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참여연대 청년의 목소리 2026-04-23   235474

[범청년행동] 수도권 취업자 51.6%… 청년들은 왜 고향을 떠날까요

우리는 ‘적정한 삶’을 원합니다

김설 | 청년유니온 비상대책위원장 / 범청년행동 공동대표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사회는 이렇습니다 기사 제목 캡쳐 ⓒ청년유니온

나고 자란 곳을 떠나 서울행 기차에 오르는 청년이 여기 있습니다. 지역의 사립대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취업을 위해 각종 자격증까지 손에 쥔, 누구보다 단단한 역량을 가진 친구였습니다.

하지만 그가 나고 자란 지역사회에는 그 역량을 펼칠 수 있는 일자리가 없었습니다. 기껏해야 진출입만 쉬울 뿐 승진과 임금 인상이 닫혀 있는 저임금 서비스직이나 보조 업무가 전부였으니까요. 결국 그는 치열한 경쟁과 비싼 물가를 감수하고서라도, 온전한 ‘1인분의 삶’을 영위할 기회를 찾아 거대한 수도권의 파고 속으로 뛰어듭니다.

통계청이 발표한 고용동향에 따르면 수도권 취업자 비중이 51.0%를 넘어서고 있습니다(2023년 12월 기준). 모든 것을 상대적 기준으로 평가할 수는 없지만, 서울로 가지 못한, 혹은 가지 않은 지역의 청년들은 부모의 자산에 기대거나 생애 주기를 기약 없이 유예하며 ‘체념’이라는 단어에 익숙해지는 것은 현실에 더 가깝습니다.

그동안 지역 청년의 삶 곁에 정치와 행정은 어떤 모습으로 존재했나요?

모두가 ‘지방 소멸’이라는 공포를 동력 삼아 목소리를 높입니다. 하지만 지자체장들이 소멸위험지수를 계산하며 청년 여성을 인구 재생산을 위한 ‘수단’으로만 취급하는 동안, 정작 그들이 지역에서 시민으로서 뿌리 내릴 공간을 만드는 데는 철저히 침묵했습니다. 청년들이 삶을 선택하는 기준은 시대의 속도만큼이나 변했지만, 행정은 여전히 ‘남초 중심’의 거대 산업단지 조성이라는 과거의 문법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전국에 남발된 2,500여 개의 ‘특구’를 보며 묻습니다. 너도나도 제2의 실리콘밸리, AI 허브, 반도체 클러스터를 외치며 대기업 유치전에 행정력을 쏟아붓는 동안, 지역 청년들의 일상은 안녕하십니까? 뜬구름 잡는 거대 서사에 매몰되어 파편화된 청년들의 고달픈 현실을 외면해 온 것은 아닌지 뼈아프게 성찰해야 합니다.

▲지역별 특구지정 현황 국정현안관계장관회의 겸경제관계장관회의 ‘지역 특구 및 산업클러스터운영현황 및 평가’ 자료 중 ⓒ재정경제부

우리가 원하는 건 텅 빈 산업단지나 몇 달 쓰다 버려지는 질 낮은 단기 일자리가 아닙니다.

생존을 넘어 시민으로서의 존엄을 지키고 내일의 삶을 기획할 수 있는 ‘적정한 삶(Decent Life)’입니다. 짐을 싸는 청년들을 붙잡으려면, 이제 패러다임의 중력을 완전히 바꾸어야 합니다.

명목 임금의 한계를 넘어서는 ‘지역 청년 사회적 임금 패키지’가 필요합니다. 지역의 민간 시장이 당장 수도권 수준의 임금을 보장하기 어렵다면, 이제는 지자체가 청년들의 곁에 서야 합니다. 비수도권 근로장려세(EITC)를 확대하고 대중교통 무상 패스, 주거비 지원, 문화·건강 바우처를 통합적으로 연결해 청년들의 생계비 지출을 획기적으로 낮추어야 합니다. 시장 소득에 이러한 ‘사회적 임금’이 결합되어 가처분 소득이 든든해질 때, 청년들은 비로소 생애주기를 유예하지 않고 내 집 마련이나 가족 구성 같은 내일의 삶을 꿈꿀 수 있습니다.

‘시간의 통제권’을 되찾아주고 성평등한 일자리 문화를 우리 동네의 표준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장시간 노동과 무급 돌봄의 굴레는 청년 여성을 지역에서 밀어내는 가장 아픈 가시입니다. 주 4일제와 유연근무제 같은 ‘적정 노동시간’을 선도적으로 도입하는 지역 기업에 4대 보험료 지원이나 조세 감면 등 파격적인 인센티브를 건네야 합니다. 동시에 성별 임금 격차를 투명하게 공시하고 고용 가이드라인을 강화하여, 여성들이 경력 단절의 두려움 없이 지역의 동료로 온전히 성장할 수 있는 토대를 닦아야 합니다.

실효성 없는 특구 남발을 멈추고 ‘성평등·녹색·적정 일자리’라는 새로운 원칙 위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하향식 기업 유치와 단기 일자리로 숫자를 채우는 행정은 더 이상 대안이 될 수 없습니다. 이제는 지역 고유의 자원과 공동체의 필요를 바탕으로, 청년들이 스스로 일거리를 기획하고 실험할 수 있는 지역 주도형 플랫폼을 구축해야 합니다. 지속 가능한 미래를 담보하는 녹색 산업과 평등한 일자리 문화가 지역 경제를 지탱하는 새로운 에너지가 되어야 합니다.

서로의 ‘연결’에 보상하는 ‘참여 소득’으로 무너진 사회적 자본을 다시 쌓아 올려야 합니다. 동네의 돌봄망을 돌보고, 기후 위기에 대응하며, 버려진 유휴 공간에 온기를 불어넣는 일들은 경제적 수치로 다 담을 수 없지만 우리 지역에 반드시 필요한 귀한 노동입니다. 이러한 활동을 정당한 노동으로 인정하고 ‘참여 소득’을 지급할 때, 고립되었던 청년들은 다시 동네 안에서 서로의 손을 잡게 됩니다. 이 단단한 커뮤니티야말로 청년들을 지역에 머물게 하는 가장 따뜻하고 강력한 중력이 될 것입니다.

삶을 지켜낸다는 것은 거창한 권력투쟁이 아닙니다.

내 곁의 동료가 쫓기듯 고향을 떠나지 않아도 되는 곳, 수도권행 티켓 없이도 이곳에서 온전한 삶을 누리며 내일을 그릴 수 있는 동네를 만드는 일입니다.

청년들이 서울로 향하는 것은 그곳이 완벽해서가 아니라, 고향에서는 ‘다음’을 꿈꿀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제 무의미한 숫자 놀음은 멈춥시다. 청년들이 발 딛고 사는 이곳에서 스스로 일거리를 기획하고, 동네 친구들과 연결되며, ‘적정한 삶’을 누리는 것. 우리가 바라는 진짜 지역 균형 발전은 바로 거기서부터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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