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09 2009-12-01   3755

[심층분석4] 노동시장 유연화와 노동복지



노동시장 유연화와 노동복지


 

장귀연(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정책위원장)



유연화의 제도화


최근 10년 동안 노동시장 정책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유연화의 제도화’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노동시장 유연화 그 자체는 2000년대에 들어와서 진행된 것은 아니다. 이미 1990년대 중반 무렵부터, 기업들은 사업장 수준에서 실제로 고용 유연화를 추구하면서 이의 제도적 보장을 원하고 있었다. 1996~1997년 노동법 개정 파동이 대표적인데, 당시 기업계가 요구했던 것은 이른바 ‘3제’, 즉 정리해고제, 파견근로제, 변형시간근로제의 도입이었던 것이다. 이때 노동계와 야당의 반대를 무릅쓰고 ‘날치기 통과’로 처리된 개정 노동법은, 시민사회의 광범위한 저항에 부딪쳐 곧 주요 조항들이 유예되거나 철회되었다. 하지만 주지하다시피, 그로부터 채 1년도 되지 않아 외환위기가 발생하고 구제금융을 제공한 국제통화기금(IMF)은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을 촉구하면서 상황은 급변하였다. 그리하여 1998년 정리해고제와 파견근로제 등 노동시장 유연화 제도들이 전격적으로 도입되었던 것이다.
노동시장 유연화를 위한 제도의 도입을 제외하고도, 경제 위기는 기업들이 본격적으로 고용 유연화를 추진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였다. 즉 기업 구조조정을 통해, 정규직 고용 부문을 외주화로 돌리거나 대량해고 후 신규고용을 비정규직으로 하는 방식이 확대된 것이다. 실제로 1999년 경제활동인구조사에서 최초로 임시·일용직 비율이 상용직 비율을 넘어선 것으로 발표되면서 비정규직 문제가 사회적으로 떠오르기 시작하였으며, 2000년부터는 다양한 비정규직 고용 형태와 규모를 추산할 수 있는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가 시작되기도 하였다. 이 비정규직 문제란 노동시장 유연화 경향이 고용 형태로 드러난 것이다.
그리하여 2000년대는 무엇보다도 비정규직 문제가 매우 중요한 사회적 쟁점으로 부각된 기간이었다. 이에 관한 정책적인 논쟁은 주로 이른바 비정규직 법을 둘러싸고 이루어졌다. 비정규직 법에 대한 논의는 2000년대가 시작된 해 노동계가 비정규직 보호법을 입법청원하면서부터 시작되었지만, 6년 후에야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하 기간제법) 제정안과 ‘파견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하 파견법) 개정안이 통과되었다.
비정규직 법을 둘러싼 논쟁에서 노동계는 노동시장 유연화를 제어할 수 있는 법적 규제의 도입을 원했다. 노동계는 기간제 등 비정규직 사용에 대해서 사유제한을 요구하였는데, 이것은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정규직 고용을 원칙으로 해야 한다는 의미다. 반면 기업계는 비정규직 사용에 대한 제한을 원칙적으로 반대하였다. 예를 들면 1998년 처음 제정된 파견법에서 일부 업종에 지정해 파견을 허용하는 포지티브 방식을 수정하여, 원칙적으로 허용하되 일부 업종을 제한하는 네거티브 방식으로 바꿀 것을 주장하였다. 결과적으로 2006년 11월 제·개정된 법은 기간제에 대해서는 2년간으로 사용 기간 제한, 파견에 대해서는 포지티브 방식을 유지하되 시행령으로 허용 업종을 확대하는 것이 가능하도록 되었다.
결국 기간제법과 파견법은 비정규직 고용 형태를 제도적으로 인정하되 일정한 제한을 가하고 있지만, 제한 규정들이 실제로 유연화를 제어하는 것으로 작동하는지에 대해서는 의심스럽다. 실제로 기간제와 파견 근로자의 2년 사용기간 제한은 2년마다 계약 해지를 하고 새로 채용을 함으로써 오히려 비정규직의 고용 불안을 확대시켰다. 따라서 2006년 제·개정된 비정규직 법이 유연화 경향을 제한하는 효과는 미미하며, 오히려 1998년 이후 다시 한번 노동시장 유연화를 제도화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미 사업장에서 비정규직 고용 형태들이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는 현실을 법 제도의 형식으로 규정한 것 뿐이라고도 볼 수 있지만, 노동계가 처음 비정규직 보호법을 제안했던 것은 이를 통해 정규직 고용 원칙을 세우기를 원했던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비정규직 법은 노동시장 유연화를 기정사실과 방향으로 인정하는 정책을 반영하여 제·개정되었다.


