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진욱
중앙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1. 서론
유럽사회들은 종종 ‘복지국가’의 선구적이고 모범적인 모델로 간주된다. 이 나라들에서 복지국가가 어떤 역사적 과정을 거쳐, 누구에 의해, 어떤 내용으로 발전되어 왔는지를 이해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것은 한국이라는 나라의 역사적 체험과 사회구조, 일상의 관습을 넘어서는 미래의 상상, 제도적 상상을 가능케 한다. 또한 그것을 통해 우리는 한국사회가 경제성장 뿐 아니라 복지국가 발전이라는 측면에서도 ‘후발자의 이점’을 활용하여 시행착오의 고통을 줄일 수 있게 할 수 있다.
그러한 상호계몽과 학습은 유럽 각국의 다양한 복지국가가 발전되어 온 1세기 이상의 역사 속에서 계속되어 왔다. 독일 비스마르크의 사회보장 정책, 영국의 비버리지 보고서, 덴마크의 국가중심․집단주의적 복지제도, 스웨덴의 보편주의적 복지국가 등은 19세기부터 유럽 전역에서 활발히 논의되었고, 이를 통해 저마다의 독특한 제도적 조합이 발전됐다. 그렇기 때문에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등 많은 유럽 사회의 복지체제를 ‘혼종’(hybrid)형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유형론은 이념형적 추상물이며, 역사적 현실은 여러 사회들에서 탄생한 제도․문화적 요소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혼합된 ‘뒤섞인 근대들’(Therborn, 2003)의 풍경이다.
그런 의미에서 “순수히 한국적인” 현실에만 시야를 가두고, “순수히 한국적인” 복지국가의 길을 찾으려는 노력은 협소한 민족주의의 환상일 뿐이다. 한국의 헌법체제나 정치․사회체제가 그러하듯이, 한국의 복지체제 역시 이미 대륙유럽형(4대사회보험제도)과 영미형(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요소가 혼합되어 있다. 그러므로 한국 사회를 보편주의 원리에 기초한 복지국가 체제로 개혁하려는 시민사회의 오늘날의 노력들도 세계사에서 배움으로써, 세계사에 어떤 새로운 요소를 창조적으로 도입하는 활동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 글은 유럽 복지국가의 형성과 발전 과정에 큰 영향을 미쳤던 경제․사회․정치적 요인들을 성찰하고, 그런 역사에 비추어 오늘날 한국사회가 어떤 독특한 역사적, 정치사회적 조건 위에 서 있는지를 이해하는 데 기여하고자 한다. 유럽에서 하나의 거시적 사회체제이자 국가체제로서 ‘복지국가’가 형성․발전되는 데에 크게 세 가지 요인이 특별한 중요성을 가졌던 것 같다. 첫째, 산업자본주의의 발전과 위기, 둘째, 사민주의 정당과 조직된 시민사회의 도전, 셋째, 국민국가와 민족주의의 사회민주주의적 전유가 그것이다. 아래에서 하나씩 살펴보고, 결론적으로 한국적 현실의 세계사적 보편성과 국가적 특수성을 분별하고자 시도할 것이다.
2. 산업자본주의의 발전과 위기
자본주의의 발전과 그에 동반된 잠재적․명시적 위기들은 복지국가의 초기적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 우선 산업혁명 이후 산업자본주의 단계로 접어들면서 양극화와 빈곤, 산업재해 등 많은 사회적 문제들이 발생하자, 최소한의 노동력 재생산을 위해서라도 제도화된 사회보장이 필요하게 되었다. 그래서 독일의 비스마르크 모델이 대표하는 초기 사회보장 제도들이 대부분 1880~90년대에 유럽 전역에 집중적으로 확산되었다. 유럽 각국에서 복지국가의 또 한 번의 질적 변화와 도약이 있었던 시기는 1930년대다. 대공황과 그에 뒤따른 세계경제위기, 실업과 빈곤 증대, 저출산으로 인한 인구학적 변화 등이 여러 나라의 노동계급과 중산층을 강타했다. 이 상황에서 이전 시기에 여러 세력의 반대에 부딪쳐 관철되지 못한 복지 제도가 신설되거나, 기존 복지제도의 적용율과 적용대상이 확대됐다.
