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14 2014-05-10   1532

[기획주제3] 서민금융 그 자체가 복지의 사각지대를 만든다

서민 금융 그 자체가 복지의 사각지대를 만든다

제윤경 l 에듀머니 대표

금융과 복지는 근본적으로는 어울리지 않는 개념이다. 금융은 계약의 의무가 중요한 반면 복지는 의무보다는 권리에 가깝다. 금융은 홀로서기이고 복지는 연대의 의미가 있다. 이런 의미에서 복지와 금융은 대상이 다르다. 특히 복지의 대상자들에게 금융을 공급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사회 전반적으로 금융을 복지의 연장선으로 오해하는 경향이 강하다. 가령 서민에게 은행의 문턱이 높다는 문제제기가 언론에 자주 등장한다. 제도 금융권이 가난한 사람에게 문턱을 낮춰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는 가계 부채 1000조원에 대해 심각한 사회적 우려가 전제되어 있는 것을 고려할 때 비현실적 주장일 수밖에 없다. 마치 고장난 자동 응답기처럼 가계 부채가 경제의 턱 밑까지 밀려 올라와 금융위기로 번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심각한 상황에서도 ‘문턱’에 대한 문제제기가 반복되고 있다. 신용이 지나치게 제한적으로 공급되던 외환위기 이전의 시대에 유효했던 문제제기가 시대 흐름을 반영하지 못한 채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금융을 복지와 혼동하는 경향에서 비롯된다. 외환위기 이전은 저축을 강조하는 시대이고 대출은 주로 기업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신용 공급이 개인에게 제한적이던 시절, 은행에서 돈을 빌릴 수 있는 것은 하나의 특혜로 인식되었다. 이것이 소비자들에게 경험효과로 작용하면서 돈을 빌리는 것을 특혜로 여기는 사회적 감성이 형성되었다. 이로써 신용 등급이 높지 않은 서민에게 돈을 빌려주는 행위야 말로 금융권들이 해야 할 사회적 책무인 것처럼 여기는 사회적 감성이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과잉 대출과 금융의 문턱

그러나 미국에서는 상환 능력이 안되는 사람에게 돈을 빌려주는 행위 자체를 ‘약탈적 금융’이라고 비판한다. 갚을 수 없을 줄 알면서 돈을 빌려주는 것은 다른 식으로 이득을 취하기 위함이 숨겨져 있다고 본다. 이러한 비판의식은 법률 체계에도 반영되어 있다. ‘주택소유 및 자산보호법(HOEPA, Home Ownership and Equity Protection Act)’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이 법안은 1994년 미국 주택담보대출 시장에서 금융 소비자보호를 목적으로 제정된 법안으로 대출자의 상환능력을 고려하지 않은 대출에 대해 ‘약탈적 대출’로 규정해 금지하고 있다. 결국 상환 능력이 안되는 저소득 계층에게 돈을 빌려주는 것에 대해 시혜가 아닌 약탈적 행태로 규정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저소득 계층에게 돈을 빌려주는 것을 시혜로 여기고 있다.

미국에서 저소득 계층에게 돈을 빌려주는 것을 약탈로 규정하는 이유는 금융이 의무와 책임이 강조되는 사적 계약이라는 점을 잊지 않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우리의 사회적 감성이 저소득층에게 높은 금융의 문턱을 지적하는 것은 금융의 본질을 복지와 혼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회적 감성은 저소득층에게 금융권의 카드 발급과 신용 공급에 대해 정당성을 제공한다. 그 결과 소득이 대단히 낮은 사람들조차 신용 카드 여러장을 소지한다. 그 신용카드에는 카드론과 같은 고금리 대출 상품이 숨어 있다. 카드론은 손쉬운 대출로 전화 한통으로 간단히 이용할 수 있다. 다만 20%이상의 고금리로 저소득층이 한 번 카드론을 이용하게 되면 재무 구조는 바로 악성화 단계로 접어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축은행이나 카드론 심지어 보험사의 약관 대출 들이 저소득층에게 무분별하게 공급되는 것에 대한 사회적 비판의식이 높지 않다. 서민에게 신용을 공급한다는 명분으로 과잉 대출에 면죄부가 성립된다. 여기에 이자율이 높은 것조차 저소득층의 신용도에 비해 어쩔 수 없다거나 이자율이 높아야 서민에게 금융이 공급될 수 있다는 식이다. 생활비도 부족한 서민에게 고금리 대출 상품이 서민금융이라는 이름으로 세탁된다. 이런 식의 금융과 복지의 혼동은 과잉 대출의 근원적인 사회 의식구조를 이룬다.

