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를 둘러싼 논쟁이 전문가 집단이나 정치권을 넘어서 국가적 수준으로 확산되고 있다. 사회복지 논쟁은 국가의 역할에 대한 견해 차이를 반영하고 있는 것이며, 동시에 저출산-고령화로 대표되는 사회적 위험에 직면하고 있는 우리사회 미래상에 대한 불안감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인구고령화는 단순히 노인인구의 수가 증가한다는 양적개념이기 보다는 노인인구의 비중이 커진다는 비율 개념이다. 우리의 인구고령화는 다른 어떤 국가에 비하여 매우 급속하게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인구고령화는 노인인구의 증가와 출산율 하락에 따른 유소년 인구의 감소가 순차적으로 진행된 반면에, 우리사회는 양자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 중요한 특징이다.
인구고령화는 경제활동세대에게 과도한 부양부담을 초래함으로써 ‘부담의 적절성과 제도의 지속가능성’의 문제를 야기하며, 동시에 증가하는 노인세대의 안정적 소득보장을 위한 ‘제도의 보편성과 급여의 적절성’이라는 과제를 안겨준다. 이런 점에서 노후의 안정적 소득보장의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은 상충하는 목표들을 동시에 해결해야 하는 모순적 상황에 끊임없이 직면함을 의미하는 것이며, 따라서 그것은 정치적 구호나 단선적 정책대안으로 해결할 수 없는, 매우 복잡한 고차원의 방정식을 풀어야 하는 지루한 작업일 수 밖에 없음을 의미한다.
노후소득보장체계에 대한 논의의 출발점은 연금제도를 포함한 소득보장제도는 기본적으로 은퇴후 소득보장을 위한 제도라는 사실을 간과하지 않는 데에 있다. 우리사회에서 연금제도는 소득보장제도라는 상식이 너무도 쉽게 외면당하고 있다. 재정안정화의 과도한 강조는 급여의 적절성이라는 연금제도의 핵심적 기능을 훼손하였고, 나아가 최저수준의 소득보장이라는 최소한의 역할마저도 위협하고 있다. 재정안정화는 연금제도의 장기적 지속가능성을 위한 필요조건인 것은 사실이나, 재정안정화만을 앞세운 과도한 급여삭감으로 국민연금제도는 그 존재의 정당성을 크게 훼손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로 평균적인 소득자가 30년 동안 성실하게 국민연금 기여금을 납부하여 받는 급여가 최저생계비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은 상식을 벗어난 것이다. 국민연금의 재정안정화를 위해서 급여삭감이 불가피한 것이었다면, 이를 보완할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기초노령연금의 급여 수준은 낮고, 국민연금의 역할을 보완 혹은 대체할 수 있는 퇴직(연)금은 극히 일부 계층에 한정되어 있다.
기초노령연금은 태생적으로 모호한 성격의 제도이다. 일반재정에서 재원을 조달한다는 점에서 기초연금과 유사하지만, 재원이 국고와 지방비로 이원화되어 있으며 기초소득보장을 하기에는 급여 수준이 낮고 대상도 보편적이지 않다. 국민연금의 미가입자 및 납부예외자로 표현되는 사각지대 역시 심각한 수준이며, 해결 역시 그리 낙관적이지 않다. 국민연금의 사각지대는 가입대상자를 포괄할 수 있는 소득파악 등의 제도적 인프라 미비도 한 원인이지만 노동시장의 이중적 구조와 비정규직과 같이 불안정한 취업자의 증가가 보다 중요한 구조적 원인이다.
현행 노후소득보장제도는 외형적으로 다층체계로 이루어져 있으며 공공부조, 공적연금, 사적연금 등 다양한 제도로 구성되어 있는 등 잘 갖추어져 있다. 그러나 제도의 성숙도가 낮고, 내실화가 취약하여 적용범위와 급여 수준 등에 근본적인 문제점을 보이고 있다. 동시에 인구고령화의 급격한 진전은 장기적으로 재정 불안정성의 요인을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노후소득보장체계가 추구하고 있는 다양한 정책목표를 동시에 달성하기 어렵다. 현재 상황에서 우선순위가 높은 원칙과 목표를 강조하는 것, 그리고 시간의 흐름과 상황변화에 따라 우선순위를 조정하면서 지속적인 제도개혁을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현단계 노후소득보장의 제도개혁에 있어서 가장 강조되어야 할 점은 기초소득보장을 위한 공적제도의 확충이다. 2009년말 현재 65세 이상 노인 중 7.4%가 기초생활보장수급자이며, 노인빈곤율은 45.5%(빈곤통계연보, 2008)에 달한다. 노인빈곤율을 외국과 비교해 보면,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수준이며 OECD 국가 평균 13.3%의 3.5배 수준이다. 기존 노인계층 뿐 아니라 가까운 시일내에 노인계층으로 편입될 베이비 붐 세대 역시 빈곤문제가 심각할 것으로 예상된다. 베이비 붐 세대 역시 노후소득을 공적연금에 의존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며, 이들 중 절반 정도만이 공적연금에 가입되어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공적연금을 통한 최저수준의 소득보장은 절실히 요구된다.
