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26 2026-07-10   42677

[동향1] 시혜에서 권리로 「장애인권리보장법」 제정의 의미와 남은 과제

김기룡 | 중부대학교 교수

들어가며 : 10여 년 만의 결실

2026년 4월 23일, 「장애인권리보장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한 달 뒤인 5월 26일 법률 제21695호로 공포되었고, 2년의 준비 기간을 거쳐 2028년 5월 27일부터 시행된다. 이 법은 2012년 8월 광화문 농성으로 본격화된 장애계의 입법 운동이 10여 년 만에 맺은 결실이다.

정부는 이 법을 “장애인을 복지의 수혜자가 아니라 권리의 주체로 바꾸는 패러다임 전환을 제도화한 법”으로 평가한다. 핵심은 간단하다. 그동안 장애인은 국가가 베푸는 복지의 ‘대상’이었지만, 이제는 권리를 ‘요구할 수 있는 주체’가 된다는 것이다. 이 글에서는 법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 무엇이 달라지는지, 그리고 여전히 남아 있는 과제를 차례로 살펴본다. 

광화문에서 국회까지 – 10여 년의 여정

장애인권리보장법의 뿌리는 2012년 8월 21일,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 공동행동’이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시작한 무기한 농성에 있다. 이 농성은 단지 두 제도의 폐지를 넘어, 시혜적 복지 체계 전체에 대한 근본적 문제 제기였다. 2013년 8월 ‘장애인권리보장법제정연대’가 출범하면서 투쟁은 체계적인 입법 운동으로 전환되었다.

이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와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한국장총)이 각각 법안을 마련하고 통합안을 모색하면서, 법안의 내용은 사회적 모델에 기반한 장애 재정의, 탈시설과 지역사회 자립생활, 개인별 지원계획, 권리옹호 체계, 국가 차원의 조정기구, 안정적 재원 확보 등을 골격으로 구체화되었다.

그러나 입법은 번번이 좌절되었다. 제20대·제21대 국회에서 여러 법안이 발의되었지만 모두 임기 만료로 폐기되었다. 탈시설의 명문화 범위, 조정기구의 위상, 권리옹호기구의 권한, 단체소송·특별기금 도입 여부 같은 핵심 쟁점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전환점은 제22대 국회였다. 김예지(2024.7)·최보윤(2024.8)·서미화(2024.11) 의원이 각각 발의한 세 법안을 통합·조정한 끝에 마침내 법이 제정되었다.

세 법안은 지향점이 달랐다. 가장 절제된 ‘원칙적 기반’ 모델(김예지 안)부터 가장 강력한 ‘변혁’ 모델(서미화 안)까지 폭이 넓었는데, 최종 법률은 5장 55조로 김예지 안의 구조를 따랐다. 즉 가장 절제된 기본법 형태로 수렴된 것이다.

장애인권리보장법 제정의 의의

1) 장애인을 서비스를 받는 대상이 아닌 권리의 주체로 명시

이것이 장애인권리보장법의 가장 근본적인 변화다. 법 제1조는 장애인이 모든 영역에서 차별받지 않고 동등한 기회를 보장받도록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책임을 명확히 한다. 특히 제9조부터 제26조까지 18개 권리를 ‘정책 목표’가 아니라 ‘법적 권리’로 명시하고, 각 권리에 대응하는 국가의 의무를 함께 규정했다. 권리를 요구하면 국가가 보장해야 하는 구조가 만들어진 것이다.

2) ‘장애’를 개인 모델이 아닌 사회 모델(인권 모델)로 접근

법 제3조는 장애를 “환경적 요인과 개인적 요인의 상호작용으로 일상생활 또는 사회참여에 제약이 있는 상태”로 정의한다. 장애의 원인을 개인의 손상이 아니라 개인과 환경의 관계에서 찾는 ‘사회적 모델’을 법에 담은 것이다. 계단만 있는 건물이 휠체어 사용자의 이동을 막듯, 문제는 개인이 아니라 환경에 있다는 관점이다. 자연히 정책의 초점도 ‘개인의 치료·교정’에서 ‘사회적 장벽 제거’로 옮겨간다.

3) 장애인권리협약을 구체적으로 반영한 최초의 국내법

한국은 2008년 유엔 「장애인권리협약」(CRPD)을 비준했지만, 유엔은 한국의 법·정책이 여전히 의료적 모델에 머물러 있다고 거듭 지적해 왔다. 이 법은 사회적 모델 정의(제3조), 정책결정 참여권(제13조), 자립생활·탈시설 명문화(제19조) 등을 통해 그 지적에 대한 제도적 응답을 내놓았다.

4) 장애 관련 법률의 ‘기본법’ 마련

그동안 장애 관련 법률은 영역별로 따로 만들어져 통일된 철학이 부족했다. 이 법은 제8조에서 일반법으로서의 지위를 선언하고, 앞으로 제·개정되는 관련 법령이 이 법의 취지에 맞도록 요구한다. 헌법과 개별 법률 사이에서 장애인 권리 보장의 ‘기준선’ 역할을 하는 셈이다. 실제로 부칙은 12개 관련 법률의 인용 조문을 이 법 중심으로 일괄 정비했다.

장애인권리보장법의 주요 내용

법은 5개 장 55개 조문과 부칙 8개 조문으로 이루어진다. 제1장 총칙(제1~8조)은 목적·이념·정의·국가 책무를, 제2장 권리보장(제9–26조)은 18개 권리를, 제3장 추진체계(제27–38조)는 계획·위원회·전달체계·전담기관을, 제4장 권리실현(제39–50조)은 생애주기·특성별 맞춤 지원을, 제5장 보칙(제51–55조)은 제도 개발·단체 육성 등을 규정한다.