하지만 ‘위기→복지’라는 기계적 인과관계는 결코 성립되지 않는다. 유럽 복지국가의 역사에는 ‘지배체제의 공고화’와 ‘아래로부터의 저항’이라는 두 측면을 함께 내포하는 양가성(ambivalence)이 있다. 복지국가는 한편으론 자본주의 체제의 갈등을 해소하고 노동력을 재생산하는 기능을 수행하며, 또한 자본주의의 해체적 경향 속에서 사회통합의 물질적 토대를 제공하기도 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복지국가는 노동계급을 비롯한 민중부문의 아래로부터의 저항과 요구에 의해 국가체제 자체가 변형된 대표적인 역사적 사례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유럽 복지국가 체제는 자본가계급과 국가 관료기구, 보수-자유주의 정당들의 반대를 뚫고 관철된 많은 제도적 요소를 내포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국가는 사회에 대해 상대적 자율성을 갖는 물질화된 관료기구이기도 하면서, 또한 사회 내의 계급투쟁과 세력관계가 굴절된 형태로 반영되는 장이기도 하다(Poulantzas, 1978). 사회적 문제와 위기가 아무리 심각하다 해도 지배계급과 기득권층의 자비와 선의만으로 복지국가의 발전이 이뤄진 역사는 없다. 복지국가는 자본주의의 해체적, 파괴적 차원을 둘러싼 사회계급들 간의 세력관계가 국가 영역에 제도화된 결과다. 그리고 그것이 어떤 중요한 역사적 국면에서 일단 법과 제도, 조직으로 물질화되고 나면, 그것은 이후 오랜 시간 동안 일정한 경로를 유지하면서 모든 사회계급들의 사고와 행동에 영향력을 발휘한다.
3. 사민주의 정당과 조직된 시민사회의 도전
사민주의 정당과 조직된 시민사회 세력이 지배계급과 보수적 정치질서를 위협하거나 도전할 수 있는 능력을 얼마만큼 갖고 있느냐는 그 나라의 복지국가의 성격과 경로에 큰 영향을 미친다. 복지국가가 단지 체제 재생산과 공고화를 위해 지배블록이 ‘선뜻 던져준 선물’이었던 적은 없다. 한 사회가 극도의 경제적 위기와 만연한 고통에 처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집단적인 저항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지배계급으로선 복지국가라는 카드를 먼저 꺼낼 이유가 없다. 어느 나라에서나 복지국가는 오직 진보적 정당들과 조직된 시민사회의 격렬한 저항과 도전이 있었을 때, 그에 대한 방어적 조처, 혹은 더 큰 혁명적 도전에 대한 예방적 조처로서 지배계급이 서명해줬던 ‘내키지 않는 합의’였다.
독일은 보수 세력이 선도적으로 사회보장 제도를 도입한 대표적 사례로 종종 언급된다. 하지만 그것은 너무나 단순화된 인식이며, 그런 오해는 예를 들어 한국에서도 보수 세력의 복지담론이 데마고지 이상의 진정성을 담고 있을 것으로 착각하게끔 만든다. 예를 들어 박근혜가 한국의 비스마르크가 될 지도 모른다는 근거 없는 상상. 독일에서 이른바 비스마르크 모델의 사회보장 제도들이 도입된 것은 1880년대다. 1883년 의료보험, 1884년 사고보험, 1889년 노령 및 장애인보험 등이 연속으로 도입됐다. 그런데 그에 바로 앞선 시기는 바로 전국적 노동조합 조직과 노동자정당 건설되어 그 세력이 강성해지기 시작한 때였다.
1848년 유럽 민중혁명의 물결 가운데 베를린에서 전독일 담배노동자연합이 처음 결성됐고, 1849년 인쇄노동자, 그에 연이어 섬유․금속․광산․목공․건설노동자 연맹 등이 주요 대도시에서 동시다발적으로 건설됐다. 1863년엔 라쌀레를 중심으로 노동자정치조직인 독일노동자총연맹(ADAV)이 건설됐고, 1869년에는 베벨이 주도한 사회민주노동자당(SDAP), 1875년엔 양 세력이 통합한 사회주의노동자당(SAPD)이 건설됐다. 독일은 세계 최초로 노동조합의 전국적 연합체와 노동자정당이 건설된 나라며, 이를 유럽 전역으로 확산시킨 중심지기도 했다.
