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극화를 심화시키는 불공정 하도급거래
곽정수
| 한겨레 기자·경제학 박사
| 한겨레 기자·경제학 박사
2012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경제민주화와 재벌개혁이 정치권의 핵심 이슈로 떠올랐다. 그 배경에는 한국사회의 양극화 심화가 놓여있다. 그 중에서도 대·중소기업 간 양극화는 가장 심각한 요인으로 꼽힌다. 한국경제에서 대·중소기업 간 양극화 문제가 제기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한국경제는 대기업 위주의 성장 과정을 밟아 오면서 중소기업 부문이 대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낙후됐다. 특히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대·중소기업 간 양극화가 지속적으로 심화됐다.
한국경제에서 중소기업이 차지하는 위상은 사업체 수나 고용 비중에서 절대적이다. 우리나라 중소기업 수는 2009년 전 산업기준으로 306만6484개로 전체 사업체수의 99.9%를 차지한다. 또 중소기업 종사자수는 1175만1022명으로 전체 종사자의 87.7%에 이른다. 흔히 중소기업의 중요성을 표현할 때 ‘99-88’이라는 말을 쓰는 것은 여기서 연유한다. 우리나라 중소기업이 국민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주요 선진국들에 비해 훨씬 크다. 전 산업 기준으로 미국, 영국, 일본의 중소기업이 전체 사업체 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99~96%로 우리나라보다 낮다. 또 이들 선진국의 중소기업 종사자가 전체 고용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77.8~50.2%에 그친다.
우리나라 중소기업의 위상은 선진국에 비해서도 훨씬 높지만, 한국경제 전체 생산액이나 부가가치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절반 수준에 그친다. 이는 중소기업의 생산성과 경쟁력이 대기업에 비해 훨씬 뒤진다는 것을 뜻한다. 한국경제에서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중소기업의 생산성과 경쟁력이 대기업에 비해 크게 뒤떨어지는 것은 경제 전체의 활력과 효율성을 떨어뜨리는 요인이다. 또 고용비중이 높은 중소기업의 생산성과 경쟁력 약화는 고용난을 더욱 심화시키고, 고용의 질을 떨어뜨리는 주요 요인으로 작용한다.
대·중소기업 간 양극화 심화의 뿌리에는 하도급거래라는 한국경제의 독특한 구조가 자리잡고 있다. 하도급거래는 대기업인 원사업자가 중소기업인 수급사업자에게 제조 등을 위탁해 납품을 받는 거래를 뜻한다. 중소 제조업의 하도급거래 비중은 2009년 현재 43.2%에 이른다. 중소 제조업체들은 둘 중 하나는 대기업과 거래를 통해 먹고 사는 형편이다. 2004년까지는 그 비율이 60%를 상회할 정도로 더 높았다.
대기업에 납품을 하는 중소 부품업체들은 대기업이 적정이윤을 보장하지 않는 불공정 하도급거래가 양극화의 가장 큰 원인이라고 입을 모은다. 불공정 하도급거래의 대표적 유형은 납품단가 후려치기, 기술탈취, 구두발주, 하도급대금 부당감액 등이다. 한 예로 2011년 현대차의 영업이익은 사상 처음으로 8조원을 돌파했다. 하지만 납품업체들은 현대차가 기본적으로 마진(이익률)을 3% 이상 허용하지 않는다고 하소연한다.
역대 정부는 대·중소기업 간 양극화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했다. 노무현 정부는 2006년 이후 상생협력정책 추진하면서 협력업체 역량개발 지원, 공정거래를 통한 신뢰구축, 건강한 기업생태계 조성 등 3대 정책방향을 발표했다. 이명박 정부도 2010년 동반성장정책을 추진하면서 공정거래 질서 확립, 중소기업 사업영역 보호와 동반성장 전략 확산, 중소기업 자생력 강화 지원, 지속적인 추진·점검 체계 구축 등 4대 전략을 내놓았다. 4년의 시차가있지만 내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이는 달리 말하면 역대 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대·중소기업 간 양극화가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동반성장정책 추진 이후에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고 있다. 2010년 9월말 이명박 대통령은 30대 그룹 최고경영자들을 불러 놓고 동반성장 추진대책을 공동 발표했다. 대기업들은 인식전환을 통해 동반성장이 산업 생태계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단단히 약속했다. 여기다 삼성, 현대차, SK, LG, 포스코 등 주요 대기업은 중소 협력사에 대한 별도의 상생협력 방안까지 내놓았다. 하지만 중소기업들로부터는 여전히 “힘들어 죽겠다” “바뀐 것이 없다”는 하소연이 끊이지 않는다.
