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25 2025-06-01   10735

[기획3] 지역 간 의료불평등 해소를 위한 재정분권의 필요성

정백근 | 경상국립대 의과대학 교수

보건의료 재정분권의 필요성

지방분권의 핵심은 공공재의 공급과 이에 상응한 재원 배분이다. 일반적으로 공공재의 혜택이 국가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에는 중앙정부가 제공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반면 공공재 혜택의 범위가 일부 지역에 국한될 때는 지방정부에서 제공하는 것이 효율적이면서 효과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이영희, 2003).

보건의료 영역에서도 지방분권에 대한 논의가 지속되어 왔다. 특히 최근에는 지역의료의 취약성이 심화되면서 이를 극복하기 위한 중요한 전략으로 보건의료 지방분권이 강조되고 있다. 하지만 보건의료가 공공재에 해당하는가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들이 있다.

공공재란 어떤 사람의 소비가 다른 사람의 소비에 감소를 초래하지 않는 재화다(Samuelson, 1954). 즉, 특정 재화의 소비로부터 사회구성원을 배제하기 어렵고(비배제성), 이의 소비를 위하여 서로 경쟁할 필요성이 약한 재화(비경합성)를 의미한다. 흔히들 ‘국방‘과 ‘치안’을 대표적인 공공재의 예시로 드는 것처럼, 공공재는 정부의 역할과 함께 논의되고 나아가 정부의 존재를 정당화하는 영역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공공재는 정부가 공급에 참여하게 되는데 그 이유는 비용을 부담하려 하지 않는 무임승차자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시장에 맡기면 공공재의 충분한 공급이 어려워지기 때문에 정부가 공급에 참여하여 최적량을 사회구성원에게 제공해야 한다(사공영호, 2017). 이때 정부가 주도하여 공공재를 직접 공급할 것인지, 시장에 의해서 공급되지 못하는 나머지 영역을 정부가 보충할 것인지는 해당 공공재에 대한 정부의 관점 및 태도가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보건의료 중에는 명확히 공공재로 분류할 수 있는 영역이 있다. 대표적으로 코로나19 팬데믹 시기 우리가 충분히 경험한 바 있는 정부의 공중보건 위기 대응 조치들이다. 코로나 팬데믹 초기 한국은 모든 확진자나 접촉자를 대상으로 역학조사와 방역 조치를 취했고, 이때 아무도 배제하지 않기 위해서 확진자와 접촉자들의 신용카드 사용 내역 등 가능한 모든 정보를 확인함으로써 코로나19의 확산을 막기 위한 노력을 취했다. 이때는 굳이 이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서 사람들이 경쟁할 필요도 없었다. 이와 달리 다른 한 극단에는 미용, 성형과 같이 생명, 안전, 건강과 직접적인 연관성이 없는 보건의료의 영역이 있다. 이런 이유로 관련 영역의 서비스는 대체로 비급여 서비스일 뿐만 아니라, 말 그대로 상품으로 취급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를 제외한 대부분 보건의료는 공공재적 성격이 얼마나 강하냐에 따라 양극단으로 이루어지는 전체 스펙트럼 안에서 어느 자리를 점하게 된다. 한국 보건의료정책의 핵심 영역인 필수의료 영역의 대부분이 여기에 속한다.

영국이나 북유럽 복지국가를 비롯한 NHS 방식으로 의료보장을 하는 대부분 국가는 정부가 직접 보건의료서비스를 사회서비스의 일환으로 공공재처럼 공급한다. 그러나 한국은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공적 의료보장제도를 시행함에도 불구하고 이윤추구적인 민간 부문이 대부분 보건의료서비스를 제공한다. 이때 보건의료서비스는 상품적 성격을 가지게 되는데 이 경우 지방분권 자체가 큰 의미가 없다. 적어도 지방분권을 논하는 단계에서는 지방정부의 보건의료에 대한 책무성 강화가 전제되어야 하는데 대부분 보건의료서비스가 기본적으로 시장원리에 의해 배분되고 있는 상황에서 지방정부가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보건의료서비스는 지리적 접근성이 중요하고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일정한 의료생활권 내에서 서비스가 이용될 확률이 높다. 그러므로 보건의료에 대한 지방정부의 책무성 강화는 특정 의료생활권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보건의료의 지방분권은 해당 의료생활권 주민들의 의료이용과 관련된 고통과 문제가 주민들의 삶의 공간에서 구체적으로 해결될 가능성을 높이게 된다. 현재의 상업적 보건의료체계에서는 분권의 영향력이 제한될 수밖에 없으나, 보건의료체계가 크게 의료제공체계와 의료재정체계의 두 축으로 구성된다고 할 때 의료제공체계의 상업성을 당장 극복하지는 못하더라도 보건의료재정의 분권을 통해서 지방정부의 책무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들이 지속되고 있다.

