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10 2010-01-01   1397

[동향2] 신종플루 대란, 만일 주치의제도가 있었다면…


신종플루 대란, 만일 주치의제도가 있었다면…



이재호
가톨릭의대 교수, 일차의료연구회

1. 들어가는 말
 
최근 수개월 동안 우리 사회는 신종플루 대유행으로 극심한 혼란을 겪었다. 정부가 마련한 대응지침은 수시로 변경되었고 그 과정에서 국민은 불안에 떨며 보건소, 동네의원, 거점병원 등을 전전해야 했다. 단순 감기 환자들도 확진검사를 받기 위해 가까운 동네의원을 두고 처음 가는 거점병원을 떼 지어 방문하는가 하면, 확진검사나 타미플루 처방을 받기 위해 여러 의료기관을 돌아다니는 혼란을 겪었다. 환자가 돌아다니는 과정에서 오히려 신종플루에 전염되거나 신종플루를 확산시킬 가능성이 있음에도 아랑곳 하지 않았다. 게다가 고가의 검사비용 때문에 불안감 속에서 검사를 포기하고 발길을 돌려야 했던 서민들은 상대적 박탈감까지 겪어야 했다. 한편, 주치의제도가 정착된 선진국의 대응 양상은 우리와는 판이하게 다른 모습이었다. 우선 선진국의 환자들은 여러 의료기관을 전전하면서 바이러스 감염 또는 전파 위험성에 처할 필요가 없었다. 의심되는 환자들은 주치의에게 직접 전화하여 상담을 받아, 집에서 충분한 수분섭취를 하면서 쉬거나 소염진통제 복용만으로도 충분히 치유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이었다. 반드시 확진검사가 필요한 사람은 주치의의 안내를 따르면 그만이었다. 이와 같이 주치의제도가 정착된 선진국과 비교할 때, 주치의제도가 없었던 우리사회가 치른 혼란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은 집계가 어려워 그렇지 엄청난 것이었다. 이러한 혼란을 계기로 우리나라 보건의료체계의 구조적인 문제의 하나인 주치의제도 부재 상황을 검토하고 그 도입방안을 모색해 보기로 한다.



2. 우리나라 보건의료체계에서 동네의원의 역할과 주치의제도


지난 30년간의 보건의료체계 연구들은, 일차의료(primary care)가 잘 발달된 국가는 그렇지 못한 국가에 비해서, 환자의 서비스 만족도와 일차의료의사의 직무만족도가 높고, 국민의료비를 적정수준으로 유지하면서도 환자들에게 보다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국민의 건강수준도 높다는 근거들을 제시해 주고 있다. 일차의료란, 건강을 위하여 가장 먼저 대하는 보건의료를 말하며, 환자의 가족과 지역사회를 잘 알고 있는 주치의가 환자-의사 관계를 지속하면서, 보건의료 자원을 모으고 알맞게 조정하여 주민에게 흔한 건강 문제들을 해결하는 분야이다. 일차의료 기능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여러 분야 보건의료인들의 협력과 주민의 참여가 필요하다. 우리나라의 경우 일차의료는 대체로 동네의원이 제공하는 보건의료서비스에 해당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보건의료체계의 구조적인 문제들은 동네의원이 주민의 신뢰를 얻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신종플루 때문에 환자들이 갈팡질팡 했던 것도 동네의원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여건 조성이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주치의제도가 정착된 선진국들은 동네의원이 국가 보건의료체계의 든든한 기반을 형성하고 있는 데 비해, 우리나라는 그렇지 못하여 환자들은 동네의원을 신뢰하지 못하고 대형병원으로 집중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동네의원들은 왜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할 수밖에 없을까?


