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11 2011-07-18   3079

[칼럼] 가난한 부양의무자에게 부양을 떠넘기지 말라

허 선│순천향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어찌된 일인지 시간이 지날수록 안타까운 뉴스를 더 자주 보게 된다. 최근에는 ‘무료진료를 찾아다니다가 사망한 78세 김모 할머니’이야기가 언론의 관심을 받은 적이 있다. 이와 같이 안타까운 사건은 왜 우리나라에 더 많이 일어나는 걸까? 참고로 우리나라 자살률은 OECD 회원국 평균의 2배가량이나 된다. 이러한 현상은 오래 전부터 있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왜 그동안 실효성 있는 대책을 세우지 못한 것인지 참으로 답답한 상황이다.
   

앞의 두 사건 모두 한국의 복지 수준을 여실히 보여준다. 할머니 사망 사건에 대해 언론은 보통 ‘까다로운 무료진료 규정’과 ‘의료기관의 진료거부 행태’에서 그 원인을 찾는 경향이 있는데, 그 것 보다는 우리나라의 의료비 지불 시스템과 사망의 근본원인인 영양실조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우선 우리사회가 미국과 같이 ‘먼저 치료하고 나중에 정산하는 방식인 의료비 국가 보증의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치료비용을 본인과 가족이 낼 형편이 안 되면 정부가 치료비용을 지원해주는 방식이 그것이다. 병원 입장에서는 치료비용을 분명히 받게 되기 때문에 진료를 거부할 이유가 없어지게 되는 것이다. 국가복지의 후진국이라 불리는 미국도 아주 오래전부터 전 국민의 15% 가량이나 되는 저소득층의 의료비를 국민의 세금으로 지원해 주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이와 같은 지원 대상이 전인구의 3.2%에 불과한 실정이다. 지원 대상을 선정하는 방식이 매우 엄격하여 사각지대가 많이 발생하고 있다.
   

또한 할머니의 폐결핵을 유발시킨 영양실조에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78세의 할머니는 폐지를 팔아 번 돈과 약간의 정부 보조금으로 쪽방에서 살아가고 있었는데, 그 돈으로는 겨우 월세를 부담하는 수준이어서 제대로 먹지도 못한 채 병을 키우고 계셨던 것이다. 이렇듯 극심한 위기상황의 독거노인이 기초보장수급자로 선정되지 못하고 있었다는데 문제의 원인이 있는 것이다. 현재의 우리나라 사회안전망으로는 제2, 제3의 김모 할머니는 계속해서 나타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시대에 맞지 않는 비현실적인 부양의무자기준이 그 할머니를 죽음으로 몰아간 것이다. 정부 통계상으로 부양의무자 때문에 수급자로 선정되지 못한 채 최저생계비 이하의 소득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103만명이나 되고, 그들 대부분이 노인과 같은 근로무능력자이다.
   

우리나라의 기초생활보장방식은 ‘부양의무자가 있는 사람은 부양의무자가 알아서 해결하는’ 방식이다. 부양의무자가 부양을 하도록 하는 것은 아름다운 미풍양속을 지켜나간다는 측면에서 바람직스럽게 보인다. 하지만 문제는 부양의무자가 부양을 할 수 없거나 하지 않는 상황에서도 정부는 부양의무자가 알아서 할 일이니 도와줄 수 없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모 할머니의 사망은 부양을 하지 못한 자녀와 부양의무자에게만 부양을 떠넘긴 정책이 만든 공동의 결과물인 것이다. 우리가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부분은 부양의무자에게만 부양을 떠넘기는 정책이 어떠한 결과를 가져오는가이다. 정부에서는 부양능력이 없는 부양의무자에게는 부양의무를 면제해 주고 있긴 하지만 현행 부양능력 판정기준은 매우 비현실적이고 가혹한 수준이며 게다가 매년 그 상대적 수준이 낮아져 왔다. 제2의 김모 할머니 사건이 생겨나지 않게 하려면 의료비 국가 보증 시스템의 도입과 같은 ‘선 보장 후 정산 시스템(최소 부양의 국가 보증 시스템)’이 만들어 질 필요가 있다. 생활이 곤란한 가구는 먼저 수급자로 선정하여 지원하고, 후에 부양의무자하고 정산하는 방식으로 변경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생계곤란자는 부양의무자와 국가 양측으로부터 버림받는 일은 생기지 않을 수 있다. 반면에 부양능력 유무에 관한 시비가 매우 많아지게 될 게 분명하다. 정부에서 정한 부양능력기준이 합당한 수준이라면 부양의무자로부터 보장 비용을 징수하는데 어려울 것이 없을 것이고, 가혹한 수준이었다면 징수하는데 매우 큰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다.
   

그동안 부정수급자에 대한 보장비용징수 실적을 놓고 볼 때 보장비용 징수율이 극히 낮은 이유는 비현실적 선정기준의 운용에 원인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부에서는 그것을 받아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고 행정비용이 지나치게 많이 들어갈 것이라고 항변할지 모른다. 맞는 말이다. 현행 기준이 매우 비현실적이기 때문에 공권력으로도 부양비를 받아낼 수 없을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뒤집어 생각하면 공권력으로도 받아내기 어려운 부양비를 어찌 수급권자가 받아서 쓸 수 있단 말인가? 너무나 비현실적인 기준을 이대로 두어서는 안된다. OECD 회원국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국민이 낸 세금으로 극빈자의 최저생활을 보장하는 공공부조제도를 운영하고 있지만, 우리나라와 같이 가혹하게 부양의무자 기준을 적용하고 있지는 않다.
   

현재 사각지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야 구분 없이 모두 부양의무자기준의 폐지, 혹은 대폭 개선을 담은 법안을 발의한 상태이다. 참여연대를 비롯한 시민사회단체 역시 근본적인 개선책을 담은 청원안을 제출한 상황이다. 부양의무자 규정이 폐지되면 도덕적 해이가 증가할 것이라고 일부에서 우려하고 있는데, 그럴 가능성은 별로 없다. 부양의무자입장에서는 국가에게 보장비용을 징수 당할 바에는 피부양자를 직접 부양하는 것이 좋다고 판단할 수도 있는 것이다. 또한 부양의무자 규정을 폐지한다고 해도 민법에서 규정한 부양의 의무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하루 빨리 법이 개정되어 고통 받고 있는 이들에게 도움의 손길이 미쳐야 할 것이다. 하지만 국회의 논의 상황은 더디기만 하다. 여러 가지 이유로 법안심사는 차일피일 미루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그 어떠한 일도 극심한 생계곤란 문제 보다 시급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루 빨리 빈곤층을 위한 사회안전망의 확립에 최우선적으로 힘을 기울이길 기대해 본다.

월간 <복지동향> 2011년 07월호(제15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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