서민에게 금융은 복지가 아닌 족쇄

남편과 사별한 후, 보험설계사로 일하는 한 60대 여성의 소득은 월 60여만원이다. 그녀는 생계 곤란으로 인해 발생한 카드사 등의 빚 2,800만원을 감당하지 못해 2009년부터 신용회복 위원회를 통해 워크아웃을 하고 있다. 당시에는 보험설계사를 시작하면서 좀 더 높은 소득이 가능하리라 여겼다. 소득을 실제 소득보다 높게 책정해 워크아웃 인가는 받았으나 매월 37만원씩 상환해야 했다. 그러나 실제 소득은 60여만원, 워크아웃 상환 금액이 소득의 60%가 넘어가면서 생활에 압박이 가해졌다. 설상가상으로 그녀의 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잠시 그나마의 소득도 중단되었다. 워크아웃은 다시 연체 상태로 넘어갔다. 그럼에도 보험설계사 일을 하면서 동시에 식당일까지 하겠다는 결심으로 부채 상환 계획을 문의 한다. 60대의 나이에 두개의 직업을 얼마나 지속할 수 있을까? 월 소득 60만원인 가정에 쉽게 카드를 발급해주는 금융의 낮은 문턱이 정녕 문제가 없는 것일까?

금융사와 대부업체가 매몰차게 거절했다면 그녀는 불법 사채 시장에 손을 내밀었을까? 싱카포르처럼 전단지, 이메일 등 어떤 형태의 대부업 광고도 허용하지 않는 사회였다면 그녀는 빚에 의존하지 않고 구청 등의 관공서를 통해 복지 수단을 찾았을 것이다. 최저생계비 근처의 소득자에게 수 천만원을 빌려주는 우리 금융권과 대부업은 천사가 아니다. 그들은 그녀가 밥을 굶어가며 혹은 지인들에게 절박하게 호소해서라도 빚을 갚을 것임을 알고 30%이상의 약탈적 대출을 했을 뿐이다.

복지제도 또한 여러 사각지대가 존재하기 때문에 서민에게 금융공급은 불가피하다는 타협적인 생각 또한 적지 않다. 그러나 복지제도의 사각지대 때문에 빚독촉으로 가정이 파괴되거나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상황에 내몰리는 신용으로 복지를 대신해야 하는 것일까?

금융은 문제가 드러나는 것을 지연시킬 뿐이지 문제 해결책이 되지 않는다. 게다가 금융을 통해 지연된 문제는 더욱 끔찍한 형태로 되돌아 온다. 바로 부채 악성화와 빚독촉이다. 복지의 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한 대책은 끊임없이 복지의 기준선을 높이고 제도를 현실화하는 과정이어야 한다. 복지 사각지대에 대한 사회적 문제의식은 이미 대단히 높다. 사회 전반이 저소득으로 인한 가난에 대해 사회적으로 함께 풀어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공감도 높다. 취약계층 스스로도 열패감을 갖기는 하지만 극도의 고립감과 죄책감에 시달리지는 않는다.