첫째, 그 동안 우리 정부는 의료서비스를 공공의 영역으로 인식하기보다는 시장의 질서 속에서 민간차원에서 알아서 해결하도록 방임해왔기 때문이다. 그 동안 의사들은 직접 자기 자본으로 의료기관을 설립해 와서, 전체 의료기관 중 민간소유 비중이 세계 최고수준(약 90%)을 유지하고 있다. 국가의 지원을 받지 못하는 가운데 민간 의료기관들은 생존을 위해 환자유치 경쟁을 치열하게 하고 있다. 감기, 기관지염, 고혈압, 당뇨 등 일차의료 수준에 적합한 환자들을 두고 동네의원, 병원, 대학병원이 유치 경쟁을 벌이기도 한다. 병원의 규모와 장비에 있어서도 경쟁이 심하여 인구대비 첨단장비 보유대수가 세계적 수준이다. 아무리 국가 의료체계 운영에 있어서 일차의료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해도, 이와 같은 무한 경쟁 속에서는 대형병원은 점차로 비대해지고 동네의원은 영세해 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동네의원의 90%이상이 단독개원인 현실에서, 주민들이 만족할 수 있는 포괄적인 서비스 제공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둘째, 동네의원 의료서비스에 대한 진료비 보상을 행위별수가제만으로 해왔기 때문이다. 행위별수가제는, 과다진단과 치료를 유발하는 단점이 있을 뿐만 아니라, 동네의원이 제 역할을 다할 때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받기 어렵게 만드는 방식이다. 진단과 치료를 위해 고가장비와 시술을 이용하는 행위가 많은 병원의료와는 달리, 일차의료 업무에는 건강증진과 질병예방을 위한 상담과 교육 등 수가로 산정하기 어려운 내용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행위별수가제 하에서 동네의원들은 의원경영상 보상 가능한 행위들의 빈도를 증가시키고 그렇지 못한 행위에 대해서는 소홀히 하는 경향을 보이며, 이는 주민들의 신뢰를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이와 같은 이유 때문에 일차의료가 강한 선진국들의 경우, 일차의료 영역에서 행위별수가제 이외에도 인두제, 수행성과지급제, 각종 인센티브 등을 혼합한 보상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셋째, 지역사회 일차보건의료 활동에 필요한 일차의료전문의(가정의) 양성에 대해서 국가의 지원이나 개입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의료인력 양성에 있어서 국가차원의 중장기적 계획이 아니라 주로 시장기전에 의해 병원 인력수요를 충족시키는 방향으로 이루어졌다. 게다가 병원에서 중증환자의 치료를 전담해야 할 단과전문의가 자유롭게 동네의원을 개설할 수 있도록 방임해 왔기에, 우리나라 동네의원 의사 중 가정의 비율은 10%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반면에 선진국의 동네의원은 대부분 가정의들이 담당하고 있어서 전체의사 중 가정의는 30~60%를 차지하고 있다. 선진국의 환자들은 의료체계에 첫 접촉 지점으로서 동네의원 가정의를 이용하고 있으며, 가정의가 제공하는 일차의료 서비스는 대체로 진료지침을 따르게 되므로 환자들이 믿고 이용할 수 있다. 우리나라 환자들은 처음 접하는 동네의원의 업무가 표준화되어 있지 않아 신뢰하지 못하고 있다. 동네의원 입장에서는 환자가 언제 다른 의료기관으로 가버릴 지 모르는 가운데 양질의 일차의료 서비스 제공이라는 본연의 역할을 다하는 것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



3. 보건의료체계 개혁을 위한 주치의제도 도입방안


우리나라에서 주치의등록제가 본격적으로 제시되기 시작한 것은 1995년 보건복지부가 ‘주치의등록제’의 실시를 적극적으로 검토하면서부터이다. 1996년 9월 서울시 서초구, 경기도 파주시와 안성군의 ‘주치의등록제’ 시범사업은 여러 가지 이유로 시행되지 못하였다. 김대중 후보 대선공약(1997)에 단골의사제도라는 이름으로 포함된 바 있었으나, 의약분업 관련 의사파업의 여파로 정책의제로 조차 다루어지지 못하고 말았다. 그 후 10년간 보건의료학계와 시민사회의 간헐적인 제안이 있었으나 이를 받아들여 사회적의제화 시킬 만한 정치세력을 만나지 못해왔다. 우리나라에서 보건의료체계의 인프라의 변화 없이 주치의 서비스 항목들을 신설하여 환자가 원하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만으로 주치의제도를 도입하려 한다면 제도의 효과를 거둘 수 없다. 이러한 인프라 개편을 설계하고 실행에 옮기기까지 준비기간이 필요하다. 정치권의 합의가 있을 경우, 다음과 같은 준비기(3년)-시범사업(2년)-전면적 주치의제도 과정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전면적 주치의제도에 도달하기까지 최소 5년 정도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표 1)













































































































준비기 (3년)


