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8일 정부는 서비스산업선진화 방안을 발표하였다. 의료분야에서 가장 논란이 되었던 영리의료법인 허용 문제는 일단 미뤄두는 듯하면서, 그간 ‘의료민영화’의 틀 내에서는 논의되어오지 않던 건강관리서비스 활성화 방안을 전면에 내세웠다.
건강관리서비스란 금연, 운동, 영양, 절주 등 건강증진을 위해 제공되는 각종 서비스를 말한다. 정부가 건강증진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관심을 갖는다는 점은 적극 환영한다. 보건소를 중심으로 제공되는 국가건강증진사업에는 분명 한계가 있고, 의료법의 엄격한 해석 때문에 효율성이 떨어지는 측면도 존재한다.
그러나 이런 문제점들에 대한 해결책이 ‘건강관리회사’의 설립․ 육성이라니, 이 부분에서 갸우뚱 할 수밖에 없다. 어쩐지 원인분석과 해결방안이 맞지 않고, 끼워 맞추기 한 것이라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어쨌든 정부는 의료기관이 아닌 곳에서도 이러한 건강증진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현행 제도를 바꾸고 민간 시장을 활성화시킨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지난 2008년 4월부터 ‘건강관리서비스 T/F’를 운영해왔다. 이는 새 정부의 건강정책 간담회 직후이다. 이 T/F의 구성원을 살펴보자. 이미 시장에 진출해있는 건강서비스 제공 업체 대표, 민간보험회사 이사, 대한병원협회 등 의료공급자 및 일부 학계 등 이다. 구성원만 봐도 건강관리서비스를 상품화 시키려는 세력이 누구인지 알 수 있다. 일부 부유층을 대상으로 건강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나 민간보험회사 등이 거추장스러운 의료법 및 각종 규제를 털어내고 본격적으로 건강관리서비스를 상품화 하겠다는 의도가 엿보인다.
전례 없이 빠른 속도로 진행된 이 T/F 회의는 중간에 의협 탈퇴라는 진통을 겪기도 한다. 이후 시행된 공청회에서도 지적되었듯이 사전 협의가 너무 부족했으며, 서비스 대상자인 국민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대상자의 요구가 무엇인지 알아보는 일은 뒷전인 채 각 직능 단체 간의 이권다툼과 건강관리 시장이 가져다 줄 과실에만 정신이 팔려있는 듯하다. 본고에서는 의료민영화 방안의 틀 내에서 새롭게 논의되는 건강증진의 중요성과 특징을 알아보고, 정부가 내놓은 이번 방안에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 짚어보겠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암과 심뇌혈관질환으로 가장 많이 사망한다. 심근경색증, 뇌졸중으로 대표되는 심뇌혈관질환은 선행질환인 고혈압, 당뇨병의 합병증으로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고혈압, 당뇨병 등 만성질환이 늘어나는 이유가 서구화된 식습관, 운동부족 등임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폐암, 간암을 일으키는 주요 원인 중 하나가 각각 흡연, 과도한 음주이기도 하다. 이러한 이유로 질병을 그 자체로만 접근하지 않고, 건강하지 못한 생활습관과 연계하여 관리하는 것은 매우 필요한 일임에는 틀림없다. 건강-질병-사망에 이르는 질병의 스펙트럼에서 좁은 의미의 건강증진은 질병이 생기기 전 나쁜 생활습관, 즉 흡연, 운동부족, 과도한 음주 등을 줄이는 행위를 말한다. 그러나 넓은 범위의 건강증진은 전체 질병의 스펙트럼을 아우르는 관점에서 건강한 생활습관을 실천하기 위한 사회적, 환경적, 심지어 정치적 접근까지 포함한다.
