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베트남전쟁 종전 50주년이자 한국군 전투병 파병 60년이 되는 해이다. 그러나 베트남전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학살 문제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에 베트남전쟁의정의로운해결을위한시민사회네트워크는 새정부가 진실규명과 공식 사과를 요구하는 베트남 피해생존자들의 간절한 목소리에 응답하여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기를 기대하며 7회에 걸쳐 연속기고를 싣는다.
[연속칼럼①] “내가 가진 건 기억과 진실 뿐” 두 베트남 학살 피해자 한국 찾는다
[연속칼럼②] 법정에서 책임을 물을 수 없었던 학살 사건 ‘들’
[연속칼럼③] 전쟁기념관 둘러본 베트남 학살 생존자 “내 기억과 왜 다른가”
[연속칼럼④] 피해자와 가해자가 한 무대에… 우리는 어떻게 말을 ‘주고받을’ 것인가
[연속칼럼⑤] 베트남전 민간인학살, 이재명 정부는 무엇을 할 것인가
[연속칼럼⑥] 피해자는 있지만 가해책임은 실종된 베트남전 민간인학살
[연속칼럼⑦] 청년들은 왜 먼 나라에 가서 총을 들고 싸워야 했나
석미화/ 아카이브평화기억
지난 6월 19일, 국회의원회관 제1소회의실에서 ‘베트남전 인권침해 진실 규명을 위한 국회 토론회’가 열렸다. 22대 국회에서 발의 준비 중인 ‘베트남전쟁 시기 대한민국 국군에 의한 민간인 및 파병군인 등에 대한 인권침해 사건 진실규명특별법안'(아래 ‘법안’)을 살펴보는 자리였다.
이 법안은 한국의 베트남전쟁 참전과 관련해 오랜 기간 의혹으로 제기되어 온 민간인학살 사건을 비롯해 병사들의 전쟁 동원부터 귀환 이후까지 베트남전쟁에 얽힌 인권 침해적 요소를 두루 조사하여 진실 규명할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20대, 21대 국회에서 ‘민간인학살 사건’에 대한 법안이 상징적 입법 활동에 그쳤다면, 22대 법안은 진실 규명으로 한 발 나아가길 바라는 마음이 크다.

민간인 피해자와 파병 군인의 ‘인권’적 측면에 대한 병렬적 문제 제기는 ‘한국의 베트남 전쟁’에 대한 현재적 의미를 폭넓게 다루기에는 그 한계도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률적 제안과 조사의 필요성을 언급하는 데 있어 명확한 대상과 목적 아래 추진되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측면에서는 고무적이다. 베트남 전쟁을 한국 사회의 발전 신화나 국가 서사로만 인식하지 않고, 폭력의 역사에 연루된 영향을 함께 살펴보아야 한다.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제기되고 있는 베트남 민간인 피해에 대해 진실을 규명하는 것은 물론, 늦기 전에 국립묘지와 박물관에 박제된 전쟁 신화 너머 동원된 존재들의 비극과 전후(戰後)에 대해서도 들여다봐야 한다. 참전군인의 전쟁 동원, PTSD로 인한 전후의 고통, 전쟁터의 죽음들, 귀환 후 일어난 사건·사고, 포로·실종 등으로 귀환하지 못한 이들까지. 종전 이후 5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끝나지 않은 이 전쟁에 대해 진실 규명이 필요하다.
토론회의 두 번째 주제 발표는 이 법안을 제안하는 배경과 이유로서 ‘베트남전 파병 군인의 전쟁 동원과 귀환 이후, 국가 폭력과 인권침해에 대한 조사의 필요성’에 대한 것이었다. 나는 지난 5년여 기간 동안 진행한 참전군인 구술 활동을 토대로 베트남전쟁 참전 기록인 <파월한국군전사>의 숫자들에 대한 의문을 비롯해 병사들의 전쟁 동원과 귀환 이후 조사의 필요성을 중심으로 발표와 문제 제기를 이어갔다. 오경열 참전군인(1970~1972년 참전, 맹호 26연대 통신병)은 토론자로 나서 자신이 겪은 전쟁 동원과 귀환 이후에 대해 긴 이야기를 나누어 주었다.
