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락가락하는 담뱃값 인상
‘담뱃값을 언제 얼마나 올리느냐’에 대하여 혼란이 거듭되고 있다. 처음엔 올해 10월에 담배값을 500원 인상하고 내년 7월에 또 다시 500원을 인상한다고 했다가, 9월 중순경에는 내년 1월에 500원 인상하되 내년 7월 담뱃값을 또 올리는 것은 불확실하다고 알려졌다. 그런데 10월 1일 열린우리당과 정부 간의 당정협의에서는 올해 12월에 500원을 인상하고 내년에 500원을 추가로 인상하기로 최종 합의했다고 한다. 이렇게 수 차례 엎치락뒤치락하다보니 담뱃값 인상 시기가 또 다시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혼란스럽다.
사실 건강세상네트워크는 원칙적으로 담뱃값 인상을 지지한다. 우선 담뱃값을 인상하면 성인 꼴초들이야 효과가 크지 않겠지만 청소년과 여성의 흡연률이 낮아지고 또한 흡연을 시작하는 연령이 높아질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었다. 이러한 효과는 전세계적 경험에서도 확인된 바 있다. 또한 담배값을 인상하면 건강증진기금이 확대되어 금연사업, 암검진사업, 공공보건의료확충사업 등을 더욱 활발히 추진할 수 있게 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이처럼 담뱃값 인상은 청소년과 여성의 흡연률을 낮추는 동시에 국민의 건강증진사업에 활력을 불어넣는 2중의 효과를 가져 올 수 있을 것이라고 우리는 기대했던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의 흡연률이 세계 최고수준인데다 통계청이 발표한 『2003년 사망원인통계』 결과 암으로 인한 사망 중 폐암이 위암을 제치고 제1순위로 올라선 상황에서 가장 강력한 금연정책인 담뱃값 인상은 더 이상 주저해서는 안될 문제였던 것이다.
여당과 정부가 담뱃값 인상 시기에 대해 최종 합의했다니 더 이상 변경이 없기를 바란다. 이제는 담뱃값 인상으로 인한 기대효과가 제대로 나타날 수 있도록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계획의 검토가 필요한 때이다.
2. 담뱃값 인상분을 정부 일반예산 대신 사용해서는 안된다
담뱃값을 인상하면 2중의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라는 우리의 기대는 정부의 태도를 보면서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보건복지부는 만일 올해 10월과 내년 7월에 예정대로 담뱃값을 인상할 경우 건강증진기금은 현재보다 약 1조원 가량 증가될 것으로 추계하였다.
그런데 정부는 담뱃값 인상으로 늘어나는 건강증진기금 1조원의 추가분 중 절반 가량을 정부의 일반예산 대신 사용하려 한다. 건강보험 재정에 대한 정부예산 지원액 규모를 줄이면서 건강증진기금을 대신 사용하려 하고, 또 과거 정부의 일반예산으로 하던 사업을 건강증진기금으로 대신하려 하고 있다. 이런 점 때문에 보건복지부 예산 중 보건의료 예산은 2004년에 비해 2005년에 오히려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건강증진기금은 일반예산과 다르다. 건강증진기금은 담뱃값으로 만들어지지만 일반예산은 국민의 세금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둘 다 국민의 돈으로 만들어지는 것이지만, 분명히 다른 점은 건강증진기금은 흡연자들이 담배를 구입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돈이라는 것이다. 또한 건강증진기금은 그 목적과 사용처가『국민건강증진법』에 별도로 정해져 있다. 금연사업을 비롯한 건강증진사업, 건강검진사업, 그리고 공공보건의료 확충을 위한 사업에 사용하도록 되어 있다.
따라서 건강증진기금은 정부의 쌈짓돈이 아니다. 정부의 일반예산 부담을 줄이기 위해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그런 돈이 아니다. 그 돈은 사용되어야 할 목적이 분명한 돈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러한 지적을 받아들여 2005년도 보건의료 예산을 정상적으로 확보해야 한다.
3. 건강증진기금인가? 건강보험기금인가?
