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14 2014-05-10   1315

[동서남북] ‘밥 먹고 예술 합시다!’에서 ‘예술인도 노동자다!’까지

‘밥 먹고 예술 합시다!’에서 ‘예술인도 노동자다!’까지
– 예술인소셜유니온(Artists Social Union)

나도원 l 예술인소셜유니온 공동위원장, 음악평론가

“밥 먹고 예술 합시다!”

2011년 12월 3일, 홍대 앞에 이런 문구가 등장했다. 예술동네의 현황과 고민을 나눈 집담회 <밥 먹고 예술 합시다>는 고인이 된 달빛요정과 최고은 작가의 1주기를 되새기는 자리였다. 예술인들은 현황과 고민을 발언하면서 실태를 공유했고 정책 담당자들은 정책과 지원제도의 현황을 브리핑했다. 당시 진보신당 문화예술위원회와 문화연대 그리고 칼라TV의 공동주관으로 열린 <밥 먹고 예술 합시다>를 통하여 다양한 현장 이슈들 속에서 창작자의 권리가 보장받지 못하는 구조의 문제를 재차 확인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당사자들의 연대를 도모하는 범-장르 운동의 필요성에 공감한 주체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장르와 영역을 가리지 않는 생존의 문제

대기업 문화자본이 예술계마저 점령하고 있다. 대기업이 독점적 지위를 획득한 다른 산업계와 마찬가지로 폐해가 나타날 수밖에 없으니 ‘잠재갈등의 예비양산’이다. 예술인 현실은 장르별로 상이해보여도 시장독점의 결과와 생산구조의 왜곡 그리고 생존권 문제라는 지점에서 만나고 있다. 영화산업의 규모는 커지고 있는데도 영화 종사자들의 처우와 매체 환경은 개선되지 않았고, 게임 역시 산업의 규모뿐만 아니라 수출 부문에서도 다른 문화콘텐츠들을 압도하며 2012년 기준으로 10조 5300억 원의 매출액과 27억 8700만 달러의 수출액을 기록했지만(문화체육관광부/한국콘텐츠진흥원, 「2013 콘텐츠산업 전망」, 2013), 천문학을 위한 숫자들처럼 액수가 커지는 만큼 해당 업계 노동자들의 가슴 속에서 소리 없이 부풀기만 해야 하는 말풍선의 크기도 커져가고 있다. 대중음악계는 왜곡된 유통시장과 산업편중으로 몸살을 앓고 있고, 만화와 웹툰 방면은 낮은 고료뿐만 아니라 저작권 탈취 등 내부착취의 일상화로 얼룩져 있다. 슈퍼갑인 방송사를 정점으로 이루어진 외주제작시스템에 의한 폐해 또한 커서 각종 위험부담은 외주제작사와 현장인력에게 전가되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의 거의 모든 ‘외주-시스템’은 독립이 아니라 ‘피착취 대기 상태’의 다른 표현이나 마찬가지다.

각종 조사를 통하여 나타난 예술인 현실은 고용불안과 불명확한 노동관계 그리고 장시간 노동과 임금체불의 일상화였다. 비정규 노동과 자본 중심의 간접고용․특수고용직 문제에 문화예술인 특유의 문제까지 겹쳐져 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하고 있는 『문화예술인 실태조사』에도 이러한 문제가 드러나고 있다. 2012년 자료에 따르면 근로형태는 정규고용직 18.3%, 임시고용직 12.8%, 자영/고용주 16.2%, 자유전문직 20.7%, 무직/은퇴 26.5%의 비율이다. 4대 보험 중 산재보험과 고용보험의 가입률도 매우 낮으며, 그나마 건강보험과 국민연금도 지역가입자의 비중이 더 크다는 것은 불안정과 불안전을 드러내는 지표이다(건강보험 문화예술인 건강보험가입 형태 : 사업장 36.1%, 지역가입자 35.4%, 피부양지 26.4%). 이처럼 예술인의 생존기반은 부실하기 짝이 없다.

2011년에 ‘예술인복지법’이 제정되어 2012년부터 시행되었으나 그마저 문제가 있었다. 취지 훼손과 실효성 제한, 수혜대상의 범위, 예산의 안정성, 그리고 예술인복지재단의 종속성 문제였다. 또 문화체육관광부는 예술인복지의 초점을 일자리 창출에 맞추고 각급 학교의 예술강사 채용 인원을 대폭 늘리겠다고 발표한 바 있으나 역시 현실과 동떨어진 발상이었다. 문화융성이라는 슬로건과 예술인 노동현실의 괴리국면을 도처에서 발견할 수 있다.