이런 역사적 조건에서 프로이센 총리였던 비스마르크는 한편으론 1878년에 「사회주의자법」(Sozialistengesetz)을 제정하여 사민당과 노조를 탄압하면서, 다른 한편으론 1880년대의 각종 복지제도 도입으로 “조직화 능력과 갈등 가능성이 있는 산업노동자” 계급을 “제4신분”으로 제도화하여 사회의 위계구조 안으로 통합시키려 했다(Ziegelmayer, 2001: 64). 오늘날 독일에서 특별히 사회민주주의적이지 않은 공식적 개념처럼 사용되는 사회국가(Sozialstaat)라는 개념 역시 원래는 1920년대에 독일의 진보적 정치인들과 시민사회 내에서 급속히 확산되었다가 이후에 진보-보수의 차이를 넘는 독일 국가이념의 합의사항으로 간주되기에 이른 것이다. 에스핑-안데르센이 ‘보수주의적 복지체제’라고 불렀던 대륙유럽의 복지국가들 역시, 그 체제의 속성이 사민주의 유형에 비해 보수적이라는 뜻이지 결코 보수주의자들이 만든 체제라는 뜻이 아니라는 것이다.
독일에서 사민당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면, 덴마크․스웨덴 등 북구사회는 시민사회 내의 강력한 집단주의 전통과 노동조합 권력이 복지국가의 경로에 큰 영향을 미쳤다. 스웨덴 등 북구 복지국가 역사의 중요한 특징은 노동조합과 노동운동, 그 밖의 다양한 시민사회 조직들이 독자적인 사회보장 프로그램을 발전시켜 정당과 정부 정책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점이다(Lundberg and Åmark, 2001: 188-9). 복지국가 체제가 세워지기 전에 이미 이른바 ‘겐트 모델’(Gent Model)이라고 부르는 사회보장 체제, 즉 노조(특히 전국노조)가 운영하는 사회보장제도를 국가가 재정적으로 보조하는 방식이 광범위하게 존재했다. 이는 재정적 빈곤으로 보장률이 너무 낮고, 무엇보다 노조에 조직되지 않은 인구층이 배제된다는 문제를 안고 있었기 때문에, 노조 기반 복지를 넘어서는 ‘복지국가’ 체제로의 발전은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었다.
국가가 조세를 기반으로 해서 모든 국민과 일정 기간 이상 영토 내 거주하는 사람들에게 사회권을 보장해주는 보편주의적 복지국가 체제는 2차 대전 이후에야 완전히 자리를 잡게 된다. 이 과정에서 노조의 역할의 의미는 이중적이었다. 노조는 한편으로 복지국가 발전의 가장 중요한 역사적, 조직적, 정치적 기반이었으면서, 동시에 보편주의 복지국가 체제의 발전을 위해 중요한 변신이 필요했다. 노동운동 세력은 노조 중심 사회보장 체제라는 집단주의적 전통을 유지하려는 경향이 있었는데, 이는 국가 중심 사회보장 체제에 의해 노조의 영향력과 정치력을 잃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예를 들어 보편주의 복지국가의 대표격이라 할 수 있는 스웨덴에서도 노총(LO)은 역사적으로 남성노동자 중심, 노조의 지배력과 정치적 영향력을 유지․강화하는 데 집중하면서, 그 전제 하에 모든 임금생활자들과 그 가족들에 대한 사회보장을 지지했다. 이에 반해 스웨덴 SAP는 산업노동계급 뿐 아니라 농민계급, 기타 민중부문을 포괄하며, 보편적 단일 기준을 따르는 통합체제(inclusive system; Pauschalsystem)를 추구했는데, 1932년 최초 집권 이후 20년이 지난 1950년대에 와서야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보편주의적’ 복지국가 체계를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이러한 역사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어떤 유형의 복지국가이건 간에, 지배블록에 대한 아래로부터의 심각한 위협 없이 단지 현혹을 위한 선물로 복지국가가 확대․강화되는 일은 없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노동조합, 그리고 노동운동에 연계된 다양한 시민사회 조직들은 결정적 역할을 수행했다. 노조에겐 기본적으로 조직의 영향력을 보전․강화하고 조합원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이 중요했지만, 많은 나라에서 노조들은 그 이상의 거시적․국가적 개혁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방향으로 점진적으로 이동해갔다.
