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09 2009-06-01   1202

[동향2] 필수의약품과 리베이트


필수의약품과 리베이트


강아라(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

한국의 약제비 비중은 OECD 평균 17.8%를 훨씬 상회하는 30%에 육박하여 2008년 10조원을 넘어섰다. 정부는 계속하여 증가하는 약제비 지출을 줄이기 위하여 2006년 12월부터 약제비적정화방안을 시행하였다. 약제비적정화방안은 의약품 허가제도, 유통구조, 사용량 억제 등 다양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는데 그 중 핵심적인 내용은 선별등재방식 (포지티브 리스트)의 도입이다. 약제비적정화방안 이전에는 일부 급여가 안 되는 품목을 제외한 모든 의약품이 보험 급여 목록에 포함되는 ‘네거티브’ 리스트 체계였는데 이를 ‘선별’해서 보험 급여를 해주는 ‘포지티브’ 방식으로 변화시킨 것이다.


약제비적정화방안을 시행하면서부터 건강보험관리공단과 제약회사가 협상을 통해 약가를 결정하게 되었다. 바로 여기에서 문제가 발생하는데, 협상을 함에 있어 힘의 우위가 한 쪽으로 현저히 기울어져 있다는 점이다. 제약회사는 공단과 약가 협상을 하면서 자사가 원하는 가격을 주지 않으면 아예 공급 자체를 거부해 버리겠다는 협박을 하게 된다. 특히 희귀 난치성 질환 치료제나 중증 질환 치료제의 경우 시중에 나와 있는 개발약이 많지 않아 제약회사의 ‘공급 독점력’은 막강한 힘을 발휘하게 된다. 제약회사는 선진 7개국 (미국, 영국, 프랑스, 스위스, 독일, 이탈리아, 일본) 가격에 준하는 약값을 주지 않으면 공급하지 않겠다는 이야기를 공공연히 하고 있다.


이런 문제들이 반복적으로 발생하자 정부는 지난 달 ‘리펀드 제도’를 도입하겠다고 발표하였다. 필수의약품 등 제약회사가 독점력을 갖는 의약품의 약가 협상 시, 제약사가 요구하는 약가를 수용하는 대신 그 약가와 공단이 원하는 약가와의 차액만큼을 환원시키겠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A라는 약이 있다고 치자. 제약사가 요구하는 가격은 10,000원, 공단이 요구하는 가격은 8,000원일 때 제약사가 요구하는 10,000원을 그대로 인정해 주되 나머지 2,000원은 제약회사가 공단에 리베이트로 다시 지불하는 것이다. 사실 리펀드 제도는 ‘리베이트 제도’가 정확한 이름이다.


이런 방식을 도입하고자 하는 것은 제약사의 ‘전 세계 동일 약가’ 정책 때문이다. 제약회사는 각 국가의 소득이나 경제력 수준과는 상관없이 전 세계적으로 동일한 약가를 책정하려고 한다. 하루에 1달러도 벌지 못하는 아프리카의 환자이건, 그보다 천 배, 만 배를 벌어들이는 북미▪유럽의 환자이건 약값은 똑같이 지불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 국가에서 싼 가격으로 약값이 정해지면, 이 가격이 다른 나라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이윤이 감소할 수 있다는 것이 이 제도의 이유이다.


리베이트 제도는 제약사의 전 세계 동일 약가 정책을 받아들이겠다는 정부의 공식적인 약속이다. 제약사가 요구하는데로 명목상의 가격을 높게 유지해주면서 제약사의 명분도 살려주고, 실제 거래되는 가격은 낮춤으로써 재정도 절감할 수 있는 윈-윈 전략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리베이트 제도는 본질적인 문제를 더욱 악화시키는 치명적인 문제들을 가지고 있다.


첫째, 가장 중요하게 리베이트 제도는 정부가 제약회사의 전 세계 동일 약가 정책을 공식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여기서 전 세계에 동일해야 하는 ‘약가’는 선진 7개국의 가격이다. 개별 국가의 구매력이나 경제 상황을 막론하고 똑같은 제품에 똑같은 가격을 책정하는 상품은 그 유래를 찾기 힘들다. 그런데 생명을 살리는 의약품에 무조건적으로 세계에서 가장 비싼 가격을 일률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그 누가 보더라도 정상적인 제도가 아니다.

한국도 약제비적정화방안을 시행하기 전에는 선진 7개국 가격을 기준으로 약가를 산정하는 방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한국보다 경제력 수준이 월등히 뛰어난 나라들의 약가를 기준으로 삼는 것은 한국 상황에 맞지 않는다는 점 때문에 끊임없이 비판받아 약제비적정화방안을 시행하면서 결국 이 제도는 폐지되었다.  그런데, 정부가 이제 와서 다시 선진 7개국 가격을 받아들이겠다는 것이다. 환자들의 의약품 접근권을 확보하기 위해 의약품 접근권을 가장 저해하는 대표적인 제도로 비판받고 있는 바로 그 제도를 받아들이겠다는 본질적인 모순이 리베이트 제도에 내포되어 있다.


