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준
| 가천의학전문대학원 예방의학과 교수
| 가천의학전문대학원 예방의학과 교수
경제자유구역의 지정 및 운영에 관한 특별법 시행령이 지난 4월 17일 국무회의를 통과하였다. 혹시나 했으나 역시나 MB 정부는 국민의 손끝만한 기대를 저버렸다. 민주진보진영의 무능력 속에서 여론을 호도하여 얻은 총선의 승리를 곧바로 배신의 칼날로 국민에게 되갚았다. 민생을 앞세워 정권 심판을 교묘히 피하더니 민생의 최전선인 의료의 공공성을 파탄내고 의료비 앙등을 가져올 경제자유구역 내 외국영리병원의 도입을 총선이 끝난 지 일주일이 채 되지 않아 마무리 지으려고 하고 있다. MB 정부와 새누리당의 민생이 바로 민생 파탄을 의미함을 여실히 보여준 사건이다.
그런데, 이렇듯 레임덕에 빠져도 수천 번 빠졌어야 할 MB 정부가 발 빠른 행보를 보이는 데에는 총선 결과 뿐 아니라 민주통합당 출신인 송영길 인천광역시장의 갈지자 태도에도 그 이유가 있어 보인다. 지자체 선거 때만 하더라도 송도에 외국계 영리병원을 들여놓지 않겠다고 공약했던 시장이 부임하면서 시민사회는 ‘영리병원을 둘러싼 대립과 갈등이 해소되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기대를 가졌다. 그러나 인천광역시의 재정 적자의 진원지인 송도의 침체가 마치 영리병원의 도입으로 해결될 수 있을 것처럼 영리병원 도입을 기정사실화하는 현 시장의 태도를 보면서 시민사회의 기대는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정권 말기에 시민사회에서 가장 강력하게 반대하는 사안을 밀어붙이는 현 정부의 자신감이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미 많은 연구를 통해 경제자유구역에서 외국계 영리병원이 설치되어야 한다는 정부의 주장이 전혀 근거 없는 이론이나 사례에 근거하고 있고 그 필요성이 국민의 이해와는 상반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 중 하나가 영리병원 도입을 통해 송도에 BT 클러스터를 구축할 수 있고, 이를 통해 송도가 국가 성장 동력의 발판이 될 수 있다는 논리다. 과거 태국 등의 예를 들면서 외국환자 유치 등 의료관광 논리를 전면화했던 정부는 이러한 주장이 현실성이 없다는 정부 산하 연구기관의 보고서와 외국 의료체계에 대한 무지에 기인한 것이라는 비판에 대하여 합리적 반론을 제시하지 못하게 되자 새롭게 개발한 논리가 바로 BT와의 결합 논리다. 여기에 삼성의 송도 투자 계획이 발표되면서 더욱 더 그 논리가 강화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성장동력론은 경제 부처를 중심으로 제기되어 왔다. 중국 등 후발 주자의 추격으로 전자‧철강‧자동차‧조선 등으로 대표되는 제조업 분야의 성장이 한계에 이르렀다고 진단하면서 새로운 성장 동력이 필요하다는 논리다. 시중에 수백 조 원에 달하는 유동 자금이 투자처를 찾지 못하는 상황도 새로운 성장 동력의 필요성을 설명하는 근거로 빠지지 않는 단골손님이다. 그래서 찾아낸 분야가 BT 분야이고 이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굳게 믿고 있는 보건의료서비스 분야다.
BT의 성장 가능성은 논외로 하더라도 BT의 발전을 위해 영리병원이 도입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사실일까? 전혀 그렇지 않다. BT 관련 분야 중 보건의료 부문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진 제약 산업을 예로 들어 보자. 일반적으로 제약 산업을 활성화하려면 병원의 임상 연구 역량이 강화되어야 한다. 실험실에서 신약이 개발되었다고 해서 상품화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일반 상품의 경우 몇 가지 품질 검사만 하면 상품으로 출시할 수 있겠지만, 약품은 다르다. 사람이 먹고 부작용도 없어야 하고, 약의 효과가 있어야 한다. 비용도 고려되어야 한다. 이런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에 병원에서 오랫동안 임상 연구를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임상 연구를 병원에서 하려면 병원의 공공성이 오히려 강화되어야 한다. 돈벌이 목적으로 만들어진 영리 병원에서 임상 연구 역량을 강화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미국에서도 임상 연구 역량이 우수한 병원 중 영리 병원은 존재하지 않을 정도다.
