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는 매년 시민강좌로 “내 생애 첫 사법감시 – 판결문 함께 읽기”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시민의 시각으로 판결문을 파헤치며 읽어볼 때, 권위와 불통 뒤에 숨은 법원의 속내와 허점을 시민이 감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일환으로 강좌에 참여했던 시민이 직접 집필한 시민 판결비평 칼럼을 발행합니다.
2024년 올해 강좌에서는 ‘돌봄·기후·참사’를 주제로 책임지지 않는 국가권력에 대한 법원과 헌법재판소의 판결·결정을 함께 읽었습니다. 두 번째 시민비평은 ‘돌봄’에 대한 판결문, 장애가 있는 자녀를 살해한 친모에 유죄를 선고하면서도 국가의 책임을 명시한 판결에 대해 시민 조혜윤, 유서재 님이 직접 비평해 봅니다.
| 판결비평 시민비평특집 | 2024년 “내 생애 첫 사법감시 – 판결문 함께 읽기 : 돌봄·기후·참사“ ① 박희영 용산구청장 무죄, 이태원 참사의 책임 묻지 않은 법원 / 서한솔 · 임정원 ② ‘돌봄 살인’의 사회적 책임 지적한 1심, 좋은 판결문이란 무엇인가? / 조혜윤 · 유서재 |
장애가 있는 자녀를 살해한 친모에 대해 유죄를 선고하면서도 국가의 책임을 명시한 판결
울산지방법원 제11형사부 판사 박주영(재판장), 김도영, 정의철 2020.5.29. 선고 2019고합365 [판결문 보기]
조혜윤 / 2024년 “판결문 함께 읽기” 강좌 수강생
2020년 5월 29일, 울산지방법원은 형법 제250조 제1항에 따라 피고인을 유죄로 판단하고 형법 제53조, 제55조 제1항 제3호에 따라 징역 4년을 선고했다. 재판장 박주영은 양형 이유 중 하나로 피고인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있는 점을 꼽았다. 재판장은 이와 더불어 양형 이유를 상세하게 서술하며 살해 후 자살, 소위 ‘동반자살’의 구조적인 원인 또한 톺아본다. 판결문은 초반부 법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해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담는다는 점에서 독특한 형식을 취한다.
판결문은 살해 후 자살의 원인과 대책에 대해서 “일가족 자살, 동반자살로 치부된 문제는 개인사가 아닌 사회, 구조 문제에 가깝다고” 말한다. 즉, “이들을 제도 안에서 지켜내지 못한 사회 그리고 구조신호에 무신경했던 국가 역시 아이들 죽음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말이다. 다만, 재판장은 가해 부모의 범행을 온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에는 동의할 수 없다고 말한다. 고민의 끝에서 판결은 “개인의 불행이 아무리 견디기 힘들더라도, 아이를 살해하는 행위는 그 어떤 이유에서도 용납될 수 없음을 확인할 수 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말한다. “아이의 생명을 앗아간 이런 참혹한 범죄를 두고 참작할 만한 사정이 될 수 있는 그 어떤 고통도, 그 어떤 변명의 존재도 단호하게 부정한다”고 설명한다.
판결문은 후반부에서 아동의 생명권을 환기시키며 “아이들에게 출생의 자유가 없다고 죽음마저 그러하다 말할 수 없다. 설령 가난과 장애 때문에 행복이 담보되지 않은 삶이라도, 불행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진 인생이더라도, 이들의 미래와 생명은 그 누구도 좌우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피해자는) 생물학적 부모인 피고인의 아이만이 아니다. 우리가 사회적 부모이다. 우리가 딸을 잃었다”고 하며 아이의 죽음의 원인에는 사회적인 책임이 있다고 다시금 강조한다.
궁극적으로 판결은 우리나라가 어떤 돌봄 사회를 향해 나아가야 할 것인지 질문을 던진다. 돌봄이 오랫동안 사적 가족/친족체계 안에 갇혀 있었다는 점, 그리고 사회적 지원이 턱없이 부족한 이유로 보호자들이 극단적인 선택에 내몰리게 된다고 진단한다. 다만, 재판장은 사회가 어떻게 책임을 질 수 있을지에 대한 방법에는 ‘인간애,’ ‘타인에 대한 연민’ 등 추상적인 수사를 언급하며 판결문을 끝맺는다는 점에서 아쉽다. 이는 역설적으로 입법부의 역할을 주목하게 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사회적 책임에는 구체적인 법령과 예산이 필요하고, 더 나아가 국가는 장애인과 그의 돌봄을 수행하는 가족 혹은 돌봄 노동자 모두 인간다운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할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돌봄이 가부장적 가족 체계에 갇혀 있다면, 정부가 외면한 장애인 돌봄 공백은 고스란히 어머니의 몫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유서재 / 2024년 “판결문 함께 읽기” 강좌 수강생
살해 후 자살, 좋은 판결문이란 무엇인가?
이 사건은 발달장애를 가진 아동을 양육하던 어머니가 극심한 스트레스와 경제적 곤궁에 따른 우울증 등으로 신변을 비관하여 만 9세인 피해 아동을 다량의 정신과 약을 먹여 살해한 사건이다. 이 사건의 재판장은 박주영 판사로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판결문을 작성하는 것으로 유명하고, 토크쇼인 <유 퀴즈 온 더 블럭>에도 출연한 바 있다.
