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24 2024-09-01   5903

[기획5] 복지운동이 나아갈 길: 돌봄은 복지운동의 미래인가?

김보영ㅣ영남대학교 휴먼서비스학과 교수

우리나라의 사회복지 역사에서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의 역할을 부인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의 사회복지의 제도적 체계가 사회적으로 자리 잡고, 지속적인 확대의 경로를 가지게 된 전환점에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가 있었다. 1960년대 사회보험과 공공부조를 중심으로 한 사회복지 제도화가 시작된 이래 1990년대 말까지 이러한 제도적 범위가 전국민, 전사업장으로 확대가 완성된 배경에는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가 출범하면서 내건 ‘국민생활기본선 확보운동’의 청사진을 빼놓고는 말하기 어렵다. 특히 통합 건강보험의 출범, 기초생활보장법의 제정, 국민연금의 제도적 개혁과정에서 참여연대는 핵심적인 기여를 남겼다.

하지만 그 이후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의 복지운동은 불가피한 전환점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렇게 제도적 틀이 갖추어졌다 하더라도 제도의 사각지대 문제, 보장수준의 문제, 가입자의 민주적 참여 문제, 지속적인 민영화의 압력 등이 상존했고, 이러한 문제와 위협으로부터 제도를 지켜내야 할 일들이 쏟아졌다. 더 이상 제도의 개혁을 이끌기보다는 그때그때 터지는 이슈에 대응하기 바쁘게 된 것이다. 제도적 발전에 대한 기여의 책임이 큰 만큼 이러한 제도들에 대한 책임성에서 어쩔 수 없는 측면도 있지만, 참여연대 복지운동이 이제 A/S 운동이 되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나라 사회복지는 지속적 보수만 하면 되는 상황인가? 상황은 전혀 그렇지 않아 보인다. 저출생, 고령화, 양극화 등 우리 사회가 직면한 핵심적 위기에 대해 현재의 복지제도는 무력해 보이기만 한다. 특히 최근 코로나19에서 직면한 사회적 위기 속에 있었던 국민재난지원금 논란은 다른 한편으로는 자영업자 폐업과 같은 상황에서 보호를 해주지 못하는 작업장 중심의 복지체계의 문제를 드러낸 것이기도 하였다. 이러한 기존 복지체계의 한계들은 기본소득이나 전국민 소득중심 고용보험과 같은 새로운 대안적 소득보장 체계에 대한 논의가 일어나는 배경이 되기도 하였다.

보다 근원적인 문제제기는 사회서비스 분야에서 제기되고 있다. 사실 저출생, 고령화와 같은 위기는 소득 중심의 전통적 사회적 위험보다는 이른바 신사회적 위험과 더 관련성이 깊다. 이전까지는 가족의 몫으로만 여겨졌던 일들이 이제 사회적으로 감당해야 할 영역으로 전환되고 있다. 그중 특히 돌봄의 문제는 그 핵심을 차지하고 있다. 고령화와 더불어 맞벌이 가구의 증가, 가구 규모의 축소, 개인화 등으로 인해서 사회적으로 돌봄의 문제는 보편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우리나라 중장년층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조사대상의 과반수 이상이 가족 중 돌봄이 필요한 가족이 있다고 응답했으며, 이들 중 과반수 이상이 우울감, 스트레스 등 심리적 어려움, 가족 간 갈등, 돌봄으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었다. 또한 20% 이상이 하던 일이나 직장을 그만둔 경험까지 가지고 있었다(돌봄과 미래, 2023).

그렇다면 이러한 돌봄은 앞으로 사회복지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게 될 것인가? 특히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의 복지운동이 이제는 A/S 운동을 넘어 또다시 새로운 복지의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운동이 되기 위해서 돌봄은 어떠한 함의를 제공할 수 있는가? 이러한 질문을 가지고 돌봄이 가지는 우리나라 복지에서의 의미와 돌봄으로 모색할 수 있는 방향성에 대해서 탐색해 보고자 한다.

