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사람들 병원 가지말라는게 ‘약자 복지’?


정부의 의료급여 정률제 개악안에 반대하는 121단체가 공동 주최로 “의료급여 정률제 개악안 철회를 요구하는 결의대회”를 2024년 10월 29일(화) 오후 2시, 서울 정부종합청사 북측 인도에서 개최했습니다.
지난 7월 25일 정부는 의료급여 본인부담체계 개편안을 발표하였습니다. 의료급여 수급자들의 비용 의식 약화로 인한 과다 의료 이용 경향을 막고 ‘합리적’ 의료 이용을 도모하기 위함이라고 밝히며, 외래 이용 시 부과하는 본인부담금을 정액제에서 정률제로 변경한다는 내용을 담았습니다. 정률제로 변경되면 대다수 수급자는 지금보다 더 많은 진료비를 부담하게 됩니다.
의료급여 제도는 의료비 부담으로 인한 의료 접근성 제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건강보험과 별도로 운영하는 빈곤층 의료보장제도입니다. 따라서 수급자들의 경제적 의료 접근성을 제한할 우려가 큰 본인 부담 인상은 제도 취지에 반하는 것이라 할 것입니다. 정부는 건강생활유지비(진료 보조금)를 2배 인상하면 외래 이용 상위 9%(약 11만 명)만 부담이 증가하고 상위 1%의 부담 증가도 월 6,900원 수준일 것이므로 큰 문제가 안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기초법바로세우기공동행동에서 수급자 16명을 대상으로 2023년 의료비 지출 내역을 조사·분석한 결과, 정률제가 도입될 경우 건강생활유지비 증가분을 포함하고 본인부담상한제를 적용하더라도 5명에서 본인부담금이 늘어나고 최대 211,898원까지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당사자들과의 면담에서 확인된 더 심각한 문제는, 의료비 부담이 얼마나 늘어날지 예측하기 어려워 의료 이용을 포기하는 사례가 적지 않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정부는 본인 부담을 늘리기 위해 정률제를 도입하겠다면서도 정작 본인 부담 증가는 미미할 것이라고 자가당착적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설사 정부 주장대로 전체 집단 차원에서 부담 증가가 크지 않다고 하더라도 문제가 없는 건 아닙니다. 전국의 대표성 있는 표본으로 구성된 의료패널 조사자료를 활용해 분석한 결과, 정부가 ‘불필요’한 과잉 진료의 대표 사례로 드는 물리치료가 포함된 외래 진료에서 오히려 더 부담 증가분이 작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급여 1종 1차 의료기관 기준 0.76배). 이런 진료일수록 건당 진료비 수준이 낮기 때문입니다. 이는 반대로 질환 중증도가 높은 환자일수록 정률제 도입에 따른 본인부담 증가분이 더 클 것을 의미합니다.
즉, 정률제는 정부가 문제 삼고 있는 ‘불필요’한 과다 의료 이용을 억제하는 데에도 유효하지 않은 정책 수단입니다. 게다가 세부 분석 결과를 보면, 정률제가 도입될 경우 수급자 가운데 과부담 의료비(가구 소득 대비 의료비 지출 10% 이상)가 발생하고 있는 이들에게서 부담 증가분이 더 클 것(1.26배)으로 예측되었습니다. 이처럼 정률제는 의료 필요의 원칙에 어긋나는 비윤리적인 제도인 것입니다.
또한, 의료급여 수급자들이 정형외과와 침구과를 이용하며 물리치료 등을 받는 이유는 수술할 시기가 아니라서 아직 수술할 정도가 아니라, 원인을 정확히 찾을 수 없어서, 비급여 치료비 부담 때문에, 선지출이 필요한 비용을 충당할 수 없어서 등등 환자가 통제할 수 없는 요인들입니다. 이를 환자의 선택이라고 보는 것은 잘못됐습니다.
정부가 정률제 도입의 근거로 제시한 것들도 타당성이 부족합니다. 그동안 물가는 많이 올랐는데 본인부담금은 그대로여서 비용 의식이 약화했다고 하는데, 실제 의료비 부담 수준이 낮아졌는지 판단하려면 가처분소득 대비 의료비 지출 비중의 변화를 확인해야 합니다. 하지만 정부는 이런 객관적 지표도 제시하지 않은 채 추측성 주장만 하고 있습니다.