그간 예술의 사회적 역할을 강조해왔지만, 정작 예술인의 절박하고 시급한 노동·생존권은 원래 그런 것이려니 하고 넘겨버리곤 했다. 집단창작을 필요로 하는 분야에는 서열화와 양극화, 심지어 군사문화까지 잔존해 있으며, 개별창작 장르에는 같은 종사자들 사이에서 지위를 이용하여 동료와 후배를 이용하는 내부착취가 관행처럼 자행되기도 한다. 결국 이 시대 예술(인)의 문제를 직시하는 당사자 운동이 절실할 수밖에 없다.

공론화와 법률개정 활동

이러한 문제의식을 공유한 예술인소셜유니온은 2012년 1월부터 부지런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본격화 이전부터 많은 동참과 언론의 관심이 이어졌고 여러 단계별 사업을 거쳐 2012년 10월에 준비위원회가 공식 발족했다. 이후 많은 이벤트를 거친 예술인소셜유니온은 2013년 상반기에 “정부 주도의 음원 저가정책과 대기업 중심의 불공정한 분배구조에 의한 음원 수익배분과 가격책정의 문제 속에서 창작자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제도적 개선방안과 해결장치의 마련을 위하여” 저작권법 개정 논의를 주도한다. 그리고 2013년 4월 18일에 국회에서 열린 토론회 <음악생태계 정상화를 위한 저작권법 개정, 어떻게 할 것인가? – 창작자 권리보장을 중심으로>를 주관하고 저작권법 개정안 발의를 위한 후속조치를 취해나갔다. 그 결과 음악인뿐만 아니라 모든 예술인의 권리를 확대하기 위한 법제도 수단으로 민주당 최민희 의원실과 함께 ‘저작권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마련하여 2013년 7월에 국회에서 발의했다.

예술인 문제의 공유와 정책 검토 활동을 중시하여 <108토론회>, 만화․웹툰․그래픽디자인의 현실문제를 공유한 간담회 <그림쟁이들, 할 말 많다!>, 정책포럼 <예술인복지법, 어떻게 달라지나>과 <예술노동의 관점에서 본 예술인복지법과 예술인복지재단> 등을 개최했다. 2014년에는 ‘서울시민영화제’ 사태에 하장호 사무처장과 최승현 자문노무사가 개입하고, 김상철 정책위원 주도로 축제/전시현장의 예술인 노동권 침해에 대한 다양한 문제들을 《미디어스》에 기획연재 하는 등 예술노동에 대한 현장지원과 공론화 활동을 이어갔다. 동시에 사회·문화·정치 사안에 대한 연대를 중시하여 콜트콜텍과 쌍용자동차 그리고 밀양송전탑 문제의 해결을 촉구하는 행동과 유성희망버스 등의 연대활동에 동참했다. 모두 공유․공감․연대․협력의 길을 함께 닦고, 서로 잇고, 보다 넓히는 과정이다. 즉 예술인소셜유니온은 예술의 사회적 역할과 예술인의 사회적 정체성에 대한 고민과 토론 그리고 실천을 제안하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2012년부터 ‘예술인복지법 논쟁’의 중심에 섰다. 그리고 2013년 1월 14일, 예술인복지법 개정안 발의(민주통합당 최민희 의원 등 국회의원 27인 공동발의)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후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여성문화분과,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한 ‘문화예술대토론회’, 예술인소셜유니온-문화부 예술정책과-예술인복지재단 3자간담회, 문화체육관광부장관 회의에 참석하여 예술계의 의견을 전달했다. 같은 해 9월부터는 각계 예술인 단체의 대표들과 문화부, 근로복지공단, 예술인복지재단으로 구성된 예술인복지TFT에 참여하여 예술인복지사업과 예술인복지법 개정에 따른 시행령 제정 등을 공동으로 논의했다. 그리고 2014년에 들어서도 국회의원 배재정, 문화연대와 토론회 <예술인복지정책의 평가 및 개선방안 국회토론회>를 공동주최했고, 예술강사제도와 근로조건의 문제를 짚는 국회정책토론회에선 예술강사의 신분보장을 위한 사용자 명확화(문화예술교육진흥원)와 처우개선(강사료 현실화) 그리고 실제 노동의 인정을 통한 직업안정화(12개월 계약 전환, 2년 계약 후 무기계약직 전환)를 보장하고, 근로형태의 다변화(근무시간과 계약기간 선택제)의 연구를 추진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러한 과정에서 문화체육관광부는 예술인의 산재보험 가입을 촉진하기 위해 보험료의 50%를 지원하겠다고 밝혔고, 예술인의 고용보험 적용과 실업급여 지급방안을 마련하여 2016년부터 실시하겠다고 발표했다. 최저생계비 이하 소득, 고용보험 미가입 예술인(1,200명)에게 실업급여에 준하는 지원금을 지급하는 ‘긴급복지사업’을 추진하기로 했으며, 의료지원방법 연구와 함께 표준계약서를 체결한 예술인(1,500명)과 사업주에게 국민연금료와 고용보험료의 절반을 지원하는 계획을 내놓았다. 하지만 수혜 인원과 대상이 소수인데다 기준에 대한 문제도 제기되었다. 예술인소셜유니온은 예술인복지프로그램 실행의 요건으로 ‘기조의 전환과 기구의 재설정’을 제시했다.