<표 1> 노동법에서 노동시장 유연화의 제도화






























 



법제화 년도


제한 규정


정리해고제


근로기준법에 신설


1998년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시


변형근로제


근로기준법에 신설


1998년


최대 한도 시간 규정


파견제


파견법


1998년 제정, 2006년 개정


26개업종 한정 포지티브 방식


기간제


기간제법


2006년 제정


사용 기간 제한(2년)


유연화된 일자리 창출 정책


유연화를 제도화하는 정책적 방향은 정부가 만들어내고 있는 일자리의 성격에서도 드러난다. 정부의 주요 정책 사업으로 일자리 창출이 본격적으로 대두된 것 역시 1998년 대량 실업 사태 이후였다. 직접적인 고용 효과를 목적으로 한 일자리 창출 사업 중에서도 공공근로와 자활사업 등은 이른바 근로복지 연계라는 관점에서 빈곤층에 대한 생활보장적 성격을 띠고 있으므로 노동시장을 다루는 이 글에서는 제외하더라도, 그 밖의 주요 일자리 창출 정책 역시 비정규직 고용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사회서비스 부문 일자리 정책이 대표적인 예이다. 2006년 9월 ‘사회서비스 확충 전략’을 발표한 후 사회서비스는 정부의 일자리 창출 정책에서 핵심적인 부문이 되었다. 사회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는 데 비해 공급이 부족하다는 근거로 2007년부터 매년 20만개씩 2010년까지 80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계획이지만, 정부가 사회서비스의 제공을 맡아 직접 고용하기보다는 “시장 활성화를 통한 민간 부문 창출에 중점을 두어 추진”(2006.9. 노동부·보건복지부 등 관계부처 합동 보도자료)하겠다는 뜻을 명확히 밝혔다. 사회서비스 공급의 시장화에 대해서는 일단 제쳐놓고, 여기서는 이렇게 창출되는 일자리의 성격을 살펴보자.
사회서비스 일자리의 주 고용 대상 집단이 여성이나 중고령자 등 이른바 근로취약층에 맞춰져 있기는 하지만, 빈곤층을 대상으로 복지 수혜와 연계하여 근로 의무를 부과하는 사회보장 정책은 아니다. 정부가 지원·개입하여 민간 시장에서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의 결과로 제도화된 사회서비스 일자리들은 거의 전적으로 비정규직이다. 보육교사, 방과후활동 교사, 요양보호사, 장애인활동보조인, 간호·간병 인력 등 사회서비스 부문의 일자리들은 운영 주체와 제도에 따라 다양한 고용 방식을 보이고 있지만, 고용과 임금이 매우 불안정한 일자리라는 점만큼은 공통적이다. 실제로 이 부문의 일자리에서 정규직은 거의 상상하기 어렵다. 그러나 유통 등 다른 민간서비스 부문에서도 그러하듯이 정규직 고용이 드문 것은 노동의 성격 자체가 필연적으로 비정규직 고용을 필요로 한다기보다는 노동시장 유연화 경향과 산업 부문의 팽창이 시기적으로 맞물렸기 때문이다. 사회서비스 부문에 관한 한 정부가 정책적으로 제도화한 일자리임에도 불구하고 비정규직 고용을 일반화시킨 것은 고용 유연화를 적극적으로 긍정하고 있는 정책 방향을 시사한다.
또한 이명박 정부에서 확대한 청년인턴제도 비정규직 고용을 기정사실화한 예로 볼 수 있다. 정부는 청년 실업 대책의 일환으로 2008년 공공기관 청년인턴제, 2009년 중소기업 청년인턴제를 시행하였다. 물론 인턴제는 비정규직이다. 인턴 사용 후 정규직 전환시 보조금을 지원한다는 조건이 있기는 하나, 청년들의 취업을 비정규직으로 시작하는 것을 당연시한다는 점에서 프랑스의 최초고용제와 비슷한 성격을 띤다.