전 세계적인 이런 추세와 발맞추어 우리나라도 1995년 국민건강증진법이 제정되면서 국가가 국민의 건강증진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담뱃값에 부과된 세금의 일부인 건강증진기금을 국가건강증진사업에 사용하면서 전국 보건소에서 금연 클리닉을 운영하는 등 보건소 중심의 사업을 수행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보건소는 전체 주민의 일부만 감당할 수 있으므로 한계가 있다. 수요도 충족을 위해 건강관리서비스 시장을 활성화 해야겠다는 논리가 이렇게 나온 듯하다.
정부의 구체적인 방안은 주로 건강서비스 시장 조성을 위한 제도 개선에 맞춰져 있다. 일정 기준을 충족한 의료기관, 건강관리회사를 건강관리서비스기관으로 허가하고 이들 기관의 서비스 제공에 대해 비용을 받을 수 있도록 허용한다는 내용이다. 건강증진 및 질병예방에 관한 정부의 책임을 줄이고, 시장을 활성화 시킬 테니 능력껏 소비하라는 얘기이다. 건강증진분야 만큼 성과가 느리게 나타나는 분야도 없다. 국가 건강증진 사업 예산이 매번 도마에 오르는 것도 뚜렷한 성과가 없기 때문이다. 성격 급한 자본에게 건강증진을 맡긴다는 것은 애초에 국민의 건강보다는 이를 이용해 돈벌이를 하고자 하는 자본의 요구에 더 부응한 판단이라고 할 수 있다.
1.더욱 뚜렷해질 건강양극화
담배를 끊고 술을 줄이고 운동을 하면 건강해진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다. 고위험군 환자들에게 이런 생활습관개선을 이야기 하면 ‘몰라서 못했다’는 사람은 거의 없다. 시간을 내서 운동을 하기가 힘들고, 스트레스를 풀만한 마땅한 방법을 몰라서 술, 담배를 끊지 못하는 것이다. 더구나 하루하루 먹고 사는 일이 걱정인 사람들은 아프기 전까지는 건강을 생각할 여유가 없다. 정부가 저소득층을 위해 바우처를 준비한다고 하지만 그것으로 접근성이 얼마나 좋아질 지 의심스럽다. 소득에 따라 건강격차가 벌어진다는 사실은 여러 연구를 통해 이미 증명되었다. 이번 건강관리서비스 활성화를 통해 질병 이전단계의 격차가 더욱 벌어짐으로써 건강양극화가 더 심해질 것이라 예상된다.
2.건강증진 각 분야 간의 불균형
금연, 운동, 영양, 절주로 대표되는 건강증진은 각 분야별로 접근법이 다르고 특히나 시장의 논리로 접근이 힘든 부분이 많다. 결국 돈 되는 분야인 ‘비만’을 중심으로 운동, 영양을 접목시킨 분야가 커질 것이다. 그러나 이미 비만 시장은 과포화 상태이며 검증 안 된 각종 방법들이 이미 소비자들의 눈과 귀를 현혹시키고 있는 실정이다. 그에 비해 특히 절주 분야는 건강 및 안전상의 문제와도 결부되어 그 중요성이 지속적으로 지적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돈 안 되는 아이템으로 인식되어 시장에서 활성화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애초에 건강증진을 경제논리로 풀려는 시도부터가 잘못되었지만 각 부문 간의 불균형은 또 다른 보건상의 문제를 야기할 것이다.
3.환자 개인정보 유출
정부 말대로 진료는 병의원에서 받고 건강관리는 따로 세워진 회사에서 받는다고 치자. 회사는 올바른 운동, 영양 관리를 위해 환자의 건강상태에 대해 반드시 알아야 한다. 그렇다면 매번 환자의 동의를 받고 개인건강정보를 받을 것인가? 지금 이 건강관리서비스의 시장화를 강력하게 요구하는 집단이 대부분 보험회사와의 연계를 염두에 두고 있다는 사실을 볼 때 환자의 개인건강정보는 고스란히 보험회사의 손에 넘어갈 가능성이 크다. 자본이 왜 이렇게 집요하게 건강관리서비스 시장을 노리는가가 여기서 드러난다. 의료기관에서만 관리되어오던 환자의 개인정보를 얻을 수 있는 통로를 발견한 것이다. 결국 이 사업도 대기업-산하 보험회사-건강관리회사-병의원으로 이어지는 의료민영화의 큰 그림을 위한 퍼즐의 한 조각임을 알 수 있다.
