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수
꽃동네현도사회복지대학교 교수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위원장
(전) 건정심 위원(2001-2002)
1. 문제의 발단
국민건강보험 재정이 올해 2조원 가량 적자가 예상된단다.
그렇다면 당연히 보험료와 수가, 약가의 수준을 어떻게 조정할 것인가가 핵심사안이 될 수밖에 없는데, 국민건강보험법 상 매년 국민에게 부담시킬 보험료율과 의료인들의 의료행위에 대한 단가라 할 수 있는 수가(酬價)를 결정하고 우리나라 건강보험 정책 전반에 대해 중요한 사항을 심의, 의결하는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이하 건정심)라는 복지부 산하 위원회가 있다. 이 위원회의 위원은 모두 25명이며, 가입자를 대표하는 각종 단체에서 8명(민노총, 한노총, 한국경영자총연합회,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음식업중앙협의회, 경실련 등), 공급자를 대표하여 8명(의사협회, 병원협회, 한의사협회, 간호협회, 제약협회 등), 그리고 공익을 대표한다는 이들 8명(보건복지부, 기획재정부, 건강보험공단, 보건사회연구원 등), 모두 24명이 보건복지부 차관을 위원장으로 하여 그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그런데 지난 1월 초 복지부는 임기를 다했다는 이유로 당사자인 경실련이나 가입자단체에겐 어떤 상의나 의견을 구하는 절차없이 경실련 대신 ‘바른사회시민회의’로 대체해버렸다. 건정심이 만들어진 2002년부터 가입자인 국민의 건강권 보장과 적절한 보험료부담을 위해 다른 시민사회노동단체와 연대하면서 활약해 온 경실련을 아주 간단히 배제해 버린 것이다. 이유는? “오래 되었기 때문”이란다. 그러나 음식업중앙협의회처럼 똑같이 오래되었으나 실제 건강보험제도의 의사결정에는 실질적 기여도가 거의 없었던 단체에 대해서는 이러한 기준을 적용하지 않았다. 더군다나 바른사회시민회의란 단체는 보수단체이고 건강보험에 대한 전문적 활동도 검증되지 않았다. 그럼 진정한 이유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2. 건정심의 역할과 기능
1999년 제정된 종래의 국민건강보험법에 의거하면 건강보험심의조정위원회와 재정운영위원회에서 각각 EkfhEK로 수가 및 보험료를 결정하였었다. 그러나 2001년 소위 건강보험 재정파탄을 겪으면서 당시의 정부와 국회는 「건강보험재정건전화특별법」(2002. 1. 19 제정, 2006. 12. 31까지 유효)을 제정하였고 여기에서 수입과 지출을 일원적으로 다루어야 한다는 이유로 건정심이란 기구를 만들어 보험료와 수가, 약가의 결정을 모두 이 기구에서 심의, 의결하도록 하였으며 특별법이 종료하는 2006년을 지나면서 아예 국민건강보험법을 개정하여 건정심을 상시기구화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결정체계의 변화에 있어서는 애초부터 다음과 같은 문제점이 지적되었었다.
첫째, 수가에 대한 공급자와 공단 간 계약체결과정의 무력성이 당연하게 존재하게 된다는 점이다. 건강보험법의 탄생으로 종전의 정부고시제에서 공급자와 공단 간 협상력을 발휘하도록 한 2000년부터 매해 걸친 수가결정 시기가 있었으나 양자의 협상에 의해 계약이 이루어진 경우는 2006년 수가협상 단 한차례만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현재와 같이 건정심이라는 기구에서 더 나은 절충의 여지가 있는데 미리부터 탐탁치 않은 수가협상에 매달릴 이유가 없게 된다.
