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감시센터 판결/결정 2026-05-11   2700

[판결비평] 기록의 존재를 아는 것, 알권리의 시작

2014년 4월 16일 그날의 진실을 담은 기록은 2017년 5월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에 의해 대통령지정기록물로 지정되면서 기록의 내용과 목록 모두 봉인되었습니다. 이는 명백히 국민들의 알권리를 침해한 행위였습니다. 그리고 정부가 재상고를 포기하면서 9년이라는 긴 시간 끝에 ‘30년의 봉인’이 해제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김유승 기록학자는 이번 판결이 알권리가 “기록의 존재를 아는 것”에서 출발한다는 점을 인정했다는 점을 짚는 동시에, 앞으로의 개선과제를 제언했습니다.

광장에 나온 판결 : 314번째 이야기

세월호 7시간 대통령지정기록물 목록비공개 취소 판결 비평

파기환송심 : 서울고등법원 원종찬(재판장), 오현규, 박혜선 서울고등법원 2026. 4. 10. 선고 2025누4625 [판결문 보기]

2심 : 서울고등법원 김광태(재판장), 민정석, 이호재 서울고등법원 2019. 2. 21. 선고 2018누59672 [판결비평 보기]

김유승 교수(중앙대 문헌정보학과) /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공동대표

김유승 / 중앙대 문헌정보학과 교수,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공동대표


2014년 7월 15일 4·16특별법 청원 행진 <출처=참여연대>

9년의 싸움

2014년 4월 16일, 세월호가 침몰하던 날 청와대는 무엇을 했는가. 이 질문에 답할 수 있는 기록들이 존재한다. 대통령비서실, 대통령경호실, 국가안보실이 세월호 승객 구조를 위해 그날 생산하거나 접수한 문서들이다. 그런데 그 기록들의 목록조차 지금껏 공개되지 않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파면된 직후인 2017년 5월,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은 세월호 참사 당일 청와대가 생산한 문서들의 목록을 대통령지정기록물로 지정하고 보호기간을 설정했다. 최대 30년간 비공개할 수 있는 봉인이었다.

변호사 송기호는 같은 해 5월 대통령기록관장에게 정보공개를 청구했으나 거부당했고,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1심 서울행정법원은 2018년 7월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서울고등법원은 2019년 2월 이를 뒤집어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원고의 상고로 사건은 대법원으로 갔고, 대법원은 2025년 1월 환송 판결을 내렸다. 환송심을 맡은 서울고등법원은 2026년 4월 10일, 마침내 원고 승소 판결을 선고했다. 세월호가 침몰한 2014년으로부터 12년, 정보공개 청구가 거부된 2017년으로부터 9년, 목록 하나를 보기 위해 시민들이 치러야 했던 값이다.

판결의 세 가지 법리

이번 판결의 핵심은 세 가지 법리 판단으로 구성된다. 첫째, 대통령지정기록물에 대한 사법심사는 배제될 수 없다. 법원은 대통령이 지정기록물로 지정했다는 사실 자체가 비공개의 절대적 근거가 될 수 없음을 확인하였다. 이는 2025년 1월 대법원 환송 판결(2019두35763)의 법리를 그대로 수용한 것으로, 대통령지정기록물이 사실상 사법심사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던 관행에 중요한 균열을 냈다.

둘째, 이 사건 문서목록은 ‘공개가 부적절한 기록물’에 해당하지 않는다. 법원은 비공개 열람·심사를 통해, 해당 목록이 단순한 목록에 불과하고 문서의 내용도, 내용을 유추할 수 있는 문구도 포함되어 있지 않음을 확인했다. 피고가 근거로 든 대통령기록물법 제17조 제1항 제5호-대통령, 보좌기관, 자문기관 사이에 생산된 의사소통기록물로서 공개가 부적절한 기록물-의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는 것이다.

셋째, ‘정치적, 사회적 논란’은 비공개의 근거가 될 수 없다. 피고는 세월호 참사에 관해 수많은 정치적, 사회적 논란이 있었으므로 목록 공개가 부적절하다고 주장했다. 법원은 이를 정면으로 배척했다. 문서의 내용을 유추할 수도 없는 단순한 목록이 정치적, 사회적 혼란을 초래할 것이라는 근거를 피고가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대통령기록물법의 입법목적 자체가 ‘국정운영의 투명성과 책임성’이고 공개가 원칙임을 명시적으로 상기시켰다.

기록학적으로 본 ‘목록 봉인’의 의미

이 판결에서 기록학의 관점에서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다름 아닌 청구 대상이 ‘목록’이었다는 사실이다. 기록관리학에서 목록은 기록의 내용이 아니라 기록의 존재를 알려주는 메타데이터다. 어떤 기록이 생산되었는지, 누가 언제 무슨 업무를 수행했는지를 식별할 수 있게 해주는 기술(description) 정보다. 목록의 공개는 기록 접근의 전제 조건이다. 목록이 없으면 어떤 기록이 있는지조차 알 수 없고, 모르는 기록에 대한 접근권은 행사될 수 없다.

