이 사는 공간에 존재하는 사회적 약자이다. 여성, 아동․청소년, 노인이다.
네 번째 사람이 사는 공간에 사는 사람들의 형태이다. 소년․소녀가정, 독거노인가정, 조손․조부가정 등이다.
다섯 번째 사람이 사는 공간 속에서 생활하는 사람의 건강 즉 보건이다.
여섯 번째 사람이 사는 공간들의 집합체이다. 즉 공동체 사회이다.
특별히 새로운 것은 없고 분류만 새롭게 한것 처럼 보이지만 인제는 사람 중심과 사람이 사는 공간의 삶의 질에 초점이 맞추어져있는 것이다.
이제는 사람이 사는 공간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한 우리사회의 모두 구성원들은 함께 노력하길 바란다.
월간 <복지동향> 2009년 04월호(제12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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