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04 2004-10-10   873

[동향 2] 정부 비정규노동보호법안, 누구를 위한 법인가?

비정규보호법안, 당사자인 노동자는 반대?

정부에서 비정규직노동자보호를 위한 법을 내놓았다. 노동부는 지난 9월 10일 파견업종을 전면적으로 확대하고 파견기간과 기간제(임시직) 사용기간을 각각 최장 3년으로 늘려 고용할 수 있도록 하는 ‘기간제및단시간근로자보호등에관한법률'(이하 ‘기간제법안’)과 ‘파견근로자보호등에관한법률중개정법률안'(이하 ‘파견법안’)을 입법예고하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정부의 발표 후 정작 비정규보호법의 혜택을 받아야 할 노동자들은 정규, 비정규직을 불문하고 정부가 발표한 법안에 극렬히 반대하고 나섰다. 이 법안들은 비정규노동자를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비정규노동을 합법적으로 더 확산시켜 노동자들을 더욱 고통에 몰아넣을 ‘최악의 개악안’이므로 반드시 철회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노동계는 개악안 철폐를 위해 하반기 총파업에 돌입한다고 한다. 우려하는 목소리는 노동자들에게서 뿐만이 아니다. 범시민사회단체들도 사회적 양극화를 부추기고 빈부격차의 심화를 가져올 이 어마어마한 법안이 결단코 통과되지 않도록 강력히 대응하기 위해 공동대책기구를 구성하였다.

‘비정규보호법안’이 어떠한 내용을 담았길래 온 사회가 들썩이는 것인가. 두 법안의 주요내용을 살펴보자.

기간제노동의 무제한적인 사용

먼저 기간제법안을 보자. 정부안에는 비정규직 억제 또는 남용 방지의 핵심 키인 임시직(기간제)사용의 사유제한이 빠져있다. 비정규직 확산과 남용의 직접적인 원인은 바로 사용자가 임시직 비정규 노동자를 무분별하게 사용할 수 있다는데 있다. 따라서 비정규직을 억제하기 위해서는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이유가 있을 경우에만 임시직을 사용하도록 규정해야 하는데, 노동부는 이러한 사유제한 방식을 아예 제외시켰다. 법안 제정 목적과는 달리 기간제 노동의 남용을 방지하는데 아무런 실효성을 거둘 수 없는 안이다. 기간제 노동의 사용사유를 제한하지 않으면 사용자는 분명히 기간제 노동자를 사용할 수 없는 ‘상시적·계속적’인 업무에도 기간제 노동자를 사용하게 될 것이 뻔한데도 말이다.

또 정부안은 3년을 초과하지 않는 범위내에서 기간제 노동자를 사용하도록 허용하고 있다. 즉 현행 1년을 넘지 못하도록 한 임시직을 3년까지 사용할 수 있게 하고 3년이 초과되면 해고제한 규정을 적용하여 함부로 자를 수 없게 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기업들은 3년이라는 기간 내에 임시계약직을 맘놓고 사용할 수 있다. 그리고 3년이 지난 계약직에 대해서 해고를 제한하겠다는 것을 비정규직 남용구제 방안이라고 내놓았으나 3년이 넘도록 임시계약직을 사용할 사업주는 거의 없다. 결국 정부안은 임시직의 남용을 규제하는 것이 아니라 3년 기한의 임시직을 사업주가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제도화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사업주 마음대로 3년 이내에 노동자를 해고하고 새로 채용하는 관행을 더욱 악화시켜 불안정 고용에 처한 비정규 노동자를 확산시키게 될 것이다. 이것은 우리나라 고용시장을 정규직에서 비정규직 중심으로 재편시킬 위험을 안고 있다.

파견업종 전면확대는 비정규직 확산 지름길

정부는 현행 파견법을 개정하여 건설공사업무 등 건설공사현장업무, 유해 및 의료업무 등 몇 가지 금지업무를 제외한 전체 업무로 파견을 허용하겠다고 한다. 파견법이 도입된 이후 파견노동은 법의 취지와는 전혀 달리 직접고용원칙이라는 고용관계의 기본원칙을 해체하여 중간착취를 가능하게 하였고 상시적 고용불안, 노동권 무력화 등 심각한 문제를 낳았다. 정부는 오히려 선진국에도 파견활성화 정책을 펴고 있다면서 파견업종을 확대하는 안을 제시한 것이다. 현행 파견법 제5조는 “근로자 파견사업은 제조업의 직접 생산공정을 제외하고, 전문지식·기술 또는 경험 등을 필요로 하는 업무”로 26개 업종만 허용하고 있다. 즉 파견사업은 전문지식이나 기술이 필요한 경우 등 특정 업무에만 한정해서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원칙이었으나, 정부안은 이를 삭제함으로 파견사업을 일반화시켰고 중간착취에 의한 고용형태를 정상적인 고용의 한 유형으로 변질시키고 있다. 파견노동은 이미 특별한 업종의 제한 없이 소규모 영세 사업장 등에서 사실상 기간의 제한 없이 이루어져 왔으며, 지금껏 정부는 불법파견에 대한 관리감독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해 온 것인데도 불구하고 정부가 현행보다 더욱 후퇴한 안을 내놓았으니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실효성 없는 차별시정기구

기간제법안과 파견법은 임금 기타 근로조건 등에 있어서 합리적인 이유 없이 불리하게 처우하는 것을 “차별적 처우”라고 정의하며 당해 사업 또는 사업장에서 동종 또는 유사한 업무에 종사하는 정규근로자에 비하여 차별적 처우를 하여서는 안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차별적 처우의 가장 중요한 내용은 바로 임금차별이다. 그러나 정부법안은 동일가치노동에 대한 동일임금원칙을 채택하지 않아 무엇을 기준으로 임금차별 여부를 판단할지 의문이다.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기간제 사유제한, 파견노동 엄격규체, 단시간노동자 보호 등 비정규직 규제 내용을 구체적으로 담기 전에는 차별시정기구을 만든다고 해서 실효성을 가질 수 없다.

차별시정기구를 두면서도 정부안은 화물지입차 기사, 골프장 경기보조원(캐디), 학습지교사, 보험모집인, 텔러마케더 등 이른바 개인사업주이나 실제로는 특정 사업주에 종속되어 노동을 제공하는 노동자들인 특수고용노동자들의 노동권에 대해서 아예 언급조차 없다.

비정규보호법안 제대로 만들어야

모두들 우려하지만 정부안이 수정 없이 그대로 국회로 넘어가지 심의될 것은 예상되는 일이다. 정부 개악안이 그대로 국회에서 통과된다면 정규직의 대규모 비정규직화, 비정규직의 합법적 양산과 고착화, 주기적 고용불안 등 우리나라 고용체계와 노동시장은 뿌리부터 흔들릴 것이다. 뿐만 아니라 빈부격차와 사회적 불평등, 여성노동권의 약화, 저소득층 확산으로 엄청난 사회적 문제가 야기될 것이다. 이미 전체 노동자의 반 이상이 차별 받고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사회에서 지속가능한 성장의 가능성을 찾을 수 없다.

따라서 심각한 비정규노동자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무분별하게 확산되고 있는 비정규 사용의 억제와, 부당한 차별의 철폐, 권리보장의 방향으로 법안이 마련되어야 하며 정부는 법안 제개정 방향을 전면 재검토하여야만 한다. 올 하반기에 국회가 과연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지 지켜볼 일이다.

김다혜 /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간사

월간 <복지동향> 2004년 10월호(제7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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