전쟁이 끝나면 국가는 군인의 죽음을 잊거나 영웅 서사로 남긴다. 전쟁으로 인한 군인들의 피해는 국가의 명예와 보훈제도 아래 수렴되고, 포로와 실종자, 유해 송환과 같은 주제는 정치적인 필요에 의해 이따금 등장하기도, 이내 사라지기도 한다. 군인의 죽음 중 영웅적 죽음은 국가주의의 이념적 상징 아래 그 쓸모를 갖지만, 대부분 병사들이 겪은 전쟁 기억과 고통은 관심받지 못한다. 그러나 전쟁을 수행하는 병사들은 전쟁이 야기하는 폭력의 구조 아래 적극적으로 동원되었다는 점에서 전쟁의 허상과 극한의 폭력, 비극과 부조리를 증명할 수 있는 존재이기도 하다.
평화단체 ‘아카이브평화기억’은 참전군인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소통하고 기록하는 활동을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서로 다른 세대가 ‘역사’와 ‘평화’로 소통하며 참전군인의 전쟁 동원부터 귀환 이후까지 전쟁과 삶 전반에 걸친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들이 겪은 폭력의 상흔을 마주하고 있다. 이 활동으로 축적된 기록이 이날 토론회 발표의 디딤돌이 되었다. 청년들은 왜 먼 나라에 가서 총을 들고 싸워야 했을까. 여전히 끊이지 않는 질문 속에 참전군인과의 만남을 이어오고 있다.

국가는 전쟁 동원을 위하여 무엇을 했나
한국은 해방 후인 1949년 병역법을 제정하여 징병제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한국전쟁 시기부터 본격적인 징병제를 시행하였다. 베트남전쟁 파병이 시작된 시기(1964년, 전투부대 파병은 1965년)는 한국전쟁이 끝난 지 10여 년이 된 시점이며, 전후 복구가 한창인 때였다. 징집 인원 세 명 중 한 명만이 군대에 가던 그 시절에 한 해 최대 5만 명의 병력을 베트남에 주둔시키기 위한 전쟁 동원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참전국 병력 현황 한국 1966년 45,065명/1967년 48,839명/1968년 49,869명/1969년 49,755명/1970년 48,512명/1971년 45,663명/1972년 37,438명 <파월한국군전사10> 528쪽 각종 통계) 어디에도 동원된 숫자만 남아있을 뿐 그들이 어떤 과정 속에서 전장에 갔는지 알 수 없다.
참전군인과 만나며 전쟁터로 가는 과정을 확인하였다. ‘왜 전쟁터에 가게 되었습니까?’, 전쟁터로 가게 된 배경을 질문했을 때 돌아오는 답변에는 명령에 의한 강제 ‘차출’과 자발적 ‘지원’이라는 두 단어가 갖는 원래의 의미로만 해석할 수 없는 복잡한 사정이 있었다. 그 사이에는 자발성을 모호하게 만드는 국가적인 선전 선동과 전쟁 동원에 따르는 인센티브(돈, 진급과 가산점, 기회)가 주요하게 작동하고 있었다.
박정희 정부 시기, 전 국가적인 전쟁 동원 체제 속에 청년들은 전장으로 갔다. 분단 상황과 미군 부대 철수, 휴전선 일대 남과 북의 충돌로 인한 안보 불안은 월남 소식과 함께 대한늬우스와 신문 지면을 장식했다. ‘이념전쟁’이라는 인식 속에 공산주의에 저항하는 자유의 십자군으로서 국군을 표상하고, 대대적인 국민적 동원 에 의한 화려한 환송식과 환영식은 프로파간다의 대미를 장식했다. 그 시절 한국 사회에는 월남전에 대한 넘쳐나는 동원 체제가 작동하고 있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춥고 배고픈 군대가 힘들어 차라리 월남이나 가지’ 하는 마음으로 전쟁에 갔다는 이야기를 빈번하게 만난다. 사고치고 영창에 가지 않으려고 월남에 갔다는 이야기, 상관에게 밉보여 가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적지 않다. 1965년 해병 제2여단(청룡부대)이 전체 차출로 월남에 간 사례를 제외한 대부분의 월남행은 ‘자발적’ 형식을 띄거나, 군대의 ‘명령’에 따라 간 것으로 되어 있다. 실제로 진급하기 위해서 혹은 돈을 벌고자 지원을 했다는 이들도 만난다.