사회복지에서 돌봄의 의미

돌봄은 복지국가의 역사에서 가장 늦게 발전하기 시작한 정책 영역 중 하나이며, 이는 우리나라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나고 있는 모습이다. 다른 서구 국가들에서도 중앙 차원의 제도적 발전이 본격화된 것은 1990년대와 2000년대 사이라고 할 수 있으며, 우리나라 역시 사회서비스 제도화는 2000년대 중반부터 시작되었다. 이렇게 돌봄 영역의 정책 발전이 뒤늦게 일어난 이유는 이전까지 돌봄이 가족, 그중에서도 여성에게 불평등하게 전담되었으며, 이를 전제로 실제 정치, 사회영역에서 돌봄이란 공적 문제이기보다는 사적 문제로 취급되어 왔기 때문이다(Tronto, 2014).

하지만 돌봄 문제가 더 이상 가족이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돌봄이 공식적 정책 영역으로 진입했다. 이는 대가족에서 핵가족으로, 핵가족에서 1, 2인 가족으로 빠르게 재편되어 온 사회적 변화와 함께 여성의 노동시장 진출이 활성화되면서 더 이상 가족에서 돌볼 사람이 없어지고 있는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즉, 돌봄의 문제를 이전과 다르게 핵심적이고 우선적인 정책영역으로 인식해서 돌봄 제도가 발전했다기보다는 부당하게 그 책임을 전가시켜온 가족이 그 감당 능력을 상실하게 되면서 떠밀리듯 돌봄 제도가 발전하게 된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식의 돌봄 제도의 발전은 돌봄의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또 다른 형태로 전환시킨 것에 가깝다. 결국 ‘사회화된’ 돌봄은 저임금 여성 노동자에게 또다시 전가되었다. 돌봄 제도가 발전함으로써 돌봄의 부당한 전가로 인한 돌봄 불평등의 악순환이 해소되는 것이 아니라 보다 더 취약한 여성에게로 불평등이 이전될 뿐이었던 것이다(Tronto, 2014). 다시 말해 이전에 집에서 돌봄을 감당하던 여성이 노동시장에 진출하면서 그 돌봄은 더 저임금 여성에게 전가되고, 퇴근한 여성은 또다시 집에서 돌봄 부담을 감당하게 되는 현실로 바뀌었을 뿐이다.

하지만 이러한 구조는 모두에게 바람직하지 못하다. 돌봄의 부담을 부당하게 전가 당하는 여성은물론이고, 이로 인해서 돌봄관계로부터 배제되는 남성들에게도 그렇다. 최근 가장 규모가 크고 장기간 이루어진 행복연구인 하버드 연구(Harverd Study) 등에서 나타나는 연구 결과들은 인간의 신체적·정신적 건강과 행복에 가장 지속적이고, 핵심적인 요소 좋은 관계임을 보여주고 있으며(Waldinger and Schulz), 좋은 관계란 서로 관심을 가지고 걱정하고 보살피는 돌봄관계를 말한다. 이러한 논의는 돌봄이 부당하게 전가되는 것뿐만 문제가 아니라 이러한 불균등한 돌봄책임으로 인해 다른 한쪽에서 발생하는 돌봄에서의 배제 역시 배제된 사람들의 건강과 행복의 저해하는 문제가 됨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관계로부터의 배제는 최근에는 사회적 고립의 문제로 나타나고 있다. 최근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사회적 고립도는 30%를 넘어서 3명 중 1명이 몸이 아픈 상황과 같은 위기 상황에서 도움을 받을 사람이 없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통계청, 2022). 이러한 고립은 결국 삶의 만족도를 떨어뜨리고 우울, 불안 등 정신건강 등에도 악영향을 끼친다(홍성표·임한려, 2022). 좋은 관계가 행복과 건강의 가장 핵심적인 요인이 되는 것처럼 그러한 관계로부터의 단절은 행복과 건강을 악화시키는 결과로 이어지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는 돌봄은 사회복지 영역에서 우선순위로 자리매김 되어야 할 때이다. 그것도 돌봄의 욕구가 사회적으로 증가하기 때문에 반응적으로 돌봄 서비스를 확충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 누구나 적절한 돌봄을 받을 권리를 보장하고, 또 적정한 수준의 돌봄 관계를 가질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적극적이고 전략적인 정책적 접근이 요구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이러한 돌봄 정책은 단순히 사회보장 정책의 일부로서 확충되는 것을 넘어서 기존 사회복지 제도가 가지고 있는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영역으로서의 의미도 가지고 있다. 다시 말해 돌봄 정책을 더욱 적극적으로 추진함으로써 돌봄뿐 아니라 우리나라 사회복지 전반의 혁신을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이다.