지정기록제도라는 강력한 보호 장치는 현직 대통령이 법정 요건을 갖춘 기록의 민감한 내용을 일시 보호하되 임기 후 역사적 기록으로 공개한다는 전제 위에 설계된 것이다. 지정 대상은 국가안보·외교·통일에 관한 비밀기록, 대통령과 보좌기관·자문기관 사이에 생산된 의사소통기록 등 대통령기록물법이 열거한 요건에 해당하는 기록에 엄격히 한정된다. 그런데 황교안 권한대행은 탄핵된 대통령의 기록에 대한 입법 공백 상태에서 약 20여만 건을 지정기록으로 설정하였고, 세월호 참사 그날의 대통령 기록은 어떤 기록이 존재하는지조차 알 수 없게 목록마저 봉인되어버렸다.

이 지정 행위의 위헌성을 다투는 헌법소원[2017헌마359⋅853(병합)]이 2017년 4월 제기되었으나 헌법재판소는 2019년 12월 이를 각하했다. 헌법재판소는 지정 행위 자체가 국가기관 사이의 내부적 분류 행위에 불과하고, 국민의 법적 지위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공권력 작용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았다. 특정 기록에 대한 정보공개청구가 보호기간을 이유로 거부당하는 단계가 되어야 알권리 침해를 주장할 수 있다는 것으로, 지정 행위만으로는 청구인들의 법적 지위에 직접 영향을 준다고 볼 수 없기에, 헌법소원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논리였다.

그러나 이 논리는 결정문 스스로 인정한 사실, 즉 어떤 기록이 지정되었는지를 알 수 있는 목록이 공식적으로 외부에 표시된 바 없다는 사실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무엇이 있는지 알아야 청구할 수 있고, 청구해야 거부당할 수 있으며, 거부당해야 비로소 다툴 수 있는 구조에서, 목록의 봉인은 그 모든 가능성을 처음부터 차단한다. 알권리는 기록의 내용을 열람할 권리만이 아니다. 무엇을 청구할 수 있는지를 알권리, 즉 기록의 존재를 알권리가 그 출발점이다. 목록의 봉인은 알권리의 기초를 원천 봉쇄한 것이다.

이번 서울고등법원의 판단은 이 지점에서 기록학의 원칙과 정확히 일치한다. 법원은 직접 비공개 열람, 심사를 통해 목록의 성격을 확인한 다음, 그 목록이 단순한 메타데이터에 불과하며 공개를 제한할 실질적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다. 기록의 내용과 기록의 존재를 알려주는 목록을 구별하는 이 판단은 기록학이 오랫동안 주장해온 원칙이기도 하다.

대통령기록물법 제16조는 대통령기록물의 공개를 원칙으로 규정하고 있다. 만약 세월호 참사 당일의 청와대 문서들이 생산 직후 정상적으로 등록, 기술되어 공개 목록으로 관리되었다면, 이 사건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기록이 제도 내에서 투명하게 관리될 때 목록의 봉인은 애당초 불가능하다. 이 사건은 대통령기록의 부실한 관리와 불투명한 운영이 어떻게 권리 침해로 이어지는지를 보여준다.

판결이 남긴 과제

이 판결은 중요한 선례를 남겼지만, 동시에 해소되지 않은 과제들을 드러낸다. 무엇보다 이 판결은 목록 공개를 명한 것이지 기록 내용의 공개를 명한 것이 아니다. 세월호 참사 당일 청와대가 무엇을 했는지의 실체는 여전히 봉인된 기록들 안에 있다. 시민들은 이제 목록을 볼 수 있게 되었지만, 그 목록이 공개된다고 해서 기록 자체가 열람 가능해지는 것은 아니다. 진실 규명을 위한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대통령지정기록물 제도 자체의 개혁도 과제로 남는다. 이번 판결은 지정 요건을 갖추지 못한 경우 보호기간 설정행위가 위법하다는 것을 확인했지만, 현행 제도는 지정 요건의 해석에 지나치게 넓은 재량을 허용하고 있다. 더 근본적으로는, 비공개 결정에 앞서 목록만큼은 공개하도록 의무화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기록의 내용을 보호하더라도 기록의 존재는 공개하는 것이 기록관리의 기본 원칙이며, 이를 법제화하는 것이 이번 판결이 제시하는 실천적 과제다.

정보공개 청구와 소송에 소요된 9년이라는 시간도 직시해야 한다. 이 사건의 원고는 법률 전문가였고, 9년을 버틸 수 있는 역량과 의지가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시민은 그렇지 않다. 9년의 소송을 거쳐야만 목록 하나를 볼 수 있는 구조는 정보공개 제도의 실질적 접근성을 근본적으로 제약한다. 비공개 결정에 대한 불복 절차를 단축하고, 대통령기록물에 대한 독립적 외부 심사 기구를 설치하는 것이 검토되어야 한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는 최근 판결 중 사회 변화의 흐름을 반영하지 못하거나 국민의 법 감정과 괴리된 판결, 기본권과 인권보호에 기여하지 못한 판결, 또는 그 와 반대로 인권수호기관으로서 위상을 정립하는데 기여한 판결을 소재로 [판결비평-광장에 나온 판결]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주로 법률가 층에만 국한되는 판결비평을 시민사회 공론의 장으로 끌어내어 다양한 의견을 나눔으로써 법원의 판결이 더욱더 발전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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