보건의료 재정의 특성

재정분권이란 중앙정부의 재정권한이 지방정부로 이양되는 것을 의미한다. 즉, 재정을 자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권한과 재정을 자기 책임하에 창출할 수 있는 권한을 지방정부로 이양하는 것이다(김태영, 2019). 그러므로 지방정부가 자율적으로 지방세를 부과하고 징수하기 위하여 세목, 과세표준, 세율 등을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과세자주권을 확보하는 것이 재정분권의 전제조건이다. 현재 지방자치제하에서 지방정부는 세목 결정권은 없으며 제한된 범위에서 과세표준 결정권과 세율결정권을 갖고 있기 때문에 과세자주권이 제한받고 있다. 그러므로 지방정부가 필요한 재원 규모를 결정하고 이를 자율적으로 조달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김대영, 2000). 만약 지방정부의 과세자주권이 충분히 확충된 상항이라 할지라도 재정을 확보할 능력이 부족한 지방 정부에게는 재정분권이 반드시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 않는다. 한국과 같이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 격차가 크고 비수도권이 수도권에 종속된 상황에서는 재정분권이 오히려 이 격차를 더욱 키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므로 재정분권의 강화는 그 물적 토대인 지방의 재정기반 확충이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 보건의료의 재정분권 역시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재정 의사결정은 일반적으로 3대 원칙을 고려해야 한다(김종면, 2020). 첫째, 사용할 수 있는 재원의 총량을 정하는 것이다. 정부의 재정계획이 정부가 지출할 수 있는 가용자원의 총량을 넘어서서는 안 된다. 둘째, 부문 간 균형을 고려하면서 부문 간 배분을 하는 것이다. 국방, 교육, 산업, 치안 등 다양한 부분에 재원을 배분해야 하는 상황에서 제 분야 간 균형된 재원배분을 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보건의료에 투입할 수 있는 재원의 규모가 확정될 수 있다. 셋째, 부문 내 여러 사업과 정책에 어느 정도 재원을 배분할지 결정해야 한다. 보건의료 부문에서도 다양한 사업과 정책이 추진되는바 재원 투입의 효과성과 효율성을 고려하면서 적절한 예산이 투입되어야 한다. 그러나 한국의 보건의료재정은 다른 부문의 재정과는 달리 예산 외로 처리되는 부분이 매우 크다. 이때, 예산 외로 처리되는 부분의 대부분은 건강보험재정이다.

2025년도 예산과 기금을 포함한 보건복지부 소관 분야별 총지출 규모 중 보건 분야는 총 18조 3,041억 원이었다(보건복지부, 2025). 이 중 보건의료는 4조 1,764억 원이었고 건강보험은 14조 1,277억 원이었다. 이때 건강보험 영역에서는 건강보험가입자 지원, 공무원 및 교원 국가부담금 보험료, 차상위계층 지원, 재난적 의료비 지원사업, 한국형 상병수당 시범사업 예산이 포함되어 있었다. 또한, 복지 분야 예산 중에는 의료급여에 8조 6,882억 원이 배정되었다. 이런 점들을 고려해서 보면 2025년도 보건의료 관련 지출 중 보건복지부가 직접 집행하거나 운영하는 사업과 관련된 예산 및 기금은 4조 1,764억 원에 불과하다. 하지만 공공부문 보건의료지출 중 예산 외로 처리된 건강보험 지출은 2024년 총 97조 3,626억 원이었고 이 중 정부지원금 12조 2,000억 원을 제외하더라도 85조 원이 넘었다. 이와 같이 한국의 보건의료재정 대부분은 건강보험재정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그러므로 한국적 상황에서 보건의료 재정분권을 논하기 위해서는 건강보험 재정의 분권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한국의 건강보험은 단일 보험자체제로서 건강보험재정은 중앙집중성이 강한 재원이다. 건강보험재정의 중앙집중성은 건강보험 재정통합 때문에 더욱 구조화된 것으로 이는 사회보험으로서의 건강보험이 지녀야 할 사회연대성이 구현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건강보험재정의 지방분권은 건강보험제도의 사회연대성 약화에 대한 논쟁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지역의료의 취약성과 지방정부의 대응