둘째, 정부는 외국에서도 공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리베이트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물론 외국에는 다양한 형태의 리베이트 제도가 존재한다. 하지만 외국에서 사용하고 있는 리베이트 제도는 정부가 주장하듯이 공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 아니고, 재정 절감을 위한 것이다. 예를 들어 이탈리아는 지방정부의 약제비 예산을 초과한 금액의 60%를 제약사가 정부에 반납시키기로 하였으며 프랑스, 독일도 비슷한 방식으로 제약사의 초과 이윤을 정부가 리베이트로 받는 형식이다. 더군다나 제약사가 정부에 리베이트를 제공하는 의약품에는 혁신적 신약이나 희귀질환 치료제가 포함되어 있지 않다. 제약사가 리베이트를 제공하는 것은 자사 제품의 시장 점유율을 높이기 위한 것인데 대체제가 없는 필수적인 의약품의 경우에는 굳이 리베이트를 제공하면서까지 시장 확대를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제약사가 리베이트 제도에 흥미를 느끼도록 하기 위해서는 다른 약제로까지 확대가 필수적이다. 이는 선진 7개국 약가가 다시 한국 약가 제도에 전반적으로 도입되는 것을 의미하고, 이는 건강보험 재정, 환자 부담으로 고스란히 떨어지게 될 것이다.


셋째, 리베이트 제도는 그 속성상 비밀리에 이루어질 수 밖에 없다. 국민들은 실제 약가가 얼마이고, 그 약가가 어떤 과정을 거쳐서 결정되었는지 알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약가를 지불하고 보험료를 지불하는 국민의 입장에서 실제 약가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얻을 수 있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권리이다.

세계보건기구에서도 약가를 투명하게 공개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데, 이는 처방의약품 시장의 경제적 효율성을 증진시키고 보험자가 더 효과적으로 협상할 수 있도록 할뿐더러 제약사가 자사가 부여한 약가에 더 책임감을 갖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리베이트 제도는 약가를 은폐시킴으로써 약가의 투명성을 현저히 저해하게 될 것이다.


넷째, 한국은 건강보험 보장성이 50% 수준으로 매우 낮은 편이다. 의료보험 급여가 되지 않는 항목이 상당수라는 의미인데 희귀난치성 질환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특히, 희귀난치성 질환 치료제는 그 시장성 등의 이유 때문에 치료제 개발이 그리 많이 되어 있지 않은 편이다. 따라서 환자들은 극히 제한된 선택 범위 내에서 치료를 받을 수 밖에 없으며 허가 받지 않은 용도로 의약품을 사용하는 경우도 상당하다. 이 경우 그 비용은 온전히 환자의 몫으로 남는다. 또한 건강보험 재정 등을 이유로 환자가 전액 본인 부담하는 경우도 많다.
 예를 들어 근육위축으로 인해 만성호흡부전을 일으키는 희귀질환 폼페병에 사용되는 마이오자임이라는 약은 1병당 70만원이 넘지만 일부 환자들에게는 급여가 되지 않아 약값을 전액 환자가 부담해야 한다. 만약 리베이트 제도가 도입되어 마이오자임의 공식 가격이 100만원이 되고, 나머지 30만원을 공단이 환수받게 된다면 비급여로 약을 복용하는 환자들은 실제 가격을 알지 못한 채 100만원이라는 거품 약가를 제약사에 지불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환자들에게 필수적인 의약품의 공급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제약회사가 가진 과도한 독점권력에 대해 정부가 속수무책 무기력하기 때문이다. 제약회사도 자사가 공급 거부를 했을 때 정부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뻔히 알고 있으며, 따라서 높은 가격을 받기 위해 공급 거부라는 비장의 카드를 쉽게 흔들어댄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정부가 제약사의 독점 권력에 대해 우리에게도 비장의 카드가 있다는 것을 단호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그 한 예로, 공급을 거부한 의약품에 대해서는 특허를 더 이상 인정해 주지 않고 다른 회사로 하여금 그 약품을 생산해서 공급하도록 하겠다고 할 수 있다.

국민의 건강권과 제약회사의 이윤추구권이 충돌하는 현 상황에서 정부가 어떤 쪽에 서겠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다. 시장은 유동적이다. 정부가 어떤 의지를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시장은 그에 맞춰 변화하게 되어 있다. 제약회사가 공급 독점권을 이용해서 환자들을 위협하는 사례가 계속 발생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 정부는 그를 인정하고 굴복하는 리베이트 같은 제도가 아니라, 좀 더 근본적인 해결 방안을 고민하고 내놓아야 한다. 


월간 <복지동향> 2009년 06월호(제12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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