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09 2009-12-01   1832

[심층분석5] 복지국가를 향한 새로운 연대의 출발, 가족정책



복지국가를 향한 새로운 연대의 출발, 가족정책


 


윤홍식
인하대학교 사회과학부



지난 대통령 선거의 지배적 담론이었던 ‘경제성장’문제는 단순히 수구보수 세력의 이데올로기를 대변한 것으로 치부할 수는 없다. 경제성장 담론 지난 수십 년 간 한국사회를 지배해오던 핵심적 담론으로 어쩌면 오늘날 한국사회를 살아가는 시민들(기층 민중으로 표현하기에는 너무 협소한)의 내재된 요구를 표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소위 친복지세력은 지난 대선에서 시민들의 자생적 이데올로기가 무엇이었는지를 이해하고 있지 못했고, 보수진영은 시민들에게 내재되어 있는 바람과 열망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파악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그들이 시민들의 바람과 열망을 정확하게 파악했다는 것이 집권이후 국면에서 시민들의 이해와 요구를 충실히 대변해 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큰 오산이다. 이명박정부로 대표되는 보수세력은 정치적으로는 그들이 (전통적으로) 가지고 있던 수구보수의 이미지를 인적청산이라는 명목으로 털어내고, 정책적으로 중산층과 상층노동자를 포괄함으로써 소위 친복지세력의 지지기반의 이반을 획책하고 있다.


 


시민운동세력에 대한 압박과 복수노조와 전임자임금지불과 관련된 노동계의 이슈는 이러한 현 정부의 의도를 반영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만약 이명박 정부의 정치적 목표가 순조롭게 달성된다면 향후 10여년 아니 수십 년간 진보진영이 사회전면에 등장하는 것은 실제로 불가능할 수도 있다. 그리고 진보진영이 다시 한국사회 전면에 등장한다면 그 때는 진보진영이 그 간 진보진영이 취했던 이념적, 정책적 관점과는 상이한 새로운 틀과 비전의 제시를 통해 한국사회의 담론을 장악했을 때 가능할 것이다.


 


핵심은 여기에 있다. 친복지진영의 복지확대는 산업화된 서구 복지국가들에서 조직화된 노동운동이 가장 강력한 시기에 오랜 계급연대를 통해 이루었던 공적소유권(전통적 복지국가의 역할)의 확대를 조직노동이 가장 취약해지고, 다른 사회운동으로부터 고립되었으며, 자본의 세계화라는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질서가 더욱 강력해진 상황 하에서 달성해야한다는 것이다. 어쩌면 넘어서기 불가능한 과제일 수도 있다. 복지국가를 향한 노동자 계급을 중심으로 한 전통적 연대가 해체되고 있는 상황에서 연대를 위한 새로운 대안을 내오지 않는한 한국에서 복지국가를 향한 순항을 기대하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그럼 어떤 연대가 한국에서 복지국가를 향한 진전을 가능하게 할 수 있을까? 우리는 그 대안을 가족정책에서 찾을 수 있다. 아니 찾아야 한다. 후기산업사회로 이전은 더 이상 전통적이고 뒤르켕의 표현처럼 동일한 이해와 속성에 근거한 개인과 집단 간의 연대에 근거한 기계적 연대가 지배적인 사회가 아니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이해가 중첩적으로 나타나며 산업화의 전제가 되었던 자본과 노동의 이분법적 대립이 해체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는 기계적 연대를 포괄한 유기적 연대 즉, 차이에 근거한 연대의 가능성을 현실화해야한다.


 