앞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보건의료의 재정분권 논의는 지역보건의료의 취약성이 심화함에 따라 점차 힘을 얻고 있다. 특히 비수도권 비광역시 지역은 수도권 및 대도시보다 의원, 병원, 종합병원 접근성이 열악하다. 국토교통부가 발간한 한 보고서에 의하면 의원 평균 접근 거리는 제주특별자치도를 제외한 모든 비수도권 비광역시 지역이 가장 멀었고 병원 평균 접근 거리 역시 경상남도를 제외한 모든 비수도권 비광역시 지역이 그러하였다. 이에 반해 종합병원 평균 접근 거리는 모든 비수도권 비광역시 지역이 가장 먼 것으로 보고되었다. 이상과 같이 비수도권 비광역시 지역은 의료이용의 모든 단계에서 수도권과 대도시보다 의료기관 접근성이 낮다(국토교통부 국토지리정보원. 2021).

이런 상황 때문에 비수도권 중소도시와 농촌 지역 주민들은 의료필요를 충족하기 위하여 자신들의 거주지가 아닌 다른 지역의 의료기관을 이용한다. 2022년 현재 진료 실인원 당 관외 의료이용 입내원일수가 가장 많았던 지역은 전남(13.2일), 경북(11.6일), 전북(11.0일)이었고 관외 의료이용으로 지출된 진료비가 가장 많았던 지역도 전남(2,252,092원), 경북(2,169,081원), 전북(1,922,034원)이었다. 반면 관외 의료이용 입내원일수 및 진료비가 가장 적었던 지역은 모두 수도권과 광역시 지역이었다. 이때 비수도권 비광역시 지역의 관외 의료이용으로 인한 입내원일 수와 관련 진료비는 각각 수도권의 1.3배, 1.7배에 해당하였다. 문제는 비수도권 비광역시 지역의 의료취약성이 점차 심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소멸위험지역의 증가와 무관하지 않다.

2021년 10월 정부는 소멸위험도가 높은 기초지자체 89개 지역을 인구감소지역으로 지정하였는데 이 중 85개 지역이 비수도권이었으며, 79개 지역은 비수도권 비광역시 지역이었다. 인구감소지역은 몇 가지 특징이 있는데 그 중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20~34세 청년 인구 비중은 2010년부터 2020년까지 지속적으로 감소하였고 노인 인구 비중은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것이었다(이상호, 2018; 최예슬, 2022). 특히 비수도권 20대의 유출은 심각한 상황인데 2013~2022년 수도권의 20대 순유입 인구는 590,838명이었고 세종특별자치시를 제외한 모든 비수도권은 20대의 순유출이 있었다. 젊은 청년들이 수도권으로 가는 이유는 거기에 좋은 대학과 좋은 일자리가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의 위계적 관계가 비수도권의 인구 감소와 인구 고령화의 원인이다. 이런 위계적 관계는 1960년대 국가 주도의 수출 공업화 이후 일관되게 지속된 한국의 경제개발정책에 의해 구조화된 것으로서 엄밀히 이야기하면 이는 ‘비수도권의 쇠퇴에 기반한 수도권 중심의 자본축적전략’에 기인한 것이다.

이런 이유로 비수도권은 전체적으로 인구가 감소하고 구매력이 낮은 노인 인구의 비중은 높아지게 된다. 그 결과 전반적인 수요가 줄어들면서 시장이 축소되는데 의료시장도 예외가 될 수 없다. 특히 한국은 이윤추구적 민간 부문이 의료공급 대부분을 담당하는바 수요 감소가 의료시장에 급속하게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이런 과정들이 지역의 의료취약성 심화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 결과 비수도권 지역, 그중에서도 중소도시와 농촌 지역에서 의료의 정치적, 정책적 우선순위가 점차 높아지고 있으며 보건의료와 건강 문제는 중요한 정치적 쟁점이 되고 있다. 특히 비수도권 비광역시를 관할하는 지방정부의 경우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지역의료의 문제점들을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인지할 수밖에 없을 뿐만 아니라 지역의료의 취약성으로 인한 주민들의 고통을 외면할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있다. 하지만 지방정부가 지역의료의 문제를 즉각적으로 해결하는 데는 많은 한계가 있다. 앞에서도 언급하였듯이 의료공급을 민간 부문이 주도하고 있는 상황에서 지역의료의 취약성을 지방정부가 직접 해결하기 위한 정책 수단이 부족하다.