대한민국 대표기업으로 꼽히는 삼성전자와 현대차, 그리고 이들과 거래하는 중소 협력업체들의 수익성 비교 결과는 이런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삼성전자와 현대차는 2010년 매출과 이익의 절대 규모에서 사상 최대 실적을 거두고, 수익성 지표인 영업이익률에서도 각각 13.3%와 9.5%로 호성적을 거뒀다. 반면 두 회사의 협력사들은 영업이익률이 각각 5.2%와 3.2%로, 모기업의 3분의 1 수준에 그쳤다. 모회사와 부품업체간 영업이익률 격차는 2009년에 비해 2010년이 더욱 벌어졌다. 삼성전자의 경우 5.4%포인트에서 8.1%포인트로, 현대차는 5.1%포인트에서 6.4%포인트로 각각 확대됐다.
이처럼 정부의 지속적인 노력과 사회적 요청에도 불구하고 불공정 하도급거래가 개선되지 않는 이유는 그 밑바탕에 보다 근본적인 문제가 놓여있기 때문이다. 바로 재벌로의 경제력 집중으로 인한 독과점 심화다. 과도한 힘의 불균형이 존속하는 한 한국처럼 ‘갑-을 문화’가 관행화된 사회에서는 공정거래가 이뤄지기가 좀처럼 힘들다.
가장 확실한 개선 방법은 당사자인 재벌들이 스스로 공정한 하도급거래를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 재벌은 여전히 천민자본주의 행태를 못벗고 있다. 이익극대화를 위해서는 거래하는 중소기업이 죽든 말든 개의치 않는 것이 현실이다. 단적인 것이 2010년 삼성전자 사례다. 삼성은 2009년에 사상 처음으로 매출 100조원, 영업이익 10조원을 동시에 돌파했다. 삼성전자의 놀라운 성과에 모두가 박수를 치고 감탄하고 있을 때, 삼성전자의 최고경영자는 협력업체들에 대한 납품단가를 일률적으로 30%씩 깎도록 지시했다.
재벌의 과도한 납품단가 인하에는 또 다른 비밀이 숨어있다. 대기업의 막대한 이익 중 상당부분이 부품업체에 대한 납품단가 인하를 통해 확보된다는 것이다. 삼성전자 휴대폰 사업부의 경우 납품단가 인하가 영업이익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무려 절반 수준에 이른다. 삼성전자가 납품단가 인하를 무리하게 하지 않으면 두자릿수 이익률 달성이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다. 재벌이 탐욕을 버리지 않는 한 납품단가 후려치기를 비롯한 불공정 하도급거래의 근절을 통한 양극화 개선은 쉽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강화는 글로벌사회의 거스를 수 없는 대세로, 이제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되었다. 재벌이 사회적 책임을 통감하고, 혼자만 잘사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잘사는 사회를 만드는데 동참하겠다는 인식의 전환이 시급하다.
또 하나는 정부의 공정한 심판역할이다. 불공정 하도급거래를 근절하기 위한 엄정한 조사와 법위반자에 대한 엄격한 제재는 정부의 가장 기본적인 역할과 책임이다. 법을 위반한 재벌 총수들에 대한 검찰과 법원의 봐주기 관행을 근절하는 것도 핵심이다. 법치주의 확립은 개혁과 진보를 말하기 이전에 민주주의의 기본이다. 한발 더 나아가 헌법 119조2항 경제민주화 조항은 정부로 하여금 균형성장, 소득분배, 경제력 남용 방지를 위해 시장에 개입하도록 책임지우고 있다. 시장은 효율성을 추구한다. 따라서 시장을 그대로 방치하면 승자와 패자가 갈려 부가 한쪽으로 쏠리는 것이 불가피하다. 본질적으로 평등이 이루어지기 어렵다는 얘기다. 과도한 양극화는 사회불안, 갈등을 증폭시키고, 지속가능한 발전을 가로막는다. 그래서 정부가 시장원리를 존중하되 지나친 양극화를 막기 위해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MB정부의 친재벌정책은 시대착오적이다. MB는 겉으론 친기업정책을 내걸었지만 본색은 서민과 중소기업을 희생으로 한 친재벌, 친대기업 정책을 고수했다. 과도한 규제완화, 부자감세, 수출 대기업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고환율정책이 대표적이다. 이 모든 정책이 양극화 심화로 귀결됐다. <그림>은 재벌의 탐욕과 MB정부의 친재벌정책이 재벌의 경제력 집중을 심화시키고, 불공정 하도급거래를 통해 중소기업의 경쟁력 저하와 양극화 심화로 이어지는 흐름을 정리한 것이다.
여야는 총선을 앞두고 경제민주화와 재벌개혁을 위한 정책을 앞다퉈 발표했다. 총선 이후 새로운 국회가 구성되면 국민들에게 약속한 대로 불공정 하도급거래 엄벌, 일감 몰아주기 근절, 골목상권 잠식 규제 등의 대·중소기업 양극화 해소를 위한 정책 도입을 서둘러야 한다. 그리고 양극화의 근본 원인이 되고 있는 재벌의 경제력 집중을 완화하고, 사회적 책임을 강화하기 위한 정책도 하루 속히 도입해야 한다. 양극화 심화를 자초한 MB의 친재벌정책을 서둘러 바로 잡는 것도 더 이상 늦춰서는 안된다.
월간 <복지동향> 2012년 4월호(제16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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