또한 임상 연구 역량이 취약한 병원에 우수한 의사들이 취업하지 않기 때문에 영리 병원들이 비영리 병원에 비해 질적으로 우수하기도 어렵다. 문제는 환자들이 필수적인 서비스의 질 차이를 알 수 없는 상황에서 호텔식 병원 운영 등과 같이 치료 성적과 상관이 없는 서비스를 기준으로 병원이 우수하다고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영리 병원을 이용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전혀 합리적이지 않은 선택이다. 구조적으로 공급자가 정보를 거의 완전하게 독점하고 있는 상황에서 다른 분야처럼 정보를 공개하는 것도 어렵다. 따라서 병원의 영리 추구 자체를 금지하거나 억제하는 방향의 공적 개입을 강화하지 않고서는 문제를 해결하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이처럼 제약 산업과 같은 BT를 지원하기 위해서 병원의 임상 연구 역량이 강화되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 영리 추구가 아닌 최고 수준의 의료서비스와 임상 연구 역량을 지향하는 비영리 병원의 성장과 이에 대한 정부의 지원이 필수적이다. 따라서 BT의 성장을 위해 영리병원이 필요하다는 경제자유구역청의 주장은 전혀 근거 없는 이야기일 뿐이다. 결국 차세대 성장 동력으로서 BT를 제대로 활성화하기 위해서 보건의료 부문에 필요한 것은 영리병원의 설치가 아니라 대학병원과 같은 비영리병원 등과 협력을 강화하는 것이다. 그리고 정부가 정말로 송도에 BT를 강화하려면 영리병원을 도입에 시간을 허비할 것이 아니라 대학병원 등의 연구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계획을 포함한 보건의료의 전반적인 공공성을 강화하기 위한 계획을 빨리 수립하는 것이다.
최근에는 시민사회의 비판을 수용하면서도 ‘송도의 발전을 위해 미국의 최고 병원이 운영하는 국제병원이 만들어져야 하는데 영리병원 형태가 아니면 그들이 참여하지 않기 때문에 어쩔 수 없지 않냐’는 주장이 송도의 일부 지역주민과 송도 경제자유구역청을 통해 흘러나오고 있다. 경제자유구역 전체는 반대하지만 송도만큼은 다르다는 논리다. 외국 유명 병원의 간판이 왜 그렇게 중요한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그 간판이 필요하다면 영리병원일 필요는 더 더욱 없다. 존스 홉킨스 병원과 협력을 추진하는 데에 대학병원이 영리병원보다 유리하면 유리했지 불리할 이유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부자들이 가진 돈 좀 쓰겠다는 데에 그렇게 반대할 이유가 뭐 있냐는 식의 천박한 반응도 있다. 건강할 권리, 좁게는 보건의료서비스를 제공받을 권리가 모든 국민이 보편적으로 누려야 할 권리라고 한다면 특정 계층에게 의료가 집중되는 것은 용인될 수 없는 부정의다. 보건의료가 시장에서 구매력의 크기에 따라 배분될 수 있는 사적 거래의 공간이 아니라 질병과 건강에 대한 시민의 공동 이해와 가치가 실현되는 참여와 연대의 공간, 공공의 공간이라고 한다면 특정 계층이 돈으로 공공의 공간을 독차지하는 것을 절대 다수의 시민이 용인해야 한다는 주장은 참으로 독선적이고 독재적인 발상이다. 특히, 보건의료 인력이나 시설, 장비, 재원 등이 제한되어 있는 상황에서 일부 계층의 사치성 의료를 위해 자원이 소모될 경우 정작 필요한 시민이 이용하지 못하는 상황이 더 많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데 이를 용인해달라는 주장은 반사회적 주장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경제자유구역에 거주하는 외국인의 정주 여건 개선을 위해서도 영리병원은 잘못된 선택이다. 비싼 의료비 부담은 내국인 뿐 아니라 외국인도 마찬가지다. 송도에 외국의 투자 유치를 확대하려면 비싼 영리병원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양질의 서비스를 저렴하게 제공할 수 있는 대학병원이나 공공병원이 더 우월한 방법이다. 인천광역시에 부족한 공공병원을 지어 양질의 서비스를 저렴한 비용으로 제공하는 것이 송도에 거주하는 지역주민의 이해를 실현하고 경제자유구역의 경쟁력을 살릴 수 있는 실질적인 방법이다.
이제 법적으로는 송도에 영리병원이 설치되는 데에 장애요인이 사라지게 되었다. 이제 인천광역시 송영길 시장의 판단만이 남게 되었다. 당장 시 재정이 어렵다고 해서 정부에 굴복해 전체 국민의 건강권을 위협할 수 있는 잘못된 정책에 손을 들어주어서는 안 된다. 송도 발전에도 도움이 될 리 만무하다. 시장 선거에 나갈 때 시민들에게 약속한 초심으로 돌아가면 문제는 간단히 해결될 수 있다. 부디 2년 전 인천 시민의 선택과 희망을 저버리지 말기를 간곡히 바라면서 송도 영리병원 도입 중단을 발표하는 인천광역시장의 멋진 활약을 기대해본다.
월간 <복지동향> 2012년 05월호(제16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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