돌봄정책, 분절성과 파편성을 넘어설 수 있는 지렛대

첫 번째 한계는 우리나라 사회복지 역사에서 고질적인 특징으로 자리 잡은 분절성과 파편성의 문제이다. 우리나라의 사회보장 급여의 종류는 많지만 그 급여가 어떤 대상이나 욕구를 포괄하지 않고 작은 급여로 쪼개져 있는 파편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고, 전달 체계에 있어서도 급여마다 서로 다른 중앙 부처에서 지자체 부서나 별도의 기관으로 나누어져 있는 분절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러다 보니 어떠한 대상이 어떤 상황에서 사회보장 급여의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본인에게 적합한 급여가 무엇이고, 어느 곳에서 어떻게 받을 수 있는가를 본인이 스스로 찾아야 하며, 찾아서 받아낸다고 하더라도 파편적인 급여 하나로 의미 있는 문제 해결이나 욕구 해소가 되지 않다. 이러한 문제는 사회복지의 효과성을 결정적으로 제약한다. 여전히 우리나라의 사회복지 지출 수준은 하위권이기는 하지만 이러한 구조를 가지고 관련 예산이 늘어난다고 하더라도 분절적이고 파편적인 사회보장 급여 구조 아래에서 체감도나 효과성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오히려 이러한 구조에서 급여를 받기 위해서는 그 정보를 획득하고 그에 맞게 자격을 맞출 수 있는 스스로의 능력을 갖추거나 이를 도와줄 수 있는 인적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래서 오히려 같은 상황이나 욕구를 가지고 있더라도 상대적으로 더 교육 수준이나 인적 네트워크가 있는 사람이 급여를 획득하고, 더 사회적으로 배제되고 소외되어서 그러지 못하는 사람은 사회보장급여에서도 배제되는 역진성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돌봄은 그 자체가 가지고 있는 복합적 욕구의 속성 때문에 이러한 문제를 정면으로 도전한다. 돌봄의 문제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일상생활을 위한 수발의 문제, 스스로 움직일 수 있도록 하는 주거개조나 보장구, 위생 관리를 위한 목욕, 기본적인 식사, 영양, 만성질환 관리나 병의원 이용과 같은 보건의료, 치매나 정신건강 등과 함께 서비스 제공을 위한 고용, 일자리, 이를 예방하기 위한 문화, 여가, 사회참여, 지역 공동체 등 다양한 영역과 층위의 문제를 포괄하고 있다. 그런데 적절한 돌봄을 위해서는 이것이 파편적으로 이루어져서는 안 되고, 각각의 욕구와 상황에 맞게 종합적이고 포괄적으로 제공될 수 있어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의 사회보장 제도의 분절성과 파편성의 문제를 극복하지 않고서는 제대로 된 돌봄 정책이 불가능한 구조인 것이다.