그러나 빚은 다르다. 생활비가 부족해 카드를 돌려쓰고 그러다 카드 결제가 버거워 카드론으로 일단 갚는다. 고금리 카드론을 갚다보면 부족한 생활비가 더욱 부족해진다. 연체가 시작되면 빚독촉이 가해지고 빌릴 수 있는 모든 고금리 빚을 찾게 된다. 그러다 결국 연체자 신세가 된다. 여러 개의 대출에 대한 빚독촉이 가해진다. 그 내용은 ‘능력도 안되는 데 왜 빌려썼냐?, 빌려 썼으면 갚아야지.’ 등 비교적 점잖은 것부터 ‘자식 앞에서 망신을 당해봐야 알겠냐’ 등 폭력적인 것까지 동원된다. 자존감을 무너뜨리는 것은 물론 죄책감까지 갖게 만든다.

사회 전체가 빚을 갚지 못하는 것에 대해 비정한 의식을 갖고 있다. 물론 언론이 계층을 망라하고 빚을 가진 사람들이 많은 점을 이용해 손실회피 심리를 자극한 결과다. 즉 나는 빚을 갚고 있는데 저소득층이든 말든 빚을 줄여주거나 면책해주는 것은 불공정하다는 인식을 심은 것이다. 그 결과 잔인한 채권 추심을 허용한다. 복지 대신 금융으로 시간을 벌어주는 것은 결국 저소득층을 완벽한 고립감과 죄책감으로 밀어 넣는 결과를 초래할 뿐이다. 이는 자살율에도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다.

신용이 아닌 금융복지 상담이 필요

저소득층은 어떤 이유에서건 복지의 그물망 밖에서 신용을 이용하도록 내버려 두어서는 안된다. 사회 취약계층에게 필요한 것은 복지 그물망을 좀 더 촘촘히 채움으로써 자립의 실질적인 지원이 이뤄지도록 사회 구조를 개선하는 것이다. 물론 이는 사회 전체적인 구조개선 작업 하에서 이뤄질 일이다.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당장 사각지대에 놓여 칼바람을 맞고 있는 취약계층에게 아쉬운 대목이다. 또한 이미 복지 그물망으로 들어오는 대신 금융의 덫에 빠진 취약계층을 어떻게 구제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남는다.

이런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금융복지 상담 서비스가 필요하다. 금융복지 상담이란 우선 과도한 채무를 갖고 있다면 채무 조정이나 파산 면책 혹은 회생 등의 절차를 가정 형편에 맞게 상담해 준다. 더불어 재무관리 방향을 설계해주고 적합한 복지 수단을 연계해 주는 금융과 재무설계 및 복지의 원스톱 상담 서비스이다. 이미 서울시 등의 지방정부에 금융복지 상담센터가 설치되어 시범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지방정부에서 운영되는 금융복지 상담센터의 경우 지방정부가 지닌 여러 복지 수단을 전제로 복지 전달 체계 역할을 책임 있게 수행할 수 있다. 금융복지 상담은 흔히 금융을 좀 더 지혜롭게 이용하게 해 줄 것이란 일반적인 기대와는 다른 방향으로 운영된다.

금융회사에서 제공하는 금융상담과 달리 금융복지 상담은 저소득층이 금융을 이용하는 것에 대해 경계심을 갖도록 한다. 혹은 이미 과도한 수준으로 금융을 이용하고 있다면 그를 재조정해 줌으로써 금융으로 인한 재무구조 불균형을 극복하도록 돕는다. 가령 보험가입이 과도한 경우, 고금리 대출이 과도하거나 현금흐름에 비해 과잉 대출인 경우, 장기 저축 상품만을 보유한 경우 재조정을 해준다. 금융의 관점에서 상담을 진행하기 보다는 복지의 관점에서 상담이 돌아간다. 이는 저소득층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다.

전 계층이 이용가능한 여러 사회적 자원들이 존재한다. 문화센터 이용이나 구청 교육 문화 프로그램 등 사회적 여러 서비스들을 적절히 활용해 가급적 가계 재무 구조에 부담을 주는 여러 지출 구조를 혁신하면서 동시에 삶의 질을 유지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해 준다. 지방정부의 금융복지 상담 서비스의 경우 정보를 제공해 주는 것에 머물지 않고 실질적인 복지 수단과의 연계를 통해 문제를 구체적으로 해소시켜준다.