공적연금의 사각지대 해소와 노인빈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일정연령 이상의 모든 노인에게 최저생계비 수준에 근접하는 정액급여를 제공하는 사회수당방식의 무기여 기초연금이 가장 효과적인 대안이다. 보편적인 무기여 기초연금은 글자 그대로 기여를 조건으로 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현재와 같이 비정규직이 증가하고 노동시장 유연화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그에 대처할 수 있는 소득보장제도로도 적절하다. 물론 보편적인 무기여 기초연금을 시행하는 데에는 지금보다 더 많은 재정이 투입되어야 하며 이는 사회적 합의를 필요로 하는 사안이다. 하지만 재정문제를 앞세워 보편적인 무기여 기초연금을 계속 미룬다면 이는 노동시장유연화 등의 원인으로 현재 구조화되고 있는 사각지대 문제를 해소하고 안정적인 노후소득보장을 달성하는 데에 큰 효과를 거두지 못하게 될 것이다. 현재 우리사회는 재원조달의 어려움을 이유로 기초노령연금의 급여수준을 낮게 설정하고 대상도 제한하고 있는데 이는 노인빈곤문제 해소에 큰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며 결국에는 노인빈곤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국가의 추가적인 개입을 결과할 것이다. 따라서 초기에 다소 낮은 급여수준으로 출발하여 재원조달의 부담을 줄이더라도 향후 다양한 재원조달방안을 강구하고 급여수준도 높이는 방향으로 보편적인 무기여 기초연금을 도입‧시행해야 할 것이다.
현재 우리 국민들은 국민연금의 재정문제에 대해 과도한 불안감을 가지고 있고 그로 인해 제도에 대한 신뢰도도 높지 않은 편이다. 어떠한 제도라도 재정문제는 중요한 문제이기는 하지만 이를 지나치게 과장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국민연금재정문제에 대한 과도한 불안은 그 문제에 대한 우리사회의 접근방식에서도 일정부분 기인하는 측면이 있다. 즉 우리사회는 연금재정문제를 인구노령화에 대한 전사회적 대처라는 관점보다는 연금제도만의 재정문제로 지나치게 좁게 접근해온 경향이 있다.
노후의 안정된 생활을 위해서는 보건의료나 일자리, 여가활용 등 다양한 생활측면에 관련된 대책이 필요하다. 이런 점에서 노후소득보장은 노후의 안정된 생활을 위한 대책 중의 한 가지이다. 그리고 국민연금은 그러한 노후소득보장을 위한 여러 대책 중의 한 가지이다. 노후소득보장은 노후생활의 안정화를 위한 다른 다양한 대책의 효과에 따라 그 필요정도가 달라질 수 있다. 예컨대 주택마련문제가 심각하지 않다면 그만큼 노후소득보장의 필요도 감소될 수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노후소득보장을 위한 국민연금의 역할 역시 노후의 안정된 생활을 위한 보건의료대책이나 일자리 대책 등의 효과와 성숙도에 따라 그 정도가 달라질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노후의 안정된 생활을 보장하기 위해 우리사회가 감당할 수 있는 혹은 감당하려고 하는 부담수준이 어느 정도인가 하는 것이다. 국민연금은 이 총체적인 부담수준을 구성하는 한 요소일 뿐이다. 국민연금의 재정문제가 심각해지면 이것이 국민연금이라는 현행 제도의 지속가능성에 문제를 초래할 것임은 사실이고 이것이 대단히 중요한 사안인 것은 틀림없지만 그것이 반드시 인구노령화에 대처하기 위한 우리사회의 대책 전체의 지속가능성에도 문제를 초래할 것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런 점에서 연금재정의 문제는 이를 인구노령화에 대한 대책의 총체적인 맥락 속에서 바라보도록 좀 더 넓은 접근을 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하겠다.