법의 핵심은 제2장의 18개 권리다. 존엄권·평등권·자기결정권에서 출발해 참정·생활안정·직업·안전·건강·자립생활(탈시설)·교육·이동·정보·문화·체육·여가·사법 접근권까지, 삶의 거의 모든 영역을 아우른다. 

추진체계 면에서는 보건복지부장관이 5년 단위 종합계획을 세우고(제27조), 국무총리 소속 장애인정책위원회가 정책을 심의·조정·평가하며(제29조), 기존 한국장애인개발원이 ‘한국장애인권리보장원’으로 개편되어 전담기관 역할을 맡는다(제38조). 또한 3년마다 권리보장 실태조사(제34조)와 장애영향평가(제36조)를 실시하도록 해 정책을 권리 실현의 성과라는 관점에서 점검할 수 있게 했다.

특히 제19조는 ‘탈시설화’를 법률 용어로 처음 명문화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다만 “선택과 자유를 제한하는 환경에서 벗어나도록 지원받을 수 있다”라는 형태로, 시설 보호의 종식을 선언하기보다 점진적 전환을 전제한 절충적 규정이다.

제4장은 권리를 실제로 누리게 하는 지원을 규정한다. 장애의 예방과 함께 장애아동·장애노인·장애여성, 중증·중복 장애인 등 생애주기와 특성을 고려한 맞춤형 지원을 담았고, 특히 출산·양육 결정권과 폭력으로부터의 보호 등 취약 영역의 권리 보장을 강조한다. 정보 제공·상담, 사회적 인식 개선, 디지털 정보격차 해소도 권리 실현의 환경적 기반으로 함께 규정했다.

남겨진 과제

이 법은 장애인의 권리를 ‘선언’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선언이 실제 삶을 바꾸려면 구체적 서비스와 이행·구제 수단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입법 과정에서 절충되거나 빠진 쟁점들이 바로 다음 과제다.

1) 거버넌스 측면

대통령 직속 정책위원회를 국무총리 소속으로 둔 것(제29조)은 안정적이지만, 장애계가 요구한 ‘대통령 직속’ 상설기구에 비하면 예산과 정책 결정에서의 힘이 약하다. 위원회의 위상과 독립성, 예산 권한 강화가 과제로 남았다.

2) 재원 마련 측면

장애인지예산이나 특별기금 같은 독립적 재원 장치가 도입되지 않았다. 일반회계에 의존하는 사업은 매년 재정 상황과 정치적 우선순위에 따라 흔들릴 수 있어, 권리 선언이 ‘선언적 인권’에 그칠 위험이 있다.

3) 권리구제 측면

조사·시정명령 권한을 가진 권리옹호 전담기구나 단체소송은 도입되지 않았다. 학대로부터의 보호(제16조)는 있지만, 구조적 권리침해에 맞설 사법적 수단은 후속 입법의 몫으로 남았다.

4) 탈시설의 실질화

이번 법률 제정을 통한 탈시설화 개념의 명문화는 출발일 뿐이다. 지역사회의 주거·소득·돌봄·의료 인프라가 단계적으로 갖춰져야 ‘탈시설’이 ‘버려짐’이 아닌 ‘더 나은 삶으로의 전환’이 될 수 있다. 찬반 단체와 전문가, 정부가 함께 참여하는 사회적 대화 기구가 필요하다.

그리고 가장 시급한 과제는 「장애서비스법」 제정이다. 권리보장법이 ‘권리’를 선언했다면, 서비스법은 그 권리를 개인별 지원계획에 기반한 구체적 서비스로 바꾸는 법이다. 두 법을 짝으로 묶어 함께 추진하는 ‘투트랙(two-track)’ 전략의 완성이 관건이며, 이때 잔존하는 ‘장애등급’ 및 ‘가구소득’ 중심의 기준을 개인의 욕구 중심 지원체계로 전환하는 일이 핵심이다. 

나가며

「장애인권리보장법」은 시혜 중심 복지에서 권리 중심 체계로의 전환을 법의 언어로 새긴 분수령이다. 그러나 지난 10여 년이 보여주듯, 법은 당위만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사회적 공감대, 효과적 입법 전략, 안정적 재원, 장애계의 정치적 역량이 함께할 때 비로소 살아 있는 규범이 된다.

이 법의 제정은 종착점이 아니라 출발점이다. 앞으로 2년의 준비 기간 동안 이루어질 하위법령 정비, 권리보장원으로의 조직 전환, 「장애인복지법」 전부개정과 「장애서비스법」 제정의 향방이 이 법의 실질적 효과를 좌우할 것이다.

그 2년은 곧 ‘권리의 언어’를 ‘서비스의 언어’로 옮기는 시간이다. 하위법령에 담길 위원회 구성과 실태조사 방식, 전달체계 설계, 복지법과 서비스법의 조문 하나하나가 현장의 변화로 이어진다. 따라서 장애 당사자와 현장 실천가, 연구자가 이 과정에 적극 참여해 선언된 권리를 구체적 제도로 번역해 내는 일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권리의 선언이 제도·서비스·재정·구제로 구체화될 때, 비로소 이 법은 장애인의 일상에서 체감되는 ‘살아 있는 권리장전(權利章典)’으로 자리 잡을 것이다. 


월간<복지동향> 2026년 7월호(제33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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