둘째, 건정심 구성에 있어 형식적인 균형을 이루고 있으나, 실질적으로는 구성 상의 모순이 배태되어 있다. 보험료와 수가에 있어 절대적인 결정권한을 지니고 있는 건정심은 아래 표와 같이 가입자와 공급자, 공익에 있어 8:8:8 의 구도로 대등한 인원수로 구성되어있어 형식적으로는 어느 쪽으로도 치우침이 없는 구도이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건강보험의 속성 상, 수가는 보험자 또는 가입자와 공급자가 당사자이며 보험료는 보험자와 피보험자가 당사자이므로 이러한 근본 관계를 무시한 채 형식적인 균점(均霑)만을 갖춘 건정심은 치명적인 원칙의 파괴를 내재화하게 된다. 즉, 결과적으로 종전의 구도에 비하여 공급자는 보험료 결정과정에 적극 참여하게 되었으며, 수가 결정과정에서도 건강보험심의조정위원회 당시보다도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상태가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셋째, 소위 공익이 과도한 결정력을 갖게 된다는 점이 지적되지 않을 수 없다. 위의 건정심 구성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현재의 건정심 구도는 가입자와 공급자간 현저한 견해차를 갖게 될 때 당연히 공익에 의해 중재되는 구도로 가게 되며, 공익의 중재안이 절충적인 수준이 됨으로써 어느 한 집단에 상대적으로 이익이 되는 쪽으로 흐르게 되면 항시 그 한쪽의 당사자가 동의하게 되어 공익안이 받아들여지게 된다. 소위 공공선택의 이론에서 ‘중위수의 법칙’이라 불리는 현상이 지배적으로 나타나게 되는 데 그 이니시어티브는 언제나 공익이 쥐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 공익이 과연 진정한 공익이냐는 것이다. 현행법 상 공익이란 대부분 정부인사 및 정부산하기관으로 위치지워진 공단 및 심평원, 국책연구기관 등의 인사들로 구성되고, 결국 이들은 불편부당한 중립적 전문가라기 보다는 복지부의 의사를 대리하는 인사라고 보아야 한다는 사실이 대다수의 첨예한 사안에 대해 적용되고 있다.
넷째, 공단의 역할이 부재하다는 점이다. 현재의 구도 하에서는 공단이 공익으로 분류되어 보험자로서의 위치가 부정되고 있음은 물론, 공단이 보험료 및 수가의 결정시 25분의 1에 해당하는 지분만 행사하게 되어있다. 또한 공단은 수가에 있어 공급자와 계약당사자였으며, 보험료에 있어서는 가입자와 계약 당사자의 위치를 지니고 있으나 건정심 내에서는 보험자로서의 위상은 상실됨은 물론 가입자의 대리인 역할 역시도 실종되어있다. 현재로선 공단은 오로지 정부의 산하기관이란 입지를 한치도 벗어나고 있지 못하는 현실이다.
다섯째, 가입자나 공익 대표의 구성권이 정부에게 주어져 있다는 점도 문제이다. 공급자의 경우나 정부부처, 공단 및 심평원과는 달리 가입자와 전문가의 경우는 정부가 결국 구체적인 구성권을 확보하게 되어있다. 이때 건강보험에서 결정하는 수가와 약가 등에 거의 단체 회원의 흥망이 걸려있는 공급자단체는 매우 명확한 미션과 나름대로의 전문성을 기반으로 적극적인 참여의지를 갖고 있는 데 비하여, 가입자단체는 그 구성조차 정부에 의해 결정되며 더군다나 그 선정과정에서 전문성이나 관심도 등이 고려되지 않아 위원회 참여 후에도 가입자대표로서 결정적인 한계를 보이는 경우가 허다한 것이 현실이다. 또한 전문가의 경우도 위원의 선택권이 정부에 의해 행사되므로 철저히 정부의 시각에서 전문가 몫의 위원이 결정되고 있어 결국 위원회의 위원 구성 자체가 매우 비민주적이며 제대로 된 사회적 합의기구로서의 의의를 상실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현재의 건강보험 최고의 의사결정기구인 건정심은 형식적로는 사회적 합의기구처럼 보이지만, 실제적으로는 그러한 의미를 담보할 수 없는 원천적 한계를 지니므로 건정심에서의 결정이 그 자체로 결론이 되지 못하고 지속적으로 사회적 논란거리로 전화되어 회적 낭비가 심대한 상태이라 할 수 있다.