사실 현재 우리나라 돌봄 제도에 있어서 이러한 분절성과 파편성의 문제로 인해 그 비용 효과성은 매우 제한적인 것이 사실이다. 공적 돌봄 제도에 대한 지출 규모는 지난 10여 년간 매우 빠르게 증가하였다. 사회서비스의 제도적 발전이 본격화되기 시작한 2008년, 노인과 장애인 등 성인 돌봄 관련 지출 규모는 국내총생산(GDP)의 0.1%에 불과했지만 10년 뒤인 2018년에는 1%로 10년 만에 10배로 증가하였다(OECD, 2020). 이러한 속도를 고려하면 그로부터 5년 넘게 지난 지금 시점에 OECD 회원국 평균인 1.5%에 달할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전체 사회복지 지출 수준은 여전히 OECD 회원국 평균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고 하지만 성인 돌봄 영역은 다른 나라 못지 않는 지출 수준을 이미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핵심 대상인 노인, 장애인은 시설로 가는 비율이 매우 높을 뿐만 아니라 노인요양시설이나 요양병원의 경우 인간적인 삶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고, 장애인 시설의 입소자 대부분이 타의에 의해 들어가고 절반 이상이 외출과 사생활이 자유롭지 않은 등 기본적인 인권조차 보호하고 있지 못한 현실이다(김보영, 2022).

결론적으로 우리나라의 돌봄 제도는 그 지출 수준은 다른 산업화 국가에 비해 떨어지지 않는 정도에 이르고 있지만 그 효과성은 기본적인 인권 조차 보장하지 못하는 수준인 것이다. 이는 앞서 지적한 것처럼 분절성과 파편적 구조에 기인하고 있다. 돌봄이 필요해도 집에서 인간다운 삶을 보장할 수 있으려면 각자의 욕구와 상황에 맞는 포괄적이고 종합적인 돌봄이 제공될 수 있어야 하는데 분절적이고 파편적인 속성으로 인해 그것이 불가능하다 보니 결국 시설로 귀결되는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돌봄을 제도적으로 제대로 보장한다는 것은 이러한 분절적이고 파편적인 한계를 넘어서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기 때문에 돌봄보장을 위한 사회복지운동은 우리나라 사회보장 제도의 고질적인 한계인 분절성과 파편성을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할 수 있다. 이는 또한 다른 우리나라 사회보장 제도의 한계인 중앙집권 체제를 해소하고 분권화를 지향하는 것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분절성과 파편성의 문제 역시 중앙집권 체제와 관련이 있으며 이를 해소하는 방법 역시 분권화에 있기 때문이다.

권위주의적 중앙집권적 복지체계에서 지역중심의 분권적 체계로의 전환

우리나라 사회복지의 중앙집권적 관료 체제는 개발 독재의 역사에서 기인하고 있다. 1960년대 쿠데타로 집권한 군부 세력은 취약한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국가 주도 경제 개발을 우선적으로 추진하면서 이를 성공하기 위해서는 유능한 관료제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었다(윤견수·박진우, 2016). 당시 군부는 이미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당시 자유 진영의 4위에 달하는 대규모 조직이었으며, 남북과의 체제 경쟁 속에서 미국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체계적인 교육·훈련을 통해서 가장 먼저 근대적 역량을 갖출 수 있었다. 이러한 배경은 쿠데타로 집권한 권위주의 정부에서 유독 상대적으로 근대적인 능력주의에 기반한 관료제를 구축한 배경이라고 할 수 있으며(박종민·윤견수, 2014), 이러한 관료제는 우리나라의 성공적인 경제 성장의 한 축이었다는 평가는 부인하기 어렵다.

이렇게 권위주의 체제에서 발전한 우리나라의 관료제는 자연스럽게 강력한 중앙집권적 특성을 지니게 되었다. 권위주의 체제에서 관료제는 민주적 정치 과정을 통한 정책 결정이 이루어지지 않으므로 정책의 집행 기능만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정책 기능까지 행사하였다. 지방 자치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지방 일선까지 정책과 행정의 독점적이고 일괄적인 체계로 존재했던 것이다. 이러한 체계에서 중요한 것은 민주적인 과정도 구체적인 욕구에 대한 대응도 아니고 통일된 정책의 효율적 집행이었다. 이러한 중앙집권적 기술 관료 체계를 통해서 개발도상국으로서 선진국을 빠르게 따라잡아야 하는 개발 경제 체제에서 국가 주도의 경제 개발을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었다고 할 수 있다(양재진, 2005).