4. 국민국가와 민족주의의 사회민주주의적 전유
1) 강한 국가 없이 복지국가 없다!
복지국가의 형성과 발전에 중요한 의미를 갖는 또 하나의 역사적 전제조건은 국민국가와 민족주의의 확산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역사적 조건을 사회민주주의적 방향으로 끌어오고, 사회민주주의적 내용으로 채우는 데 성공하는 만큼, 그 나라의 사회․국가체제는 복지국가다운 성격을 강하게 갖출 수 있었다.
이 측면에서 복지국가는 지배체제의 일부가 될 수도 있다. 그것은 계급불평등이 온존하는 현실에서 사회통합을 하기 위한 물질적 토대를 제공하기도 하며, 사회응집의 이데올로기 기능을 수행하기도 한다(Geisen, 2001). 하지만 그 이면 역시 존재한다. 복지국가가 아래로부터의 도전과 압박의 결과이기도 했던 것처럼, 국민국가와 민족주의는 평등한 시티즌십, 보편적 사회권을 쟁취하기 위한 정치적 도구이자 정당성의 근거가 되기도 했다.
19세기 후반 최초의 사회보장 제도들이 유럽 각국에 도입되기 시작한 것은 주로 산업혁명 이후의 사회문제들과 그에 따르는 조직화된 도전에 대한 지배블록의 대응이었다. 하지만 사회보장을 위한 재정을 사회로부터 추출하고 이를 재분배할 수 있는 국가의 권위와 강제력, 관료기구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그 모든 것은 실현될 수 없는, 아니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이처럼 국가 자체의 권위와 권력이 복지국가의 성장에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증거는 역설적이게도 바로 전쟁이다.
복지국가의 역사를 보면 19세기 후반의 도입기 이후 1930년대에 대공황에 대한 반응으로 한 번의 질적 도약을 경험하지만, 가장 놀라운 성장을 하게 되는 것은 무엇보다 1940년대 후반에서 1950년대에 이르는 전후(戰後) 재건기다.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많은 나라에서 국가의 조직․인력이 크게 확대되었으며, 국가의 조세수입과 재정규모가 급증했다. 또한 전쟁으로 인한 파괴․빈곤․실업․무주택 등 여러 사회문제가 심각했는데,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한 적극적 국가개입이 널리 정당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국가가 합리적 관료조직을 갖지 못한 곳에서, 국가에 돈과 인력과 조직이 미약한 곳에서, 국가의 역할을 다수 국민이 폄하하거나 불신하는 곳에서, 복지국가는 그 근본조건을 결여하고 있는 것이다. 강한 국가 없는 복지국가는 없다.
2) 진보적 비전을 국가적․국민적 비전으로!
하지만 복지국가 없는 강한 국가는 많다. 국가라는 조직복합체의 조직․인력․재정․권위가 복지국가 실현의 역사적 ‘조건’이었다면, 그 조건을 ‘현실’로 만든 것은 국민국가와 민족주의를 사회민주주의적으로 전유할 수 있는 진보정당과 시민사회의 능력이었다. 복지국가를 특정 계급의 경제적 복지 향상이라는 차원에서만 접근한다면, 그것은 처음부터 실패할 운명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도전세력을 고립시키고 스스로를 ‘국가적-국민적’ 세력으로 만들려는 보수 정치세력에게 참으로 다루기 쉬운 적수기 때문이다. 오직 복지국가 동맹 세력이 ‘국가적-국민적’인 개혁 프로그램을 만들어내고 추진할 때에만, 복지국가는 가능했다.
유럽의 사례를 보자. 한 세기를 넘는 오랜 시간 동안 유럽의 사회주의자들과 노동조합, 진보적 시민사회 세력들은 종족적․배타적인 민족주의와 싸워왔다. 하지만 민족적 정체성은 복지국가 발전과 무관하지 않다(Hansen and Wæver, 2004). 그 한 예로 스웨덴에선 복지국가의 발전사와 더불어 ‘스웨덴’이라는 나라를 이해해 온 독특한 방식이 있다. 그것은 스웨덴 국가건설에 대한 긍정적 자부심을 유럽의 ‘타자’들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대조하는 전통이다. 이를 한 역사학자(Trägårdh, 2002)는 4C로 요약했는데, 보수주의(Conservative), 자본주의(Capitalist), 카톨릭(Catholic), 식민주의(Colonial)가 그것이다. 이에 반해 스웨덴은 진보적, 사민주의적, 개신교적, 반(反)식민주의적 나라라는 것이다.