4.건강증진을 위한 국가의 역할
앞서 얘기한 것처럼 건강증진은 세계적으로 환경적, 정치적 접근이 대세이다. 언제부턴가 급속히 늘어나기 시작한 걷기 붐은 집 주변에 산책로를 마련하고, 학교 운동장을 개방하면서 가속도가 붙었다. 금연클리닉보다 성과가 좋은 것은 각 사업장 단위로 금연자에게 포상을 주는 등 동료들끼리 금연을 격려하는 분위기와 건물 내외의 금연구역 확대다. 과도한 음주가 가져오는 위험성을 경고하는 광고도 좋지만 근본적으로 술에 대한 너무 쉬운 접근성을 제고할 필요도 있다. 정부가 진정 국민의 건강증진을 위한다면 이렇게 큰 틀에서 사회적 환경 및 분위기 조성하는데 힘써야 할 것이다. 일대일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식에는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보건소 건강증진 사업의 경험을 통해 알 수 있다.
기존 건강검진제도를 활용하는 방법도 있다. 이미 지난해부터 건강검진의 사후관리에 대해 공단과 복지부는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으로 안다. 현행 40세, 66세에만 시행되고 있는 생애전환기 건강검진처럼, 결과와 관계없이 2차 검진을 하면서 1차 검진결과에 대해 설명하고, 개개인별 맞춤형 건강관리를 해 줄 수 있는 제도의 확대가 필요한 것이다. 이의 본격적인 시행을 위해서는 의사들의 건강증진분야에 대한 지속적인 교육과 컨텐츠 제공, 지역사회 타 기관과의 연계 안내 등 보완해야 할 점도 많다. 현재 진행 중인 사업에 대한 수정, 보완, 확대의 필요성은 외면한 채 새로운 사업을 또 구상한다는 것은 전형적인 행정 한 건 주의라고 의심할 수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제도적 접근으로서 주치의 제도를 제안한다. 주치의들은 환자의 전반적인 건강상태를 알고 있으며 생활습관, 가족 환경에 대해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이런 신뢰관계 속에서 환자뿐만이 아니라 그 가족들까지 질병에 걸리기 전, 혹은 이후에 각자 생활패턴에 맞춘 건강관리가 가능해질 것이다. 주치의 입장에서는 환자가 더 아파지기 전에 미리 예방하는 것이 더 이익이므로 각종 방법을 동원하여 환자의 생활습관개선을 위해 노력할 것이다. 예방서비스에 대한 의료인의 인식과 동기부여가 확실해지며 환자들도 더 비용을 지불하거나 따로 상담을 받지 않아도 되니 효율적이다.
건강증진은 내 스스로 시작하고자 하는 동기 부여와 접근성이 문제이다. 시장을 활성화하면 일부 계층의 접근성은 좋아질 수도 있겠지만 결국 저소득층에게는 높은 문턱이 될 뿐이다. 또한 본격적으로 기업의 틀 안에서 자본의 흐름을 따라가기 시작하면 국민 건강상의 위해가 될 수 있는 내용들을 정부가 어떻게 막을 것인가? 단순히 나열식으로 건강관리서비스의 종류를 제한한다고 해서 규제가 될 것이라는 순진한 발상은 곤란하다.
이번 건강관리서비스 활성화 방안에는 정부의 의료를 대하는 태도가 고스란히 녹아있다. 의료를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 그 연장선상에서 건강증진도 돈벌이 수단으로 활용하고자 하는 것이다. 무자비한 자본의 논리 하에서 우리의 건강은 얼마나 ‘효율적’으로 관리될 수 있을지, 그 혜택은 누구를 위한 것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문제다.
월간 <복지동향> 2009년 06월호(제128호)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