하지만 사회적 문제와 국민의 욕구에 대응하기 위해 발전하게 되는 복지는 이러한 중앙집권적 체계가 효과적이기 어렵다. 우선적으로 제한된 자원에서 다양한 욕구에 대응해야 하는 복지 정책은 민주적 정치 과정을 전제로 한다. 서로 다른 집단과 복합적인 욕구로 나타나는 이해관계에 대한 협상과 조정의 과정이 민주적이고 정치적인 과정을 통해서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민주주의 체제에서 관료 행정은 정책과 분리되어야 한다. 정책은 민주주의 정치 과정을 통해서 형성되고 결정되어야 하기 때문에 관료 행정은 이와 분리되어 결정된 정책에 대한 집행의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우리나라에서 개발 독재를 통해 발달한 중앙집권적 관료제는 민주화 과정을 거치면서 개혁의 대상으로 지목되었다. 정책과 행정이 분리되어 있지 않음으로 인해서 권위주의 권력과 잘 구분되지 않았던 관료 조직은 민주화된 정부에서 개혁을 명분으로 조직 감축을 반복적으로 경험했던 것이다(양재진, 2005). 이러한 배경에서 관료 조직에는 보신주의 문화가 강하게 형성되었다. 개혁의 시기에는 조직 축소로부터 최대한 조직을 보존해야 하고, 정권이 약화되는 정권 말기를 틈타 다시 조직을 확대하는 경향이 반복된 것이다. 이를 위한 명분으로서 기존의 정책이나 제도를 잘 운영하는 것보다는 새로운 사업을 만들어 내는 것이 보다 선호되었다. 또한 기존의 전달 체계를 활용하는 것보다는 새로운 전달 체계를 구축하는 것 역시 조직의 보전과 확대에 더 유리하였다. 그렇게 민주화 이후 본격적으로 확대된 사회복지 영역에서 파편성과 분절성의 특징이 더 강하게 나타나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파편성과 분절성의 문제는 중앙집권적인 특징으로 인해서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이렇게 파편적인 급여가 분절적인 전달 체계 아래 전달이 되고, 지방자치단체를 통해 전달되는 급여라고 하더라도 선정 기준과 절차, 급여의 내용 등이 개별적인 지침으로 관리되고 있기 때문에 일선에서 다양하게 나타나는 문제와 욕구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가 없다. 특히 돌봄 문제에 있어서 복합적인 욕구를 포괄적으로 접근하기 위해서는 그 필요에 따라 서로 다른 급여를 배치하거나 조정을 해야 하는데 중앙집권적 체계에서는 그럴 수 있는 권한이 일선에 주어져 있지 않은 것이다. 결국 분절성과 파편성의 문제는 중앙집권적 체계로 인해서 일선에서 더욱 증폭된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돌봄보장이 제대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분권화가 전제되어야 한다. 이를 통해 중앙의 급여가 분절적이고 파편적이라고 하더라도 일선에서 이를 유연하게 적용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진다면 이를 어느 정도 완화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또한 이러한 권한은 책임을 동반한다. 이전까지는 지역의 주민의 욕구에 대응하지 못하는 책임을 일선 지자체에 묻기는 어려웠다. 왜냐하면 이에 대응할 수 있는 급여에 대한 기준과 내용은 지자체가 정한 것이 아니라 중앙이 설정한 것이고, 지자체는 이를 집행하는 역할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지역 일선의 특정한 주민의 욕구에 대응하지 못하는 문제를 중앙 정부에 묻기도 어려운 노릇이다. 그래서 사실상 이러한 문제에 대한 공적인 책임성이 존재하지 않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상 중앙 정부와 지자체의 비책임성의 카르텔인 셈이 다. 하지만 중앙의 파편적이고 분절적인 급여라도 지자체가 이를 조정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면 지자체는 그 권한만큼 직접적인 책임을 가지게 되는 것이고, 그럴수록 지자체는 욕구에 제대로 대응할 수 있도록 중앙 정부에 더 많은 권한을 요구하게 될 수 있다. 돌봄보장을 위한 제도적 개혁을 통해 비책임성의 카르텔이 분권을 통해서 권한과 책임성의 선순환으로 전환될 수 있도록 만들 수 있는 것이다.