위와 같은 민족적 자의식은 스웨덴 사민주의와 복지국가의 ‘민중적이면서도 민족적인’ 지향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한국에서 이미 상당히 알려져 있듯이 스웨덴 복지국가의 핵심어 중 하나는 ‘인민의 집’(folkhemmet)이라는 용어다. 이 용어에 댛 스웨덴 사민당이 저작권을 갖고 있는 걸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이 개념은 민족주의 우익보수주의자였던 루돌프 셸렌(Rudolf Kjellén)이 1916년에 출간한 저작에서 기원한 것으로서 그 시대 스웨덴의 보수주의적 사회유기체론을 반영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1928년에 사민당 지도자인 한손(Per Albin Hansson)은 이 개념을 적극적으로 도입하여 한편으로 사회민주주의를 국가적-국민적 비전으로 만들고, 다른 한편으로는 민족주의를 사민주의화 하는 데 성공했다. 여기서 스웨덴 사민당은 “사회민주주의 이념을 민족국가 내셔널리즘과 결합”했으며, 그 역사적 전환 이래로 언제나 “특정 계급이익에 기초한 당이 아니라 인민의 당”임을 표방해왔다(Bärenreuter, 2005: 199-200).
대륙유럽에서도 우리는 민족문제에 대한 진보 세력의 적극적 개입이 복지국가 발전에 큰 역할을 한 사례들을 자주 만날 수 있다. 한 예로 프랑스의 복지국가와 사회보장 체제(“protection sociale”)는 19세기 후반 비스마르크 모델의 영향으로 기초가 놓였지만, 질적 도약을 하게 된 것은 무엇보다 2차 대전이 종전된 1945년 직후였다. 이때 복지제도를 확대․강화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던 것은 바로 국가기구 자신이었는데, 특히 레지스탕스 전국협의회(Conseil National de la Résistance)는 국가 재건과 사회개혁 프로그램을 논의하고 설계하는 중요한 단위였다. 여기에는 공산당, 사회당, 親공산당 계열의 프랑스 노총(CGT) 등이 참여하여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으며, 바로 이들이 프랑스 복지국가를 한 단계 도약시키는 주요한 구상들을 ‘국가 재건’의 프로그램으로 반영시켰다(Lechevalier, 2001: 91-92).
이처럼 어떤 사회, 혹은 어떤 역사적 시기에 애국적․민족적 정체성과 그에 상응하는 열정이 존재하며, 진보적 정치․사회세력들이 특수한 이익과 정파를 넘어서는 국가적․국민적 의미를 인정받고, 그런 가운데 복지국가의 비전을 나라 미래의 비전으로 제시할 때 복지국가의 기획은 단지 몇몇 복지정책의 도입이 아니라, 사회체제와 국가체제에 대한 ‘상식의 전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
5. 한국에서 복지국가 정치의 조건과 전략
앞에서 서술한 핵심 내용을 재구성해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산업자본주의 시기의 위기는 산업노동자의 조직화와 복지국가의 초기적 도입으로 이어졌다. 둘째, 국가․정당 영역에서 국가의 조직․재정능력과 강력한 사회민주주의 정당은 복지국가의 발전에 매우 중요했다. 셋째, 시민사회 영역에서 강력하고 포괄적인 노동조합 조직력, 그리고 진보적 복지동맹 세력의 국가적․국민적 지향이 중요한 요인이었다. 이 세 측면에서 한국의 조건과 과제를 풀어보자.