큰 틀에서 볼 필요가 있다. 노동자들의 정치세력화가 전통적 복지국가(남성생계부양자 중심)의 확대 발전의 기반이 되었다는 사실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노동시장에서 발생하는 실업, 질병, 노령 등의 위험에 대한 사회보장체계를 갖추는 것에 대한 노동자 세력의 공통된 이해가 존재했고 이를 바탕으로 정치세력화가 가능했다. 그러나 1970년대 중반이후 상황은 변화했다. 반숙련 남성 노동자들에 기반 한 복지국가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었고 90년대 이후 이러한 상황은 한국에서도 예외없이 적용되고 있다. 소위 새로운 사회위험이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반숙련 노동자의 출현(특히 개인서비스 분야),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로 일과 가족생활 양립의 문제, 노동시장 유연화로 정규직 노동자 상에서 이탈한 노동집단의 확대 등과 같은 변화는 현재 복지국가의 확대 유지를 위한 정치세력화의 대상이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두 가지를 보자. 첫째, 과거와 같이 자본 대 노동이라는 대립구도가 새로운 사회위험을 둘러싼 정책과제에서 유지되고 있지 않고 있다. 예를 들어, 유럽의 경우를 보면 아동양육에 대한 국가의 지원 확대는 유자녀 여성과 고용주들의 이해가 맞아 떨어지는 부분이다. 노동력 확대라는 면에서 고용주들에게 환영 받고 있고 여성에게는 노동시장 진출을 위한 용이한 조건을 마련해 주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새로운 정책의제의 부상은 전통적 사회보장 체계의 축소를 수반함으로써 전통적 복지국가의 주 이해집단과 이해를 달리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둘째, 소위 신사회위험을 감내해야하는 집단이 복지국가를 둘러싼 전통적 이해집단에 비해 정치참여(투표, 대표성 등)에 대해 미온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가족정책 확대에 가장 큰 이해를 가지고 있는 집단의 정치세력화가 어렵다는 것이다. 젊은 세대, 소득이 낮은 집단, 교육수준이 낮은 집단, 비정규직, 유자녀 여성 등은 일반적으로 정규직 노동자, 장년세대 등에 비해 정치참여가 낮은 것이 현실이다. 즉, 소위 친복지세력을 구성할 수 있는 세력이 과거와 달리 동질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이질적인 집단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점이 앞서 언급한 상이성에 근거한 뒤르켕의 유기적 연대가 요구되는 지점이다.


 


그러므로 친복지세력의 과제는 이들을 묶어 낼 수 있는 새로운 정치참여의 전형을 모색하는 것이며, 내용적으로 이질적인 집단을 단일 세력화하는 것에서 찾아야한다.


정책과제 또한 단순히 정당성이나 사민주의적 강령에 대한 충실성 여부의 문제가 아닌 어떤 정책대안이 이들의 이해를 가장 잘 반영해낼 수 있는가가 고민되어야한다. 그러나 문제는 첫째,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이 복지국가의 유지확대를 위한 전선에서 아와 타를 구별하는 단일한 대오를 구성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유럽의 많은 사례들은 이러한 새로운 계급연대의 예들을 보여주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즉, 사안 사안에 따라 연대의 대상이 상이할 수 있고, 이러한 조건하에서 친복지세력의 역할은 다양한 이해를 다양한 연대를 통해 실현할 수 있는 연결고리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둘째, 어쩌면 전통적 정치체계가 과거의 패러다임의 산물일 수 있다는 점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즉, 새로운 정치체제의 출현이 필요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이다. 토대가 변화했으면 당연히 이에 근간한 정치체제와 질서가 변화해야하는 것은 너무나 상식적인 일이다. 친복지세력이 해야 일은 이러한 새로운 변화를 이론적으로 지원 할 담론을 제시해야하고, 이를 실천적으로 검토하고 실천하는 역할이 요구되는 것이다. 당위적 선명성과 진보의 깃발을 든다고 해서 그 아래 많은 대중이 함께 할 것이라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다. 좌파적 순수성은 복지국가를 위한 우리의 진전에 마음의 위안을 줄 수 있을지 몰라도 실제적 진전을 내올 수 없다. 새로운 연대는 논리적 옳고 그름이 아닌 현실적 이해를 실현할 수 있는 대안이 만들어 질 때 함께 할 수 있을 것이다. 제주도의 사례, 촛불집회의 사례 등이 바로 이러한 사실을 실증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가족정책의 지위는 바로 이러한 새로운 연대, 유기적 연대를 가능하게 하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한국의 가족정책에 주목해야하는 이유이다. 실사구시(實事求是)를 위해 복지국가의 철학 등 이론적ㆍ학문적 논쟁은 지향하고 실제 모습에 대한 대안 마련으로부터 새롭게 맞이한 세기의 전략적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

월간 <복지동향> 2009년 12월호(제13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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