개발 시민권을 넘어 보편적 사회권 확보로

우리나라의 주요한 돌봄 제도를 보면 당사자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보다는 그 가족의 돌봄 부담을 경감시키는 것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가령 장기요양보험의 경우 재가 급여와 시설 급여를 비교해 보면 그 급여량에 있어서 재가 급여보다 시설 급여가 훨씬 더 크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되도록 시설 급여를 이용하고자 하는 유인이 강하게 존재한다. 다시 말해 장기요양보험제도는 기본적으로 노인이 돌봄이 필요해질 때 재가 지원을 통해 사는 곳에서 인간다운 생활을 유지하게 하는 목적보다는 시설 입소를 촉진하도록 설계가 되어 있는 것이다. 돌봄에서 가장 먼저 발전한 영역은 아동 보육인데(윤홍식, 2019), 부모의 보육 부담을 덜어주는 아동 보육은 2012년 보편적 무상 보육 실시와 같이 빠르게 확대된 반면 정작 아동의 기본적인 인권을 보호하는 아동보호 예산은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일반 예산도 아닌 범죄 피해자 보호 기금이나 복권 기금으로 편성되었었다(최영, 2020).

이러한 우리나라의 돌봄 제도의 특성은 아직까지 사회적 권리가 보편적으로 확립되지 못한 측면을 보여준다. 아동과 장애인, 노쇠한 노인과 같이 스스로 권리를 주장하기 어려운 집단이 복지, 교육, 의료 등 사회적 급여를 통해 사회적으로 배제당하지 않고 차별받지 않기 위해서는 시혜나 자선의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시민적 권리의 주체로서 인식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앞서 돌봄의 윤리 논의에서 살펴본 것처럼 돌봄은 복지국가의 초기 설계에 포함되지는 않았지만 뒤늦게라도 제도적 발전을 이룰 수 있었던 기반은 복지국가를 통해 모든 국민의 복지에 대한 국가와 국민 간의 집합적 의무와 권리로서 확립된 사회권이었다고 볼 수 있다(김보영, 2019). 이러한 사회권이 뒤늦게 사회적으로 인식된 돌봄 문제에도 적용이 됨으로써 스스로의 사회적 발언권이 취약할 수밖에 없는 아동, 노인, 장애인들에게까지도 적용됨으로써 이들의 권리에 기반한 제도적 발전이 이루어질 수 있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실질적으로 성립된 시민권은 다른 복지국가의 기반이 된 사회권이 아니라 ‘개발 시민권(developmental citizenship)’으로 규정되고 있다(Chang, 2012). 국가와 시민과의 관계가 복지에 대한 집합적 의무와 권리가 아니라 국가는 국가 주도의 경제 개발을 책임지고, 시민은 경제 주체로서 경제적 이익을 배분받을 권리를 갖는 관계로서 시민권이 성립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개발 시민권은 우리나라가 개발 독재를 통해 현재의 정체성을 사회적으로 형성하게 되면서 발전하게 되어 실질적으로 적용되고 있는 국가와 시민 간의 정치적 계약 관계를 잘 설명하고 있다. 이는 왜 민주화 이후에도 정치적 지향과 관계없이 매번 정부들은 처음에는 보편적 복지와 같은 사회적 가치를 지향하다가도 왜 다시 경제개발 중심으로 회귀하는 모습이 반복되는지를 그리고 이미 저성장 국면으로 진입한지 오래되었음에도 왜 사회적 여론에서는 경제 발전에 대한 요구가 지배적으로 나타나는지를 해석해 주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개발 시민권은 우리나라 복지 정책 발전의 역사에서도 나타난다. 개발 시민권에 기반한 복지의 발전은 필요에 따라 이루어지기보다는 경제적 기여가 큰 주류 집단에게 우선적으로 혜택이 주어지는 형태로 이루어졌다. 사회보험만 하더라도 당시 경제 개발의 주축이 된 대기업에서 상대적으로 괜찮은 임금과 안정적 고용이 보장되는 노동자부터 우선적으로 포괄하였고, 민주화 과정을 거치면서 제도적 포괄성은 모든 국민과 사업장으로 확대되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더 취약한 비정규직, 저임금 노동자들일수록 사각지대로 배제되고 있다(윤홍식, 2019). 이러한 개발 시민권은 왜 돌봄 중에서도 여성의 노동시장 진출을 촉진할 수 있는 보육 제도가 먼저 발달하였고, 장기요양제도 역시 노인의 권리보다는 노동시장에 기여하는 자녀 세대의 돌봄 부담 경감에 초점을 맞추게 되었는지를 설명해 준다. 여전히 사회적으로 경제적 기여가 제한적인 이들 집단에 대한 복지는 가장 후순위로 취급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돌봄에 대한 능동적인 정책은 이러한 개발 시민권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셈이다. 돌봄이 어떠한 특정한 대상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이라면 누구나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돌봄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보편적인 욕구로서 돌봄을 인식하면서 이에 대한 권리를 확립함으로써 경제적 기여를 기준으로 배제되었던 사각지대를 포용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돌봄 정책은 단지 제한된 대상에 대한 권리 보장의 차원이 아니라 우리나라 복지의 역사에서 성립되지 못했던 보편적 사회권을 구축해 가는 지렛대가 될 수 있으며, 이로써 개발 시민권의 굴레를 벗어날 수 있는 혁신이 될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돌봄, 복지운동의 새로운 이정표