올해 2004년의 경우 건강증진기금은 약 7100억원 정도였다. 그런데 이중 6200억원은 건강보험 재정에 지원되었다. 건강증진기금 전체 규모의 87%에 해당하는 금액이었다. 이러다보니 그 동안 ‘건강증진기금’은 사실상 ‘건강보험기금’이라는 비난을 받아왔다. 건강증진기금이 자기 목적보다는 건강보험 재정 지원에 더 많은 비용을 지출해 주객이 전도되었으니 그런 비난을 받을 수도 있었다.
그런데 2005년의 경우 담뱃값 인상으로 건강증진기금이 대폭 확충된다. 이로써 건강증진기금은 사실상 ‘건강보험기금’이라는 비난을 피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맞은 셈이다. 건강보험 재정에 대한 지출을 현 수준에서 묶어두고 늘어난 건강증진기금을 건강증진·공공보건의료 확충 사업에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정부는 이러한 기회를 스스로 무산시키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현행 『건강보험재정건전화특별법』에 의하면 건강증진기금에서는 건강보험 지역가입자 급여비의 10%를 지원하고 정부가 일반예산에서 40%를 지원하도록 되어 있다. 그런데 정부가 이 특별법을 건강증진기금에서 15%, 정부의 일반예산에서 35%로 변경하려는 것이다. 정부는 이를 위해 국회에 『건강보험재정건전화특별법 개정안』을 제출해 놓은 상태이다.
만일 이와 같은 특별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면 건강증진기금에서 건강보험 재정으로 지출되는 금액이 약 4천억원 정도 늘어나는 반면, 정부의 일반예산은 그만큼 줄어들게 된다. 결국 정부의 일반예산 부담을 줄이기 위하여 건강증진기금을 이용하는 것이다.
<표> 정부 개정 방향 : 『건강보험재정건전화특별법』 개정안의 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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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렇게 되면 건강증진기금은 또 다시 절반 이상을 건강보험 재정에 지출하게 되며 여전히 건강증진기금은 ‘건강보험기금’이라는 오명을 벗을 수 없게 된다.
4. 기획예산처의 무지와 보건복지부의 무능이 만들어 낸 합작품
이처럼 담뱃값 인상이 정부의 쌈짓돈처럼 사용될 상황에 놓이자 건강세상네트워크를 비롯하여 그동안 담뱃값 인상에 동의해왔던 많은 단체들은 실망감을 감추지 않았다. 지난 9월 17일 기획예산처 앞에서는 27개 시민사회단체의 공동명의로 이와 같은 상황을 규탄하고 2005년도 보건의료 예산의 정상화와 건강증진·공공보건의료 확충을 위한 예산 확보를 요구하였다.
그런데 이와 같은 상황에 이르게 된 것에는 정부의 일반예산 부담을 줄이기 위한 동기만이 작용하지 않았다. 공공보건의료 확충을 위한 입체적이고 세부적인 사업계획을 만들어내지 못한 보건복지부의 무능과 공공보건의료 확충에 우선 순위를 판단하지 못하고 가시적 성과에만 집착하여 예산을 지원하려는 기획예산처의 무지가 그 밑바닥에 깔려있기 때문이다.
기획예산처와 보건복지부는 내년도 예산을 심의하는 과정에서 공공보건의료 확충과 관련한 예산은 국립대학병원에 암센터와 재활센터를 만들어주는 것에 우선 순위를 두었다. 그러나 국립대학병원은 이미 공공성을 상실해 민간병원과 다를 바가 없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암센터와 재활센터를 지어주는 것이 공공보건의료확충에 우선 순위가 되어야 하는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그나마 다행히도 도시지역 보건지소 설립을 위한 시범사업 예산이 32억원 반영되었지만, 공공보건의료확충의 필수적인 지역거점병원 설립과 관련한 예산은 전액 삭감되었다.
기획예산처는 이를 보건복지부가 공공보건의료확충 계획을 제대로 내놓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비판하고 있고, 보건복지부는 기획예산처가 공공보건의료에 대한 이해부족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이처럼 ‘뭐 묻은 개가 뭐 묻은 개를 나무란다’는 것을 보고 있는 동안 담뱃값 인상과 내년도 보건의료 예산의 불안정성만 커져가는 것 같아 안타깝다.
월간 <복지동향> 2004년 10월호(제7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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