연금재정문제에 대한 접근을 전환함과 함께 부담능력 제고도 중요하게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인구노령화에 대처하기 위한 부담능력 제고의 핵심은 국가재정의 역할 확대와 조세개혁이다. 공적연금의 재원을 국가재정에서 일부 부담하는 것은 연금제도의 재원조달방식의 다각화에 기여하는 것이다. 특히 임금소득에 비해 비임금소득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연금재정을 근로소득에 부과하는 기여금에 전적으로 의존한다는 것은 형평성을 저해하는 것이다. 따라서 비임금소득, 자산보유, 거래 등 다양한 요소에 재원부담을 분산하는 것이 적절할 것이며, 이는 국가재정의 개입을 통하여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공적연금과 관련하여 국가재정이 일정한 역할을 담당하기 위해서는 조세제도 개혁이 동반되어야 한다. 특히 비용부담의 형평성과 관련하여 소득파악 능력을 제고하는 개혁이 필수적이다. 소득파악률 제고와 조세 인프라 구축은 재원조달을 위한 조세추출능력을 제고하는 것이며, 궁극적으로 보험료와 조세의 격차를 축소함으로써 연금재정의 불안정성을 해소할 수 있는 다양한 정책수단을 제공함으로써 재정안정화에 기여할 것이다.
노후소득보장제도에 대한 기존의 논의는 주로 공적연금 중심으로 전개되어 왔다. 그러나 현행 국민연금제도의 급여수준을 고려한다면, 사적연금 특히 퇴직연금의 확충이 시급히 요구된다. 현재 법정퇴직금이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나, 지속적으로 퇴직연금으로 전환되고 있는 추세이다. 퇴직연금이 노후소득을 위한 제도로 변모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적용범위의 확대가 필요하다. 공적연금의 역할을 보완 혹은 대체하기 위해서는 퇴직연금의 적용범위가 모든 전체 취업자로 확대되어야 하며, 이러한 맥락에서 사적연금이 의미있는 역할을 담당하는 국가들은 퇴직연금의 가입을 사실상 의무화 하고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퇴직연금이 일정규모 이상의 사업장에게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취업자 나아가 자영자도 가입할 수 있도록 제도적 틀을 변화시켜야 한다.
퇴직연금이 직장 이동이나 일시적 실업을 대비하기 위한 제도가 아니라 노후소득보장제도로 전환되기 위해서는 수급연령을 설정하고, 동시에 중간에 청산되는 것을 방지해야 한다. 또한 퇴직연금이 중도에 소진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중간정산제를 시급하게 폐지하고, 직장 이동시에 퇴직연금이 같이 이동할 수 있도록 하는 등의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향후, 노후소득보장과 관련된 제도개혁은 이전과 달리 제도개혁의 난이도가 급격하게 증가할 것이다. 국민연금의 수급자 증가로 인하여 국민연금제도의 기득권은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이며, 미래의 연금수급자들과 비용부담자들 사이의 세대간 정치(generation politics)로 대표되는 연금정치의 양상은 더욱 첨예하게 전개될 것이다. 동시에 향후, 인구고령화의 진전, 노동시장 및 가족구조의 변화 등은 이전에 우리사회가 경험하지 못했던 심각한 정도의 변화를 동반할 것이다. 공적연금과 같은 노후소득보장제도의 개혁은 일회적 게임이 아니라, 지속적인 제도개선과 변화를 추구하는 진행형일 수밖에 없다. 또한 제도개혁의 어려움이 커진다는 것은 사회적 대화를 통한 합의 도출만이 제도개혁의 유일한 방안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무엇보다도 타협과 협상을 통한 의사결정의 관행을 정착시키는 것, 상대방의 입장은 존중하고 자신의 입장을 양보할 수 있을 때 사회적 합의 도출이 가능하다.
타협과 협상을 통한 합의가 중요하다는 점을 인정하더라도, 현 단계에서 노후소득보장과 관련된 제도개혁의 핵심은 급여확충이다. 노인인구의 비중 증가를 감안한다면, 연금지출의 규모를 현재 예정되어 있는 것 보다 증가시키는 것은 필수적이다. 재정안정화의 지나친 강조는 세대간 그리고 계층간 재분배를 위한 국가의 역할을 방기하는 것이며, 동시에 포퓰리즘의 또 다른 얼굴일 뿐이다.
월간 <복지동향> 2011년 2월호(제14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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