1) 복지국가 정치동맹, 시민사회 복지동맹
이 중 한국사회가 가장 크게 결여하고 있는 것은 첫째다. 한국 사회는 가장 급진적인 산업화의 시기를 군부독재 하에 보냈기 때문에, 수십 년 간 한국에서 복지는 경제정책과 산업화의 부산물로 생활수준의 향상을 도모하는 생산주의 체제(Holliday, 2000)에만 의존했을 뿐이다. 이 나라에서 복지국가를 둘러싼 논의와 노력은 김대중 정권 등장 이후 고작 10년여의 역사를 갖고 있을 뿐이며, 그래서 사람들은 복지국가의 삶의 방식과 거시적 합리성을 거의 경험한 바 없다. 이는 복지정치의 사회적 기반이 대단히 취약함을 뜻한다. 그런 조건 위에서 복지국가를 경험하게 하는 정치적 실험을 해야 하며, 또 바로 그 과정에서 시민사회 복지동맹을 창출해야 한다는 것이 운동 전략상의 핵심 난제다.
한편 국가능력과 신뢰의 측면에서 한국은 아주 우호적이지도 아주 열악하지도 않은 중간 정도 수준에 놓여 있는 것 같다. 한국 국가의 복지재정 규모는 OECD 회원국 중 가장 낮은 수준이지만, 국가재정 자체가 특별히 왜소한 것은 아니다. 또한 1997년 금융위기 이후 약 10년 간 국가에 대한 불신, 경쟁원리의 효율성에 대한 맹신이 지배했으나, 지난 몇 년 간 국가의 공적 역할에 대한 국민적 인식과 요구가 강화되었다. 현재 복지국가 성장을 위해 국가 부문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는 국가재정구조 개혁과 조세공정성 향상인데, 그동안 이 방향으로 개혁이 이뤄지지 못해 온 가장 큰 이유는 한국 정당정치 구조의 보수성이다.
한국의 민주당은 유럽의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에 준하는 개혁적 지향을 가져본 적이 없으며, 현재 ‘좌클릭’, ‘진보화’ 등을 부르짖고 있으나 그 주된 관심은 “유권자가 솔깃할 만한 브랜드 정책”으로 그럴싸한 복지 정책을 골라내는 데 있지, 한국사회의 곪아터진 상처들을 치유하는 진정성 있는 국가개혁의 프로그램을 만드는 데 있지 않다. 이런 한계로 인해 민주당은 국민정당이 되지 못하고 있고, 그 해결책을 선거연합에서 찾으려 하고 있다. 한편 한국의 진보정당들은 60년 대한민국 정치사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한 적이 한 번도 없으며, 지금도 복지동맹의 여러 세력들을 규합하여 복지국가 기획을 주도할 만한 지도력과 조직력을 갖고 있지 못하다. 진보정당의 입장에서도 연합정치에 참여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
이런 조건에서 ‘복지국가 정치동맹’이 연합정치의 중요한 매개로 등장해왔다. 이는 매우 중요하고 의미 있다. 20세기 세계 각국에서 국가의 복지규모의 증대․감소에 특별한 영향을 미친 요인이 무엇이었나를 분석한 연구들에 따르면, 좌파정당을 포함하는 연합정부가 구성된 시기 동안 복지국가가 비약적으로 성장하는 경향을 뚜렷이 관찰할 수 있다(Schmidt, 2001: 40-42). 하지만 한국의 상황에서 복지국가 플랜과 관련하여 중요한 사실은 연합정치의 중심이 사민주의 정당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러므로 시민사회 기층으로부터 적극적이고 폭넓은, 조직적 혹은 집단적 행동이 나오지 않으면 정당정치에 복지국가의 비전을 압박할 수 없으며, 연합정부가 설령 들어선다 해도 복지국가로의 체제 개혁 과정에서 시민사회가 목소리를 낼만한 정치적 지분이 없다. 힘 있고 폭넓은 대중운동을 통해 정당정치의 세력변동에 영향을 미치고, 그것을 통해 정치․정책․제도 변동의 방향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다양한 시민단체들과 노동단체들이 ‘시민사회 복지동맹’을 조직화하여 자신의 입장과 주장을 갖고 정당정치 영역의 ‘복지국가 정치동맹’에 압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되는 것이 중요한 과제다.
2) 시민사회 복지동맹: 노동정치-시민정치 이륜마차
지난 몇 년 간을 돌이켜보면, 복지국가 의제는 2007년 복지국가소사이어티의 창립 이후 시민사회의 복지전문가들과 운동주체들에 의해 선도적으로 담론화 되었다. 그런데 2010년 지방선거에서 무상급식 의제가 큰 호응을 받은 이후 정당정치가 복지 의제와 논쟁을 주도하고 있는 형국이다. 이 추세는 2012년 양대 선거일정에 다가갈수록 더욱 강화될 개연성이 크다. 말하자면 지난 몇 년 간 한국에서 복지국가 의제는 전문가 집단에서 정당정치 세력으로 이동해왔다는 것이고, 그 흐름에서 일관되게 빠져있는 것이 바로 복지국가의 발전과정에서 중대한 역할을 해야 할 시민사회 복지동맹이다.
