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에서, 미국에게 제시한 FTA 협정문 제 8장에 투자자 국가 제소제가 들어 있다. 이 제도는 미국인 투자자가 한국의 어느 공공정책으로 인하여 손실을 입은 경우, 그 공공정책이 한미FTA의 투자자 보호 조항을 지키지 못해 손실이 생겼다는 이유로 한국을 국제 중재에 회부하는 제도이다. 한국의 공공정책에 대한 사법적 심사가 세 사람의 민간 중재인단에 의하여 진행되는 것이다. 한미FTA 협정문에는 중재 회부에 포괄적으로 사전 동의하는 조항이 있다.
배제되는 한국 사법부
미국과는 달리 한국에서는 FTA 협정문은 헌법에 따라 체결된 조약이 되어 법률의 효력을 갖는다. 그렇다면 법률을 해석하고 적용할 권한이 있는 한국 사법부가 FTA에 대한 해석 권한과 규범통제 권한을 가져야 한다. 그런데 오히려 미국인 투자자는 한국의 검찰과 대법원의 판결에 대해서도 이를 국제 중재에 회부할 수 있다. 검찰과 법원의 결정에 맞서 보상을 요구한 사건이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에서 일곱 개에 이르렀다. 예를 들어, 칼마크(Calmark) 사건에서 미국인 투자자는 멕시코 검찰과 법원의 사법 절차가 사법정의를 거부한 것(denial of justice)이라며, 멕시코를 중재에 회부하여 보상을 요구하였다. 투자 분쟁에 관한 국제 중재의 판례에 의하면, 사법부의 판결이 국제법 기준에 위반될 경우 중재 회부의 대상이 된다(로벤 사건 판결문 123항, 몬데브 사건 판결문 92항).
또한 투자자 국가제소 제도에 따른 국제 중재절차에서는 한국의 국내법은 우선적으로 적용되지 못한다. NAFTA의 중재 절차에서는 NAFTA 협정문과 국제법 원칙이 적용될 뿐이다(1131조). 그리고 국제투자분쟁 해결센터의 중재 절차 규정은 국제법이 국내법보다 우월하게 적용되는 구조다(협약 42조).
이처럼 한국의 사법부는 미국인 투자자와 관련된 한국의 공공정책이 법률로서의 FTA를 준수한 것인지를 심사하지 못하는 것이다. 미국 조지타운 대학의 에체베리아 교수가 투자자 국가제소 제도를 사법주권 포기라고 비판한 데에는 이러한 배경이 있다(Legal Times, 2004년 3월 8일자). 호주가 미국과의 FTA에서 이 제도의 채택을 거부한 것도 이 때문이다.
헌법의 설 자리
국민은 한국 헌법에 따라, 헌법과 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하여 법률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있다(27조). 그리고 그 재판의 심리는 공개가 헌법의 원칙이다(109조). 공공정책을 대상으로 하는 행정소송의 경우 재판 결과에 따라 권리나 이익이 달라지는 자는 ‘행정소송법’에 따라 소송에 참가하여 일체의 변론을 할 수 있고, 판결이 부당할 경우 항소할 권리가 있다(16조). 그러나 투자자 국가제소 제도에서는 국민에게 밀접한 이해관계가 있는 공공 정책에 대한 시민의 참가권은 원천적으로 배제된다. 중재 절차가 제대로 공개되지도 않는다.
투자자 국가제소 제도의 헌법적 문제점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한국 정부에게 헌법이 정한 범위 이상의 보상을 투자자에게 하도록 강요한다. 한국의 헌법에 의할 때, 국가는 공공 필요에 의해, 법률에 근거해서, 정당한 보상을 함으로써 국민의 재산권을 수용하거나, 사용 또는 제한할 수 있다(23조). 헌법재판소는 구체적인 권리가 아닌 단순한 이익이나 영리획득의 단순한 기회 또는 기업 활동의 사실적·법적 여건은 기업에게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고 하더라도 헌법에 의하여 보호되는 재산권으로 보지 않는다는 일관된 입장을 가지고 있다(헌법재판소 1996. 8. 29. 선고 95 헌바 36 등).
그러나 FTA 판례는 이와 다르다. 마이어스(Myers)사건은 기업 활동의 법적 여건의 변화에 대해서도 보상을 명령한 판례이다. 마이어스라고 하는 미국 회사가 캐나다의 환경호르몬 관리 정책을 국제 중재에 회부한 사건이다. 마이어스는 미국 오하이오 주에 위치한 다염화비페닐(PCB) 폐기물 처리 회사였다. 이 회사는 이미 1994년에 캐나다에 진출하여 이 폐기물을 미국으로 반출 처리하는 사업을 구상하고 이를 준비하였다. 그러나 캐나다는 1995년에 이 폐기물을 미국으로 반출하는 행위를 금지시키는 임시 명령을 발동하였다. 이는 캐나다가 1992년에 비준한 유독성 물질의 국경 간 이동을 통제하는 바젤협약에 따른 조치였다. 캐나다의 임시명령에 의해 마이어스 사의 캐나다 수업추진은 수포로 돌아갔다. 이 회사는 1998년 10월, 2천만 달러의 보상을 요구하면서 캐나다를 국제 중재에 회부하였다. 3인의 국제 중재인단은 2002년 10월, 캐나다에게 605만 달러를 보상하라고 결정하였다. 또한 메탈클래드(Metalclad) 사건에서, 정부가 의도하였던지 혹은 부수적인 결과이든지, 투자자의 자산 사용에 대하여 어떤 간섭 행위가 있고, 그 결과 투자자가 투자 자산의 전부 혹은 중요한 부분을 사용할 수 없게 되거나, 혹은 투자자가 투자 자산에 대하여 합리적으로 기대하였던 경제적 이익을 실현하지 못하는 경우도 보상 의무가 있다고 판정하였다. 이는 앞에서 본 한국의 헌법재판소의 입장과 어긋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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