또한, 보건의료행정과 재정의 중앙집권성 때문에 지방정부가 지역의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권한과 자원이 부족하다. 지방정부는 의료취약지를 지정하는 권한, 책임의료기관을 지정하는 권한, 진료권을 설정하는 권한, 권역응급의료센터를 설치하는 권한 등 지역의료 취약성을 극복하는 데 필수적인 행정적 권한을 확보하고 있지 못한 상태이다.

지방정부가 보건의료 문제를 해결하는 것과 관련된 중요한 행정적 권한을 갖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 재정적 역량 또한 취약하다. 중요한 보건의료재정은 중앙집권성이 강한 건강보험 재정일 뿐만 아니라 2025년 광역지방정부의 재정자립도는 평균 43.2%에 불과하다. 특히 의료취약도가 높은 비수도권 비광역시 광역지방정부의 재정자립도는 세종특별자치시를 제외하고 23.6%∼34.3%에 불과하여 광역지방정부 스스로 보건의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재정 여력이 부족하다. 기초지자체는 그 상황이 더욱 열악하여 평균 재정자립도는 18.7%이며 전체 기초지자체의 20%에 해당하는 45개소는 재정자립도가 10%가 되지 않는다. 이 중 41개소는 비수도권 비광역시에 속해 있는 기초지자체이다.

1960년대 이후 일관되게 추진되어 온 수도권 중심의 자본축적 전략, 이윤추구적 민간 부문이 주도하는 의료공급체계, 지방정부의 행정적·재정적 권한의 미약함 속에서 지역의료의 취약성은 갈수록 심화될 가능성이 크다.

지역 간 의료불평등 해소를 위한 재정분권의 방향

지역 간 의료불평등의 근원적 요인 중의 하나는 수도권 중심의 자본축적 전략에 기인한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 위계적 구조이다. 하지만 그 속에는 이 사회를 구성하는 모든 사람의 건강권 및 의료이용에 관한 권리 등 보편적 이익을 옹호하는 힘을 압도하는 국가권력, 전문가 권력, 경제권력 연합의 권력이 존재한다. 그러므로 비수도권 중소도시와 농촌 지역으로 대표되는 지역의 의료취약성은 보건의료에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다. 이런 맥락에서 지역 간 의료불평등을 해결하는 과정은 비수도권 지역의 구조적 취약성을 극복하는 과정과 연결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이와 연관된 권력관계의 변화와도 직결된다. 국민국가를 전제한다면 그 과정은 한국 사회의 모든 사람이 거주지와 관계없이 평등하게 존중받고 살아가는 정치공동체를 만들어 나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지역 간 의료불평등 해소는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 및 공공성 강화와 그 궤를 같이 한다.

비수도권 중소도시와 농촌 지역의 주민들은 건강과 의료이용으로 인한 고통의 심화 때문에 삶의 불안정성이 극대화되어 있다. 이런 상황을 반영하듯 공공보건의료 강화를 통하여 지역의료 문제를 해결하려는 주민들의 조직적 운동이 점차 확산되고 있다. 이는 지역의 정치에도 영향을 미쳐 지역의료의 정치적, 정책적 우선순위 역시 점차 높아지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지역의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지방정부와 조직화된 지역주민들 간의 협력, 때에 따라서는 갈등이 지역의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중요한 원동력이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현재와 같은 보건의료 행정 및 재정의 중앙집권성이 극복되지 못한다면 지역의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지역의 에너지는 소진될 가능성이 크다. 문제 해결과 관련된 지방정부와 지역주민들 간 소통과 협력이 일정한 합의에 도달하고 실천 전략을 구체화한다 할지라도 이를 실행하기 위한 권한과 자원이 지역에 있지 않다면 지역의료의 취약성을 극복하기 힘들 것이다. 하지만 신자유주의적 관점에서 자원의 투입은 자본축적에 도움이 될 때만 정당화될 수 있다는 점에서 자본주의 생산성 향상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 노인들, 이들의 비중이 갈수록 높아지는 비수도권 지역의 의료문제 해결을 중앙정부와 중앙의 의사결정자들에게 기대하기는 힘들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므로 지금도 고통이 발생하고 있고 그 고통을 해결할 수 있는 에너지가 분출되는 곳, 그곳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민주주의와 공공성에 기반하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분권과 참여가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서 문제 해결의 권한과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재정적 자원이 지방정부와 지역주민들에게 이양되어야 한다.