병사들이 월남에 가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하지만 ‘자발’이라는 형식에 어떤 강제적 요소가 개입되어 있는지 들여다봐야 한다. 사회와 군대의 여러 작용 속에 월남으로 가는 형식적 ‘지원’은 현재까지 참전군인에게 전쟁 동원에 대한 저항을 갖지 않도록 하는 배경이 되었을 것도 같다. 사회적 반대 여론을 잠재우는 역할도 했을 것이다. 때문에 이 시기 수많은 병사를 전쟁에 동원하기 위해 어떤 강제와 부조리가 작동했는지 면밀히 살펴야 한다.
강제로 전장에 간 사례를 비롯해 파병을 거부해 벌어진 사건, 사고 등 베트남 전쟁과 관련한 다양한 사례도 확인해 보아야 한다. 베트남 전쟁 시기 국내외 군대에서 일어난 중요사건보고서 등 헌병대 수사 기록, 군 재판 기록, 군형법에 의한 처벌 사례 등을 토대로 군대에서 일어난 베트남 전쟁 파병, 귀환 등과 연결된 사망, 사고, 부조리 등을 조사해야 한다.
<파월한국군전사10>에 따르면, 재판 사건 형기별 처리 현황 사형 42명, 무기 11명 등 총 1,380건 / 징계처리 현황 중징계 154건 경징계 11,922건(영창, 근신, 견책) 영창이 6.716건 등 무수히 많은 사건처리 현황이 확인되고 있으나, 해당 사건은 죄명만 기재하고 있어 자세한 내막은 알 수 없다. 향후 위원회 조사가 이루어진다면 이에 대한 관심과 규명이 필요하다. 베트남전쟁에 특화된 진상조사위원회가 반드시 운영되고 규명해야 할 여러 과제가 존재한다.

전장의 죽음과 실종자들
참전군인이 말하는 전장의 상황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어처구니 없는 일들이 일어나는 곳이기도 하다. 늘 총과 무기를 다루다 보니 사고도 잦다. 고국으로 귀환하며 조금이나마 돈을 벌려는 욕심에 목숨을 잃는 허망한 일도 있다. 훈련을 받다가, 전투와 작전이 아닌 상황에서도 죽음은 늘 곁에 있었다. 한국군 포로와 실종자에 대한 의혹은 오래전부터 제기되어 왔으나, 정부의 문제해결과 입장 표명 없이 현재에 이르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귀환하지 못한 이들에 대한 의혹도 진상규명 대상에 포함되어야 한다. 또한 50년 전 치른 전쟁이 청년들의 삶에 어떠한 비극으로 자리하고 있는지 바라봐야 한다.
이 법안은 베트남 전쟁 시기 대한민국 국군에 의한 베트남 민간인 학살 및 파병군인에 대한 인권침해 실태를 규명하기 위한 조사 기구를 설치하고, 이를 통해 진실 규명과 평화적 미래를 위한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자는 제안을 담고 있다. 위원회를 통해 이 전쟁으로 인한 민간인 희생자 등 수많은 피해와 파병군인에 대한 위법, 현저히 부당한 공권력의 행사 또는 국가보호의무 불이행으로 발생한 베트남 전쟁과 관련된 자살·자해·정신질환, 전쟁후유증 등 그 밖의 중대한 인권침해 사건을 조사해 나가도록 하고 있다.
1940년대에 태어난 참전군인은 현재 80대 전후의 나이로, 국가보훈부 통계에 의하면 총 17만여 명(국가보훈부 참전유공자 등록 현황, 2024년 4월 기준 172,385명/6.25와 월남 참전 중복 인원 제외)이 생존해 있다. 이 숫자는 해마다 5천여 명씩 줄어들고 있으며, 그 규모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 진실을 규명하는 일이 더 늦어서는 안 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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