필자 또한 이 판결문을 읽으면서 다른 판결문에서 느끼지 못했던 많은 감정들을 느꼈다. 그러나 이것이 판결문에 긍정적 혹은 부정적으로 작용할지 의문을 가지게 되어 이에 대해서 논해보고자 한다.
김상준 전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는 박사학위 논문에서 ‘더 좋은 판사’란 머릿속에서 이루어진 모든 생각의 전 과정 여로를 가다듬어 생생하고도 솔직하게 고민의 치열함을 판결문에 풀어놓아야 한다고 했다. 이런 점에 있어서 해당 판결문은 좋은 판결문이라고 할 수 있다. 선고형의 결정에 있어서 범행 전후 상황뿐만 아니라 성장 과정, 건강 상태, 성격, 향후 계획, 지지 환경 등의 여러 방면에 있어서 피고인이 왜 이러한 행동을 하였는지에 대해 다각도에서 조망하였다. 또한 살해 후 자살의 원인과 대책이라는 소제목에 있어서는 일명 동반자살로 일컬어지는 아동 살해의 원인과 대책을 여러 연구 자료와 설문, 인터뷰를 인용하여 자세히 설명하였다. 이 부분을 읽다 보면 왜 판사가 이러한 판결을 내릴 수밖에 없었는지 그 과정이 함께 그려지는 듯하고 판결 당시, 판사의 고뇌 과정을 알 수 있다.
하지만 해당 판결문에는 이뿐만 아니라 피고인의 행동에 대해, 그 상황에 대해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어떠한 감정을 들게 하거나 연민이나 이해, 공감을 하게 만드는 문장도 있다. 이러한 감정을 이끌어내는 글들은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좋은 글, 효과적인 글이라고 할 수 있지만 판결문에서까지 이러한 공식이 적용될지는 의문이 든다.
예를 들어 선고형의 결정 마지막에는 ‘마치며’라는 소제목으로 비유적인 표현이 존재한다. 이를 인용해 보자면 “반복되는 이런 범행을 볼 때마다 당원은 ‘청테이프가, 번개탄이, 졸피뎀이, 수면유도제가, (중략) 계획에 없던 가족여행이, 혼자 남겨진 인형이, 발에 묻은 그을음이, 부러진 손톱이’ 두렵다.” 우리는 위 사항들이 일명 ‘살해 후 자살’의 다양한 형태였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다.
유영근 전 의정부지법 남양주지원장은 법률신문의 글 “감정이 들어간 판결문과 공소장”에서 세상에 비슷한 사건은 많아도 똑같은 사건은 없다며, 판결문에까지 비유적인 표현이 들어가면 받아 든 당사자는 대부분 판사가 상황을 과장하고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했다고 반발하게 된다고 했다. 즉, 피고인은 자신이 짓지도 않은 죄까지 포함하여 양형이 선고되었다고 느낄 수 있다. 결국 판결문에 판사가 고뇌한 논리 체계와 범행의 사실이 아닌, 개인적인 감정과 의견이 들어간다면 판결에 대한 신뢰성은 확연히 낮아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또 다른 예로 ‘세상을 일깨우기 위한 희생은 최초의 한 아이만으로도 이미 충분했다. 부족한 건 언제나 공감과 행동뿐이다.’라는 문장이 있다. 사건의 대략적인 개요를 아는 사람들은 이는 매우 옳고, 도덕적인 말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문장들은 정치적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그렇기에 판사는 가치중립적인 언어, 가치중립적인 문장을 사용해야 하는 것이다. 판사가 어떠한 정치적 성향을 가지고 있다고 선입견이 생기는 순간 사람들은 자연히 양형에 대해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일반인이 공감할 수 있는, 이해할 수 있는 판결문을 작성하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가장 그 판결을 이해시켜야 할 사람은 사건의 당사자이다.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고 다른 사람을 설득하는 글은 누구나 쓸 수 있다, 하지만 법의 언어로 자신의 논리 체계를 소상히 설명하고 어느 누가 읽어도 사건의 양형 이유를 논리로써 설득할 수 있는 글은 판사만이 쓸 수 있다. 법의 언어와 일상적 언어의 간극을 좁히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떠한 편견도 없이 오로지 논리로만 써 내려간 법의 언어이다. 우리는 일상적인 언어와 법의 언어, 논리와 공감 중 그 어느 쪽도 선택할 수 없다. 그렇기에 좋은 판결문을 위한 끝없는 균형 맞추기는 계속되어야 한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는 최근 판결 중 사회 변화의 흐름을 반영하지 못하거나 국민의 법 감정과 괴리된 판결, 기본권과 인권보호에 기여하지 못한 판결, 또는 그 와 반대로 인권수호기관으로서 위상을 정립하는데 기여한 판결을 소재로 [판결비평-광장에 나온 판결]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주로 법률가 층에만 국한되는 판결비평을 시민사회 공론의 장으로 끌어내어 다양한 의견을 나눔으로써 법원의 판결이 더욱더 발전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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