1차년도


2차년도


3차년도








정치권 정책합의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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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당사자 의견수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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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법 제정/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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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홍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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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 실행방안 설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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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업무 지침서 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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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진료 지침서 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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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체계구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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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영조직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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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범사업 지역선정/참가자 모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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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가자 설명회/연수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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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기(약 3년) 동안에는 제도 실행방안과 매뉴얼 마련, 의사대상 공청회-설명회-연수교육 시행, 소프트웨어 개발 및 정보체계구축, 주치의제도의 기반 구조 구축을 위한 입법(‘가칭’ 일차의료 특별법 제정) 활동 등이 이루어진다. 가칭, 일차의료 특별법은 다음과 같은 내용을 포함한다. 가. 일차의료 인력양성: 일차의료 전문의(가정의) 양성, 주치의와 함께 활동할 일차의료 전문 간호사 양성. 나. 환자 의뢰-회송체계, 다. 의과대학 교육체계 개편: 의과대학 부설 지역사회 일차보건의료 센터 개설 의무화. 학생 임상실습과정에서 일차보건의료 경험하도록 함. 라. 주치의제도 관련 개인정보 보호 관련 법: 주치의는 환자동의하에 환자건강관리에 필요한 개인정보를 파악할 수 있어야 함. 마. 의원급 의료기관의 그룹진료 세제 혜택에 관한 법. 바. 보건(지)소가 일차보건의료센터로서 거듭 나도록하는 법: 우리나라의 공공부문이 일차보건의료의 표준을 제시하는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함. 대학부설 지역사회 일차의료기관으로의 구조변화를 위한 법률적 근거 마련. 사. 각종 주치의제도 관련 법률 검토 개정.



주치의제도는 환자(이용자), 의사(제공자) 모두가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설계해야 한다. 일차의료의 속성인 최초접촉, 포괄성, 관계의 지속성, 조정기능이 제도를 통해 구현되도록 해야 하며, 이를 위해 수가체계를 개편해야 한다. 제도참여 의사의 자격은 참여를 희망하는 모든 의원급 의료기관 의사로 하되, 소정의 연수교육을 이수하도록 해야 한다. 전면적 도입에 앞서서 시행착오를 최소화하기 위한 시범사업 기간을 약 2년간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표 2) 첫 1년간에는 광역시, 다음 1년간에는 그 광역시를 포함하는 도 지역으로 확대하여 전면적 시행에서 발생할 부작용의 가능성을 최소화시킨다.



































주치의제도


시범사업 기간 (2년)


전면적 주치의제도


1년차


2년차


대상지역


광역시


광역시 포함 1개 도


대한민국 전역


대상 환자


광역시민 중 희망자


광역시민과 도민


중 희망자


모든 국민과 장기 거주민 중 희망자


원칙


자발적 참여, 일차의료 강화, 수가체계 개편


참가기관


의원급 의료기관


대상 의사


의원 종사 의사 중 희망자


중점 과제


현실수용성≥근거기반


근거기반 합리성



4. 맺는 말


주치의 제도가 효과적으로 정착할 경우, 우리나라 보건의료체계는 첫째, 진료비 지불제도의 개편을 통한 과잉 진료 및 진료 왜곡 현상을 방지하고, 둘째, 일차의료를 강화할 수 있는 기본적 토대가 마련될 수 있어서 이를 통해 일차보건의료의 표준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분절화된 수직적 보건프로그램들과 민간의료의 유기적 연결이 가능하고, 그 통합-조정이 수월해 진다. 민간의료의 공공성이 강화되고 및 정부와의 협력적 관계가 형성될 것이다. 넷째, 의료 이용에 대한 국민만족도와 서비스 질을 향상시킬 수 있을 것이다. 다섯째, 주치의제도의 성공적 정착은 국민의료비 감소와 건강보험재정안정화에 기여하여 보건의료체계의 효율성과 형평성을 향상시킬 수 있을 것이다. 오늘 날의 정책 환경은 다음과 점에서  주치의등록제 시범사업(1996)을 계획했었던 당시와 다르므로 향후 주치의제도 도입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다. 첫째, 의료보험의 통합일원화로 건강보험공단은 주치의제도에 대해서 일관성 있는 입장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전 세계적인 만성질환관리 프로그램 개발과 적용은 우리나라에서 일차의료의 기능에 대해서 새로운 조망을 하게 할 것이다. 셋째, 인구의 고령화와 이에 따른 보건의료비 증가는 주치의제도 추진과 관련하여 안정적 외적 변수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우리나라 의료계에서 대형병원들과의 무한 경쟁에서 점차 어려워지는 동네의원 경영 상태는 주치의제도를 둘러싼 새로운 정책 환경을 만들기에 부족한 것이 아니다.

월간 <복지동향> 2010년 01월호(제13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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