한국에서 시민사회 복지동맹은 누구에 의해 만들어져야 할 것인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유럽의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노동조합이 복지국가의 형성과 발전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시민사회 세력이었다. 노동조합이 언제나 조합적 이익을 넘어 보다 넓은 민중적, 나아가 보편주의적 정치노선을 지지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복지국가 정치는 노조에서 출발하여, 노조에 발을 딛고 영역을 확장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한국에선 노동조합이 조직률, 단협적용률, 상급조직의 하급조직에 대한 지도력 등 여러 측면에서 상당히 취약하고, 대외적인 정치력과 사회적 영향력에서도 한계가 큰 것이 현실이다.
이는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 우선 이는 노조 조직률이나 적용률이 상당히 높은 유럽 나라들과 달리, 한국에선 노조가 조합적 이익을 넘는 정치사회적 행동에 의식적으로 참여할 때에만 사회적 고립을 극복할 수 있음을 뜻한다. 또한 그러한 참여를 한다고 했을 때, 조직된 노동의 힘만으로는 정당들에게 압력을 행사할 자원과 권력을 갖고 있지 않으며, 설령 친노동적 정권이 들어선다 하더라도 노동의 힘만으로는 복지국가에 대한 재벌의 강력한 제어를 돌파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노동정치는 복지국가 프로젝트를 지지하는 다양한 시민운동 단체들, 그리고 복지 이슈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시민정치의 에너지와 능동적으로 접목하여 보다 넓은 연대의 흐름을 만들어가는 주역이 되어야 한다.
한국은 노조 권력이 유럽보다 약한 대신에, 유럽의 복지국가 역사에서 그다지 두드러진 역할을 하지 않은 시민정치 세력이 노조와 더불어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시민정치는 두 흐름의 만남으로 이뤄지는데 그 하나는 1980년대 민주화운동의 전통을 계승하면서 오랜 연대활동의 경험을 갖고 있는 수많은 시민운동 단체들이다. 다른 하나는 특히 2천 년대 들어 급속히 활성화된 자생적 시민정치의 흐름, 2008년 촛불집회를 통해 그 정치적 폭발력을 입증한 시민들의 피플파워다. 시민정치는 중산층 운동으로 규정할 수 없는 계급적 복잡성을 갖고 있으며, 특정 계급의 경제적 이익 이상으로 공공적 지향을 갖고 있다.
하지만 노동정치가 혼자서는 그 한계가 큰 것처럼, 시민정치 역시 나름의 한계와 위험을 안고 있다. 무엇보다 노동조합을 비롯하여 다양한 방식으로 조직되고 네트워킹 된 노동의 힘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시민사회 복지동맹의 불안정성은 극복되지 않는다. 시민정치의 ‘유목적 시민’은 정치적 폭발성이 있지만, 그만큼 휘발성도 크기 때문이다. 또한 시민정치는 그것의 계급성으로만 규정될 수 없지만, 어떤 국면에서 중산층적 계급성을 드러내기도 한다. 스위스나 캘리포니아 등지에서 직접민주주의 제도가 복지 이슈에 적용되었을 때, 그 결과가 중산층 편향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는 연구가 있다(Obinger and Wagschal, 2001).
그러므로 노동정치-시민정치의 이륜마차가 각 부문의 특성과 이해관계를 존중하는 가운데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렇게 형성된 시민사회 복지동맹은 특정 계급, 직업, 연령층의 이익과 관점을 배타적으로 대변하지 않으며, 복지국가 운동에 국가적․국민적 의미를 부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복지국가 운동은 민주․민중․민족의 이념과 가치를 함께 추구해 온 한국 민주화운동의 오랜 역사적 전통을 계승하고, 한국 사회 저항정체성의 심층구조에 깊이 뿌리내릴 수 있을 것이다.
월간 <복지동향> 2011년 4월호(제15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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