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참여연대 청년의 목소리 2026-05-27   875263

[범청년행동] 디지털 연결 시대의 고독, 동네에서 돌봄을 잇자

화면이 아닌 동네에서 돌봄이 이어지는 삶을 위해

이재정 | 불평등 물어가는 범청년행동 공동대표

‘셋로그(Set-Log)’ 앱을 통해 지인들과 일상을 공유하는 스마트폰 화면 캡처 이미지. 영상 속 인물들의 모습과 함께 "오늘 맛있는 거 챙겨 먹었네", "오늘도 고생 많았어!" 등의 다정한 댓글 반응이 나열되어 있어 온라인을 통한 일상의 연결을 보여준다.
▲셋로그 사진 셋로그를 통해 일상을 나누는 사진 ⓒ이재정

셋로그(Set-Log)를 아시나요? 지인들과 서로의 일상을 영상으로 기록해 공유하는 앱(어플리케이션)입니다. 요즘 셋로그 영상을 모아 SNS에 올리는 것이 일종의 유행입니다. 주로 혼자 일하는 프리랜서인 저에게, 앱 상에서 친구들과 나누는 몇 마디 인사는 생각보다 큰 위로가 됩니다. “오늘 맛있는거 챙겨먹었네”, “왠지 지쳐보이는데, 오늘도 고생 많았어!” 화면 너머 건네는 이 짧은 한 마디가 괜시리 내일 하루도 공들여 살아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한달까요?

디지털 연결이 채우지 못하는 것

돌이켜보면 제가 셋로그에서 안정감을 느끼는 건, 그 관계가 실제 오프라인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온라인의 잦은 연락이 오프라인 만남을 더 기대하게 만들고, 그 만남이 다시 온라인 연결에 온기를 더하는 것이죠. 디지털 사회의 연결은 이처럼 새로운 관계의 가능성을 열어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또 다른 단절과 고립을 낳을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됩니다. 철학자 한병철이 <피로사회>에서 지적했듯, 새로운 미디어 환경과 커뮤니케이션 기술의 발달 속에서 끊임없이 연결되고 생산해야 한다는 강박은 오히려 극심한 피로와 우울을 초래합니다. 관계는 그저 소비재가 되어버리기도 하고요. 상대방의 반응을 기다리지 않아도 되고, 불편하면 언제든 연결을 끊을 수 있는 온라인 관계는 편리하지만, 그만큼 얕고 쉽게 소모됩니다. 익명성과 피상적 연결만으로는 현대 사회의 외로움과 고립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외로움 해소 정책이 필요하다

요즘 우리 사회의 가장 중요한 화두 중 하나는 ‘외로움’입니다. 외로움은 성별, 계급, 지위를 막론하고 누군가를 병들게 할 수 있는 무서운 요소입니다. 특히 청년층은 코로나19 이후 대면 소통을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늘고, 취업시장이 얼어붙으면서 구직생활이 길어지거나 구직 의사마저 포기한 이들이 많아지면서 관계의 어려움을 토로하는 경우가 잦습니다. 고립과 은둔, 고독사 등의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되면서, 새로운 연결과 관계의 가능성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가 중요한 정책 과제가 되었습니다.

다행히 일부 지자체는 오프라인 관계망의 공백을 메우기 위한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올해 인천광역시는 지자체 최초로 외로움 돌봄국을 만들고, 이웃 간의 교류를 활성화하고 다양한 상담과 지원 방안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그외 여러 지자체 역시 1인 가구 정책이나 커뮤니티 지원 정책을 내놓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꼽히는 춘천의 ‘도시가 살롱’은 지역의 카페나 공방 등의 공간을 공공이 하루 임차해 지역 주민들이 모이는 살롱을 기획하는 커뮤니티 사업입니다. 지역에 가족 외 새로운 관계가 생겼다며 주민들의 만족도가 높다고 합니다.

