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호] 동시대 논점_거버넌스 실험: 개혁 카르텔로의 고착화

개혁엘리트 카르텔로의 고착

거버넌스의 정확한 정의가 규정돼 있지는 않지만, 나는 자본주의적 정치 분업이랄 수 있는 대의민주주의와 관료제도에 대한 보완 또는 극복 시도가 거버넌스라고 이해한다. 이런 관점에 따르면 거버넌스란 정치적 의사결정과정의 민주적 커뮤니케이션과 공동 결정의 또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또한 이 같은 시도는 서유럽에서 거버넌스에 대한 논의가 시작된 20세기 후반 이전부터 노동자, 자본가, 정부의 삼자주의(Tripartism) 테이블을 통해 오랜 동안 시행되고 있었다.

1. ‘거버넌스’에 치중하는 시민단체

이 글에서는 노사정 테이블 같은 전통적 준국가기구는 다루지 않겠다. 왜냐하면 한국에서 거버넌스의 논의 혹은 시도가 김대중, 노무현 정부로 이어지는 자유주의 환경 아래 시민단체와 학계가 주도적으로 제기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거버넌스의 계급투쟁과 계급타협적 측면은 사상(捨象)한 별개의 것이다. 또한 이 글에서는 다양하고 복잡한 민주적 의사결정과정과 기구에 대해 다루지 않을 것이다. 거버넌스의 정의보다 이 말의 용례가 더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고, 그 실체는 정부에 정책과 정치적 의사를 관철하기 위한 시민단체의 특정 정치사업 방식을 일컫는 것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협의의 거버넌스, 정부를 상대로 의사를 관철시키려는 시민단체의 정치사업 방식은 다음 네 가지로 나눌 수 있다.

① 권력화 조직 : 시민 개개인 또는 커뮤니티가 정치권력화하도록 고무 진작하는 방식

② 경쟁 권력화 : 선출직 공직 진출 등을 통해 시민단체 스스로가 정치권력화하는 방식

③ 타협 권력화 : 각종 의사결정 위원회나 자문기구에 참가하는 방식

④ 의존 권력화 : 기존 정치권력의 선출직이나 임명직으로 참가하는 방식

위의 ①과 ②는 본질적으로 동일한 것이지만, ‘정치중립’이나 ‘탈정치’를 내세우는 한국 시민단체들에게는 루비콘강처럼 큰 간극이고, 대개의 시민단체는 언제나 ①에만 집중하고 있다고 선전한다.

그런데 시민들의 인식은 시민단체가 ③, ④(아래 그래프에서는 ③)에 집중돼 있고, 시민 권력화(아래 그래프에서는 ①과 ④)를 고무 진작하는 일은 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림 1>「시민사회지표(CSI)」

시민단체 관계자 102명 및 일반 시민 600여 명 설문조사 결과. 한양대 제3섹터연구소 & 세계시민단체연합(CIVICUS), 2005년 6월

‘위원회 정권’이라고 비아냥 받는 노무현 정부는 335개의 위원회를 설치 운영하고 있는데, 이러한 위원회와 정부기관에서 상임이나 비상임으로 직함을 가졌거나 가지고 있는 시민단체 출신이 한 단체에서만 300명(‘겹치기 출연’ 포함)을 넘어섰다.

2. 원칙은 지켜졌나?

타협 권력화나 의존 권력화 자체를 부정적으로 평가할 필요는 없다. 더군다나 ‘정치 중립성’을 내세우는 시민단체에 있어 어떠한 정치권력과의 합작도 도덕적 비난의 근거가 되지는 않는다. 대신 그러한 권력화 과정을 통해 얼마만큼의 정책 관철을 이루었는가 하는 점만이 평가의 기준과-원칙이 될 수 있다.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가 적극적 참가하였고 노무현 정부가 대대적으로 선전한 저출산고령화사회위원회의 협약 성과를 보자. 참여연대는 지난 6월 8일, 정부의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시안을 “발상의 전환 없는 짜깁기 대책”이라고 비판했었다. 불과 12일 후 참여연대는 협약에 참가하는데, 참여연대의 양대 요구 중 국공립 보육시설 확충 계획은 10% 확대로 부분 수용된 반면 아동수당제 도입은 여전히 빠져 있다.

이 협약의 모태가 된 정부 계획안의 80% 가까이는 이미 시행되고 있거나 시행 예정된 정책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일각의 우려를 뒤로 하고 참가 강행한 협약 성과는 만족스럽기는커녕 불안하기 그지없다. ‘탄력근로시간제 등 근로시간제도 유연화’, ‘파트타임 근무 등을 기업 지침으로 제공’과 같은 언급이 어떻게 구체화되어 어떤 피해를 낳을지 너무도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이재영, <사회협약의 조건>, 레디앙, 2006. 6. 26

현 시점에서 ‘거버넌스론’에 입각해 정부산하위원회에 참가한 시민단체의 활동 전반을 평가하기는 이르다. 하지만, 저출산고령화협약에서 보는 바와 같이 그 성과가 만족스럽지 못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기존 정치권력의 선출직이나 임명직으로 참가하는 의존 권력화 방식이 낳은 성과는 더욱 부정적이다. 참여연대 정책위원장을 지냈던 김대환 노동부 장관은 노동조합, 시민단체들과 사사건건 충돌하다 못해 국가인권위원회의 비정규직 동일임금 권고안까지 무시했다. 여성단체와 시민단체, 민주노동당의 기대까지 모았던 한명숙 총리가 취임하여 처음 한 일은 평택 미군기지 예정지 주민에 대한 폭력 진압이었다. 온 나라를 광분시켰던 황우석을 만드는 데는 경실련 과학기술위원회 출신의 박기영 청와대 보좌관이 일조했다. 환경재단 최열 대표가 뉴타운 50개를 만들겠다는 오세훈 시장을 돕는 것을 보통 사람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하지 못한다.

시민단체 출신 유명인들이 조직적 논의나 합의를 거쳐 정치권력에 몸담은 것은 물론 아니다. 하지만 그들을 통해 시민단체를 접해온 시민들은 그런 사정을 소상히 알지 못하고, 알아야 할 의무도 없다. 그들이 변절했는가를 따지는 것도 무의미하다. 시민단체들은, 애초부터 정치적, 정책적 동질성이 그다지 없는 ‘얼굴마담’을 높은 자리에 앉혀 권위에 의탁하는 사업방식을 취해 왔는데, 이는 시민운동 내부에서의 거버넌스가 실패했다는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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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영/레디앙 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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