공동체를 위한 당사자 운동

예술인소셜유니온은 공론장을 통하여 공유지를 만들어내고자 한다. 개별 이익단체화 한 일부 협·단체의 한계를 극복하여 작게는 업계 관행의 개선, 구체적 사안의 의제화, 사각지대 문제의 해결과 문화정책 제안을 시도하고 크게는 시장·사업자 중심의 정책기조와 산업구조를 노동·예술인 중심으로 재편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최종 목표는 예술인의 노동·생존권을 제기하는 당사자 연대를 통한 예술인 권리 실현과 예술 환경의 본질적이고 진보적인 개선이다. 예술인소셜유니온의 설립취지는 예술인의 자결권 획득, 예술의 노동의제 관철, 예술인의 지위와 권리 보장, 법과 정책 환경의 조성, 권력과 자본으로부터의 보호, 예술의 사회적 가치 확대와 연대를 통한 문화민주사회의 구현에 있기 때문이다.

생존 공간 확보를 위해선 예술 환경 조성을 위한 두 바퀴, 즉 공적 제도 개선과 공동체를 위한 당사자 운동이 필요하다. 낙후된 문화산업의 제반 조건들이 완비되어야 예술노동의 여건도 완화시킬 수 있다는 생각이야말로 낙후된 것이다. 예술노동 여건의 완화를 위한 움직임이 있어야 문화산업의 제반 조건도 낙후성을 극복할 수 있다. 노동직종별 세대화의 진행으로 생산직 등이 중년 이상의 노동자로 고착된 반면, 청년세대 중 상당수는 문화산업 등으로 진입하기를 원하고 있다. 그러나 문화산업 내에도 같은 계급차를 뛰어넘는 수준의 계층차가 발생하는 내부불평등이 심화되어 있으며, 체계화되지 못한 전근대적 잔재들이 가득하다.

문화산업 종사자 다수에게 삶의 안정성이 보장되지 않은 상태에서 해당 산업의 안정은 가능하지 않다. 출판․영화․음악․미술 산업의 현황은 ‘융성’이 아니라 ‘생존과 회복’을 논해야 하는 실정이다. 굳이 산업 중심 관점에서 말하자면, ‘회복과 정상화 → 도약과 융성’이다. 그러므로 문화산업계의 광범위한 후진성과 반노동성의 교정, 종사자들의 각성과 조직화가 시작되어야 한다. 특히 예술인복지체계의 확립과 근로자의제 중심의 예술인복지법 개정은 ‘을(乙)을 위한 제도의 개선’과 ‘청년일자리 확충’ 그리고 ‘복지의 확대’라는 시대의 요구와 맥을 같이 한다. 고용이 최선․최종의 목표이며 훈련과 교육을 통하여 노동시장에 편입시키는 과정으로 복지를 사고하는 생산성 중심의 사회투자국가 개념보다는, 구조적 문제로 배제될 수밖에 없는 구성원을 위한 사회안전망 제공이 국가의 책무라는 복지 개념을 바탕으로 삼아야 한다. 이상이 예술을 말하며 산업을, 예술을 말하며 복지를, 그리고 예술을 말하며 노동을 강조하는 이유이다.

“예술인도 노동자다!”

월간 <복지동향> 2014년 05월호(제18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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