외로움과 고립 문제를 다룬 인천광역시의 외로움 정책 인포그래픽 이미지. '외로움, 개인을 넘어 사회적 위기로'라는 헤드라인 아래, 인천광역시의 고립·은둔 청년 3.9만 명(전체 청년의 5% 수준), 일 평균 자살 2.6명(인구 10만 명당 31.2명으로 OECD 국가 중 최고), 연간 고독사 260명(50~60대 남성이 고독사에 취약), 1인 가구 41.2만 가구(전체 가구의 32.5%) 등 구체적인 통계 수치가 그래프와 함께 시각화되어 있다.
▲인천광역시 외로움 정책 인천광역시 홈페이지에 게시된 외로움 정책 관련 이미지 ⓒ인천광역시

동네 친구와 커뮤니티의 필요

현대 사회는 확실히 진득한 만남보다는 느슨한 연결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어딘가에, 또는 누군가에 접촉되고 연결되고 싶어합니다. 인간은 혼자만의 힘으로 살아갈 수 없으니까요. 결국 밀접한 관계를 만드는 가능성은 오프라인에 있습니다. 범청년행동이 미래세대를 위한 디지털 전환의 방향으로 온라인을 넘어선 오프라인 기반의 촘촘한 관계망을 제안하는 이유입니다.

최근 범청년행동은 전국 4개 권역(충청, 영남, 호남, 강원)을 돌며 지역의 다양한 청년들을 만났습니다. 관계와 고립은 어느 지역에서나 중요한 화두였습니다. 일자리나 기회를 찾아 수도권으로 떠나는 친구들이 많아지면서 동네에서 만날 수 있는 사람이 점점 사라진다는 한탄도 있었고, 그것이 지역을 떠나는 또 다른 이유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런 대안도 논의됐습니다. 좁은 원룸 주방이 아닌 공용주방에서 함께 반찬을 만들어 나누거나, 함께 장을 보고 물건을 나누거나, 서로의 재능과 취미를 공유하는 등 특정한 성과를 만들어내지 않아도 서로 연결되고 만나는 것만으로도 성과가 되는 커뮤니티 사업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대전 청년공간에서 열린 '불평등물어가는범청년행동 개최 충청권 지역 활동가 간담회' 기념 사진. 참석한 청년 활동가들이 '지방선거 대응 권역별 간담회 간담회'라는 문구가 적힌 빔프로젝터 화면을 배경으로 두고 서서, 카메라를 바라보며 다 함께 한쪽 주먹을 쥐고 파이팅 포즈를 취하고 있다.
▲지방선거 대응 권역별 간담회 대전 청년공간에서 진행된 불평등 물어가는 범청년행동 개최 충청권 활동가 간담회 ⓒ불평등 물어가는 범청년행동

청년센터를 새로운 돌봄망의 기반으로

전국 225개 청년센터와 청년미래센터를 청년들의 온오프라인 관계망을 다지고 사회적 지지망을 만드는 거점으로 활용하는 것은 어떨까요? 이를 위해서는 기초 단위부터 광역, 중앙에 이르기까지 지역별 현황에 발맞춘 상향식 정책 연계가 필요합니다. 청년센터 운영체계를 정비해 예산 제안, 집행, 평가까지 자율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청년들이 자율적으로 지역 내에서 무언가를 도모해볼 수 있도록 ‘청년참여예산제’를 도입해야 합니다. 청년들이 개개인의 문제를 지역의 의제로 만들고, 스스로 동료를 모으고, 지역을 떠나지 않고도 자신의 삶을 바꿀 수 있다는 효능감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야 합니다. 지역 내 다양한 커뮤니티가 활성화되고 촘촘한 사회적 연결망이 마련될 때, 고립과 은둔에 놓일 위험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습니다.

서울청년센터 성북의 2026 성북 청년 커뮤니티 지원사업 "와글와글 성북마을" 홍보 포스터. 노란색 배경에 서울청년센터 성북의 캐릭터인 참새가 다양한 모습으로 포스터 전체에 나와있다.성북 청년들의 자율적이고 창의적인 커뮤니티 활동 지원 사업.
▲서울청년센터 성북의 커뮤니티 지원사업 포스터 ⓒ서울청년센터 성북

청년들이 고립과 은둔을 하게 되는 큰 이유는 경쟁적 관계에 지치거나, 평가받는 것이 두렵거나, 깊은 관계를 유지할 에너지가 부족한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느슨한 연결부터 촘촘한 관계망까지, 다양한 층위의 커뮤니티가 고립은둔을 예방할 수 있는 방지턱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공공과 민간의 자원을 잘 연계해 청년기부터 상호 돌봄과 연대의 문화를 만들어간다면, 청년기부터 노년기까지 전 생애에 걸쳐 돌봄 불안 없이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는 돌봄망을 만들 수 있습니다. 화면이 아닌 동네에서 돌봄이 이어지는 삶, 그것이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야 할 디지털 전환의 방향입니다.

위 로고 이미지를 누르시면, <불평등 물어가는 범청년행동>의 6·3 지방선거 캠페인 페이지로 연결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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