또한, 재정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고 말했지만, 지난 5년간 의료급여 재정 지출의 평균 증가율(7.3%)은 건강보험(7.2%)과 거의 같았습니다. 이는 증가율을 의료급여 자체 문제만으로 보기 어렵다는 뜻입니다. 아울러 1인당 진료비가 건강보험보다 많다(3.3배)는 점을 문제 삼는 것도 잘못됐습니다. 수급자들은 높은 고령화율·만성질환율·장애보유율 등과 같은 집단 특성으로 인해 의료 필요도가 높을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미 이를 통계적으로 반영한 여러 연구에서 그 격차가 크게 줄어드는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번 본인부담체계 개편안을 의료급여 개악안이라고 평가합니다. 의료급여 수급자들은 현재도 비급여 진료비 부담과 의료기관의 차별적 행태 등으로 인해 건강보험 가입자에 비해 높은 비율로 미충족의료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재정 안정화가 그렇게 시급하다면 지금처럼 수급자들의 비용 부담을 늘리는 방식이 아니라, 의료서비스를 개시하고 치료 유형과 횟수를 결정할 권한을 가진 의료 공급자 측의 문제를 개선하는 방향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의료급여 수급자들은 사회적 발언권이 약합니다. 정부가 이러한 모순투성이인 의료급여 개악안을 밀어붙일 수 있는 까닭입니다. 그 어느 때보다 빈곤층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언론의 역할이 절실히 필요한 때입니다.
결의대회 개요
📍일시 : 2024년 10월 29일(화) 오후 2시
📍장소 : 서울 정부종합청사 북측 도로
- 사회 : 김윤영(빈곤사회연대 활동가)
- 취지 발언 : 전진한(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국장)
- 당사자 발언 : 추경진(전국장애인건강권연대 활동가) / 요지(홈리스야학 학생회장)
- 발언 : 박승민(동자동사랑방 활동가) / 조영현(강북주거복지센터 사회복지사)
- 공연 : 어깨꿈 밴드
- 발언 : 변혜진(연구공동체 건강과대안 상임연구위원)
- 마무리 발언 : 전은경(참여연대 사회인권팀 팀장)
- 퍼포먼스 의료급여 개악안 약자복지 규탄 die-in 행동
- 결의문낭독
결의문
아파서 죽을까? 굶어 죽을까?
가난한 이들을 벼랑으로 내모는 의료급여 개악 전면 철회하라!
정부가 발표한 의료급여 정률제 개편안은 수급권자들의 의견 수렴도 하지 않고, 기존 제도에 대한 제대로 된 분석과 효과에 대한 검증도 없이 재정 절감만을 목표로 타당성 없이 일방적으로 통보된 개악안이다. 오히려 개악안을 발표하는 과정에서 수급자들을 무분별하게 과다 의료이용하는 집단으로 매도하며 사회적 차별과 낙인을 강화하고 있다. 이는 전 사회의 보건과 복지 증진에 힘써야 할 보건복지부가 해서는 안 되는 일이며, 정부의 ‘약자 복지’ 기조에도 역행하는 행태다.
가난한 이들의 현실은 어떠한가? 2020년 사망한 방배동 김씨는 의료급여 사각지대에 있었다. 건강보험료를 장기 체납한 상태에서 병원을 찾을 형편이 되지 못했다. 부양의무자 기준 등으로 인해 의료급여에서 탈락하거나 신청을 포기하고, 건강보험료가 체납되어 적시에 필요한 치료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비급여와 선 지출할 비용이 없어 주민센터와 구청, 사회사업실과 종교 기관을 전전하며, 필요한 치료를 받지 못해 통증을 견디며 살아가는 의료급여 수급자들이 있다.
우리는 가난한 이들에게 병원조차 가지 말라는 기만적인 약자 복지에 분노한다. 사람의 건강과 생명보다 돈을 우선시하는 폭력을 거부하며 빈곤층의 건강권 보장을 위한 변화를 요구한다. 빈곤층의 건강권조차 보장하지 않는 사회가 다른 이들의 건강권을 보장하리라 기대할 수 없다. 가난한 이들의 건강권 보장이 우리 사회 모두의 일이 되어야 하는 이유다.
이에 의료급여 개악 철회 결의대회에 공동 주최로 함께한 126개 단체는 의료급여 정률제 개악안의 전면 철회를 요구하며 보건복지부 조규홍 장관과의 공개 항의면담을 요구한다.
의료급여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의료 접근성과 건강권과 같은 수급자의 권익이 아니라, 단지 비용 통제와 재정 절감을 목표로 제도 개편이 진행되어 왔다. 그 결과는 의료급여 수급자들의 권리 박탈로 나타나고 있다. 지지율 바닥인 윤석열 정부도 부자 감세를 벌충하기 위해 의료급여를 더 한층 개악하려 한다. 더 이상 빼앗길 수 없다. 우리는 아파서 죽거나 굶어서 죽거나 선택하라는 정부의 냉혹한 정률제 개악을 강력히 규탄하며 맞서 싸울 것이다.
윤석열 정부는 정률제 개악안을 전면 철회하라. 조규홍 복지부 장관이 해야 할 일은 의료급여 개악이 아니라, 부양의무자 기준 등으로 인한 의료급여 사각지대와 의료급여 수급자들이 겪고 있는 미충족 의료 문제 해결이다.
2024년 10월 29일
의료급여 개악 철회 촉구 결의대회 참가자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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