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는 매년 시민강좌로 “내 생애 첫 사법감시 – 판결문 함께 읽기”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시민의 시각으로 판결문을 파헤치며 읽어볼 때, 권위와 불통 뒤에 숨은 법원의 속내와 허점을 시민이 감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일환으로 강좌에 참여했던 시민이 직접 집필한 시민 판결비평 칼럼을 발행합니다.
2024년 올해 강좌에서는 ‘돌봄·기후·참사’를 주제로 책임지지 않는 국가권력에 대한 법원과 헌법재판소의 판결·결정을 함께 읽었습니다. 첫 번째 시민비평은 ‘참사’에 대한 판결문, 이태원 참사 책임자인 박희영 용산구청장 등에게 무죄를 선고한 1심 판결에 대해 시민 서한솔, 임정원 님이 직접 비평해 봅니다.
| 판결비평 시민비평특집 | 2024년 “내 생애 첫 사법감시 – 판결문 함께 읽기 : 돌봄·기후·참사“ ① 박희영 용산구청장 무죄, 이태원 참사의 책임 묻지 않은 법원 / 서한솔 · 임정원 ② ‘돌봄 살인’의 사회적 책임 지적한 1심, 좋은 판결문이란 무엇인가? / 조혜윤 · 유서재 |
10.29 이태원 참사 책임자 박희영 용산구청장 등에 대한 무죄 판결
서울서부지방법원 제11형사부 판사 배성중(재판장), 김병일, 백송이 2024.09.30 선고 2023고합26
박희영 용산구청장 등 무죄 판결문, 왜 인터넷에서 찾아볼 수 없나요? (클릭)
형사 사건 판결서(판결문)의 경우, 판결이 확정되기 전까지 인터넷에 공개되지 않습니다. 때문에 시민들이 1심 판결서를 살펴보고자 해도, 최종심이 종료되기 전까지는 판결서를 읽어보긴 어렵습니다. 하지만 법원은 언론 기자들에게는 판결서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시민들은 빼놓고 말이죠.
이에 참여연대는 시민들이 쉽게 판결서를 살펴보고, 사법감시에 참여할 수 있도록 2006년부터 ‘판결문 공개 운동’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2013년 확정된 형사 판결서가, 2015년 확정된 민사 판결서가, 2023년 미확정 민사 판결서까지 인터넷 열람이 가능해진 것은 오랜 운동의 결과입니다.
현재 22대 국회에는 미확정 형사 판결서까지 인터넷으로 열람할 수 있도록 하는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발의되어 있습니다. 이제 미확정 형사 판결서도 시민들에게 공개되어야 합니다. 시민들이 판결문을 직접 읽어볼 수 있을 때, 높은 담장 뒤 법원의 속내와 허점을 바로 우리가 직접 감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서한솔 / 2024년 “판결문 함께 읽기” 강좌 수강생
판결 비평을 쓰는 지금 10·29 이태원 참사 2주기를 맞았다. 지난 9월 30일, 서울서부지방법원의 박희영 등에 대한 1심 판결로 인해 상처를 입으신 유가족분들과 생존자분들께 담담한 위로의 인사를 전해드리고 싶다. 그 당시도, 2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정부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 자연스레 증명되었으나 무력감을 느낄 시간도 없다. 우리는 159개의 별을 잊지 않고 기억하며 행동해야 하므로 비평을 기꺼이 하고자 한다.
주최자도 없고, 관련 규정도 없었다는 것이 이유가 되는 세상
이태원 참사 발생 당시의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약칭 재난안전법)」에서는 국무총리는 국가안전관리기본계획의 수립지침을 작성하고, 시·도지사는 해당 시·도의 안전관리계획을 작성한다. 국가의 기본계획과 시·도의 관리계획에 따라서 시장·군수·구청장도 역시 해당 지역의 안전관리계획을 수립하고 심의하여 확정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당시 용산구도 2022년 2월경 서울시의 지침에 따라 <2022 용산구 안전관리계획>을 작성하고 심의를 거쳐 확정하였다. 결국 이 계획은 국가 차원의 계획(1단계)부터 시작하여 시·도 차원(2단계), 시·군·구 차원(3단계)까지 함께 유기적으로 작동하는 것이라 보는 것이 마땅하다.