하지만 현재와 같이 지역 간 불평등이 구조화되어 있는 상황에서 완전한 재정분권은 오히려 지역 간 의료 격차를 더욱 심화시킬 가능성이 크다. 그러므로 우선은 지역의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중앙정부의 예산을 확대하고, 예산의 분권적 성격을 강화하여 이를 지방정부에 교부할 수 있어야 한다. 중앙정부의 지역의료 강화 예산은 일반예산 및 기존 관련 기금의 확충, 지역의료 발전기금 등의 새로운 기금 조성 등 다양한 수단을 동원하되 지방정부가 지역의료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서 자율성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 목표와 예산에 대해서 소통하고 합의할 수 있는 기전이 구축되어야 한다.

그뿐만 아니라 지방정부가 목표 및 예산을 설정할 때, 그리고 이를 집행하고 그 결과를 평가할 때는 반드시 지역주민들의 주도적 참여에 기반할 수 있도록 하는 법적, 제도적 인프라를 확충해야 한다. 동시에 한국 보건의료 재정에서 가장 비중이 큰 건강보험 재정이 지역의료 확충에 기여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현재 건강보험 재정은 수도권 중심의 민간의료체계를 강화하는 재정 기반이 되고 있어서 오히려 지역의료를 약화시키는데 기여하는 측면이 있다. 건강보험은 재원조달의 측면에서 일정한 사회연대성을 기반으로 한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지만, 재정지출의 단계에서는 오히려 사회연대성을 약화시키는 측면이 있는 것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건강보험재정에 대한 국고 지원액을 확대하고 건강보험재정의 일정 비율을 지역의료 강화에 투입해야 한다. 이때 비수도권 지역의 높은 노인 인구 비율을 고려하여 노인장기요양보험재정과 건강보험재정이 통합된 형태로 지역의료 문제 해결에 투입되게 함으로써 지역이 의료-요양-돌봄 문제를 통합적으로 다룰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국민건강보험과 노인장기요양보험은 보험료 납부를 자격조건으로 급여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정부의 책무성을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위탁한 사회보장제도로서 정부의 건강보장에 대한 책무성을 획기적으로 강화하고 보편적 의료보장의 원칙을 보다 극대화할 수 있는 새로운 건강보장제도에 대한 상상력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 이런 맥락에서 지역 간 불평등을 단계적으로 극복해 나가면서 NHS와 같은 대안적 건강보장제도를 실현시키고 장기적으로는 스웨덴과 같이 지방세 기반의 NHS를 통하여 보건의료 재정분권을 구현하는 것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지역의료 강화를 위한 재정의 분권성이 강화된다고 해서 중앙정부의 역할이 축소되어서는 안 된다. 분권의 대표적인 문제점 중의 하나가 지역 간 불평등 심화라는 점에서 지역 간 불평등을 모니터링하면서 적시에 개입할 수 있는 중앙정부의 역할은 오히려 강화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런 개입들이 지역의료 취약성의 근본적 요인인 수도권 중심의 자본축적의 힘을 직접 교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개입 자체가 지역의료를 규정하는 구조와 조건을 일정하게 변화시킬 수 있다는 점 또한 명확하다. 그리고 이런 변화가 지역 간 의료불평등을 포함한 전반적인 사회불평등 및 지역불평등을 완화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사실 이런 개입과 변화, 가능성조차도 지역이 주체가 되는 정치적 실천 없이는 구현될 수 없다는 점에서 이 과정에서 요동치는 권력관계가 사회구성원들의 보편적 이익을 구현하는 사회권력의 강화로 귀결되는지가 관건일 것이다. 그러므로 보건의료의 재정분권 역시 민주주의 및 공공성과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 참고문헌 |

· 김태영, 2019, “재정분권에 대한 이해와 오해-지방소비세 제도와 재산세 공동과세제도를 중심으로”, 『한국지방행정학보』 16권 3호, 201-220.

· 김대영, 2002, “과세자주권 확충방안: 주행세를 중심으로”, 『지방행정연구』 16권 2호, 1-20.

· 김종면, 2020, “재정 시각에서의 보건의료 부문 현안”, 『KIPF 조세재정브리프』 99호, 2-7.

· 보건복지부, 2025, 『2025년도 보건복지부 소관 예산 및 기금운용계획 개요』.

· 국토교통부 국토지리정보원, 2021, 『2020 국토모니터링 보고서』.

· 국가통계포털 홈페이지(https://kosis.kr/)

· Samuelson, PA., 1954, The Pure Theory of Public Expenditure. The Review of Economics and Statistics, 36(4), 387-389.

월간 <복지동향> 2025년 6월호(제32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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