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00 2000-05-10   1124

소득분배 의지가 없는 사회보장 프로그램

소득재분배를 위한 정책수단은 여러 가지가 있으나 이중 사회보장제도는 조세제도와 더불어 가장 강력한 수단이 된다. 선진국의 경험에 의하면 사회보장제도는 오히려 조세보다 소득재분배 효과가 더욱 크게 나타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정부가 4월초에 발표한 「소득분배현황과 향후 개선방안」(이하 '개선방안')에서 소득분배 수단으로 사회보장 프로그램이 제시되어 있는데 이는 크게 ①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내실화, ② 사회보험 적용 확대, ③ 비정규직 보호 확대 등이 핵심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개선방안'에서 제시한 프로그램은 그 동안 발표한 정부 정책을 다시 나열하는 '재탕', '삼탕' 프로그램이 대부분이며, 사회보장제도의 강화를 통해 소득재분배를 실현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는 찾아보기 어렵다. 대통령이 기회 있을 때마다 언급한 IMF로 고생한 중산층·서민의 보호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실망 그 자체이다.

먼저 기초생활보장제도를 보자.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취지는 말 그래도 빈곤층에 최저한의 기초적인 생활을 보장하기 위해 입법화된 제도이다. 기초생활보장제도는 이미 김대중정부 하에서 기회 있을 때마다 수없이 홍보용으로 '애용된' 대표적인 정책이다. 그러나 '개선방안'에 나온 기초생활 관련 부분은 과거의 정책과 다른 것이 거의 없다. 10월부터 본격적인 시행에 들어가기 때문에 지금쯤이면 기초생활보장제도 시행을 위해 필요한 '대략의' 예산과 행정 인프라를 어떻게 구축할 것인지에 대한 대강의 안이 나왔어야 했다. '예산'은 빈곤층에 대한 정밀한 조사를 통해 대상자가 확정되어야 그 규모를 책정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소득분배 개선에 대한 대책이라면 예산 소요의 최소치와 최대치에 대한 추정정도는 제시되었어야 했다. 소요예산에 대한 자세한 언급이 없는 기초생활대책은 기존의 생활보호제도와 다를 바가 없다. 기초생활보장제도를 제대로 시행하기 위한 인력과 행정 등 인프라 구축에 대해서도 별반 언급이 없기 때문에 과연 기초생활보장제도가 강력한 소득분배 수단으로 기능할 수 있을지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이 제기된다.

기초생활보장과 관련하여 그 나마 유일하게 새롭게 눈에 띄는 것은 소득분배 현황을 정밀하게 측정할 수 있는 통계 산출을 위해 소득조사를 매년 실시하고, 근로자 가구뿐만 아니라 자영자 가구, 1인 가구 등을 포함한 전가구의 소득을 조사한다는 것이다. 사실 그 동안 공신력있는 빈곤관련 정부 통계가 없어 정확한 정책 수립에 문제가 있었던 만큼 이 부분의 개선은 빈곤정책 수립에 상당한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사회보험의 적용 확대 부분이다. 사회보험의 적용 확대를 비중 있게 다룬 것은 소득분배와 관련하여 매우 의미 있는 방향으로 평가 할 수 있다. 우리 나라 사회보험은 그 의도와는 달리 비교적 신분이 안정된 정규직 근로자 그리고 비교적 여유 있는 자영자를 주 가입대상으로 포괄하고 있다. 따라서 5인미만 사업장 근로자, 임시·일용직, 저소득 영세 자영인 등 불완전취업계층의 상당수는 공식적으로(산재, 고용보험), 그리고 내용적으로(연금, 의보) 사회보험에서 제외되어 있다. 이들은 사회보험에서 제외됨으로써 사회보험을 통한 위험분산과 소득분배 메커니즘에서 원천적으로 배제된다는 것이 우리 나라 사회보험의 큰 문제점 중의 하나이다.

'개선방안'에서는 임시·계약직 등을 사업장 가입자로 편입시키고, 5인미만 사업장 근로자를 사회보험제도 안으로 포괄시키겠다는 정책방향을 설정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맞는 방향이며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그러나 중요한 두 가지가 제외되어 있다. 첫째는 자격관리체제에 대한 혁신적인 개선 방향이 없다. 그 동안 불완전취업층을 아무리 사회보험 안으로 편입시키려 해도 진척이 안되는 이유는 이들의 취업 상태, 소득 현황, 보험료 납부 상태 등 자격관리에 필요한 행정시스템이 갖추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즉, 불완전취업층을 제대로 관리할 만한 행정시스템이 정비되지 않으면 이들의 사회보험제도 편입은 공염불에 불과하다. 행정시스템 정비 방안 중의 하나로 그 동안 4대 사회보험의 통합이 강력히 거론된 바가 있으며 최소한 4대 사회보험의 보험료 부과 징수 및 자격관리를 통합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사회보험 행정의 혁신이 필요하다. 그러나 '개선방안'에서는 보험간 연계강화라는 모호한 언술로 보험료 부과징수 및 자격관리의 통합 방안을 비껴가고 있다. 다른 하나는 불완전 취업층의 보험료 부담 능력 문제이다. 저소득근로자와 영세사업주가 국민연금과 산재보험에 적용될 경우 보험료 부담이 가능한지에 대해서 그 동안 많은 문제 제기가 있었다. 그러나 불행이도 '개선방안'에서는 이에 대해서는 한마디의 언급도 없다.

세 번째 비정규직 보호 프로그램이다. 비정규직의 보호는 최근 노동계와 사회복지계 등에서 새롭게 주목받고 있는 영역이며 소득분배와 관련하여 중요한 대상 계층에 해당된다. 그러나 '개선방안'에서는 단시간 근로자 근로기준법 적용 지침을 제정하고 주택관련 자금 융자를 확대하는 것 외에는 별다른 비정규직 보호 프로그램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비정규직의 소득분배 개선과 관련해서는 저임금 문제에 대한 대책 그리고 기업복지 포함 등이 주요한 영역이 되어야 하나 이 부분에 대해서도 전혀 언급이 없다. 비정규직 보호 프로그램은 앞으로 노동자의 소득분배와 관련하여 핵심이 될 수도 있다. 보다 혁신적인 대안과 정책이 필요로 되는 분야이다.

앞에서 지적한 세 가지 사항 외에도 '개선방안'에서는 실효성과 효과성이 의문시되는 정책이 언급되고 있다. 예를 들어 최저임금제의 전 사업장 확대는 낮은 최저임금 수준 때문에, 경로연금 확대는 포함하는 노인인구와 액수가 절대적으로 낮기 때문에 소득분배의 실효성과 효과성이 극히 의문시되는 정책이다. 우리 사주제 같은 정책의 확대는 일부 집단의 소득 향상에 기여할지 모르나 전체적으로는 노동자간의 소득불평등을 확대시키게 된다.

전체적으로 소득분배 개선방안에서 제시된 '사회보장'을 통한 소득분배는 그 실효성과 의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재정경제부, 복지부 등 4개 중앙부처의 명의로 발표된 정책치고는 내용이 극히 빈약하다. 최근 청와대를 중심으로 소득분배 3개년 계획을 다시 짜고 있다는 소리도 들린다. 각 부처의 업무 추진계획을 종합한 것이라면 별도로 발표할 필요가 없다. 보다 충실한 내용이 나오기를 기대해 본다.

김연명 / 중앙대 교수

월간 <복지동향> 2000년 05월호(제20호)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


참여연대 NOW

더 많은 채널로 소통합니다. 지금 팔로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