노동복지의 양극화


이처럼 노동현장에서 유연화가 진행되어 있고 정책적으로도 이를 되돌리기보다 인정하는 방향으로 제도화되는 한에서는, 고용의 불안정이 삶의 불안정으로 연결되지 않을 수 있도록 사회적 안전망을 확립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가 된다. 그리하여 ‘유연안정성’ 모델이 떠오르게 되는데,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인정하되 실직시에도 기본적인 생활을 유지할 수 있고 또 빠른 시간 내에 재취업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 상태는 이에 관해서도 부정적이다. 노동시장이 유연화되어 있더라도 삶의 안정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사회보장과 더불어 일자리의 질이 문제가 된다. 일을 해도 빈곤하다면, 짧은 기간의 실직이라도 치명적인 타격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고용이 불안정한 계층은 노동복지 제도에서도 배제됨으로써 유연화의 타격이 완화되기보다는 심화되고 있다.
2000년부터 실시한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를 분석한 한국노동사회연구소의 추산에 따르면, 비정규직이 전체 임금노동자의 50%를 넘는 선을 유지하고 있다. 말하자면 임금노동자층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절반씩 양분되어 있는 셈이다. 그리고 비정규직의 98%는 고용 기간이 정해져 있거나 실질적으로 일이 줄어들면 떠나야 하는 임시·일용직으로서, 실직 경험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런데 <그림 1>에서 보다시피, 이런 고용 불안을 안고 있는 비정규직에 대해서 노동복지 제도 적용률 또한 매우 낮은 현실이다.


<그림 1> 정규직/비정규직 간 노동복지 적용률(2009.3)  (생략)


* 출처 : 김유선, <비정규직 규모와 실태>


단적으로 실업급여의 예를 들어보자. 실업급여는 실직시 최소한의 소득을 확보함으로써 노동시장 유연화 속에서도 삶의 안정성을 유지하는 유연안정성의 아주 기초적인 수단이다. 한국에서는 1995년 고용보험이 처음 실시되어 1998년 상시근로자 1인 이상의 사업장까지 확대되었으며, 2004년에는 일용근로자까지 적용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그림 1>에서 보는 것처럼 실제 조사에서는 정규직의 82.2%가 고용보험에 가입되어 있는 반면 실직 경험을 반복해야 하는 비정규직의 가입률은 35.7%에 불과하다. 즉 비정규직이란 정규직과 달리 실직이 예정되어 있는 고용 형태인데,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도록 고용보험에 가입되는 경우는 오히려 훨씬 적은 것이다. 또 고용보험 가입이 확대되더라도 피보험자로 180일 이상 일해야 하고 일용직의 경우에는 전달 10일 미만으로 일해야 한다는 수급 조건 때문에, 단기간의 실직과 취직을 반복하는 가장 불안정한 취약층은 실업급여 수급에서도 제외되게 된다. 실제로 방하남(2008)의 조사에 따르면 고용보험에 가입된 일용직 근로자들 중에서도 이러한 조건들에 걸려 실업급여를 받지 못하는 일이 적지 않다.
또 건강보험과 국민연금은 사업장에서 가입하지 않더라도 지역 가입자로 의무가입하게 되어 있으나, 비정규직의 저임금 상황을 고려해 볼 때 상대적으로 더 많은 금액을 납입하거나(건강보험) 납부유예될(국민연금)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즉 노동시장에서 취약한 계층은 사회보험 혜택에서도 제외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고용관계에서 불안정하기 때문에 보험의 필요성이 가장 절실함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다른 노동복지 제도들도 마찬가지다. 퇴직금은 한국의 현실에서 실직 후 생계 보전을 위한 여축 자금의 역할을 하지만, 비정규직의 70% 이상이 이를 적용받지 못한다. 시간외 수당이나 유급휴가 등에서도 제외되면서, 정규직과의 임금 격차가 확대될 뿐 아니라, 고용이 불안정한 상황에서 한푼이라도 더 벌도록 노동강도를 강화하게 될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결국 현재 노동복지는 오히려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계층에게 집중되어 있으며, 노동시장 유연화로 피해를 입는 계층은 노동복지 제도의 적용에서도 제외되는 양극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서술한 것을 간단히 요약해보자. 2000년대는 실제 노동현장에서 진행되고 있는 노동시장 유연화를 제도화하는 과정이었다. 비정규직 법 등을 둘러싼 논쟁에서 노동계는 유연화를 제어해 보려고 하였으나, 법적 제도나 노동시장 정책은 모두 유연화를 기정사실화하는 방향으로 수립되었다. 이것은 정부의 교체에도 불구하고 일관된 방향이었다. 가장 문제는 노동시장 유연화로 인해 가장 타격을 받는 계층이 노동복지에서도 배제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유연안정성의 논리와 정확하게 배치(背馳)된다. 유연안정성이 설득력을 가지려면, 역의 방향, 즉 유연화로 피해를 입는 층에 대한 노동복지 제도가 제시되고 수립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참고문헌>
김유선, 2009, <비정규직 규모와 실태>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방하남, 2008, <일용근로자 실업급여 제도> 한국노동연구원
사회서비스시장화저지공대위, 2006, <사회서비스 공공성 강화를 위한 과제>


월간 <복지동향> 2009년 12월호(제13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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