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애 첫 사법감시 – 판결문 함께 읽기 모임 수강생 후기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유명한 격언이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법의 언어’는 지나치게 어렵고 낯설다. 제도 개선 운동에 있어 입법과 사법은 매우 중요한 수단이지만, 그 언어를 이해하는 데는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다. 참여연대에 상근하는 필자조차 장벽을 느끼는데, 일반 시민들은 오죽하겠나라는 생각이 든다. 법조계가 자연스럽게 권력화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들은 자신들만의 언어로 견고한 성벽을 쌓고 그 권력을 공고히 한다.
지난 6월 15일부터 7월 6일까지 진행된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의 <판결문 읽기 모임> 강좌는 바로 이 공고한 성벽에 금을 내는 시간이었다. 오랜 기간 이어져 온 이 강좌는 시민이 직접 판결문을 읽고 해석함으로써 사법 권력을 감시할 수 있는 역량을 기르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번 강좌는 특히 시민의 삶과 밀접한 ‘집·일터·삶터의 안전할 권리’라는 주제로 네 차례에 걸쳐 진행되었다.
첫 강의에서는 판결문을 구하고 읽는 방법, 그리고 법의 기본 원리를 배웠고, 나머지 세 강의는 구체적인 개념 설명과 실제 판결문 강독으로 구성되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도움이 된 것은 판결문을 독해하는 과정이었다. 사건번호에 숨은 의미, 판결문의 구조와 서술 순서, 변호인과 대리인의 명칭 차이 등 시민들이 쉽게 알기 어려운 디테일을 배운 점이 기억에 남는다. 이어지는 강의에서는 노동권, 환경권, 주거권 등 당연히 보장받아야 함에도 현실에서는 잘 주목받지 못하는 권리들을 다루었다. 안면인증을 통한 노동 감시, 시민의 삶보다 개발 논리를 우선하는 국가 권력, 그리고 평범한 일상을 무너뜨리는 전세사기 등이 구체적인 대상이었다.
특히 마지막 ‘전세사기 판결문’은 세입자의 감수성을 헤아렸다는 점에서 필자에게 더욱 뜻깊었다. 평소 ‘법은 왜 국민의 법감정을 고려하지 않는가’에 대한 의문을 품고 있었는데, 법감정을 고려한 판결이었기 때문이다. 판결문을 함께 읽으며, 우리의 권리가 법의 언어 속에서 어떻게 보호되거나 혹은 배제되는지 선명하게 목격할 수 있었다.
한편, 강좌를 수강하기 전 필자의 목표는 단순히 ‘판결문을 읽을 수 있게 되는 것’이었다. 직접 강독하며 구조와 언어를 익혔고, 일정 부분 독해 능력이 생겼다는 점에서 1차적인 만족감을 느꼈다. 그리고 후기를 쓰고 있는 지금, 강좌의 의미를 다시 새겨본다.
생각건대, 아마도 이 강좌의 의미는 ‘판결문 읽기’가 사법감시의 끝이 아닌 ‘시작’임을 명확히 드러냈다는 것이다. 법의 언어를 이해하는 능력을 함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본질적인 것은 법을 바라보는 비판적 관점을 갖는 일이다. 법의 존재론을 고민할 때 비로소 사회를 바라보는 시민의 시야도 함께 넓어질 수 있다.
사법감시를 위해서는 먼저 알아야 한다. 그러나 단순히 ‘아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된다. 판결문이라는 법의 언어를 징검다리 삼아, ‘법’이라는 성벽 뒤에 숨어 권력을 누리는 이들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이 사법감시의 시작이자, 시민이 권리를 행사하는 길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법은 빠르게 변화하고, 그에 따라 판결은 늘 새롭게 등장한다. 아마도 필자는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계속 판결문을 함께 읽으러 올 것 같다.
‘내 생애 첫 사법감시 – 판결문 읽기 모임’은 2015년부터 많은 시민들의 열렬한 호응을 받아왔습니다. 판결문 읽기 모임은 법률 전문가가 아닌 일반 시민이 판결문을 직접 읽고 해석하며, 사법 권력을 시민의 눈높이에서 감시하는 역량을 기르고자 합니다.
⚖️ 내 생애 첫 사법감시 – 판결문 함께 읽기 모임 개요
🔎 개요
- 일정 : 6/15 ~ 7/6 (매주 월요일 저녁 7시)
- 장소 : 참여연대 느티나무홀
- 주최 : 참여연대
- 강사 :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참여연대 공동대표
📍 프로그램
- 1강 : [강의] 사법 권력에 균열 내기, 판결문 읽기
- 비판적 판결문 읽기를 위한 헌법 지식, 판결문의 구성과 의미
- 판결문 공개제도와 청구 방법
- 2강 : 일터, 효율 관리라는 명목의 디지털 감시를 걷어내고 노동자 ‘존엄’을 세우다
- 근로자 감시용으로 설치한 ‘안면인식기’ 등을 철거한 노조 간부에게 ‘정당행위’라며 무죄를 선고한 판결
- 3강 : 삶터, 거대 개발 논리에 맞서 생태계와 생명의 ‘안전’을 묻다
- ‘새만금 국제공항 개발사업 기본계획’ 취소하라는 시민들의 손을 들어 신공항 건설에 제동을 건 판결
- 4강 : 집, 사기로 무너진 삶에 법의 ‘감수성’을 묻다
- 무자본 갭투기로 229명 임차인에게 180억 원대 피해를 입힌 가해자에 징역 15년을 선고하며 ‘세입자 감수성’을 헤아린 부산 전세사기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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