지방정부가 지닌 여러 일자리 정책 수단과의 연계를 통해 소득 불안이나 절대적인 저소득의 문제를 해소하도록 돕고 의료비와 교육비, 각 종 문화생활 바우처 등의 복지 수단을 통해 소득 수준과 무관하게 삶의 질을 유지하는 방향에서의 가계 재무 구조 개선 대안을 찾는다. 이 과정에서 이러한 형태의 다양한 복지 수단 활용이 금융회사로 흘러들어가는 것을 막고 채무자의 삶의 기본권이 침해되지 않도록 채무 조정과 추심에 대한 방어막 형성을 함께 도모한다.

금융복지 상담의 궁극적 목적은 가계 재무 구조 악성화 차단 및 극복, 더 나아가 균형잡힌 재무 구조 설계와 가계 재정 안정에 있다. 기존의 채무 조정 프로그램의 경우 당장의 재무 구조 문제 해결에만 집중되어 있었다. 주로 과도한 채무를 워크아웃이나 파산 회생 면책 등의 절차를 진행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주요 상담의 목적이다.

이는 채무자의 빚독촉에 대한 공포심을 제거해 주고 채무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는 적합한 채무 조정절차를 안내한다는 면에서 상당한 의미가 있다. 그러나 여전히 소득과 지출의 불균형이 남아있거나 소득 자체가 절대적으로 낮아 다시 적자구조가 이어지면서 채무가 반복되는 경우가 많다.

금융복지 상담은 바로 이러한 문제까지 뛰어넘기 위한 상담을 지향한다. 당장의 채무 조정 절차만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채무 조정 절차 외에도 채무자에게 필요한 복지 수단을 연결함과 동시에 현금흐름의 균형을 맞추는 재무관리 상담도 제공한다. 더 나아가 당장의 현금흐름 상 수급 균형을 맞춰 주는 것 뿐 아니라 장기적인 생애설계를 통해 저축의 목표를 도출한다.

물론 절대적인 저소득계층에서 장래 필요한 재무 목표에 맞춘 저축이 가능한가에 대한 의구심이 들 수 있다. 물론 미래 재무목표 전부를 해결하는 저축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생애 설계를 통해 미래 계획을 수립하게 되면 내담자들 대부분이 심리적 안정을 찾는다. 미래의 불확실성이 계획을 통해 구체화되면서 해소되기 때문이다.

생애 설계 이전에는 미래의 불확실성이 대부분의 내담자들에게 공포로 내재화되어 있다. 생애 설계에 대한 쳅터에서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할 것이나 우리나라 사람들 상당수가 미래에 대한 과도한 공포심을 갖고 있다. 이는 금융회사들의 과도한 마케팅의 결과이다.

본질적으로 미래에 대한 관념은 불확실성 때문에 불안을 야기하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본질적인 미래 불안을 달성 불가능한 재무 목표로 과장시키면서 금융 투자 혹은 보험의 필요성을 과한 마케팅으로 전개해 왔다. 상담과정에서는 이러한 미래 공포심을 제거하기 위해 생애설계를 좀 더 현실적인 관점에서 접근한다. 자연스럽게 생애 설계 과정에서 미래의 재무 목표가 도저히 달성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공감하면서 심리적 안정을 찾는다. 동시에 지나치게 먼 미래의 재무 목표 보다는 작고 가까운 미래 재무 목표에 집중시킴으로써 저축을 통한 재무 목표의 달성을 경험하도록 동기 부여 한다. 복지의 사각지대는 정작 서민 금융이라는 이름의 과잉 신용 공급이다. 더 이상 복지로 접근해야 할 문제를 금융으로 대체하도록 허용해서는 안 될 것이다.

월간 <복지동향> 2014년 05월호(제18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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