하지만 법원은 몰상식한 판결을 했다. 참사 발생 당시의 「재난안전법」은 다중 운집으로 인한 인파 사고가 재난의 유형으로 분류되어 있지 않았으며, 과거 용산구는 핼러윈 데이를 대비한 안전관리계획을 수립한 적도 없으며, 주최자가 없는 행사에서 발생할 수 있는 다중운집인파사고에 대비한 별도의 안전관리계획을 수립해야 한다는 의무 규정이 없었기에 죄가 없다고 했다. 이 판결로 인해 시민들은 사건·사고를 대비하기 위해서 무조건 주최자가 있는지부터 확인하게 될 것이다. 주최자가 없으면 법이 있어도 책임을 물을 수 없기 때문이다.
체계도 없고 전단지 수거와 언론대응이 더 시급하고 중요한, 막무가내 용산구
피고인 박희영은 이태원 참사 발생 당일 오후 9시 용산구청 당직 근무 중인 직원들에게 삼각지역 대통령실 인근 집회 현장 시위 전단지를 수거할 것을 지시하였다. 기록으로 살펴보면 오후 9시는 112에 대형사고가 나기 일보 직전이라는 신고가 접수된 시각이었다. 용산구청 안전건설교통국은 안전기획ㆍ재난관리ㆍ생활안전 등 용산구 관내의 안전정책을 총괄하며 조정하는 부서임에도 불구하고 내부 연락망 하나 제대로 구축되지 않았음이 밝혀졌다.
이뿐만 아니다. 당직실에 근무하고 있던 직원은 서울소방방제센터 직원이 오후 10시 29분에 ‘압사당하겠다’라는 신고가 들어왔다는 취지의 말을 들었음에도 아무 조치를 취하지 아니했다. 심지어는 참사 발생 다음날 홍보담당관실의 A 주무관은 용산구청 정책보좌관에게 보도자료 초안을 보내 송부했고, 정책보좌관이 이를 직접 수정하며 허위 사실을 기재한 바도 있다. 하지만, 판결은 시민들의 생각과는 달랐다. 법원은 일부 직원들의 미숙한 근무로 미흡한 결과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업무상과실이나 허위공문서작성에 대한 죄를 물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미 심각한 내용의 신고 내용이 서울소방방제센터로부터 들어왔음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조치도 하지 않았고, 안전정책을 총괄하는 부서가 이미 설치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부 연락망이 존재하지 않았으며, 참사 수습으로 바쁜 와중에 왜 정책보좌관이 언론 업무를 담당하는 공무원을 통해 허위의 보도자료를 배포했는지 다시 한번 묻고 싶다. 매우 안타깝다. 이제는 안타까움을 넘어 역겹기까지 하다.
‘국민정서와 상식’ 배반한 판결, 납득할 수 없습니다
“이런 일로 사단장이 처벌받으면 사단장을 누가 하느냐”라며 대통령이 격노했다는 이야기가 채상병 사망 사건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드러나게 되었다. 만약 판사가 “이런 일로 지방공무원이 처벌받으면 지방공무원을 누가 하느냐”라는 생각으로 이러한 판결을 내리게 된 것이라면 제대로 번지수를 잘못 짚었다고 말해주고 싶다. 참사 대응에 있어서 잘못되었거나 미흡한 부분이 이미 판결문을 통해 만천하에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그 누구 한 명도 처벌하지 않으며 무죄의 결정을 한 것은 면죄부를 준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법원은 시민들이 보기에 정의롭지 못하다고 느끼는 결정이나 분명하게 위법으로 보임에도 불구하고 기가 막히는 판결을 할 때가 있다. 국가가 ‘그 자리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로 인해 159명은 작별 인사도 하지 못하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이별하게 되었다. 2022년 10월 29일을 모두가 참사를 목격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판결을 내리다니 이해할 수 없다. 가끔씩 ‘국민정서에 반한다’는 말을 하게 될 때가 있다. 오늘 이 판결을 비평하며 돌려주고 싶은 말이 있다.
‘국민정서와 상식을 배반한 판결, 누구도 납득시킬 수 없다.’
임정원 / 2024년 “판결문 함께 읽기” 강좌 수강생
“법대로 해”라는 말은 그만큼 “법” 앞에 우리는 평등하고 “법”은 우리를 보호해 주며, 그래도 “법”은 공정하리라는 희망적인 문장이 아닐까 싶다. 2024년 10월 현재, 대한민국의 사법부는 과연 모든 국민에게 평등하며, 공정한지 반문하고 싶은 시점이다.
국가란 무엇인가?