3. 최근의 경실련 교체 사태, 본질은 무엇인가?
건정심에 대한 이러한 근본적인 한계를 인식하였다면, 이제 최근 문제의 발단이 된 경실련 교체 건이 무엇이 직접적인 원인인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의 심각성은 좀 더 근본적인 것에 맞닿아 있다.
이러한 사태가 갖는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복지정책에 있어 가장 핵심인 민간과의 파트너십, 민과 관과의 협치(協治)가 부정되고 있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보건복지부 역시 1998년 이전의 권위주의 체제로 회귀하는 것이다.
군사독재시절과 그 연장선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던 소위 문민정부 시절까지 정부는 대단히 권위적이었고 정책의사결정에 있어서도 독점적 지위를 고집하고 있었다. 국민은 정책 집행의 대상자이자 순응해야 할 존재이며 이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관료와 위정자들만이 있었을 뿐이다. 국민의 욕구나 정책 수요에 대한 확인작업은 번거로운 일이었고, 국민과 정책집행 방식을 논의하고 의사결정권을 공유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적어도 복지부문에서는 DJ정부 들어서부터 이러한 관료독점의 구도가 상당정도 수정되기 시작하였다. 특히나 재원의 대다수를 국민들이 가입자가 되어 조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관료독점 하에서 일방적으로 집행당해왔던 사회보험의 영역, 그중에서 국민연금제도와 건강보험제도에 있어서 새로운 의사결정구조(governance)를 만들어 나갔던 것이다.
정부와 관료의 행정적 책임도 중요하지만 그로부터 초래되는 정부와 관료의 실패가 가져오는 폐해가 너무 큰 것도 이유이겠지만, 근본적으로 의사결정 자체가 정부의 배타적 권한이 아니라 국민과 함께 공유하고 나눌 수 있는 공공재에 해당한다는 인식이 존재하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발상에 근거하여 시민사회노동단체의 존재감이 중시되고 정부와 국민사이의 가교 역할이 부여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협치의 의사결정구조는 때론 시민사회노동단체의 전문성 부족이나 역량의 한계, 단체의 문제점으로 그 취지를 달성하지 못하고 국민의 옹호자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했고, 정부 역시 여전히 수많은 협치의 위원회를 진정성있게 수용하고 겸허한 자세를 취하기는 커녕 여전히 통과의례의 장으로 생각한다거나 형식적 합의구도에만 집착하는 경향으로 인해 많은 갈등이 끊임없이 야기되어 온 것도 사실이다.
그로 인해 특히 건강보험에 있어서는 수가 및 약가의 결정과정에서 앞에서 말한 건정심의 구성 자체가 과도하게 의료공급자의 비중을 높이고 무늬만 공익인 정부와 그 산하기관의 전문가 등이 결정력을 갖는 한계로 인해 수많은 파행적 결과를 낳았었다. 반면 건강보험의 보장성 수준을 현재의 60%를 갓 넘기는 수준에서 획기적으로 강화하는 과제나 수가지불체계를 현재의 행위별 수가제에서 포괄적 수가제로 넘기는 문제, 건강보험 재정의 1/4을 점하는 약제비의 거품을 제거하는 일 등은 여전히 진전을 못보는 한계를 노정하였다.
국민연금에 있어서도 여전히 기금운용의 주도권을 경제부총리가 행사하는 듯 주식시장의 침체기마다 연금기금의 투입설을 그가 앞서서 이야기하고, 시민사회노동단체의 장들이 가진 비전문성을 들먹이며 간단한 조찬회의로 이미 짜여진 각본대로 안건을 통과시킴으로써 비상설기구에 의한 연금기금운용의 불안정성을 그대로 노정시키고 있다. 또한 2007년에는 국민들의 비판이 거셌고, 시민사회노동단체도 거부했음에도 불구하고 연금급여율을 20년에 걸쳐 20%포인트나 감소시키는 개악을 과감히 감행하기도 했다. 당연히 기금운용위의 상설화에 대한 바람직한 방안 도출이나 기초연금제의 도입, 과도한 연금기금의 적절한 투자처 모색 등의 과제 또한 적절한 해법에 대한 모색없이 표류하고 있는 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10여년간 실험적으로 구사되었던 새로운 협치의 구도는 분명 시대적 흐름을 받아들이는 것이었고 복지정책의 의사결정체계에 중요한 변화를 야기하는 것이었다. 사실 국민연금제도나 건강보험제도는 다른 어떤 제도보다도 국민의 불신이 강하고 제도의 왜곡에 대한 후유증이 심각한 제도여서 가입자의 저항이 만만치 않았음에도 최근 10년동안 제도의 파탄이 방지되고 이만큼의 제도의 성숙을 가져온 것이 크게 보면 이러한 협치구도의 성과라고 볼 수 있다.