이 글에서는 서론에서 제기한 질문, 즉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의 복지운동이 이제 A/S 운동을 넘어 또다시 새로운 복지의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운동이 되기 위해서 돌봄이 어떠한 함의를 제공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 돌봄이 가지는 우리나라 복지에서의 의미와 돌봄으로 모색할 수 있는 방향성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우선 우리나라 복지제도에서 돌봄이 갖는 의미를 살펴보았다. 돌봄은 다른 복지 영역에 비해 제도화가 늦게 이루어졌고, 그 과정에서 돌봄의 책임이 여성에게 불평등하게 전가되는 문제가 발생했다. 또한, 사회적으로 돌봄의 필요성이 증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돌봄 서비스는 여전히 파편적이고 분절적으로 제공되고 있으며, 질적으로도 충분하지 못한 상황이다. 이는 돌봄 서비스의 공공성을 강화하고, 돌봄을 보편적인 권리로 보장하기 위한 적극적이고 전략적인 정책적 접근이 필요함을 시사한다.

특히 돌봄은 기존 우리나라 사회복지가 안고 있는 분절성, 파편성, 중앙집권적 관료주의의 문제를 극명하게 드러낸다. 지난 30년 동안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를 포함한 복지운동은 사회보험과 공공부조를 중심으로 한 제도적 틀을 구축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각 대상별 복지에 대한 요구를 각계에서 분절적으로 제기해왔던 한계가 없지 않았고, 국가 책임을 요구한다는 이유로 지방의 역할을 간과한 측면이 있으며, 복지에 대한 요구에 있어서도 근로연령 계층의 이해를 우선하여 개발 시민권으로부터도 자유롭지 못했다.

결국 돌봄은 단순히 하나의 정책 영역을 넘어 우리나라 복지운동의 새로운 이정표가 될 수 있다. 돌봄을 중심으로 분절성과 파편성을 극복하고, 권위주의적 중앙집권 체제에서 벗어나 지역 중심의 분권적 체계를 구축하며, 개발 시민권을 넘어 보편적 사회권을 확립하기 위한 새로운 복지운동의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가 앞으로 돌봄을 새로운 복지운동의 핵심 의제로 삼아 적극적으로 고민하고 행동한다면, 지난 30년의 성과를 뛰어넘어 새로운 복지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역할을 다시 한번 꿈꿔볼 수 있을 것이다.

| 참고 문헌 |

Chang, Kyung-Sup. (2012). Economic development, democracy and citizenship politics in South Korea: the predicament of developmental citizenship. Citizenship Studies, 16(1): 2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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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복지동향> 2024년 09월호(제31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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