국가의 3요소. 영토, 국민, 주권. 우리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배워왔다. 국가는 국민을 보호해 주어야 하는 거대한 권력이자 울타리이다. 지난 오랜 세월에 거쳐 우리나라는 헌법 전문에 나와 있듯이 유구한 역사와 전통 속에서도 여러 국가 폭력에 시달려 왔다. 제주 4·3사건, 4·19, 부마민주항쟁, 5·18과 같이 거대하지 못해 숨이 쉬어지지 않을 만큼 충격적인 국가폭력은 어쩌면 아직도 존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국가가 그 커다란 권력의 칼날을 휘두를 때 보호받아야 마땅한 우리 국민들은 가장 작고 무기력해진다. 억울해도 말할 곳이 없어진다. 그때마다 과연 우리를 보호해 주어야 했던 국가는 어디에 있었을까. 커다란 칼날을 휘두르던 국가에게 국가의 3요소 중 하나인 국민은 필요치 않은 존재였을까?
판결문에 나오는 “혐의없음”에 대해 생각해 보면 검사들이 주장하는 공소사실에 대해 혐의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피고인들은 모두 죄가 없다. 無罪(무죄). 그들은 과연 죄가 없는 것인가.
국경일도 아니고, 주최 측이 있는 공식 행사도 아니라고 한다. 다중 운집의 경우와 주최 측이 있는 경우 과연 어느 경우가 더 위험할지 상상할 수 있겠는가. 또한 핼러윈(Halloween)은 이미 수십 년간 10월이 되면 즐거운 행사로 자리매김하였다. 누군가는 외국 명절이라 말하기도 하겠지만 사람들은 깔깔거리며 가장 우스꽝스럽게 혹은 가장 멋지게 치장을 한다. 2년 전 그날, 우리들이 기억해야 할 158명의 소중한 이름들이 하루아침에 아픔을 겪었다. 그들은 즐거운 마음으로 길을 걸었을 것이며, 여느 때와는 다른 분위기 속에 멋진 하루를 보내고 있었을 텐데 말이다. (함께 있다 생존했던 1명이 2차 피해로 인해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이름은 159명이 되었다.)
그때 과연 국가는 어디에 있었을까.
왜 모든 피고인들은 혐의가 없다는 것인가.
지방자치의 필요성을 되돌아보자. 과연 지방자치는 왜 필요한 것일까? 지방자치법은 제12조 제1항에서 사무처리의 기본원칙으로 “지방자치단체는 사무를 처리할 때 주민의 편의와 복리증진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우리는 평소대로 행하는 일들은 관례라고 칭한다. 법에도 그러한 법을 ‘관습법’이라 하여 법전에는 적어 놓지 않았지만 오랜 시간 그렇게 지내온 관례와 같은 법으로 으레 지켜오는 법이 있다. 지금까지 이태원이라는 특정 지역에 특정한 날에는 많은 인파가 모인다는 것을 암묵적으로 우리들은 익히 알고 있지 않았는가.
처벌할 법이 없어서 죄가 없다는 것은 정확할지는 모르겠으나 어쩌면 가장 비겁한 판결문이 아닐까 싶다. 억지로 처벌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비난의 근거가 되어야 할 부분이 면책의 대상으로 변하였다.
지방자치단체장으로서의 책무, 공무원의 책무. 과연 그날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 적어도 공권력은 안전에 대해 발휘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서두에 이야기한 “법대로 하자”라는 말은 그만큼 우리나라 사람들이 법을 의지하고, 법은 공평하며, 그 누구에게나 평등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번 판결문은 공정하지도, 상식적이지도 않았다.
검사들이 공소사실로 정한 “업무상과실치사, 업무상과실치상, 허위공문서작성, 허위작성공문서행사, 직무유기” 이외에 헌법에서 정한 인간이 존엄성과 기본적 인권을 보장받지 못한 159명의 시민을 기억할 것이며, 대통령의 책무와 지방자치단체장의 책무 그리고 지방자치에 대한 생각을 다시금 하여 본다. 도의적, 정치적, 정무적 책임을 지는 사회. 안전한 사회. 다시는 대형 참사로 인한 아픔을 겪지 않는 사회를 바라며 무거운 마음으로 판결문을 수 차례 읽어본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아직 기억해야 할 이름들이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본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는 최근 판결 중 사회 변화의 흐름을 반영하지 못하거나 국민의 법 감정과 괴리된 판결, 기본권과 인권보호에 기여하지 못한 판결, 또는 그 와 반대로 인권수호기관으로서 위상을 정립하는데 기여한 판결을 소재로 [판결비평-광장에 나온 판결]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주로 법률가 층에만 국한되는 판결비평을 시민사회 공론의 장으로 끌어내어 다양한 의견을 나눔으로써 법원의 판결이 더욱더 발전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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