복지부 관료들이 이 점을 생각한다면 종전의 협치구도가 번거롭고 그들이 보기엔 상전을 모시듯 성가신 존재들과 서로 다른 관점과 전망을 갖고 입씨름을 한 것이지만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는 지를 인정해야 한다. 의사결정권을 독점적으로 향유하고 이러한 과정을 생략했다면 신속하고 거침없이 결론은 도출했겠지만, 그 후폭풍을 스스로 감당하는 일로 엄청난 행정비용을 감수해야 했고 심지어는 제도에 대한 거부투쟁에 바람 잘 날이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최근의 경실련에 대한 일방적 교체 사태는 지금까지 발아시켜온 사회적 합의구조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도 없이, 전문성이나 기여도에 상관없이 정권의 풍향계가 가리키는대로 가입자의 대표자를 일방적으로 갈아치우고, 아예 시민사회의 존재를 부정해버리는 행위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4. 건정심 구도 어떻게 개선해야 하는가?
건정심 구도를 명실공히 사회적 합의기구로서 가동시키기 위해서는 매우 근본적인 안에서부터 현실적으로 부분적인 개선안까지 다양한 의견이 제시될 수 있다. 전자는 다른 기회에 밝히기로 하고, 여기서는 후자에 입각하여 의견을 제시해 보기로 한다.
우선 현재 건정심의 8 : 8 : 8 구조는 형식적인 균형일 뿐 실질적으로는 공급자의 비중이 과도하며 공익의 구성도 매우 모호하므로 다음과 같이 변경해야 한다. 예를 들어 제시하면, 의협을 2인으로 하는 현행 방식은 합리적 이유가 없으므로 1인으로 조정하며, 제약협회는 영리단체이므로 공급자에서 제외한다. 또한 시민단체는 가입자대표라기 보다는 공익으로 분류하며, 가입자의 경우도 소비자단체와 자영업자단체를 통일하여 6인으로 함으로써 공급자와의 수를 맞추도록 한다.
한편 건강보험공단은 공익이 아니고 보험자이므로 보험자로 분류항목을 만들고 여기에 최소 3-4인 정도를 추천받기로 하며, 정부 역시 공익이라기 보다는 정부라는 분류로 2인을 추천하도록 한다.
또한 공급자와 보험자, 정부는 구체적인 위원의 구성시 선임에 있어 문제가 없지만 가입자와 공익은 현재와 같이 정부가 구성 및 선임권을 갖고 있고 있게 되면 경실련 교체사태의 재발을 막을 수 없게 된다. 따라서 가입자와 공익의 추천권을 국회에서 행사하도록 하는 것이 금번과 같은 정부의 전횡을 막을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 될 것이다. 이를 위해 현재의 국민건강보험법을 개정하여 국회 해당상임위에서 추천토록 하는 조문을 명시적으로 삽입시키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결국 현재의 건정심은 차제에 어떤 식으로든 좀더 진전된 사회적 합의기구로서 진화해야 하며, 이 과정에서 복지부의 협치에 대한 인식이 좀 더 성숙해져야 할 것이다. 특히 최근 불거진 건강보험 재정 적자의 국면을 헤쳐 나가기 위해서는 건정심의 변화는 더욱 절실하리라 판단된다.
월간 <복지동향> 2010년 03월호(제13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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